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화
이단자 (1)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
내가 경험했듯 그것은 보편적 진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망자의 육신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으니, 주인은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뤘다.
하지만 주인은 배가 갈라지고 내장을 쏟아낸 고통을 쾌락이라 치부했다.
그렇다면 내 손으로 주인을 시해할 때, 이르칼라는 과연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고통을 조소와 함께 흘려보낼지 모른다.
본인, 혹은 나의 죽음을 용인하고 미소 지을지 모른다.
뭐, 지금 당장 고민할 필요는 없다.
우선.
“일어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내 무릎에 머리를 베고 여유롭게 사과를 먹는 주인을 치우고 싶다.
그런 소망을 말하자 주인은 버럭 화를 낸다.
“안돼, 난 환자란 말이야. 우리 남타르는 내 가족이잖아, 남편이잖아, 부하잖아. 돌봐줄 의무가 있잖아.”
“전부 치료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자력으로.”
“싫다구! 나를 좀 더 보살펴줘! 쓰담쓰담해줘! 우리 라마슈투한테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해줘!”
끔찍한 년.
주인의 머리를 떨쳐낼 수 없다면, 일을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다.
나는 다시금 주제를 상기시킨다.
“그녀를 어쩌실 겁니까?”
운명을 거스르고 동굴을 탈출한 라마슈투를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 주인과 인안나에게 물었다.
그러자 인안나가 먼저 입을 연다.
“말해 뭐해. 힘으로 굴복시켜야지.”
“의외로군. 그녀에게 패배한 너라면 설득을 주장할 줄 알았건만.”
“말조심해. 난 진 적 없어. 그저 놓친 것 뿐이야.”
포도주를 한 모금 들이키고 말을 이어간다.
“신념이 확고한 자를 설득하려 들면 괜히 반감만 짙어질 거야. 그리고 그런 부류는 힘으로 찍어 누르는 편이 빠르고 효과적이지.”
“내 생각은 다르다. 무력 충돌은 라마슈투의 마족 혐오를 증폭시킬 거다. 하물며 그녀를 제압할 자가 있기는 한가.”
“그년을 때려잡을 년이라면 바로 네 무릎에 있잖아.”
인안나는 주인을 콕 집어 가리켰다.
“왜 봐준 거야?”
“반항하는 게 귀여웠거든.”
“미친년. 그 부단함 때문에 촉수 괴물하고 남타르가 죽을 뻔했던 거 몰라?”
“설마 그렇게 허투로 개조했을 거 같아? 나와 연결이 잠깐 끊긴다고 걸작들은 죽지 않아.”
“그럼 왜 쓰러진 건데, 이놈은 금방이라도 요단강을 건널 것 같았다고.”
“창조주, 나 이르칼라를 보호하지 못한 벌로 죽음에 상응하는 고통을 안겨주도록 디자인 해놨었어.”
뻔뻔하기 그지없는 주인의 대답에 인안나는 말문이 막혔다.
침묵을 유지한 채 혐오를 담은 눈동자로 주인을 쳐다보고, 시선과 눈빛을 바꿔 나를 안쓰럽게 바라봤다.
“진짜야? 그보다, 넌 알고 있었냐?”
“그래. 형벌과 동시에, 반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란 취지란 것도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주인을 보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주인이 말을 덧붙인다.
“덕분에 라마슈투가 반항을 멈출 수 있었고.”
주인의 말대로 효과는 탁월하다.
과거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이에 인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나와 주인을 바라보는 심정을 이해한다.
고통을 근본으로 한 관계는 내가 생각해도 끔찍하다.
“진짜 미친 연놈들. 질릴 대로 질렸어. 라마슈투를 구워삶든 지지고 볶든, 네들 알아서해.”
“저는 전적으로 주인님의 의견을 따르겠습니다.”
창조주인 주인이 그녀의 처우를 결정하는 게 옳다.
주인은 누운 채로 팔짱을 끼고 짧게 고민했다.
“가출한 아이는 부모가 찾아 나서야지. 안 그래, 남편?”
