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그 여름으로 3부-35화 (36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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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이거 이 친구 안 되겠구먼. 내가 누군지 모르는가?”

“검찰총장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그걸 제가 보냈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

이미 분위기는 틀어진 상황이었다.

최미연의 일 때문이라면 성진도 최대한 검찰총장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건 이제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크크.. 죄인의 성립 조건 중에 말이야, 행위를 통해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게 되는지 확인해 봐라. 그러면 그 사람이 범인이다라는 말이 있네.

이 영상이 고봉수 회장한테 보내지고 같이 들어있는 종이에 물티슈와 키토산 제품 전량 회수하라는 내용이 있다면 그건 누가 가장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일까? 결국 그 이득을 본 사람이 보낸 것이 아닐까? 응?”

“음.. 그렇게 보니 제가 가장 이득을 본 것은 맞네요.”

성진은 당당하게 인정을 했지만, 오히려 끝까지 자신은 아니라는 태도를 취했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응? 당연히 이것은 자네가 보낸 것 아닌가?”

“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건 제가 보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안에 무슨 영상이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뭐.. 혹시 저를 걱정하는 어떤 사람이 보냈을 수는 있겠지요.”

성진은 이야기를 해가면서 점차 자신이 생겼다.

어차피 검찰총장도 저 영상은 공개를 못 한다.

게다가 자신이 보냈다는 직접적인 증거도 없다.

그리고 솔직히 검찰총장하고 저 동영상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

고봉수 회장을 위해 이렇게 나서 주는 것은 기특하기는 하지만, 검찰총장이 이렇게 직접 나설 일이 아니었다.

또한 문제가 있었다면 검찰청으로 부르지 집으로 부르지 않았을 것 아닌가?

“하하.. 이 친구 진짜 안 되겠구먼. 좋아.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아는가?”

“고봉수 회장과의 인연 때문에 그러시는 것 같지만, 솔직히 이렇게 직접 나서실 만큼 큰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가 전해 듣기로는 그걸 보낸 사람도 그 영상을 공개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들은 것 같고요.”

“자네. 진짜 이 영상 안 봤나?”

검찰총장이 조금은 의외라는 얼굴로 말을 했다.

“네. 안 봤습니다. 다른 사람 성관계하는 영상을 제가 무엇 때문에 보겠습니까?”

“허어.. 지금 이 영상이 얼마나 큰 문제가 되는지 알는가? 응?

자네는 지금 고봉수 회장을 협박하는 게 아니라 나를 협박하고 있단 말이야. 알아?”

드디어 검찰총장의 화가 폭발했는지 격하게 말이 튀어나왔다.

“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 영상에 고봉수 회장과 같이 있는 사람이 바로 나란 말이다. 너 지금 나랑 해보잔 소리야? 응?

감히 어디서 검찰총장인 이 최재성을 협박한단 말이냐?

니가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알아?”

“헉.. 그..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 한 전개였다.

영상의 내용을 확인해 보지 않은 성진의 불찰이었다.

“너.. 당장 이 영상 원본 회수해 와. 안 그러면 내가 너희 그룹 가루가 되도록 탈탈 털어줄 테니까.”

“저.. 저.. 총장님 잠시만 고정하십시요.”

“지금 내가 고정하게 생겼어? 나이도 어린 것이 돈 좀 벌었다고 벌써부터 이런 비열한 짓거리나 하고 말이야.”

검찰총장의 영상이라니 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성진은 갑자기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으로 아무 말이 하지 못했다.

“그리고 말이야. 너. 아주 여자 관계도 더럽더구만..”

검찰총장은 책상에 CD를 내려놓고 어떤 서류를 집어 들었다.

“조영희, 김경미, 김수영, 박희선, 김소영 그리고 최근에는 장소진까지..

고병호 건도 니가 터트렸지? 이런 네가 고병호한테 뭐라고 할 수 있는 놈이냐? 응?”

성진의 뒷조사까지 했는지 서류에 성진의 여자들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다행히 어머니와 유부녀들까지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성진의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너 같이 인성도 안 되어 있는 놈한테 절대로 우리 미연이 만나게 할 수 없다. 알겠냐?”

“그.. 그것은..”

성진이 당황해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하고 버벅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최미연이 뛰어들어왔다.

“아.. 아빠. 아니 아버지. 저는 성진씨 사랑해요.”

최미연이 성진의 옆에 오더니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으며 외쳤다.

“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무례하게 들어와? 당장 안 나가?”

“아버지.. 저 성진씨 여자 많은 것도 알아요. 다 괜찮아요. 저는 진짜 성진씨 사랑해요. 성진씨도 저를 진짜로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있어요. 아빠.. 그러니 제발 헤어지라는 말만 하지 말아 주세요. 네?”

