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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성진의 작은 일탈이 있던 5월이 지나갔다.
지금 성진은 오랜만에 성남에 있는 장성그룹 비밀 별장에 와 있었다.
성진이 예전에 장건호 회장과 그 난리를 쳤는데도 이곳은 여전히 최고의 시설을 유지하고 있었고, 최근에도 사용되고 있는지 관리인부터 사용인까지 사람이 꽤 거주하고 있었다.
하긴 장성그룹의 회장이 여성인 홍라경 여사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각계각층의 유력인사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로비를 하는 것을 그만둘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건 어쩌면 필요악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진소라가 은퇴를 했어도 바로 또 다른 연예계 마담뚜가 생겨났고, 여전히 어여쁜 여자 연예인들이 성공과 돈을 담보로 유력 인사들의 성 노리개로 사용되어지고 있는 것이리라.
홍라경 여사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용도로 이곳을 사용하는 것 같았고, 접대는 그 밑의 믿을 수 있는 남자 사장 중 한 명이 전담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순전히 성진을 접대하기 위해 별장을 이용하게 되었고, 성진을 접대하는 여자는 다름아닌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이었다.
성진이 홍라경 여사의 집을 자주 들락거리는 것이 보기에도 안 좋았고, 그렇다고 매번 호텔을 이용하자니 그것 또한 보는 눈이 많아서 결국 성진과 밀회 장소로 이곳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오늘은 밀회의 목적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성진이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모이게 된 것이었다.
10명도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식탁의 상석에 성진이 앉아 있고, 그 좌우 옆으로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이 앉아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한국의 최고위층만 상대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오늘도 식사는 한국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최고급 요리가 세 사람 앞에 테이블 가득 차려져 있었다.
“서방님. 많이 드세요.”
홍라경 여사가 성진에게 공손히 말을 하며 성진이 먼저 숟가락을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장소진도 홍라경 여사처럼 허리를 반듯하게 세우고 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성진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요. 잘 먹겠습니다. 두 사람도 어서 먹읍시다.”
성진이 숟가락을 들어 파가 송송 들어있는 뽀얀 국물을 떠서 입에 넣자 두 여자가 그제서야 숟가락을 들었다.
국은 아무래도 성진을 위해서 끓인 사골 곰탕인 것 같았다.
얼마나 제대로 우려냈는지 국물이 진한 것이 기름기가 입안을 코팅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서방님, 간은 맞으세요?”
홍라경 여사가 흐뭇한 얼굴로 성진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음.. 조금 싱겁네. 소금 좀 주세요.”
그러자 뒤에서 하녀 복을 입고 대기하고 있던 젊은 여자가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는지 작은 종지 그릇에 담긴 소금을 성진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고마워요.”
성진이 하녀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하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다시 뒤로 물러나 식탁을 바라보며 대기자세로 들어갔다.
“서방님 그 소금은 최고급 죽염입니다. 구하기 어려운 거예요. 하지만 오늘을 위해서 제가 특별히 죽염 장인에게 부탁한 거예요. 호호..”
소금부터 시작해서 식탁에 놓여있는 음식까지 뭐 하나라도 최고의 재료가 아닌 게 없었다.
접대할 때도 당연히 이렇게 하겠지만, 오늘은 사랑하는 성진을 위해서 홍라경 여사가 특별히 더 신경을 쓴 것이었다.
성진은 그릇을 들어 소금을 숟가락으로 조금 덜어서 국에 넣다가 홍라경 여사의 말을 듣고 홍라경 여사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어떻게든 성진에게 잘 보이고 싶고, 뭐 하나라도 더 좋은 것으로 주고 싶어하는 홍라경 여사의 마음이 잔뜩 느껴졌기 때문이다.
성진은 국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먹었다.
그리고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도 열심히 집어 먹었다.
맛도 기가 막혔지만, 홍라경 여사의 정성을 생각해 조금 과식할 정도까지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홍라경 여사는 그런 성진의 모습에 너무나 기꺼워하며 정말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성진이 예전에 한 번 놀아봤던 그 넓은 홀에 자리를 잡았다.
‘디귿’자 형태로 놓인 엄청나게 큰 소파 가운데 성진이 앉고, 좌우 날개 소파에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이 한 곳씩 앉았다.
하녀들이 대리석 테이블에 차를 준비해서 올려놓더니, 잠시 후 테이블 중앙에 술과 안주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들락날락 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하녀들이 모든 것을 마쳤는지 홀 입구에 나란히 서서 홍라경 여사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음.. 다들 수고했어. 이제 부를 일 없을 것 같으니까 들어가서 쉬어.”
확실히 장성그룹의 안주인이었다가 이제는 회장이 돼서 그런지 명령을 내리는 홍라경 여사는 너무나 위엄이 넘쳤고, 자연스러웠다.