내놓은 해답은 직접 추적에 나서겠다는 소리였다.
위험에 노출되는 게 아니꼽지만, 라마슈투에게 대적할 자는 현제로선 주인뿐이다.
그러나 동행할 남편 역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훔바바는 애완동물에 가깝다.
아사쿠가 적임자일 테지만, 그는 현제 아무런 연락이 없다.
결국 소거법으로 가리키는 인물은 단 한 명밖에 없다.
“인안나.”
“너 말하는 거야.”
새하얀 검지손가락이 나의 뺨을 찌른다.
외면해봤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어찌됐건 내가 동행하는 편이 옳다.
라마슈투가 자멸을 각오하고 주인을 공격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때 무한히 재생하는 나의 몸을 고기 방패로 이용할 수 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대신 인안나도 가담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나와 주인만으로는 불안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전해들은 바로 라마슈투는 인안나를 공격하지 못한다고 했으니, 만일의 전투 상황에 유리한 고점을 취할 수 있다.
“미안, 이번엔 어려울 것 같아.”
하지만 인안나가 거절한다.
“애들을 거들어줘야 하거든. 계속 맡겨만 놓고 있을 순 없으니까.”
하기야,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열 명도 안 되는 딜문 병사는 전투의 피로를 해소하기도 전에 마왕군 수색에 나서야 한다.
그런 무리한 명령을 내렸으니 인안나도 마음이 편치 않으리라.
그녀의 고초에 주인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한테 맡겨둬. 그렇지, 남편?”
차가운 두 손이 내 뺨을 잡고 아래로 끌어당긴다.
빤히 쳐다보는 역안이 내게 동의를 지시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주인은 몸을 일으키고 기지개를 켜며 앞장섰다.
“오랜만에 동굴 밖으로 외출 좀 해 보실까.”
* * *
초록색 머리카락의 남성은 발걸음을 멈추고 난간에 두 손을 올려 남은 계단을 확인했다.
용오름을 연상케 하는 석조 나선형 계단은 끝을 모르고 수직으로 뻗어 있다.
괜히 확인했다고 후회했다.
키가 150 정도의 작은 보폭을 가진 그에겐 절망적인 높이였다.
숨을 몰아쉬는 남성은 옷깃을 펄럭여 땀을 건조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지는 페이퍼 법국의 대성당 꼭대기 층, 성녀의 침실이었다.
계단을 오르길 수십 분.
남성 눈앞으로 5m 높이의 석재 문이 나타났다.
석재 문에는 아름다운 천사 6명이 6개의 나팔을 부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저절로 신앙심이 생기게 될 정도로 장엄한 그림이었다.
남성은 손잡이가 없는 석문에 손바닥을 올리자, 바닥을 울리며 자동으로 문이 열렸다.
성녀의 침실은 반원 형태에 창문이 없는 내부 구조를 띄고 있었다.
어두운 방을 밝히기 위해 테두리에 수십 개의 양초를 배치했지만, 그 마저도 빛이 부족해 꺼림칙한 풍경을 자아냈다.
남성은 눈동자를 굴려 침실 정중앙에 있는 성녀를 찾았다.
“어머, 웬일이신가요? 펫트럼씨.”
신의 대변자 불리는 만큼 목소리는 청아했고, 건조한 실내에 불구하고 촉촉한 피부는 마치 백옥 같았으며, 허리까지 내려온 금발은 찬란하게 어둠 속에서 찰랑거렸다.
성녀를 급히 찾은 남성, 펫트럼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뺨을 붉히고 용건을 전한다.
“다름이 아니오라, 교황 측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흥미롭네요. 정확히 말해주시겠어요?”
느긋하게 뺨에 손을 짚고 미소 짓는 성녀.
이를 본 펫트럼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매번 뵈었던 얼굴이지만 주홍빛 눈동자만큼은 몇 번을 봐도 매혹을 이겨낼 수 없었다.