“당장. 안 나가? 이 비서. 이 비서.. 들어와서 얘 좀 끌어내.”

검찰총장이 밖을 향해 소리쳐 부르자 아까 성진을 안내했던 남자가 들어와 최미연의 어깨를 잡고 일으키려고 했다.

최미연이 싫다고 발버둥을 치더니 남자를 확 뿌리치고 성진에게 달려와 안겼다.

“이.. 이..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애비 보는 앞에서.. 이 비서 뭐하는가? 얼른 끌어내게.

그리고 미연이 쟤 유학 보낼 테니까 당장 준비해.”

남자가 고개를 숙여 대답을 하더니 다시 최미연에게 다가와 강압적으로 뜯어냈다.

성진은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착같이 성진에게 매달리고 있는 최미연을 성진이 확 끌어안아 버렸다.

“안 됩니다. 미연씨는 이제 제 여잡니다. 절대 이렇게 헤어질 수 없습니다.

저 때문에 총장님 기분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영상은 제가 내일 직접 원본을 들고 찾아 뵙고, 그 자리에서 없애겠습니다.

하지만 미연씨 유학 보내신다는 말씀은 취소해 주십시요.”

여전히 남자는 최미연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성진이 힘을 줘 안고 있자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진은 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검찰총장을 쳐다보았다.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뭐 하나 얼른 미연이 떼어내지 않고..

그리고 나한테 찾아올 필요 없다. 내일 내가 저 친구 보낼 테니까 저 친구 손에 원본 영상 들려 보내라.”

검찰총장이 지시를 내리자 남자는 더욱더 거세게 최미연을 떼어내려고 했다.

이러다 다치겠다 싶은 성진이 팔을 풀어주고 최미연을 바라보았다.

“미연씨. 괜찮아요. 가요. 이러다 다치겠어요.”

성진의 부드러운 말에 최미연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성진에게 미안하다고 계속 말을 하면서 남자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갔다.

“이제 얘기 끝났으니 이만 내 집에서 나가주게.”

“후우..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불미스러운 일에 연관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저 영상은 절대 공개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제가 얘기해서 저 영상 원본 구해놓도록 하겠습니다.”

“흥.”

성진이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말을 했지만, 검찰총장은 콧방귀를 끼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성진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서재를 나와 집을 빠져나왔다.

성진이 집을 나가고 이 비서라고 불리던 남자가 검찰총장이 있는 서재로 들어왔다.

“총장님. 내일 제가 가서 회수해 오겠습니다.”

“그래. 그건 그렇게 하고..... 자네 아까 저놈 눈빛 봤나?”

검찰총장이 잠시 말을 끊더니 남자에게 의외의 말을 건넸다.

“네? 저는 아가씨를 떼어내느라 못 봤습니다만..”

“흐흐흐.. 솔직히 깜짝 놀랐다네. 무슨 놈의 눈빛이 사람 잡아먹을 것 같더구먼.. 하하.. 역시 보통 놈은 아니란 말인가?”

남자는 검찰총장의 독백과 같은 말에 의아할 뿐이다.

“그.. 그럼 아가씨 유학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응? 그건 그거고.. 미연이 유학은 준비해. 최대한 빨리..

아무리 그놈이 호안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 미연이 하고는 어울리지 않아.”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최미연은 한 달도 되지 않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그 사이 어떻게든 연락을 해보려고 했던 성진은 결국 최미연과 만나는 것은커녕 통화조차 해 보지 못했다.

4월 마지막 날인 오늘, 토요일..

오랜만에 장소진이 단둘이 저녁이나 먹으면서 데이트하자고 연락이 왔다.

가뜩이나 이동통신 회사 때문에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장소진이 왜 갑자기 데이트 신청을 해 왔는지 성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나마 성진과 최미연과의 연결점인 장소진이었다.

근 한 달간 최미연과 연락이 되지 않아 괴로워하는 성진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며 위로를 해 준 사람도 장소진이었다.

물론 어머니를 비롯해 다른 여인들도 성진이 최근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있고, 그게 최미연이라는 여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누구도 최미연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특별히 성진을 위로해 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한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성진도 이제 최미연에 대한 마음이 많이 진정이 되어 있었다.

성진은 일반 남자들처럼 사랑놀음에 빠져 우울해 있을 시간이 없었다.

눈이 팽팽 돌아가게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언제까지 코가 쭉 빠져 있겠는가?

미국에 지어지고 있는 공장도 신경 써야 하고, 학교 급식 사업도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긴장해야 했으며, 이동통신 사업도 관여는 안 하고 있지만, 꾸준히 보고를 받으며 성진 나름대로 체크를 하고 있었다.