저런 카리스마 넘치는 여인이 성진에게만 애교를 부리고, 어떻게든 사랑을 받고 싶어서 소녀같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현실감 없는 일이었다.
홍라경 여사가 소파에 등을 기대 다리를 꼬고는 하녀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고 있었다.
장소진은 소파 끝에 걸터앉아 찻잔을 양손으로 들고 호로록 차를 마시며 성진만 잡아먹을 듯 바라보고 있었다.
하녀들이 전부 사라지고 넓은 홀이 정적에 휩싸이자 두 여인은 득달같이 성진에게 달려들었다.
홍라경 여사는 꼬고 있던 다리를 후다닥 풀더니 성진의 오른쪽으로 다가와 팔짱을 꼭 끌어안았고, 장소진은 찻잔을 내려놓더니 폴짝 점프를 해서는 성진의 왼쪽으로 와서 팔짱을 끌어안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아.. 여기서 이러고 있으니까 분위기 너무 좋다. 헤헤..”
장소진이 고개를 돌려 성진의 어깨에 턱을 대고 성진을 올려다보며 당장 키스해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홍라경 여사는 이미 성진의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밀어 넣으며 성진의 오른쪽 볼에 입술을 대오고 있었다.
“아아.. 섹스 못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나? 이것들이 오늘 왜 이래? 둘 다 발정 났어?”
“아잉.. 서방님.. 저 오늘 배란일이라..”
누가 그걸 물어본 건가?
왜 이렇게 들이대느냐고 핀잔을 준 건데 홍라경 여사가 얼굴을 붉히며 속삭이듯 주책 맞게 말을 했다.
“와.. 우리 홍 여사 진짜.. 임신 그거 아직도 포기 안 했어? 대단하다. 대단해. 허허..”
성진의 입에서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이이잉.. 서방님. 제가 그걸 어떻게 포기해요. 제 인생 최고이자 마지막 소원인데요. 호호.. 서방님 그러지 마시고 어서 제게 서방님의 아기씨를 잔뜩 넣어 주세요.”
홍라경 여사가 성진의 허벅지를 만지던 손을 쓱 올려서 성진의 자지 부분을 쓰다듬었다.
장소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킥킥 웃더니 뭐가 그렇게 좋은지 성진의 팔을 더욱 꼭 끌어안으며 성진의 팔에 볼을 비벼댔다.
아마도 알통이 불룩한 성진의 두터운 팔이 마음에 든 모양이다.
“아아.. 진짜. 고만 좀 해. 내가 이러려고 부른 줄 알아?”
“에잉? 서방님께서 오늘 저희들 안아주시려고 부르신 거 아니었어요?”
“아.. 물론.. 그것도 있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두 사람에게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어서 부른 거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떨어져 앉아 봐. 아직 시간도 많은데 초저녁부터 왜 이렇게 덤비는 거야?”
성진이 두 사람을 팔에서 떼어내며 말을 하자 그제서야 자신들이 너무 심하게 들이댔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얼굴을 붉히고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흠.. 흠.. 죄송해요. 서방님. 저희는 그저 서방님이 너무 좋아서.. 호호..”
홍라경 여사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으로 요염한 게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는지 모를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성진은 그런 홍라경 여사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어버리고 말았다.
자신을 이만큼 사랑해 주는데, 성진도 그녀들이 싫을 리가 없었고,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가꾸는 그녀들이 갈수록 더욱더 아름다워져 가는데 성진도 그녀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자기야 무슨 일인데?”
바로 신색을 바꾼 장소진이 진지한 얼굴로 성진에게 질문했다.
방금 전까지는 무슨 남자한테 환장한 여자같이 굴더니 바로 진지하게 일에 집중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괜히 여걸, 장소진이 아니었다.
홍라경 여사도 장소진의 말을 듣고는 얼른 자세를 바로 해서 성진을 바라보았다.
“음.. 오늘 얘기는 굉장히 중요한 얘기야.
일단, 혹시 내가 미래증권에 가지고 있는 장성전자 지분 10.1% 살 생각 있어?”
성진이 홍라경 여사를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의 얼굴이 뜨악하는 표정으로 바뀌더니 홍라경 여사가 장소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혹시 사전에 무슨 얘기 들은 것 있냐는 질문 같았다.
장소진은 모르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고, 왜 자신까지 이 자리에 부른 지 이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대주주 지분의 변동이 일어나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 앞으로 장성그룹의 후계자가 될 장소진도 알고 있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서방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왜 갑자기 저희 지분을 넘기시려고 하시는 거예요? 혹시.. 저희랑 손 끊으실 생각이세요?”
