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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라운.. 이 아닌 이상하게 날씨가 더워지고 있는 5월이 되었다.
1994년 여름은 무지하게 빨리 다가왔다.
엘리뇨 현상이라는 이상 기후로 인해 최악의 여름은 맞이하게 되는 1994년이었다.
연초부터 정신없이 달려온 성진의 사업은 한 해의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학교들과의 계약, 새로운 인력 충원, 새로운 공사 시작 등으로 정신없었던 학교 급식 사업은 이제 어느 정도 계약이 완료되면서 한숨 돌리게 되었다.
또한 럭키진성 그룹과의 마찰로 타격을 입었던, 물티슈 문제도 럭키진성 그룹이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하면서 일단락이 되었고, 키토산 등 건강식품은 어쩔 수 없이 시장을 내 주어야만 했지만, 미래건강식품에서 품목의 다변화를 통해 오히려 다단계 사업이 확장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래통신의 신규 이동통신사업도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중계기 설치 작업이 진행되면서 빠르면 9월, 늦어도 10월에는 시범 서비스에 돌입할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성진은 한숨 돌리게 되었고, 장성전자의 주가와 HK그룹의 주가는 계속 고공 행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또다시 찾아온 학교 축제..
올해도 영희 누나가 과대표를 하게 되면서, 이번에는 아예 영희 누나가 주축이 되어 경영학과 전체 주점을 하기로 결정되어졌다.
올해에도 성진이 나서서 HK치킨이 협찬을 하게 되었고, 무제한 술 제공, 그리고 파티 장비 지원까지 모든 것을 후원하기로 했다.
대신 경영관 앞에 HK그룹 계열사 이름이 나열된 커다란 대형 플랜카드가 붙기로 하면서 또 한 번 학교 명물 주점이 탄생할 전망이었다.
올해 축제에는 성진이 참석하지 않기로 이미 영희 누나와 협의를 본 상태다.
중요한 사업이 아직 초기이거나,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성진이 계속 신경을 쓰고 있어야 했고, 연초부터 너무 무리하게 달려온 것 아닌가 싶어서 영희 누나가 먼저 성진에게 축제 기간만이라도 쉬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었다.
휴가 아닌 휴가를 받게 된 성진은 갑자기 생긴 시간에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그렇다고 바쁘게 지내는 게 생활화된 성진이 놀기도 뭐해서 오랜만에 김두식의 미래기획을 방문하게 되었다.
최근 미래기획은 JM기획에 투자했던 성진이 그 지분을 미래기획에 넘겨버리면서 순식간에 대형 기획사가 되어 버렸고, 은퇴한 진소라가 미래기획에 들어가면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기획사가 되어 버렸다.
오랜만에 찾은 미래기획 회장실 안.
사장인 김두식과 소파에 성진이 마주 앉아 있었다.
“별문제 없지?”
“네. 회장님. 요즘만 같으면 아주 살 것 같습니다. 올해 초에 대형 연기자들도 많이 영입했고, JM기획도 부채문제가 싹 해결되면서 이주만 사장이 매우 안정적으로 신규 뮤지션들을 영입하고 있습니다.
그 뭣이냐? 아이돌? 뭐 그런 거 만든다고 요즘 한창 어린 연습생들 데리고 아주 신 났습니다. 현준형 같은 대형 신인이 하나 터져 주면 좋은데, 현준형이 작년 대마초 사건으로 타격을 입는 바람에 요즘 그쪽 분위기는 조금 그렇습니다. 크크..”
“응? 현준형 대마초? 필로폰 아니었어?”
“네? 무슨 큰일 날 소리 하십니까? 필로폰이라니.. 만약 그거 터지면 회사 문 닫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아!! 물론 우리가 도와주면 되긴 하지만..”
“야.. 두식아. 당장 이주만씨한테 전화해.”
“네?”
“현준형 곧 필로폰 사건 터질지도 모른다. 무조건 그거부터 관리하라고 해?
현준형 예전에도 한 번 걸렸었잖아. 이번에 걸리면 그 형 인생 끝난다. 무조건 현준형 마약부터 관리시키라고.. 말 안 들으면 애들 붙여서 때려서라도 못하게 해. 알았어?”
성진이 이상하게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하자 김두식이 의아한 얼굴로 전화기를 들어 이주만과 통화를 했다.
성진은 진짜 아까운 천재 뮤지선 한 명이 1994년에 필로폰 투약으로 구속되면서 인생 작살나는 것을 보았었다.
성진은 회귀 전, 국민 송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흐린 기억 속의..’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할 정도 음악적 재능도 있었고, 그리고 화려한 댄스실력까지 갖춘 현준형이 고작 마약 하나 제대로 관리해 주지 못해서 아까운 인생이 날아가 버린 것이 너무나 마음 아팠었다.
