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그 여름으로 3부-46화 (376/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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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어머니가 아무래도 예사 인물이 아닌 것 같아 보이자 빠르게 김두식에게 다가가 말을 건넸다.

“흠.. 흠.. 이보게 김 사장. 이 아름다우신 분은 누구 신가?”

어머니 앞에서 땀까지 삐질삐질 흘려가며 어쩔 줄 몰라하던 김두식이 감독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아.. 감독님. 인.. 인사하세요. 여기 이분은 저기 우리 회장님의 어머님 되시는 김 희자 경자 되시는 HK그룹 회장님 되십니다.”

“헉.. 뭐? 안..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엊그제 성진과 이성재와의 일도 있어서 그런지 어머니가 HK그룹 회장이라는 소리를 듣자 거의 기절할 것처럼 놀라며 자동적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90년대 중반 이 당시는 대기업 회장이라는 위치는 사람 목숨 하나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없애버릴 수 있는 그런 위치였다.

그러니 일개 감독에 불과한 안 감독이 어머니 앞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어머.. 감독님이세요? 저는 오늘 우리 아들이 영화 촬영한다고 해서 그냥 구경 와 봤어요. 저는 신경쓰지 마세요. 그리고 우리 아들 잘 부탁드려요. 호호호..”

아주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어머니는 마치 무슨 학부형이 학교 와서 선생에게 자식 잘 부탁한다는 듯이 말을 했다.

감독 옆까지 와서 듣고 있던 성진의 이마가 확 꾸겨졌다.

“하아.. 어머니.. 무슨.. 제가 앱니까?”

“어머.. 그럼 니가 이 엄마한테는 애지. 물론 아니기도 하지만..”

촬영장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성진을 봐서 그런 것일까?

이상하게 성진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이 심하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 오빠를 보는 듯한 그런 시선이었다.

말끝도 묘하게 여운을 남기고 말이다.

성진이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 사람들이 전부 지금 여기만 쳐다보고 있는 중이라 결국 한숨만 쉬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어머니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성진을 보며 감독이 눈을 번쩍였다.

“저.. 회장님. 그런데.. 제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갑자기 저에게요?”

“네. 그게 다름이 아니라.. 여기 대본 좀 한 번 봐주십시오. 제가 생각해서 우리 성진군에게 비중 있는 조연 역할을 주려고 했는데, 성진군이 어째 싫다고 하네요. 제가 봤을 때는 우리 성진군이 액션이 장난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허허..”

감독이 얼른 들고 있던 대본에서 성진이 나오는 부분을 펼쳐서 어머니에게 넘겼다.

어머니는 얼떨결에 받아서는 읽어보았고, 덩달아 진소라도 같이 서서 대본을 보고 있었다.

“어머.. 역할 너무 멋있다. 이거 성진이가 하면 딱이겠는데..”

대배우 진소라의 말이었다.

확실히 진소라가 보기에는 이 역할에 작가가 무지하게 힘을 준 티가 팍팍 났다.

“그.. 그러니? 뭐.. 멋있기는 한 거 같은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니야. 이거 역할 진짜 잘 만들어진 거야. 작가가 누군지 아주 성진이를 띄우려고 작정하고 쓴 거야. 이거..”

“진짜?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기도 하고..”

분명 진소라와 감독 간에는 다른 얘기가 없었을 텐데도 진소라는 마치 감독에게 사주라도 받은 것처럼 호들갑을 떨면서 얘기를 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이 멋있게 나온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며 대본과 성진을 번갈아 보며 개구장이처럼 웃고 있었다.

“아이고.. 역시 우리 진소라 대~ 배우님의 눈은 정확하시군요. 이거 어제 우리가 온종일 심혈을 기울여서 뽑아낸 겁니다. 제가 책임지고 우리 성진군 확실하게 띄워보겠습니다.”

성진은 황당했다.

영화배우 할 생각도 없고,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수영 누나와 박희선이 나온다고 해서 잠깐 도와준다는 마음으로 해 보는 건데 띄우긴 누굴 띄운단 말인가?

하지만 어머니의 눈빛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성진을 스타로 만들어 준다는데 절대로 싫다고 할 어머니가 아니었던 것이다.

“어머.. 감독님. 역시 이름 있는 감독님이라서 그런지 뭐가 달라도 다르시네요. 성격 진짜 화끈하시네요.

얘 성진아. 너 이 역할 꼭 해라. 알았지? 이 엄마 소원이야. 응?”

어머니가 갑자기 장화 신은 고양이의 주인공 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성진을 바라보며 성진의 손을 잡았다.

이미 성진은 어머니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본 순간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어머니의 저 눈빛은 자신이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저 눈빛을 하면 너무나 사랑스러워 밤에 잠을 안 재우고 싶기 때문이다.

