소설리스트

다시 그 여름으로 3부-13화 (343/382)

<--  -->

명절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어 성진은 비서진을 이끌고 미국 LA로 날아갔다.

가기 전 공항에서 성진은 최미연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미연씨. 미안해요. 명절 끝나면 우리 데이트하려고 했는데, 제가 급하게 일 때문에 미국에 가봐야 해서요.”

[아니에요. 당연히 일이 먼저죠. 저는 성진씨 돌아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요.]

“크크.. 그래요.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요. 또 나 못 본다고 변신하고서 나이트 같은데 가지 말고요.”

[앗.. 성진씨 제발 그런 것들은 이제 잊어요. 하아.. 생각만 해도 창피해 죽겠어요.]

“하하하.. 그래요. 알았어요. 전 미연씨 믿어요. 그리고 이제 제가 미연씨 옆에 있잖아요.

아! 그건 그렇고, 명절 동안 정리한다던 거는 정리했어요?”

[아니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요.]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하아.. 명절 내내 병호 오빠가 우리 집에 있었어요. 완전히 사람이 180도 바뀌어서 우리 부모님께 얼마나 잘하던지 제가 우리 부모님께도 병호 오빠랑 헤어진다고 말을 했는데도 부모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아무래도 우리 부모님, 특히 아버지 마음 돌리는 데는 시간이 조금 필요할 것 같아요. 에효..]

“제가 미국 다녀와서 집에 한 번 찾아갈까요?”

[아뇨. 아무래도 분위기가 성진씨 와도 좋은 소리 못 들으실 거 같아요. 워낙 집안끼리 오래된 거라.. 그냥 제가 어떻게든 해결할 거에요. 이제 저도 그냥 순둥이처럼 살지 않을 거에요.]

성진은 좋은 소리 못 들을 거라는 말에 왠지 입맛이 씁쓸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왜 이렇게 최미연에게 집착하는지 신기했다.

성진은 자신이 결혼을 한다면 영희 누나나 경미 중의 한 명이 될 거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요즘 느낌 같아서는 최미연이 자신의 아내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만큼 최미연에게 드는 감정은 조금 특별했다.

최미연은 고병호의 그런 지저분한 짓을 수없이 봐서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순결을 지킬 정도로 순수했고, 명문대 법대를 다닐 정도로 영특했다.

그리고 그녀의 집안은 우리나라의 최고의 가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법조계의 대단한 집안이었다.

성진이 최미연에게 이렇게 집착하는 것은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어쩌면 그녀의 배경 때문이 아닐까?

최미연을 처음 만났을 때가 성진이 장건호 회장에게 압박을 받고 있었을 때고, 최상류층의 삶에 자신도 모르게 동경을 갖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 성진에게 더 위로 올라가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하던 시기였고, 그때 성진의 눈에 들어온 사람이 바로 최미연이었던 것이다.

정치적인 부분은 광식형님도 있었고, 김소영도 있었다.

또한 대통령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부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법 쪽의 권력은 성진이 접근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성진이 무의식적으로 최미연을 강하게 원하게 된 것일 수도 있었다.

성진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최미연의 말에 스스럼없이 집에 찾아가겠다고 하는 것만 봐도 그가 최미연을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성진은 고병호를 장재영처럼 제거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재영이 그렇게 미국으로 추방당하듯이 쫓겨가고 난 이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병호는 요즘 굉장히 조용했다.

들리는 소문에 사교계에도, 남자들만의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번 명절에 고병호가 최미연의 집에 매일같이 찾아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성진은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우선 최미연이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으니 그녀의 말을 믿어줘야 했다.

그런데도 고병호가 계속 최미연에게 들러붙는다면 그건 그때 가서 처리하면 될 일이다.

최미연의 뉘앙스가 아무래도 최미연이 부모님, 특히 검찰총장인 아버지는 최미연이 싫다고 하는데도 아직 럭키진성 그룹과의 연을 끊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시대에 어렸을 때 혼약이 무슨 효력이 있겠는가?

그런데 딸이 싫다고 하는데도 그걸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분명 럭키진성 그룹이라는 뒷배를 놓고 싶지 않다는 말과도 같았다.

성진은 다시 한 번 더 성공하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검찰총장인 최미연의 아버지 입장에서 성진은 돈은 조금 있는 별 볼 일 없는 풋내기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부와 명성을 가져야만 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요. 힘들면 말해요 언제든 달려갈 테니까요.”

