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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여름으로 3부-41화 (371/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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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진의 멋있는 모습에 성진의 여인들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수영 누나는 예전에 성진이 복싱장에서 같이 운동도 하고, 전국체전에서의 활약도 모두 보았었다.

게다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사람으로서 성진의 이러한 모습이 너무나 반가웠고, 너무나 멋있어서 당장에라도 품으로 달려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역시 자신이 반한 남자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하지만 그런 성진의 모습을 보면서 이성재는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박희선에게 작업을 걸어 보기 위해서 아무 생각 없이 매니저 놈을 데려갔고, 대충 맞는 연기나 하다가 빠질 줄 알았는데, 성진이 연기하는 자리가 이 액션씬에서 자신 다음으로 큰 비중의 역할인데다가 지금 보니 몸 움직이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진의 역할은 조폭의 행동대장 역할로 조직에 배신당한 것이 화가 나 본거지로 쳐들어가 조폭들과 한바탕 난투를 벌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마침 그때 쳐들어온 형사 이성재를 마주치게 되고 다시 조직의 편에 서서 이성재와 일대일 싸움을 하는 중요한 조연이었던 것이다.

성진은 스턴트맨들과 세 번째 합을 맞춰보고는 이번에는 이성재와 일대일 합을 맞춰볼 차례였다.

그렇게 이성재와 마주 섰는데, 이성재의 얼굴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성진은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성재가 병신 같아도 너무 병신 같았던 것이다.

지 주제 파악도 제대로 못 하고, 교만하고, 저질에다가 이제 보니 시기심까지 있는 최하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무술 감독이 와서 이성재와 합을 알려주고 첫 번째 합을 맞춰보게 되었다.

몇 번 천천히 서로 주먹질을 해보고 있는데, 이성재가 실수인 척을 하면서 주먹으로 성진의 배를 세게 때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그깟 평범한 주먹질에 성진은 별로 아프지는 않았지만, 분명 방금 이성재의 행동은 고의적이었다.

배를 맞고 고개를 드니 이성재가 자신이 연기에 몰입하다 보니 그랬다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성진의 여인들은 성진이 걱정돼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고, 김두식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좆 됐다. 이성재 저.. 미친 새끼. 성진 형님, 이미 눈 돌아갔다. 이 일을 어쩌나.. 이성재야.. 미안하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성진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천천히 허리를 펴면서 씨익 웃었다.

그리고는 두 번 더 이성재와 합을 맞춰보고는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은 일사천리였다.

성진이 워낙 운동신경도 좋고, 싸움에 특화돼 있다 보니 조폭과의 격투 씬을 단 한번에 오케이 싸인을 받고 마칠 수가 있었다.

잠시 쉬고 이성재와 일대일 씬을 찍기로 했다.

그때 감독이 갑자기 성진에게 다가왔다.

“자네.. 나랑 같이 계속 촬영하지 않겠나? 내 영화감독 경력이 15년이 넘었지만, 자네같이 액션에 특화되어 있는 사람은 처음 봤네. 더구나 자네 얼굴도 되고.. 잘만하면 자네 크게 뜰 수도 있겠어. 어떤가?”

“네? 아.. 감사합니다. 생각 좀 해 보겠습니다.”

성진은 당연히 영화배우 같은 것은 할 생각도 없었다.

지금은 저 이성재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잠깐 유희를 하고 있는 것일 뿐, 이성재가 자신의 여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이렇게 조연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은근히 거부하는 성진에게 감독이 계속 옆에 붙어서 영화배우 하자고 설득을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또 이성재 눈에 아니 꼽게 보였나 보다.

이성재와 일대일 격투씬이 시작되고, 이성재가 또다시 성진의 배를 진짜로 때리면서 엔지가 나 버린 것이다.

“아아.. 미안.. 나도 모르게 그만.. 네가 이해 좀 해라. 크크..”

이제는 누가 봐도 이성재가 일부러 그랬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감독도 한숨을 쉬고는 성진에게 괜찮으냐고 물어봤고, 성진이 괜찮으니 다시 촬영하자고 하면서 이를 갈았다.

두 번째 촬영은 무난하게 잘 지나갔다.

감독에게서 오케이 싸인까지 떨어져 촬영이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저.. 감독님 아무래도 이 씬 다시 한 번만 찍었으면 합니다.”

갑자기 성진이 손을 번쩍 들고는 감독에게 주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저 옆에서 김두식이 손을 번쩍 들더니 두 손으로 이마와 눈을 가리는 게 보였다.

