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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소라는 확실히 연기자는 연기자였다.
성진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강아지처럼 굴려다가도 장소도 그렇고,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는 금방 성진의 이모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성진에게 보여주는 미소와 태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 같이 환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진소라의 모습에 김두식은 황당할 정도였다.
그렇게 회사에서 사장인 자신을 쥐잡듯 잡아대는 진소라가 아들 같은 성진에게 무슨 좋아하는 연예인을 만난 여고생처럼 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잠깐 시간이 돼서 구경 오기는 했지만, 왜 이모가 여기서 저 감독에게 그러고 있냐고요?”
성진의 표정이 살짝 굳어 있는 게 목소리도 좋지 않았다.
아무리 진소라가 연예계에서 안 좋은 내용으로 은퇴를 했다고 해도 이렇게 천덕꾸러기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은 진소라를 사랑하는 성진의 입장에서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 아니. 나는 우리 애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기도 하고, 그리고 성진이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 마음은 알겠어요. 그래도 왜 이모가 이런 수모를 겪어야 하느냐고요? 자신이 누군지 기억 안 나요? 이모는 대 배우 진소라예요. 진소라라고요.
어디 가서 이딴 취급 당할 사람이 아니란 말이에요.”
성진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난 괜찮아.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 헤헤..”
진소라는 자신을 위해서 화를 내주는 성진을 보며 기가 죽은 듯 말을 했지만, 입꼬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승천하고 있었다.
“하아.. 진짜.. 이모 당장 회사로 돌아가요. 내가 이모 할 일 만들어 줄게요.”
“히히.. 우리 성진이 지금 이모 때문에 화난 거야? 기분 좋다.”
“지금 웃음이 나와요? 네?”
성진은 결국 기가 팍 죽은 모습을 하는 진소라가 안쓰러워 목소리를 낮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소라는 언제 그랬나 싶게 실실 웃으며 사랑하는 주인님, 성진이 자신을 이만큼 생각해 주고 있다는 것에 그저 기분이 찢어지게 좋을 뿐이었다.
“주인님. 너무 그렇게 화내지 마세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현장에 나와 있는 게 재밌어요. 호호..
그리고 이렇게 주인님께서 제 생각해주셔서 전 너무 좋아요. 전 주인님께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이런 것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어요.”
성진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분을 삭이자 진소라가 성진의 귀에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휴우~ 알았어요. 그러니까 이제 소라 이모는 현장에 나오지 말아요. 알았어요?”
“네. 알겠습니다. 조카님. 조카님 분부대로 합지요. 히히히..”
진소라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함박 웃음을 터트리며 여전히 성진의 팔을 끌어안고 있었다.
김두식은 진소라의 저런 모습을 처음 보는지 입을 벌리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그런 진소라를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성진을 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형님에게 괜히 개기지 말자. 저 무시무시한 진소라 선배도 형님에게는 꼼짝도 못하네. 진짜 카리스마 장난 아니네.’
그런데 그때, 갑자기 저쪽 연기자들 대기하는 곳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선.. 선배님 이러지 마세요.”
“뭐? 야. 이제 조연 하나 맡은 신입이 지금 내 말에 거부하는 거야? 허어.. 이거 안 되겠네. 감독한테 조연 바꾸라고 얘기를 하든지 해야지. 참나..”
“죄..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러니까 괜히 팅기지 말고.. 응? 어깨 좀 주물러 보라고.. 혹시 알아? 내가 우리 희선이 잘 봐서 다음에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해 줄 수도 있잖아. 안 그래? 흐흐흐..”
딱 들어봐도 어디서 양아치 같은 새끼가 쓰레기 같은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 소리였다.
성진을 비롯해 진소라, 김두식이 자연스럽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그런데 거기에는 요즘 한창 충무로에서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는 남자 배우 이성재와 그 앞에서 두 손을 공손하게 앞으로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 박희선이 보였다.
이성재는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잘생긴 현재 최고의 미남 배우다.
몇 년 전 한 드라마에서 보디가드 역할로 나오면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더니 몇 번의 광고와 영화에서 카리스마 있는 역할을 맡으며 현재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미남 배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충무로 바닥에서 소문은 싸가지가 없고, 특히 예쁜 여자 연예인들에게 추파를 던져 하룻밤 자고 버리는 바람둥이로 소문이 꽤나 안 좋았다.
그런데 그런 이성재의 눈에 극강의 미녀 박희선이 들어온 것이다.
더구나 이제 첫 작품에 투입된 신인이니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겠는가?