[네.. 헤헤.. 아.. 그리고 저 소진 언니랑 엄청 친해졌어요. 소진 언니도 성진씨 잘 알고 있던데요.]

성진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어렸다.

장소진이 성진의 명령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네. 학교도 같이 다녔고.. 사업적으로도 얽히다 보니 자주 만났었죠.”

[아하.. 그랬구나. 그러고 보니 성진씨 학교 연대였죠? 아.. 나도 서울대 말고 연대 갔으면 성진씨랑 같이 학교 다닐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소진 누나랑 친하게 지내요. 아마 미연씨한테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 될 사람은 아니에요.”

[네. 알아요. 대 장성그룹의 후계자인데 어떻게 손해가 될 수 있겠어요? 안 그래도 친하게 지낼 생각이에요.]

이러다가 수다가 끝도 없을 것 같았다.

“미연씨 저 이만 들어가 볼게요. 다녀와서 전화할게요.”

성진은 최미연과 전화를 끊고, 다시 한 번 다짐을 했다.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로..

그러려면 우선 이번 계약부터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 주 발표 예정인 신규 이동통신사업도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성진은 한쪽에 앉아서 쉬고 있는 비서진을 불러모으고 톨게이트를 통과했다.

잠깐 어두운 공간을 통과해 넓은 활주로가 보이는 환한 통로를 지나가는 성진, 마치 그의 앞길을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성진의 미국 일정은 최대 일주일이었다.

최대한 빨리 계약을 마치고, 2학년 1학기 수강신청 전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로 성진은 2주나 미국에 머물게 된다.

10시간이 넘게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성진 일행은 먼저 호텔에 숙소를 잡고, 하루를 더 보냈다.

그 사이 다시 한 번 계약서와 자료들을 점검하고, 이번 계약에 대한 준비를 했다.

이틀이 지난 후, 지난번 갔던 월마트 서부지점으로 갔다.

이번에는 본사에서도 사람이 나왔는지 지난번보다 미팅에 참석한 인원이 늘어 있었다.

그만큼 물티슈가 미국에서 히트를 쳤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성진은 그것보다 더욱더 기쁜 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월마트 측에서 데려온 한국 통역관이 바로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안타깝게 헤어졌던 ‘정현숙’이었던 것이다.

정현숙도 성진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고, 성진은 놀람을 넘어 눈물이 날 정도 기뻤다.

두 사람은 당장 뛰어가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나누고 싶었지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계약이 진행되는 내내 성진의 입과 정현숙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이건 진짜 운명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 만남이었다.

정현숙이 월마트의 정식 직원도 아니고 그냥 아르바이트 차원에서 통역 일을 한 것뿐이었다.

월마트에서 정현숙을 안 부르면 그만이었다.

그렇다고 월마트 측에서 성진과 정현숙의 관계를 알고서 일부러 불렀을 리도 없고, 이건 순전히 급했던 월마트 담당자가 가장 최근 연락했던 연락처로 전화한 거였고, 여전히 일을 못 구하고 있던 정현숙은 흔쾌히 그 제의를 수락하면서 생긴 우연이었다.

그리고 그 우연은 이렇게 운명적으로 성진과 정현숙을 다시 만나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계약은 성공적이었다.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신경전도 별로 없었고, 계약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월마트 측은 엄청난 금액과 거래량을 불렀고, 그 숫자를 들었을 때, 성진과 일행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큰 나라라고는 하지만, 정말 엄청난 양이었다.

컨테이너 100개, 그것도 순차적으로 3개월 내 인도하는 조건으로 금액은 무려 600억 원이었다.

월마트 측에서 처음에 가격을 조금 깎아보려고 했지만, 성진이 거부의사를 나타내자 더 이상 밀당도 안 하고 그냥 받아들여 버렸다.

그만큼 지금 물티슈가 급하다는 말일 것이다.

아마 이 금액은 한국의 역대 기록 중에서 단기간, 단일품목으로 최고의 수출계약의 찍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물량을 수출하려면 진짜 공장을 24시간 풀로 돌려야 할 것만 같았다.

한국 내수 물량까지 생산한다면 감당이 될지 염려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공장을 증축하든 일단 급한 대로 기계만 사서 늘리든 어떻게든 하면 될 거 같았다.

물량을 한꺼번에 보내는 것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씩 3개월에 나눠서 보는 거니 가능할 것 같았던 것이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서로 악수를 하며 화기애애하게 계약을 마무리했다.