“네.. 네. 알았어요. 할게요. 감독님. 딱 여기까지만입니다.”

“네. 그럼요. 자자.. 성진군이 역할 맡았으니까 다들 촬영준비 시작해.”

감독은 무슨 천군만마를 얻은 표정을 짓더니 입가에 씨익 미소를 짓고는 스텝들을 향해 소리치고는 카메라 쪽으로 가버렸다.

성진은 왠지 뭔가 크게 당한 것 같은 안 좋은 기분이 들었지만,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피식 웃고 말았다.

“어머니. 자 여기 소개해 드릴 사람이 있어요.”

어머니 옆에서 팔짱을 끼고 그런 어머니와 성진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던 수영 누나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응? 그래 우리 수영이.. 누구?”

“희선아. 이리 와. 인사드려.”

수영 누나에게서 조금 떨어져 손가락을 잡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박희선이 수영 누나의 부름에 쏜살같이 뛰어왔다.

“안.. 안녕하세요. 박희선이라고 합니다. 어머님..”

목청이 터져라 인사를 하던 박희선이 마지막에 어머님이라고 부를 때는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며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아!!! 니가 그 희선이구나? 어머.. 어쩌면 이렇게 예쁠까? 얘, 소라야 희선이 얘가 어쩌면 너 젊었을 때보다 더 예쁜 것 같다. 그렇지?”

“그럼 우리 희선이는 아마 조만간 우리나라 최고 미녀 배우가 될 거다. 내가 장담해.”

성진은 속으로 우리나라가 아니라 아시아 최고 미녀 배우가 된다며 피식 웃었다.

박희선은 어머니와 진소라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성진은 그런 박희선과 그 일대의 풍경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나이에 비해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에 진소라, 거기다 수영 누나와 그녀들을 압살할 만큼 아름다운 박희선까지 한꺼번에 모여 있으니 정말 눈이 호강하는 듯 어마어마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진의 옆에 서 있는 김두식은 그녀들을 보며 벌써부터 입을 헤 벌리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왠지 감독에게 뭔가 당한 것 같은 성진은 아무래도 김두식도 이 일에 연루가 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김두식의 뒤통수를 냅다 갈겨버렸다.

증거는 없고, 뭐라고 하기는 그러니 그냥 분풀이나 한 것이다.

“아아악.. 왜.. 왜 그러십니까? 회장님.”

“그냥.. 새끼야..”

김두식은 성진을 향해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어느새 눈은 다시 네 미녀를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성진은 한 대 더 때릴까 하다가 스턴트 배우들과 새로 합을 짜보자며 부르는 감독의 부름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김두식도 혼자서 뻘쭘하게 서서 여자들을 쳐다보기 뭐했는지 매니저들에게 가 보겠다고 움직였고, 결국 여자들만 남게 되었다.

“그래. 우리 희선이는 성진이를 어떻게 생각하니?”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질문에 박희선은 당황해서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 희선이는 이미 성진이 여자예요. 얼마 전에 저와 경미까지 셋이서 같이 성진이랑 밤을 보냈어요.”

“응? 벌써? 그럼 희선이는 이제 절대로 우리 성진이 떠날 수 없겠네?”

수영 누나와 어머니의 대화가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아듣겠는데, 어떻게 어머니의 입에서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은 박희선은 뭔가 숨겨진 의미 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진소라는 그저 옆에서 흐뭇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네.. 어.. 어머니. 저는 성진 오빠를 사랑해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아니 이제는 절대 떠날 수 없어요.”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얘기하던 박희선이 나중에는 고개를 들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그래. 알았다. 조만간 집에 한 번 놀러 오너라. 내가 꼭 해줘야 할 말이 있으니까.. 알았지?”

수영 누나가 보증하고, 박희선 본인도 저렇게 얘기하자 어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박희선을 성진의 여인으로 받아들였다.

“와.. 어머니 더 알아보지도 않으시고, 희선이는 그냥 받아들이시는 거예요?”

수영 누나가 뭔가 부럽다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응.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얘는 예쁘잖니. 호호호..”

“칫.. 어머니 저도 예쁘잖아요.”

“그럼 우리 수영이도 예쁘지. 그리고 말이다. 너도 잘 알겠지만, 만약 우리 성진이한테 털끝만큼이라도 해가 되는 일이 생기면 나는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릴 거야. 이제 그럴만한 힘도 있으니까..”

어머니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말은 수영 누나에게 하고 있지만, 눈으로는 박희선을 노려보았다.

박희선은 그런 어머니의 카리스마에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고, 왠지 성진 보다는 어머니에게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나고 촬영이 시작되었다.

성진이 찍어야 하는 씬은 총 세 씬이었다.

조직에 배신을 당해 탈출하는 격투씬 하나, 복수를 하기 위해 조직으로 들어가서 싸우는 씬 하나, 여기서 성진은 큰 부상을 입게 되고 주인공이 나타나 구해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주인공과 함께 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죽는 씬이 있었다.