홍라경 여사가 갑자기 다급해진 어조로 성진에게 살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아니.. 설마 내가 그럴 리가 있겠어? 이동통신사업도 같이 하는데 그럴리는 없지. 그리고 알잖아. 내가 미국에도 지분 20% 가지고 있는 거. 그건 놔두고 한국 지분만 이번에 정리할 생각이야.”
“아!! 아니.. 그래도 왜 갑자기 저희 지분을 정리하시려고 하시는 거예요?”
홍라경 여사가 갑작스러운 성진의 행동에 혹시 자신들이 버림받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이제는 절대로 성진의 곁을 떠난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는 두 여자였다.
“음.. 그렇게 겁먹지 마. 두 사람 절대 버리지 않을테니까.
그것보다.. 지금 북한의 김일성 몸이 안 좋은 거 알고 있지?”
홍라경 여사가 김일성 얘기가 나오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김일성 얘기를 왜 꺼내는지 궁금해진 얼굴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외부적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김일성의 상태지만, 대 장성그룹 기획실이 이 정도 정보도 모르고 있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네. 알고 있어요. 아무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김일성이 사망할 것 같아요.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그렇게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거랑 지분정리랑 무슨 관계가 있어요?”
성진은 아무리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이 자신의 여인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수익이 다섯 배 정도 나서 팔고, 몇 년 후 IMF가 도래하면 다시 사려고 한다는 것을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자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아무래도 김일성이 7월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일성이 설마 벌써 죽는다고요?”
“응. 그래.”
“서방님 그거 확실한 정보에요? 김일성이 지금 투병 중이라는 정보도 간신히 얻었어요. 제가 올해 안이라고 한 것도 기획실에서 다각적으로 분석해서 얻은 결론일 뿐이고요. 그런데 7월이라니..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아니.. 거의 정확할 거야.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야.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데 김일성이 갑자기 죽는다고 생각해 봐. 국내에 어떤 영향이 미칠 것 같아?”
홍라경 여사와 장소진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아마 증시가 요동치고, 어쩌면 전쟁이 난다고 난리가 날 수도 있어.
게다가 지금 한창 통일 얘기가 나오면서 남북관계가 좋잖아. 거기에 찬물이 끼얹어 질 거고.. 한마디로 대통령은 완전 나가리 되는 거지. 뭐 그쪽 정치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자고..”
성진이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셨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같이 기업하는 사람들한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김일성이 죽고 나면 분명 다음 수장으로 김정일이 될 텐데, 아직 그 준비가 완벽히 끝나지 않았단 말이야.
알잖아. 김일성은 북한에서 신이야. 당연히 김일성은 영원히 살 거라고 생각할 텐데 그 신이 죽을 걸 생각해서 후계준비를 얼마나 했겠어?
그러면 김일성이 죽고 나면 김정일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게 뭘까?”
“흐음.. 돈이군요.”
“그렇지. 바로 알아듣는군.”
역시 정치감각까지 뛰어난 홍라경 여사였다.
“그러면 그 돈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성진의 말이 끝나자 홍라경 여사가 한숨을 푹 쉬었다.
장소진은 아직까지 이런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려운지 멀뚱하니 두 사람만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 정부에서 우리들한테 비자금을 걷겠군요. 그리고 그 돈을 김정일한테 보내서 체제 정비자금으로 쓸 것이고요. 북한에서는 돈 나올 구멍이 없을테니..”
“그래. 그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그래서 장성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
“하아.. 진짜 이번엔 또 얼마를 뜯어갈지.. 진짜 이가 갈리네요. 가뜩이나 지금 신규사업 투자에 반도체 시장도 하락국면에 진입한 상태인데.. 또 분식회계와 내부거래 엄청나게 돌려야겠네요.”
“응. 그래야지. 그런데 그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성진이 찻잔을 들고 뒤로 등을 기대 앉으며 홍라경 여사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장성그룹 비자금 있잖아. 전대 시아버지 회장 때부터 스위스 등지에 감춰둔 거 말이야..”
“허억..”
홍라경 여사가 숨을 격하게 들이마시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서방님은 도대체 그런 정보는 어디서 들으시는 거에요? 저도 회장 되기 전까지는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는데.. 참 진짜 대단하세요.”
홍라경 여사는 이 남자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는 얼굴로 감탄을 터트렸다.
성진은 홍라경 여사의 그런 칭찬에도 여전히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당연히 회귀 전에 장건호 회장과 그 형인 SJ그룹 회장 간의 상속에 대한 법정싸움으로 세간에 드러난 일이었기 때문에 성진은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 돈을 가지고 들어오자는 거지.”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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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절기 감기 조심하세요. 요즘 허리도 아프고 어째 몸이 으슬으슬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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