“야.. 니가 뭔데 다시 하자 말자 헛소리야. 감독님이 오케이 했으면 된 거지..”

이성재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성진은 감독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감독도 아무리 성진이 괜찮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 같이 촬영하자고 조르기는 했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신인 주제에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찍자고 하자 화가 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김두식 부리나케 감독에게 뛰어가더니 감독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감독이 화들짝 놀라더니 성진을 바라봤다가 김두식을 바라봤다가 하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성재도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감독과 김두식을 쳐다보았다.

“자.. 이번씬 다시 촬영 갑니다. 어이 조명 거기 똑바로 들어.”

그러더니 감독이 갑자기 촬영 재개를 외치며 촬영 감독을 불렀다.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고, 촬영 감독은 왜 그러냐면서 감독에게 다가갔다.

“야.. 그냥 찍는 시늉만 해.”

감독이 촬영 감독에게 넌지시 지시를 했다.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 그런 게 있으니까 기록 남기지 말고, 그냥 찍는 시늉만 해. 알았어?”

촬영 감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카메라로 돌아갔고, 잠시 감독의 큐 싸인이 떨어졌다.

뭐가 뭔지 어리둥절한 이성재도 감독이 다시 촬영하자니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배우라고 자세를 잡고 있다가 감독의 싸인에 맞춰 성진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런데 갑자기 성진의 주먹이 ‘부왕’하고 무지막지한 소리를 내면서 밑에서부터 휘둘러지더니 이성재의 복부에 틀어박히는 것이었다.

“커허어어억..”

이성재는 순간 눈앞이 하얘지는 것을 느끼며 잠시 정신이 나갔다 들어왔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성진의 왼손이 이번에는 이성재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퍼억.. 어떻게 사람의 몸에서 저런 소리가 나는지 신기할 정도의 타격 소리가 들려왔다.

이성재의 몸이 기이하게 도저히 인간으로서 보여줄 수 없는 모습, 옆으로 구십 도가 꺾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성재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을 옆으로 꺾은 채 성진의 손에 얹혀 있었다.

성진이 왼손을 뒤로 확 잡아떼자 이성재의 몸이 털썩 쓰러졌다.

성진이 그런 이성재의 멱살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이 개새끼가 아까부터 봐주니까 뒤질라고..”

그리고는 성진이 다시 오른손을 허리에서 뒤로 잡아당겨 이성재의 복부를 있는 힘껏 때려버렸다.

이성재의 몸이 마치 공중에 매달려 있는 샌드백처럼 뒤로 날아가려고 했지만, 성진이 왼손으로 멱살을 잡고 있느라 날아가지는 못하고 발이 붕 떠서 뒤로 날아가 버렸다.

“커허어억.. 살.. 살려.. 주.. 세요.”

이성재가 엄청난 신음을 지르더니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떠듬떠듬 말을 했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닫고는 이성재의 매니저 등이 마구 뛰어왔다.

“너.. 이 새끼 뭐하는 거야?”

이성재의 매니저가 득달같이 달려오며 성진에게 달려들려고 하자 언제 나타났는지 김두식이 그 덩치 좋은 매니저를 한 팔로 안고 말렸다.

“엇? 미래기획, 김 사장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왜 말리십니까? 지금 우리 성재가 저렇게 맞고 있는데..”

이성재의 매니저가 김두식에게 화를 버럭 냈다.

“그냥 참아라. 저분 우리 회사 회장님이시다. 그리고 그 유명한 광식형님 동생, 이성진님이시다. 죽고 싶지 않으면 그냥 가만히 있어라.”

그제서야 이성재 매니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성진을 바라보며 부들부들 떨었다.

매니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뒷세계 사람들과 어느 정도 연을 맺고 있다 보니 전설처럼 회자되는 이성진의 이야기를 못 들어 봤을 리가 없었다.

“저.. 저분이.. 그 이성진님.. 이십니까?”

“그래.. 우리 HK그룹 회장님이시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이 일도 조용히 묻고 넘어가라. 솔직히 이성재 저 새끼가 요즘 나대기도 했고, 회장님께 오늘 실수하기도 했잖아?”

이성재 매니저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며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때 성진이 김두식과 서 있는 이성재의 매니저를 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허억.. 회.. 회장님께서 오라고 하시는데요?”

“뭐? 앗.. 야.. 얼른 가자.”