그래서 지금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그런 박희선에게 어깨를 주물러 보라고 하면서 수작직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잘만 하면 오늘 박희선을 데리고 가서 하룻밤 잘 놀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
“아니.. 이성재 저 새끼가?”
진소라의 이마가 팍 꾸겨지더니 대뜸 성진의 팔을 뿌리치고는 이성재에게 걸어갔다.
“야.. 이성재. 이 새끼야. 너 지금 우리 희선이한테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어.. 어? 진.. 진소라 선배.”
“뭐? 선. 배? 하.. 나.. 이 새끼 진짜 많이 컸네. 신인 때 질질 싸고 다니던 새끼가.. 이런 싸가지없는 새끼야, 선배님이라고 똑바로 안 불러?”
“네? 아.. 선배.. 님.”
이성재는 진소라를 보고 순간 질린 얼굴을 하더니 마지못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님’자를 붙였다.
그런 이성재는 슬쩍 주변을 둘러보고는 진소라가 소리를 질러 사람들이 다 쳐다보자 인상을 확 찡그렸다.
가뜩이나 이성재에게 잔뜩 긴장하고 있던 박희선은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진소라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다가오자 깜짝 놀라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다.
“허억.. 선.. 선생님. 안.. 안녕하세요.”
“희선이 넌 저쪽에 가 있어.”
“네.. 네. 선.. 선생님.”
박희선이 진소라에게 구십 도로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성진을 발견하고는 후다닥 뛰어왔다.
“오.. 오빠. 여긴 어쩐 일이세요? 히히히..”
“뭐야? 방금은 무서워서 덜덜 떨더니 금방 바보처럼 웃네? 너 그거 연기였냐?”
“아.. 아뇨. 진소라 선생님만 뵈면 오금이 저려서.. 그런데 지금 여기 우리 오빠가 있잖아요. 헤헤..”
박희선이 좀 전에 진소라가 했던 것처럼 성진의 팔을 잡고 좌우로 흔들며 소녀티를 팍팍 냈다.
김두식은 그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떻게 하나같이 여자들이 성진만 보면 다 저렇게 변하는지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그런데 방금 이성재랑 무슨 일이야?”
“에에? 오빠, 이성재 선배님도 알아요?”
“그럼 모르겠냐? 요즘 이성재 모르는 한국 사람이 어딨냐?”
“아아.. 그렇죠. 전 또 개인적으로 아시는가 했어요.”
그 예쁘고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성진에게 신 난다는 듯 질문을 해대는 박희선이었다.
확실히 아직은 어렸지만, 그 사차원적인 통통 튀는 성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아!! 회귀 전이었으니 원래 성격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방금 무슨 일이냐고?”
“아.. 별거 아니에요. 그냥 이 바닥에서 흔한 일이죠. 이성재 선배가 저 보고 어깨 좀 주물러 보라고 해서 제가 싫다고 했어요. 히히..”
박희선은 역시 자신의 성격대로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성진은 이미 회귀 전부터 인터넷에서 본 게 있기 때문에 이성재라는 인간에 대해서 별로 신용이 가지 않았다.
물론 이성재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그의 영화는 매우 좋아했지만, 연기 밖에서 그는 한마디로 발정 난 짐승 새끼였기 때문이다.
분명 박희선에게 한 행동도 박희선의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미모를 보고 수작질을 벌인 게 분명했다.
성진은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영화 촬영한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갖고 구경 왔더니, 감독이라는 새끼부터 저 이성재 새끼까지 하나같이 자신의 여인들에게 수작질이나 벌이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선배님. 여기는 선배님 촬영장도 아닌데 왜 여기서 이러시죠? 아아.. 이제는 이런 촬영도 못 하시죠? 크크크..”
그렇게 성진이 박희선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이성재의 높아진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건 절대로 대배우 진소라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뭐.. 뭐? 이런 어린 새끼가 어이가 없네. 너 내가 우스워?”
“뭐.. 진소라 선배는 은퇴하신 거 아닙니까? 제가 무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저도 나름 밀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하하하..”
이성재의 선배님이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선배라는 말로 줄어들어 있었고, 한껏 진소라에게 시건방을 떨고 있었다.
진소라는 어이가 없는지 황당한 표정을 하고는 이성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성진이 나섰다.
안 그랬다가는 당장 진소라가 이성재의 뺨이라도 날릴 기세였던 것이다.
“소라 이모 그냥 가요. 괜히 이모만 이상해져요.”
