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화
투계의 말로 (4)
주인의 방에 근접할 때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인안나를 발견했다.
인안나도 발소리를 듣고 나를 한번 쳐다봤다.
그리고는 다시 참모에게 시선을 옮겼다.
“왜 왔냐?”
벌써 관에 누운 듯 참모는 용모와 옷차림이 단정한 상태로 누워있었다.
퀭한 눈을 한 채 참모를 바라보는 인인나에게 그녀의 시체를 수거하러 왔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본론을 꺼내기 전에 일단 위로해주기로 했다.
“괜찮으십니까?”
“버틸 만해. 곁에 둔 소중한 사람을 잃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니까.”
“그걸 묻는 게 아닙니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등에서 흐르는 피를 가리켰다.
운드를 처리했던 마지막 전투 때, 인안나는 기절하고 부상을 주인에게 치료를 받았다.
“주인님에게 치료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상이 남아 있습니까?”
“그 미치광이 언니는 내 상처보다도 영웅 해부가 우선이었어. 뭐, 굵직한 상처는 전부 봉합했으니 나머지는 아물기만 하면 돼. 그리고 이제 그년한테 치료받는 건 진절머리나.”
“그렇습니까.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위로 거리가 빠르게 소모됐다.
이제 시체 회수 건에 대해 말해야 했지만, 여전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인안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년이 시체라도 가져오래?”
“…….”
“아니라고 못 하는 것 보니까 맞나 보네. 하여튼, 내 언니지만 생명으로 장난질이나 치는 구제 불능 쓰레기 년이야.”
자조적으로 웃는 인안나.
“부하를 지키지 못한 나도 마찬가지로 쓰레기이고.”
“인안나님은 노력하셨습니다.”
“하, 내 살다 살다 돌멩이한테 위로받기는 또 처음이네.”
나름대로 진심 섞인 위로를 했다고 생각했건만, 인안나는 콧방귀로 비웃었다.
그러나 비웃음은 자신에게도 향했는지 그늘 속에 비춘 표정은 쓰디쓴 미소였다.
나는 그녀를 보기 힘들어 참모에게 눈을 돌렸다.
“저는 결국 참모에게 이름을 묻지 못했습니다.”
몸을 합치고, 등을 맞댄 그녀는 이름을 묻기도 전에 싸늘하게 입을 닫았다.
묻지 못해 애석하다고 말할 자격은 없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의도적으로 묻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그렇게도 싫었냐?”
“적어도 그녀만큼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럼 왜?”
“영웅을 포함한 기사단에게 검을 겨누게 됐으니, 마왕군이 전멸하더라도 그리 이상한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전멸까지는 아니어도 참모가 죽었다.
결국 결말은 내 예상과 비슷하게 끝났다.
“이름 모를 여인이 죽었다고 단정하면, 마음의 짐이 덜어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짐은 좀 덜어지던?”
“…후회만 쌓였습니다.”
“그야 당연하지, 멍청한 돌멩아.”
인안나는 참모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야기라도 더 할걸, 술 한 잔이라도 같이 마실걸,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해줄걸. 몇 년을 함께한 내가 그런 후회를 하고 있는데…….”
그리고 입술을 깨문다.
“마지막으로 이 애가 뭐라고 하지 않았어? 나한테 전할 말이나… 유언이 같은 거.”
“그녀는 마지막까지 온기가 남아 있는 육신으로 인안나님에게 승리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생전에 참모와 나눴던 마지막 대화는 불사항전의 각오만 있었을 뿐, 그렇다 할 유언은 없었다.
만약 한 가지 있다면.
“제게 인안나님을 부탁했습니다.”
“부탁?”
“지금은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장차 훌륭한 위인이 되실 분이라고, 그리 말하면서… 인안나님의 어리광을 한 번만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지긋이 참모의 얼굴을 확인했다.
고이 눈을 감고 있는 그녀는 이승에 대한 후회가 없는 듯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리광… 참나, 아직도 내가 애로 보이나. …그러면 끝까지 보살펴 달라고, 바보야.”
참모의 시체를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잡담은 끝이다.
시체가 부패하기 전에 주인에게 가져가야 한다.
“…아시푸.”
인안나는 아련하게 이름을 읊었다.
“내 둘도 없는 충신이자, 친구의 이름. 그리고 네가 안고 있는 전사의 이름이야.”
참모가 죽은 후에야 알게 된 이름을 알게 됐다.
그러나 후회가 덜어지긴커녕, 짙어지기만 했다.
“아시푸. 그녀가 했던 말이 틀리지 않길 바랍니다.”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뒤에서 흐느낌 들려왔고.
머지않아 통곡으로 변했다.