분명 현준형이 워낙 유명하니까 정, 관계 높은 자재들이 현준형을 자꾸 파티에 초대했었고, 그러다 마약까지 손을 댔다.
정관계 인맥이 있는 자기들은 다 빠져나가 놓고, 현준형만 방패막이로 내세워 매장시켰던 사건이었다.
일단 현준형에게 사람을 붙여 그런 파티부터 못 가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안 되면 뭐 잡아다 뒤지게 뚜드려 패면 알아서 말 듣겠지..
“에휴~ 이미 이주만 사장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의를 시키겠다고 말은 하지만, 그게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야.. 안 되면 애들 붙여서 잡아 와. 새끼가 말 안 들으면 맞아야지.”
“네? 에이 설마 회장님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야.. 넌 맞아서 인생 건지는 게 낫겠냐? 아니면 마약 처먹다가 인생 조지는 게 낫겠냐?”
“헉.. 진.. 진심이십니까?”
“당연히 진심이지. 현준형이 또 파티 참석하고 약 처먹고 다니면 잡아다가 강제로 마약중독 재활 좀 시켜. 알았어?”
“네. 알겠습니다.”
능글맞게 웃던 김두식이 성진의 정색하며 하는 말에 긴장을 했다.
“이주만 사장한테도 강력하게 말하고, 오늘부터 현준형 메니저, 우리 쪽 애들로 싹 바꿔.”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건 그렇고 요즘 우리 희선이는 좀 어때? 연기 실력 좀 늘었냐?”
“흐흐.. 회장님 경미랑 수영이 있는데, 희선이부터 챙기시는 겁니까?”
“새끼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좀 어떠냐고?”
“진소라 선배가 붙어서 연기 공부 좀 시키더니 이번에 수영이 주연으로 들어가는 영화에 조연으로 붙었습니다.”
“오호.. 벌써 영화에 데뷔하는 거야?”
“네. 워낙 마스크가 예쁘기도 하고, 이제 나름 연기도 곧잘 하니까 감독도 바로 오케이 하더라고요.”
“흐흐.. 그래? 영화는 언제부터 촬영 들어가는 데?”
“아!! 촬영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아마 오늘도 촬영하고 있을 겁니다.”
성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영화 촬영이라니, 회귀 전에는 영화 촬영하는 곳 근처에도 못 가봤는데, 이제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런 곳에 아무 방해받지 않고 갈 수 있었다.
더구나 회귀 전 성진이 그렇게 좋아했던 박희선이 영화를 촬영하고 있단다.
성진은 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박희선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물론 수영 누나도 보고 싶기도 했지만, 박희선이 더 보고 싶다는 것은 비밀이다.
“회장님. 시간 괜찮으시면 수영이랑 희선이 촬영하는 데 한 번 가보시겠습니까?”
역시 눈치 빠른 김두식이 성진에게 먼저 제안을 해 왔다.
“흠.. 흠.. 그.. 그럴까? 내가 가도 될까?”
“에이.. 왜 이러세요? 가고 싶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시고서는..”
“하아~ 너.. 이 씨.. 오늘 우리 대련 한 번 하자. 니가 요즘 안 맞아서 몸이 근질근질하지?”
“네? 아.. 아닙니다. 회장님. 잘못했습니다. 바로 모시겠습니다.”
김두식이 화들짝 놀라더니 후다닥 회장실을 뛰쳐나가 버렸다.
그런 김두식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고 있던 성진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바로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두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성진은 서울에서 조금 벗어난 영화 촬영 장소에 도착했다.
5월치고 햇볕이 따가워 조금 덥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쾌청한 날씨는 영화 촬영하기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더구나 이번에 수영 누나와 박희선이 들어간 영화는 현대물 액션 영화로써 수영 누나가 권투를 했던 것을 아주 잘 드러낸 영화라고 했다.
영화 촬영장에 도착해 보니 무슨 사람이 그렇게 많고, 차량에 장비가 그렇게 많은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감독이 있는 장소와 남녀 주인공이 쉬는 곳 정도만 한산했다.
성진이 제일 먼저 수영 누나부터 찾았지만, 수영 누나는 저쪽에서 스턴트맨들과 액션의 합을 맞춰본다고 성진이 온 줄도 모르고 연습에 열심이었다.
수영 누나는 웬만한 액션 장면은 대역 없이 직접 몸으로 소화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요즘 충무로에서 수영 누나의 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얼굴 예쁘지, 몸매 죽이지, 거기에 더구나 연기에 액션까지 되니 벌써부터 수영 누나는 올해 연말 시상식에서 수상이 거론되고 있을 정도였다.