“예. 교황 측에서 한 달 동안 무려 몇 차례나 정찰 병력을 삼목산 인근으로 파견했습니다. 하나, 제 능력이 부족하여 파견 목적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런가요. 그럼 정찰 병력 중에 한 명을 데리고 와주시겠어요? 제가 직접 이야기 나눠 볼게요.”
“송구합니다. 저도 정찰병에 속해 있는 병사를 찾아보려 애썼지만…….”
흐려지는 말끝에 성녀는 결과를 예상했다.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성녀는 환하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요. 제게 큰 도움이 됐어요.”
“화, 황공합니다! …하오나, 파견 목적을 알려드리지 못해서 그리 큰 도움 되지 못했습니다.”
성녀는 환한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펫트럼씨. 목적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법이랍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그녀에게 파견 목적은 그다지 상관없는 문제다.
이유는 단순했다.
군사 지휘권이 있는 성녀의 동의 없이 몰래 정찰병을 삼목산으로 파견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생사불명 상태다.
만일 사망했다면 병사의 목숨 값을 달게 치러야 한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성녀 측이 교황 측을 단죄할 명확한 명목이 되었다.
“교황을 끌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아 미처 거기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이참, 이건 제가 해낼 수 없는 펫트럼씨의 공로입니다.”
성녀는 자신의 충실한 하인 펫트 럼에게 다가가 두 팔 벌려 안았다.
풍만한 가슴이 그의 몸에 닿아 일그러진다.
펫트럼은 풍만하고 따뜻한 감촉을 잊으려 애써보려 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아요.”
청순한 목소리와 따스한 숨결이 달팽이관에 울려 퍼졌다.
“서, 성녀님! 이 이상은……!”
성욕과 이성 사이에서 펫트럼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성녀를 밀쳐내고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었지만, 함부로 신의 대변자 몸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인 그의 아랫도리를 보고 성녀는 두 손을 입에 모아 애써 놀라움을 감췄다.
“어멋,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기쁜 나머지 제가 감히 펫트럼님을 헤아리지 못했네요.”
“아닙니다… 고결하신 성녀님께 추악한 성욕을 느낀 제 책임입니다…….”
작은 남성이 얼굴을 붉히고 어쩔 줄 몰라하는 광경을 보고 성녀는 희미하게 미소 흘렸다.
“제 불찰이에요. 그러니 제가 해결해드리도록 할게요.”
“아, 아닙니다…! 아앗!”
거절 의사를 무시한 성녀의 손이 펫트럼의 바지 속으로 침투했다.
“으읏…….”
꼿꼿이 서 있는 성기에 부드러운 손길이 닿자 버티지 못하고 신음을 터트렸다.
펫트럼은 두 손으로 눈을 가려 눈동자 속의 나약함을 감추면서, 동시에 자신의 추태와 성녀의 성적 행위를 외면했다.
그러나 그는 사춘기 청소년 같은 귀여운 행동이 성녀의 가학심을 증폭시킨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성녀는 성기를 쓰다듬으며 그의 귓가에 촉촉한 입술을 가져갔다.
“제 손에 단단한 물건이 느껴져요. 어쩜 이렇게 활발하실까요. 어찌 이리도 흥분했을까요. 물건이 제 그릇에 하얗고 끈적한 정액을 담고 싶어 발버둥 치고 있어요. 어서 저를 탐하고, 범하고, 자신의 것으로 물들고 싶다 말하고 있어요.”
성녀가 자신의 천박한 성기의 상태를 입에 담을수록, 자괴감이 물밀듯 그의 뇌를 덮쳤다.
“펫트럼님의 물건을 더 이상 손으로 만지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요. 자, 바지를 벗어주세요.”
“바, 바지를……. 어쩌시려는 건가요?”
“미력하지만 제 입으로 펫트럼님의 물건을 담아볼게요.”
흐트러짐 없는 미소로 다음 행위를 알린다.
신의 대변자가 청아한 목소리를 담는 입으로, 천한 자신의 성기를 담겠다는 말에 펫트럼은 큰 충격에 빠졌다.
더는 성녀에게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거절하려 했으나.