진소라가 무섭게 이성재를 노려보며 팔을 꿈틀거리다가 성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치 원래부터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바로 수그러들면서 성진의 눈치를 살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러한 무시당하는 것도, 무시를 당해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성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성진의 기분이 안 좋을까 봐 그게 더 신경이 쓰이는 진소라였다.
그런데 그때 이성재가 성진의 팔에 박희선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는 눈가가 꿈틀거렸다.
“야.. 너 뭐야? 희선이 매니저라도 돼? 왜 희선이랑 같이 있는 거야?”
분명히 성진이 진소라에게 이모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이 멍청하고 안하무인인 이성재는 그런 성진에게 어이없게도 매니저라고 하면서 시비를 걸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진소라까지 데리고 뒤돌아서던 성진이 이성재의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뭔가 재밌는 것을 발견한 악동처럼 씨익 웃더니 박희선의 팔을 풀고는 몸을 완전히 돌렸다.
“아.. 안녕하세요. 우리 희선이 매니저를 맡고 있는 이성진이라고 합니다. 우리 희선이 잘 부탁드립니다. 헤헤..”
갑자기 성진이 이상한 짓을 하자 사색이 된 김두식이 후다닥 뛰어오고, 박희선과 진소라는 멍하니 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그래? 크크크.. 우리 친하게 지내자. 나는 누군지 알지? 좀 이따가 우리 조용히 얘기 좀 하자. 혹시 아냐? 희선이 쟤 조만간에 여자 주인공이라도 될지 말이야. 하하하..”
주변이 이렇게 시끄러운데도 그 발정 난 개새끼 본능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이성재였다.
“오오.. 그렇게 우리 희선이에게 신경 써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성. 재. 선배님.”
성진이 웃으며 말을 하면서도 이성재라는 이름을 부르며 이를 뿌드득 갈았다.
“그래. 그래. 야.. 너 말이 좀 통하네. 크크..”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헤헤..”
성진이 인사를 하자 이성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만 까딱이고는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아니.. 형님.. 아니 회장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김두식이 바짝 다가와 쩔쩔매며 성진에게 말을 하자 진소라와 박희선도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응? 그냥. 왠지 저 새끼 꼴 뵈기 싫어서.. 나 당분간 희선이 매니저다 알았냐?”
“네? 아니 회장님 진짜 왜 이러십니까? 밑에서 일하는 애들도 생각 해 주셔야죠.”
“그냥 며칠만 할게. 다들 모른 척하고 있으라고 그래.”
김두식이 황당하며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박희선은 기쁨의 얼굴을, 진소라는 원통해 죽겠다는 얼굴에서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와.. 그럼 우리 성진 오빠가 내 매니져 하는 거야? 앗싸.. 신 난다. 오예..”
“호호.. 우리 성진이가 재밌는 일을 벌이네. 조만간 큰 거 하나 터지겠는데.. 저 이성재 뒤에 모 그룹 사모님이 스폰으로 있단 얘기가 있던데 말이야.”
진소라도 성진이 하려는 일에 대한 견적이 벌써 나왔는지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술술 불고 있었다.
“오호.. 그래요? 야.. 두식아. 저 이성재 새끼 스폰이 누군지 뒷조사 좀 해 봐.”
“네. 회장님.”
김두식은 어쩔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고 성진의 명령에 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했다.
성진이 박희선 매니저를 자처한 것은 일단 이성재의 손에서 진소라랑 박희선을 구해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왠지 재밌을 것 같았다.
나중에 자신이 HK그룹 회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성재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 지 궁금했고, 기회를 보다가 제대로 한 방 먹여주고 싶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다 계속 싸가지 없는 모습이 보이면 그 사모님 스폰 공개해 버려 인생 망치게 해 주던가..
아무튼 이성재는 성진과 일행이 멀어져 있는데도 계속 박희선을 쳐다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그러다 성진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히 웃으며 친한 척을 해댔다.
자신이 옆에 있는 이상 박희선에게 더 이상 이상한 짓을 하지 않고는 있지만, 뻔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이자 성진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잠시 후 수영 누나까지 일행에 합류하고, 박희선이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수영 누나에게 다 얘기를 했다.
“뭐? 저 변태 새끼가 너한테까지 손을 대려고 한 거야?”
“누나.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성진이 수영 누나의 말을 듣고는 화들짝 놀라서 물어보았다.
그제서야 수영 누나는 성진이 있는 곳에서 말을 잘못 꺼냈다는 것을 깨닫고 당황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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