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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복수계약자-148화 (148/384)

148화

사중주, 대척점 (6)

커너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아사쿠는 분명 그리 말했다.

귀찮은 놈을 상대해야 한다.

게다가 사냥꾼까지 있을 걸 생각하자니, 귀찮음이 곱절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나는 한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다시 한번 말아 쥐며 전의를 바로 세우고 VVIP 룸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웬 놈이 천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검을 수직으로 내리 뻗으며 하강했다.

“큭!”

시답지 않은 함정이다.

그의 목을 한 손으로 낚아채고 들어 올렸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갑옷 사이로 검을 욱여넣었다.

핏방울이 서늘한 검날을 타고 떨어졌지만, 안쪽의 사슬 갑옷 덕분에 상처는 얕았다.

“제길……!”

바로 그의 목을 꺾어 죽이고, 옆으로 던져 치웠다.

“사냥꾼의 기습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반격하다니. 그 노친네의 수제자라 그런지, 여간내기가 아닌걸.”

테이블에 발을 올리고 소파에 앉아 있던 커너가 태평하게 말했다.

불현듯 그는 손에 쥐고 있던 검 끝으로 내 왼쪽 눈을 가리켰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로 마족이었을 줄이야. …아니지 아니야.”

손목을 움직여 검 끝으로 오른쪽 눈을 가리켰다.

“한쪽은 멀쩡하네? 와,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인간이야? 마족이야? 그냥 하나만 하면 안 되느냐?”

“곧 죽을 텐데 알 필요 있는가.”

“새끼, 목소리 까는 것 봐라. 전에 까불었을 때도 그렇게 말하지 그랬냐.”

“말할 가치가 없었다.”

“하, 빌어먹을 자식이!”

커너가 분노를 주체 못 하고 테이블을 걷어찼다.

그것이 신호였는지 VVIP 룸에 존재하는 세 개의 문에서 사냥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오크는 거대한 망치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었으며, 쌍둥이 자매로 보이는 엘프들은 곡예 부리듯 창을 돌리고, 드워프와 인간은 각각 단검 두 자루와 한손검을 들고 있었다.

사냥꾼들의 종족과 다루는 무기는 가지각색이었으나, 나를 노려보는 강렬한 눈빛만큼은 동일했다.

그들의 눈동자를 보고 나는 예상대로 귀찮은 싸움이 되리라 직감했다.

“그 노친네는 어떻게 된 거냐?”

문득 커너가 집사에 대해 물었다.

“아무리 그 인간이 타락했어도 마족과 손을 잡을 만큼 무너지지는 않았어.”

“패륜아가 뒤늦게 아비를 걱정하는 건가.”

“착각하지 마. 이번 일로 그 인간을 협박해서 내 밑에 굴리려는 것뿐이야.”

“실로 끔찍한 부자 관계로군.”

나는 대검을 겨눴다.

“진실은 지옥에서 고문 받는 집사에게 직접 들어라.”

“…그렇단 말이지.”

말뜻을 파악한 커너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그리고 그 또한 내게 검을 겨누었다.

“곱게 죽이진 않을 거다.”

고통을 선고하는 한마디가 신호탄이 되어 사냥꾼 무리를 움직였다.

먼저 정면에서 드워프가 단검 두 자루를 역수로 쥐고 달려들었다.

“보잘것없는 놈, 단번에 사냥해 주마.”

드워프치고는 몸이 호리호리했던 그는 미끄러지듯 내 다리 사이로 파고든다.

“느리다고, 애송이!”

나는 대검을 찍어 멈추려고 했으나, 그는 유연하게 몸을 비틀며 피했다.

그렇게 양쪽 종아리를 베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드워프.

키도 작고 몸도 얇은 게 잽싸기까지 해서 무척 까다로운 녀석이다.

다행히 갑옷 덕분에 힘줄은 잘리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다음이다.

“죽인다!”

드워프에게 한눈 팔린 사이, 어느새 오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내려찍는다!”

일일이 행동을 입 밖으로 꺼내야 직성이 풀리는지, 오크 녀석은 말하는 그대로 망치를 내려찍었다.

나는 황급히 대검을 뽑고 역수로 쥐었다.

깡!