성진은 잠시 멀찍이 서서 수영 누나가 덩치 큰 남자들과 연습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다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저쪽에서 진소라가 어떤 남자 옆에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 남자의 팔에 매달려 살랑살랑 애교를 부리고 있는 게 아닌가?
“어? 두식아. 저기 소라 이모 아니냐?”
“네. 맞습니다. 회장님.”
“소라 이모가 왜 여기 있어?”
“저.. 그게.. 휴우..”
김두식이 한숨부터 쉬었다.
“요즘 진소라 선배가 저렇게 애들 촬영장마다 쫓아다니고 계십니다.
자신이 이제 은퇴해서 해 줄 게 없다면서 애들 지원이라도 제대로 해 줘야겠다고 저렇게 감독들과 스텝들 챙기고 있으신 겁니다.”
“뭐? 소라 이모가 회사 매니저도 아니고 왜 저런 일을 해? 이모가 저런 일 할 짬밥이야?”
“당연히 아니죠. 명색이 우리나라 최고 배우신데.. 그런데 말려도 소용없습니다. 더구나 이 회사가 회장님 회사라고 무조건 잘 돼야 된다면서 친히 저렇게 움직이시는데, 쉬시라고 해도 듣지 않으시고, 도저히 말릴 수가 없습니다.”
성진은 왠지 진소라를 보며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성진의 여인들은 거의 대부분 성진의 그룹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엄청난 일들을 하고 있다.
이제는 여인들이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진소라도 작년부터 성진의 옆에서 그런 모습을 봐 오면서 자신만 성진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은 어머니와 장건호 회장의 일로 죄인이라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성진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고자 시키지도 않았는데, 회사 연기자들을 위해 솔선수범해서 연기 지도도 해 주고, 저렇게 직접 촬영장을 찾아다니며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호호.. 우리 안 감독님 저희 수영이랑 희선이 잘 좀 찍어주세요. 네?”
진소라가 무슨 보약같이 생긴 것에 빨대를 꽂아서 나이 지긋한 남자에게 웃으면서 건넸다.
“아.. 네. 감.. 감사합니다. 진배우가 이렇게까지 안 해도 제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요.”
“아잉. 감독님. 그래도 신경 쓴 것하고 안 쓴 것하고 차이가 나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이렇게 감독님께 부탁드리는 거죠. 호호호..”
뭔가 진소라를 바라보며 어색하고 불만스러운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감독은 진소라가 나긋나긋 웃자 입가에 미묘한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던 대배우 진소라였다.
쳐다보지만 못 했겠는가? 연예계 전반에 미치는 그 엄청난 영향력과 권력은 감히 만나보기도 두려운 존재였었다.
그런데 그런 진소라가 지금 자신에게 알랑거리면서 웃고 있는 것이었다.
“아~~ 요즘 무리를 했는지 무지 피곤하네.”
감독이 갑자기 기지개를 켜면서 고개를 마구 돌려댔다.
“어머.. 우리 감독님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진소라가 얼른 감독의 뒤로 가서 어깨를 주물렀다.
감독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진짜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던,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던 진소라였다.
아름답기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 엄청난 미녀가 지금 감독 자신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었다.
진소라도 이제는 끈 떨어진 연이라고 생각을 한 감독은 어쩌면 진소라와 하룻밤 잘 수도 있겠다는 헛된 상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소라 이모.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헉.. 주.. 아.. 아니.. 성진아. 네가 여기 어쩐 일이야?”
진소라가 방금까지 감독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알랑거리더니 성진이 나타나자 바로 감독은 내팽개쳐두고 후다닥 뛰어가 버렸다.
감독은 괜히 입맛을 다시면서 진소라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얼핏 진소라를 부른 남자를 보니 키도 엄청나게 크고, 생긴 것도 잘 생기고, 귀티가 줄줄 흐르는 것이 딱 봐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솔직히 저 정도 남자쯤은 돼야 진소라가 만나 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무리 진소라가 이제 끈 떨어진 연이라고는 해도 감독인 자신 주제에 감히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저 진소라가 자신의 어깨를 주물러줬다는 것에 만족해야만 할 거 같았다.
“어머.. 어머.. 우리 성진 조카님, 수영이 영화 촬영한다니까 구경 오신 거예요? 헤헤..”
진소라가 후다닥 뛰어오더니 성진에게 매달리며 아양을 떨어댔다.
김두식을 비롯해 진소라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진소라의 모습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다.
그 위엄 넘치고, 모든 배우들의 우상 같았던 존재가 지금 성진의 팔을 두손으로 잡고 흔들면서 소녀처럼 웃고 있었던 것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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