최미연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하지만, 자신에게는 그녀 못지않게 사랑하는 여인들이 있었고, 그녀들을 실망시키지 않고,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었다.

언제까지 우울한 기분으로 여인들을 걱정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성진은 오랜만에 데이트하자는 장소진의 말에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솔직히 장소진한테 조금 아니 많이 미안하기는 했다.

장소진을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건 의무적으로 섹스를 하기 위한 만남이었고, 더구나 섹스를 할 때도 장소진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녀의 엄마인 홍라경 여사랑 같이 섹스를 했었다.

어찌 이제 20대 중반의 사랑에 목매달 수도 있는 여자가 다른 여자도 아닌 자신의 친엄마랑 한남자에게 매번 같이 안긴단 말인가?

그건 솔직히 그녀를 모독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장소진이 워낙 성진을 사랑하고 이제는 그가 없으면 안 되는 몸이 되어버려서 웃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여자 같았으면 아마 칼부림 났을 것이다.

그래서 성진도 오늘은 온전히 장소진만을 위해 시간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서울을 조금 벗어난 한 레스토랑.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오기에는 애매한 위치에 있기는 했지만, 앞에는 강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고, 주변에는 멀리 논밭도 보이고, 큰 건물이 없어 한가롭고 조용했다.

레스토랑의 마당에는 잔디밭이 깔려 있었고,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반짝이는 하얀 자갈들이 놓여 있는 아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성진과 장소진은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창가 쪽에 앉아서 스파게티로 가볍게 식사를 하고, 지금은 와인을 마시며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하아.. 성진아.. 여기 분위기 좋다. 그치?”

장소진이 한 손으로 테이블에 턱을 기대고 한 손으로는 와인잔을 천천히 돌리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장소진의 눈에는 사랑스러운 감정과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들어있었다.

“응. 그러네. 조용하기도 하고.. 누나 고마워. 내가 누나 신경 쓰이게 했지?”

성진이 손을 뻗어 잔소진의 볼을 쓰다듬었다.

“아니야. 나도 미연이하고 친했으니까.. 일이 그렇게 꼬일 줄 누가 알았겠어? 솔직히 그 동영상 소라 이모한테 받아서 엄마가 보낸 거잖아.”

“됐어. 그 얘긴 그만해. 확인 제대로 못 한 내 잘못이지. 그리고 라경씨나 소라 이모는 전부 나 도우려고 그런 거잖아. 두 사람 잘못 없어.”

“알아. 괜히 속상하니까 그러는 거지.”

장소진은 한숨을 푹 쉰 후 와인잔을 입에 대고 살짝 마셨다.

잔을 내린 장소진이 갑자기 성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왜? 누나.. 무슨 할 말 있어? 갑자기 내 눈치를 왜 봐?”

“저.. 성진아..”

성진은 무슨 일이냐는 듯 장소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늘.. 미연이.. 미국으로 떠났어.”

“뭐? 이렇게 빨리?”

성진이 깜짝 놀라서 소리를 쳤다가 이내 한숨을 내 쉬고는 의자에 힘없이 등을 기댔다.

성진은 너무나 허탈한 심정이 되어버렸다.

결국 최미연의 목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혹시 미연이랑 연락이라도 할 수 있을까 알아봤는데, 미연이한테 관리하는 사람이라고는 하는데 아마도 감시자가 붙어 있나 봐. 미연이 미국 가서도 누구를 만나는지, 누구랑 통화하는지 전부 검찰총장한테 보고 들어갈 거야. 에휴..

결국 이렇게 됐네. 그러고 보면 미연이도 불쌍해. 이제 감시받고 살아야 하잖아.”

성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성진이 못 가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까지 가서 구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성진아 엄마한테 검찰총장 한번 움직여 보라고 부탁해 볼까?”

“아냐. 됐어. 그건 절대 하지 마. 누나 진짜 그건 하지 마.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알았지?”

“으.. 응.”

성진이 버럭 화를 내려고 하자 장소진은 불만이 섞인 얼굴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장소진의 마음 같아서는 검찰총장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려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성진은 차라리 자신이 최미연은 잊으면 잊었지 더 이상 홍라경 여사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일이 틀어지면서 너무 안일했던 자신에 대한 책망도 있었고, 본인이 직접 움직였어야 하는데, 여자들에게만 맡겨놨다는 자존심 상의 문제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추천, 코멘트, 쿠폰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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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지롭 // 네.. 그 동영상 하나로 결국 성진은 최미연과 헤어지게 되어버렸네요. ㅠ.ㅠ

하지만.. 이렇게 끝나지는 않겠죠?? ㅎㅎ

다시, 그 여름으로... 42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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