이제는 빨리 정현숙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월마트 측에서 저녁 식사 제의를 해 왔다.

성진은 저녁 식사고 나발이고 빨리 정현숙을 안고 싶었지만, 이렇게 큰 계약을 했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물티슈는 지속적으로 수출이 될 것이고, 그 양이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에 도저히 저녁 식사 초대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저녁 식사 약속을 하고 장소와 시간까지 확인한 후 성진과 일행은 밖으로 나왔다.

성진은 일행들에게 먼저 호텔로 돌아가 한국으로 팩스를 보내고, 오늘부터 당장 공장 풀가동하라고 지시를 해놓고 정현숙을 기다렸다.

잠시 후,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은 정현숙이 밖으로 나왔고, 주차장에 성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빠르게 뛰어와 성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현숙씨. 보고 싶었어요.”

성진이 정현숙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감격에 겨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저.. 저도요. 성진씨. 흑.. 흑..”

이미 정현숙의 얼굴은 눈물바다 되어 있었고, 울음에 목이 메이는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진짜 앞으로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만났네요. 역시.. 우린 운명인가 봐요. 현숙씨..”

성진이 정현숙의 볼에 볼을 비비며 말을 했지만, 정현숙은 꺼이꺼이 울기만 할 뿐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이 남자, 도대체 얼마나 보고 싶었단 말인가?

남편이 옆에 있는 대도 정현숙은 성진이 그리워 매일 밤 눈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물론 남편과는 작년 11월 성진과 마지막 뜨거운 밤을 보낸 이후로 각방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정현숙은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아이의 아빠는 성진이었다.

정현숙의 남편은 정현숙의 보지 속까지 검사하며 그렇게 변태같이 굴더니 결국 한국에서 온 회장들과 접촉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실패했고, 그 뒤로 실의에 빠져 지냈다.

그래도 자신이 한 짓과 그동안 고생했던 아내한테 미안했는지 크리스마스에 조촐하게 저녁이라도 하면서 아내에게 잘 보이려고 했었다.

하지만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정현숙이 입덧을 하자 눈이 돌아버렸다.

그리고 정현숙에게 애 아빠 데려오라고 며칠을 괴롭혔다.

남편은 정현숙이 분명 그날 파티에 왔던 기업가 중에 한 명이라고 판단하고 애를 빌미로 그 기업가와 협상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정현숙은 자신이 성진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 몇 번이나 성진에게 연락을 하려고 마음먹었었다.

하지만 남편의 광적인 모습에 성진에게 어떤 피해라도 갈까 봐 결국 연락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정현숙이 끝까지 입을 열지 않자 남편은 화가 나서 집을 나가버렸다.

그렇다고 아예 집을 나간 것은 아니었다.

돈도 없고, 직장도 없는 사람이 어디 갈 데가 있겠는가?

거리를 떠돌기도 하고, 일용직을 전전하며 살다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집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집에 들어와서는 정현숙을 철저히 없는 사람 취급했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자였다.

그렇다고 그 아이 아버지한테 연락해서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고,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정현숙은 임신까지 한 몸으로 일을 구하기도 힘들었고, 남편은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자 그동안 너무나 힘들게 살았다.

지인들에게 도움도 받고, 먹을 것이 없을 때는 노숙자들을 위해 운영되는 무료급식소에 간 적도 있었다.

아이 때문에라도 어떻게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오랜만에 월마트에서 통역 일거리가 들어왔고, 몇 푼 되지는 않지만, 그거라도 벌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왔는데, 거기에 꿈에도 그리던 그 남자, 성진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그 남자의 품에 안기자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터져 나와 버렸다.

“흐엉.. 엉.. 엉.. 성진씨.. 성진씨.. 너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성진은 정현숙이 대성통곡을 터트리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왜 그래요? 현숙씨. 무슨 일이에요?”

성진은 정현숙의 볼을 양손으로 사랑스럽게 감싸서 자신의 얼굴 앞에 가져갔다.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는 정현숙의 모습이 그렇게 불쌍하고,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왜요? 여전히 남편이 힘들게 해요? 네?”

정현숙은 계속 울면서 성진의 품으로 파고들려고만 했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성진은 다시 정현숙을 품에 꼭 안아주었고, 정현숙이 진정될 때까지 손으로 등을 계속해서 쓰다듬었다.

========== 작품 후기 ==========

추천, 코멘트, 쿠폰 주셔서 감사합니다. ^^

400회 축하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오늘은 기념 연참...!!

다시, 그 여름으로... 402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