주인공인 이성재가 현재 병원에 입원해 있는 관계로 주인공에게 구해지는 장면과 마지막 격투씬은 추후에 찍기로 하고, 오늘과 내일은 앞의 두 개의 격투씬을 찍기로 했다.

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보니 성진이 입고 있는 양복은 촌스럽기 그지없었다.

카라가 넓은 흰색 와이셔츠를 검은색 양복 위로 빼입은 옷이었는데, 성진이 워낙 키도 크고, 덩치가 좋아서 그런지 촌스러운 양복임에도 아주 잘 어울렸다.

촬영이 들어가지 직전 얼굴에 분장을 하고 의상을 갖춰 입고 잠시 어머니 옆으로 갔다.

“어머니 어때요?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고 있기 지겹지 않아요?”

“응? 아.. 아니. 재.. 재밌어.”

그런데 어째 어머니의 얼굴이 이상했다.

흥분할 것도 없는데,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고,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도 멍하니 성진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어머니 눈에 성진이 뭘 입어도 최고로 잘 생기고, 멋있게 보이는 것은 당연했지만, 어째 오늘따라 그 정도가 많이 심한 것 같았다.

“어머니 괜찮아요? 얼굴이 붉어진 것이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성진은 평소처럼 어머니가 걱정돼 어머니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대 보았다.

그런데 성진의 손이 닿자 갑자기 어머니가 흠칫 놀라며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아닌가?

마치 지금 어머니의 표정은 당장에라도 성진에게 달려들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 저도 어머니 사랑해요. 그래도 여기서는 조금 자제해야죠. 네?”

마치 좋아하는 연예인을 본 듯한 태도를 보이는 어머니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성진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어머니의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으.. 응? 흠.. 흠.. 내.. 내가 뭘.. 어쨌다고.. 얘는..”

말을 마구 더듬는 어머니는 더욱더 얼굴이 빨갛게 변해버렸다.

아무래도 성진은 오늘 집에 가면 밤새 어머니를 괴롭혀야 할 것만 같았다.

“자..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스탠바이..”

그때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저 그럼 촬영 갔다가 올게요.”

“으.. 응. 그.. 그래. 조심하고..”

성진이 일어서서 걸어가자 어머니의 눈은 다시 몽롱하게 풀려서 성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얘. 희경아. 너 갑자기 왜 그래? 우리 주인님께서 잘 생기신 것은 알지만, 너 오늘따라 유난히 반응이 강하다. 응? 무슨 일이야?”

“뭐? 아.. 아니야. 얘는 내가 뭘 어쨌다고..”

진소라의 말에 어머니가 눈을 피하며 다시 한번 성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분명 뭔가 있는데 말을 안 하는 어머니를 보며 진소라는 피식 웃고는 누가 성진이 바라기 아니랄까 봐 어머니를 따라서 오직 성진만 눈에 담고 있었다.

원래 오늘부터 촬영장에 나오지 않으려고 했던 진소라였다.

엊그제 감독과 후배한테 그런 대우를 받고, 성진도 화를 내면서 촬영장에 나오지 말라고 해서 그러려고 했는데, 갑자기 성진이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고, 친구인 희경까지 구경 온다고 하니 오늘 일부러 어머니를 에스코트해서 촬영장에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분장만 하고 있어도 주인공 포스를 풀풀 풍기는 성진의 모습을 보고는 나오길 백 번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곧 이어지는 성진의 촬영에서 아예 눈이 뒤집혀 버렸다.

스턴트맨들과 합을 맞춘 격투씬이었지만, 워낙 체격과 체력 조건이 뛰어난 성진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진짜 싸우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박력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성진의 몸 움직임이 빠르고, 강하게, 그리고 사실적으로 움직이자 그에 맞춘 스턴트맨들도 연기가 아닌 진짜로 싸우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실제로 발로 차고, 주먹을 휘두른 것이었다.

찍고 있는 감독도, 스텝들도 멍하니 넋을 놓고 보고 있었고, 어머니를 비롯한 여인들은 저러다 맞아서 다치는 것은 아닌지 가슴을 졸이며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실전은 수도 없이 겪어보고, 사람 목까지 따 본 성진이 이 정도 장난 같은 싸움에 얻어 맞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성진이 스턴트맨들을 때리면서 손에 힘을 빼느라 고생을 했을 정도였다.

========== 작품 후기 ==========

추천, 코멘트, 쿠폰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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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아사 // 크윽.. 자매덮밥이라..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 했네요. ㅋㅋ

이모라도 하나 데려올 걸 그랬나 봐요. ^^

푸퓨피 // 쿠폰 투척 감사합니다. 충성!!

다시, 그 여름으로... 435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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