뒤늦게 발견한 김두식이 이성재 매니저를 재촉해 후다닥 성진의 앞으로 뛰어왔다.

“당신이 이 새끼 매너저요?”

“네.. 넵. 그.. 그렇습니다. 회.. 회장님.”

이성재 매니저는 사시나무 떨 듯 떨다가 성진이 띠꺼운 얼굴로 쳐다보며 말을 하자 바로 차려자세를 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 새끼. 일주일 안에 완벽하게 고쳐서 영화 복귀시켜요. 내 말 무슨 소린지 알았죠?”

“네? 네..”

“만약 일주일 안에 촬영장에 복귀를 안 한다거나 이 새끼가 영화 못 찍겠다고 땡깡 부리면 우리 애들이 당신하고 이 새끼 잡으러 찾아갈 겁니다. 알겠소?”

“허.. 거거걱.. 알.. 알겠습니다.”

이성재 매니저는 성진을 바라보며 진짜 살기가 무엇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들은 말로는 전설의 파이터라고 그쪽 세계에 있는 형님이나 동생들한테 많이 들어봤지만, 실제로 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그냥 자신을 쳐다만 보고 있는데 숨도 제대로 못 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잡으러 온다는 소리가 농담이 아닌 진짜 잡히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오늘 일은 오프 더 레코더인 거 알죠?”

“아.. 네. 당연합니다. 절대 입 밖에도 꺼내지 않겠습니다.”

덩치는 산만한 사람이 덜덜 떠는 모습이 안쓰럽게 보일 정도였다.

성진은 더 이상 겁줬다가는 오줌이라도 지릴 것 같아서 얼른 이성재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라고 비켜줬다.

한편..

“액션씬 하나 제대로 뽑았다고 좋아했더니, 주인공이 저렇게 작살이 났으니.. 하아.. 영화 망했다. 망했어. 어무이...”

저쪽에서는 감독이 한숨을 푹푹 쉬며 영화 망했다고 머리를 말아쥐고 있었다.

성진은 이미 이성재를 매니저에게 들려 보내 놓고는 감독한테 갔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살짝 열이 받아서.. 하하..”

“하아.. 회장님. 말씀이나 좀 해 주시지.. 전 그것도 모르고.. 이성재 그 인간 언젠가 한번은 이렇게 당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하지만, 이제 영화가 걱정입니다. 분명 이성재 그 인간 성격에 영화 안 찍는다고 지랄 난리를 칠 텐데..”

감독이 씁쓸한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여기 김 사장님.”

그래도 외부라고 성진은 김두식을 김 사장이라고 불러줬다.

“네. 회장님.”

“이성재, 일주일 안에 영화로 복귀시킬 수 있죠?”

“네. 물론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독님. 제가 책임지고 이성재 일주일 안에 데리고 오겠습니다.”

“뭐..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갑자기 스케줄이 꼬여버렸네요. 그래서 말인데..”

감독이 성진을 바라보며 은근히 말을 꺼내면서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헉.. 뭐.. 뭡니까? 감독님 그 눈빛..”

성진은 왠지 소름이 끼치는 것만 같았다.

“회장님 아까 보니까 액션이 장난이 아니시던데.. 사흘만.. 아니 이틀만 저희 영화 액션씬 좀 찍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안 됩니다.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성진은 가만있는데, 김두식이 손을 마구 흔들며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성진이 감독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번주는 축제 기간으로 오랜만에 성진에게는 달콤한 휴식 시간이었다.

그 휴식 시간에 이렇게 수영 누나랑, 박희선이랑 같이 시간도 보내고, 같이 영화도 찍으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다른 연기는 못 하니까 연기는 안 하고 오직 액션만 찍겠습니다. 괜찮겠죠?”

“앗싸..”

감독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펄쩍 뛰면서 주먹으로 승리의 제스쳐를 취했다.

“회.. 회장님. 괜.. 괜찮으시겠습니까?”

김두식이 잔뜩 걱정스러운 얼굴로 성진을 말리려고 했다.

“네.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몸 한 번 제대로 풀어보죠. 뭐.. 그리고 우리 김수영 배우랑 박희선 배우 케어도 좀 하고..”

그런데 김두식이 안 된다고 그렇게 뜯어말리더니 성진이 영화를 찍는다고 하자 갑자기 환하게 웃는 것이 아닌가?

성진은 왠지 뭔가 속은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재밌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웃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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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 여름으로... 43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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