주인의 방 앞, 차갑고 거친 바닥에 다섯 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전부 참모의 부하, 마녀들이었다.
“우리 남타르 왔구나.”
반갑게 맞이하는 주인의 목소리를 따라 나는 참모를 안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곳에서 주인은 등 뒤의 촉수로 무언가를 조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촉수가 무엇을 조작하고 있느냐 하면, 바로 운드의 시체였다.
생기를 잃은 눈동자, 피를 머금은 심장, 파헤쳐진 복부, 사방에 흩뿌려진 장기는 모두 그녀의 것으로 유추됐다.
“부단장은 어찌하셨습니까?”
“우리 훔바바가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던져줬지.”
“그럼 영웅은…….”
죄책감이 목젖을 건드리는 탓에 구역질이 올라왔다.
나는 침을 삼켜 어떻게든 참아내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녀들을 어쩌시려는 겁니까?”
아무리 미쳤다고 하지만 주인은 시체를 유린할 만큼 한가한 광년은 아니다.
이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걸작을 만들 거야. 이번에야말로 최강의 걸작을.”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고 있지만, 광기를 뒤집어쓴 순수함은 존재할 리 없다.
당장이라도 역겨운 주인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용건을 짧게 끝낼 수 없었다.
“명령하신 대로 참모의 시신을 가져왔습니다.”
“고마워, 그쪽 병에 아무렇게나 놔두면 돼. 하는 김에 밖에 있는 마녀들도 가져와 주고.”
“알겠습니다. 하나, 그전에 한 가지 여쭈어봐도 됩니까?”
“물론이지. 열심히 일하는 내 모습이 어찌 그리도 예쁜지에 대해 설명해 줄…….”
“그딴 게 아닙니다.”
“…가끔은 입에 발린 말이라도 해주라.”
참모와 방 밖에 있는 마녀들의 시체를 시선으로 가리켰다.
“어찌하여 이들의 시체를 가져오라 명하셨습니까?”
미간을 찌푸리고 미소 짓는 주인은 무언으로 ‘정말 몰라서 묻냐’고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당연히 이들의 시체가 어떻게 사용될 건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끝까지 캐물을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아군의 시체를 가지고 장난질을 칠 거냐고.
물러서지 않는 나를 보고 주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죄책감이라도 들어?”
“그건 도리어 제가 묻고 싶습니다. 주인님에게 죄책감은 없습니까?”
영면을 취하고 있는 참모를 주인에게 내밀었다.
“아시푸는 수인임에도 불구하고 주인님과 같은 마족을 위해 목숨을 희생했지 않습니까? 정령 그녀의 명예를 이리도 실추시켜야 합니까? 그래서 만족하십니까?”
조소를 흘리는 주인.
“이야, 난 남타르가 이름과 명예를 지켜줄 만큼 그년이랑 친해진 줄 몰랐네. 그거야?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생긴 정?”
“저는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 장난처럼 보이는걸. 생각해봐, 만난 지 일주일도 안 된 계집을 단 하나뿐인 동료처럼 대하고 있잖아. 솔직히 조금 같잖지.”
동료 의식을 희롱당하자 내 인내심은 곧장 바닥을 드러냈다.
“네년이…….”
“주제를 알아라.”
주인의 살기가 서린 눈빛을 보고,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는 혓바닥은 물론, 온몸이 돌처럼 굳었다.
“어리광의 범주를 넘어서지 마라. 인내심은 네놈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다.”
칼날이 닿은 듯 차갑게, 또 암석에 깔린 듯 무겁게 꾸짖는 목소리였다.
“…죄송합니다. 무례를 범했습니다.”
나는 참모의 명예를 지키지 못해서가 아닌, 주인에게 대항할 수 없는 나에게 체념했다.
고개를 떨구고 포기를 내비치자, 주인은 다시 평소의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가 마음껏 어리광 피워도 된다고 했지만, 그래도 선은 지켜야지! 그렇지? 응? 응?”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괜찮아. 누구든지 한 번쯤 실수하는 거 아니겠어. 우리 남타르는 너무 많아서 문제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모습도 좋아해. 그보다 사랑해.”
꾸지람을 들은 아이를 달래주듯 상기된 말투와 목소리가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시체를 옮겨두고, 동굴을 정리하러 돌아가겠습니다.”
“응. 뒷정리 잘 부탁해.”
나는 무력함을 되새김질하며 주인의 명령을 따랐다.
그리고 걸으며 아시푸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되짚는다.
* * *
울분을 토하며 퇴각했던 그때, 나와 아시푸는 한 발짝 물러나 인안나와 주인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거 놔!”
“안 돼.”
주인의 촉수에 붙잡힌 인안나가 발버둥 쳤다.