“그, 그럼…….”
그의 머릿속에는 성녀에 대한 선망보다 당장의 성욕이 앞선 상태였다.
펫트럼은 자책하며 스스로 바지를 무릎까지 내렸다.
왜소한 신장만큼이나 자그마한 성기가 그늘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떠올랐다.
“제 것으로는 성녀님을 만족시켜 드릴 수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분명 엘프로서 성인 반열에 올랐으나, 같은 나이대 엘프보다 왜소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남들로부터 괄시당하고 놀림거리가 되어왔고 어느덧 콤플렉스 자리 잡았다.
한때는 자신만 원망했다.
하지만 오늘은 성녀 앞에서 성기를 내보이면서 그는 자신을 넘어 신까지 원망했다.
성녀는 그의 한 손을 두 손으로 포개어 잡았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제 눈앞에 있는 펫트럼님의 물건은 훌륭합니다.”
고귀한 성녀의 위로를 듣자 펫트럼은 눈물을 흘렸다.
“제 입으로 펫트럼님의 물건을 담을게요. 미력한 솜씨지만 부디 느껴주시길 바라요.”
성녀는 입을 쩍 벌리고 펫트럼의 성기를 머금었다.
구내의 따뜻함과 휘몰아치는 혀, 혀의 돌기들이 부드러운 자극을 불러일으켰다.
“끄아앗! 성녀님! 너, 너무…….”
“츄읍, 츄우웁, 츄으으읍, 츕.”
항상 신의 말씀을 대신하던 성스러운 입이 천박한 소리를 내고 있다.
혀를 움직여 귀두를 돌아 한 바퀴, 중간에서 한 바퀴, 다시 귀두에서 한 바퀴, 머리를 들이밀어 뿌리에서 한 바퀴.
진공상태의 입으로 마치 성교하듯 왕복한다.
성녀는 능숙하게 펫트럼의 쾌락을 이끌어냈다.
펫트럼은 불과 5분도 안 돼서 절정이 찾아왔다.
“성녀님, 나올 거 같아요! 어서 떨어지세요! 이대로라면 성녀님의 입이 더러워집니다!”
불문율을 무시하고 성녀의 머리에 두 손을 대고 조심히 밀쳐내려 했다.
그러나 성녀는 그의 허리를 껴안고 탈출을 용납하지 않았다.
정액을 입에 담을 생각이었다.
“츄으으읍! 츄우웁! 츄르릅, 츄우웁! 츄릅!”
“안 돼요! 안 돼…! 안 되는데…….”
성녀를 밀쳐내는 팔의 힘이 점점 약해졌다.
이윽고 펫트럼은 쾌락에 굴복한 채 욕망에 몸을 맡겼다.
끈질기게 사정을 참아내던 성기에 힘을 풀어, 결국 절정을 맛보았다.
“으아아……!”
사출된 정액이 성녀의 입안으로 쏟아졌다.
꿀꺽.
성녀는 거리낌 없이 정액을 목구멍으로 넘겨 배를 채웠다.
“어째서 드신 겁니까……?!”
“이렇게 많은 양을 뱉어낸다면 제 침실이 더러워지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펫트럼님의 정액이 아깝기도 하고요.”
“서, 성녀님…….”
고결한 입을 정액으로 오염시켰다는 자괴감은, 성녀의 자비로운 한마디에 씻겨 나간다.
“그렇습니까. 제 정액이 그리도…….”
성녀의 자비에 죄악감은 사라졌고, 추잡했던 성욕은 어느덧 ‘내 것으로 성녀님을 만족시킬 수 있어’라는 자기 해석적 합리화가 진행됐다.
그는 참지 않고 성기에 힘을 주어 지속 가능성을 엿보여줬다.
“어머나, 아직도 이리 곧게 세우시다니, 부족하셨나 보네요.”
펫트럼은 기대 섞인 눈빛으로 성녀를 바라봤다.
“…부탁드려도 될까요?”
성녀는 자비롭게 웃으며 마다하지 않고 말한다.
“물론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