“승리가 머지않았다고! 한 번이면 돼! 한 번만 짓밟으면 저 새끼들도 죽을 거야! …으윽, 쿨럭…….”
열변하던 인안나는 갑작스레 피를 토했다.
그러자 주인은 그녀를 한심스럽게 쳐다본다.
“걔들보다 우리 동생이 먼저 죽을 것 같은데?”
“죽어도 상관없어.”
“기껏 도망쳐서 살아왔는데 죽으면 아깝잖아.”
“도망친 게 아니야! 마왕군을 물린 것뿐이야!”
퇴각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기사단이 완벽하게 방어 진형을 갖췄으니, 그걸 뚫으려면 마왕군의 병력만 과도하게 소비된다.
나는 그 때문에 인안나가 퇴각을 지시했으리라 생각했다.
“마왕군을 더 이상 잃을 수 없어! 내가 가서 다 죽여야… 쿨럭, 쿨럭.”
그러나 인안나는 마왕군을 잃기가 두려워 퇴각을 명령 내렸었다.
좋게 말하면 부하에게 정이 많은 장군이고, 나쁘게 말하면 사사로운 감정에 움직이는 장군이다.
이유가 어찌 됐건 퇴각 명령은 옳았다.
단, 그녀의 재출전은 그른 판단이다. 그런 몸으로 전투에 나선다 한들 방해만 될 뿐이다.
“나머지는 우리한테 맡겨. 아직 훔바바와 아사쿠란 비장의 수가 남아 있잖아.”
“네년의 등신 같은 괴물 놈들을 뭘 믿고 맡겨! 나태한 쥐새끼 놈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았고, 빨간 물방울 놈은 아군도 구분 못 해서 전열에 빼놨잖아!”
“우리 아사쿠는 인간 눈치를 많이 봐서 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나 봐. 그리고 우리 훔바바는 뇌가 덜 자라서 얼굴 외우는 게 서툴거든. 그래도 귀여운 아이들이니까 예쁘게 봐줘.”
“이 개 같은 년이, 이게 아직도 장난… 같이…….”
인안나는 피를 토해내며 기절하기에 이른다.
고된 전투에 육체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그 짧은 시간에 이만큼 상처를 만들어내는 것도 재주야. 하여튼 우리 동생은 참 대단하다니까.”
주인은 등 뒤로 촉수를 꺼내 인안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출혈만 막고 합류할게. 그때쯤이면 끝나 있겠지, 남타르?”
나는 멀찍이서 고개를 숙였다.
“예, 주인님이 오시기 전에 처리해 두겠습니다.”
“잘 부탁해. 아, 그리고 옆에 있는 너도 덤으로 잘 부탁해.”
주인은 투명인간 취급하던 참모에게도 건성건성 응원했다.
하나 그녀는 쓰러진 인안나에게 정신이 팔려 대답하지 못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참모의 팔을 잡고 주인의 방에서 빠져나왔다.
한참을 걸은 후, 참모를 흘겨봤다.
표정에서 장군을 보호하지 못한 죄책감이 대놓고 쓰여 있었다.
“너도 숨어 있어라.”
“…뭐?”
“그 정신 상태로는 전투에 발목만 잡는다.”
“…동의하지만, 승낙하지는 못해.”
“그러면 정신 똑바로 차려라.”
참모를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너, 죽지 않는다고 했지?”
“웬만한 거로는.”
“…그래. 그렇다면 희생을 해줘야겠어.”
고개를 올리고 나를 바라보는… 아니, 노려보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얼핏 결심이 보였다.
“네가 그년을, 영웅을 묶어줘.”
“그 틈에 마무리 짓겠단 소리인가.”
“응. 어떻게 해서든.”
썩 신통치 않은 전략이었다.
나를 희생양으로 던지는 건 상관없다.
다만 실패했을 시, 참모는 모든 위협에 노출된다.
“네 말대로 잠시 묶어두는 정도밖에 못 한다. 그 시간 안에 영웅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죽는 건 너다.”
“실패의 대가가 내 목숨일지라도, 우리는 할 수밖에 없어.”
사실 긴말할 것 없이, 영웅은 그런 얄팍한 술수 따위 분명 타개할 것이다.
그 정도로 그녀의 힘은 강하다.
그럼에도 참모는 자신의 목숨을 판돈으로 걸고 도박이나 다름없는 작전을 감행하려 한다.
확실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걱정 마, 꼭 성공할 거야.”
참모는 영웅과의 마지막 전투가 기다리고 있는 전장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나도 인안나님을 두고 죽을 수는 없어.”
그녀는 끝없이 나아갔다.
“하지만, 인안님을 위해서라면… 나는…….”
어떤 말로가 기다리고 있을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