검신과 팔등을 부착해서 충격을 완화했다.

꼴에 오크라 그런지 근육에서 나오는 괴력은 꽤나 묵직했다.

“막았다! 이상하다!”

내가 막는 게 신기했는지 오크는 놀랐다.

그의 뒤로 엘프 자매가 양쪽으로 나타났다.

“그대로 잡고 있어, 멍청이.”

“잘했어.”

내가 망치와 씨름하는 틈을 타, 양쪽에서 창날을 들이미는 엘프 자매.

“언니, 내가 심장.”

“오케이, 그럼 난 꼴리는 대로.”

엘프라서 만만히 봤건만, 그녀들은 두꺼운 갑옷을 꿰뚫고 창날을 박아 넣었다.

언니 쪽은 오른쪽 갈비뼈 사이로 창날을 들이밀어 대각선으로 심장을 꿰뚫는다.

동생 쪽은 겨드랑이 밑으로 창날을 꽂아 넣어 대각선으로 내장을 헤집어 놓는다.

“쿨럭.”

목젖까지 끓어오른 피를 토해냈다.

마치 냉기를 품은 듯, 몸속에 서리가 맺히듯 차갑고 괴로웠다.

이에 나는 짐승을 도살할 때의 눈으로 그녀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어, 언니, 얘 왜 안 죽어?”

“몰라… 섬뜩해…….”

그녀들이 두려움에 주춤거렸다.

“내가 마무리할게!”

인간 남성이 외치며 달려온다.

다급한 뜀박질 소리가 멈추고, 다음으로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를 노리려는 건가.

그렇다면, 이놈을 먼저 죽여야겠군.

“죽어라!”

그는 땅에 떨어지는 가속력에 힘입어 검을 휘둘렀다.

멍청한 놈. 자기 동료가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고.

내가 몸을 비틀자, 검날이 어깨 갑옷에 비켜 맞으며 미끄러졌다.

공격에 실패하자 착지는 곧 추락이 되었고, 그는 자세가 흐트러진 채 떨어졌다.

“컥!”

나는 빈손을 그의 입에 넣고 턱을 단번에 움켜잡았고.

퍽!

머리를 바닥에 내려찍었다.

그러자 곤두박질친 정수리에서 뇌수가 대리석 바닥에 번졌다.

“대장!”

“이 자식이! 대장을 놔줘!”

“너 대장을 놓아야 한다!”

엘프 자매와 오크가 경악하며 인간 남성을 챙겼다.

이 자가 대장인가.

그럼 서둘러 죽여야 한다.

오크가 망치에 체중을 싣고, 자매가 연달아 바람구멍을 내며, 등에 달라붙은 드워프가 갑옷을 뜯어낸다.

그러나.

퍽! 퍽! 퍽!

나는 그의 머리가 짓뭉개지고, 턱이 뒤틀리고, 안면이 일그러질 때까지 내려찍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내 내 손아귀에 놀아나던 대장이란 녀석은 경련을 멈췄고 몸이 축 늘어졌다.

“감히 네놈이 대장을! 용서 못 한다!”

등에 타고 있던 드워프가 단검을 크게 치켜들었다.

그 두 자루의 검이 뒷덜미를 베기 전에, 나는 어깨를 휘둘러 그를 밀쳐냈다.

“이 자식이!”

드워프는 보기 좋게 공중에 떠올랐고, 나는 몸을 회전시키면서 발차기로 그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체중이 가벼워서 그런지 호쾌하게 날아간다.

“젠장! 자매여, 어서 그놈을……!”

허공을 전전하면서도 쉴 틈 없이 나불대는 드워프. 성가신 줄만 알았는데, 시끄럽기까지 하다.

그 입을 막기 위해 나는 투창을 날리듯 역수로 쥐고 있던 대검을 던졌다.

“제기랄……!”

드워프가 벽에 부딪힘과 동시에 대검이 그의 머리에 처박혔다.

이제야 조용해졌군.

“용서 못 한다!”

잇따른 동료의 죽음에 오크가 분개하며 망치를 휘둘렀다.

나는 피해 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콰득!

어깨를 타격당한 나는 바닥을 구르며 드워프가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곧장 자세를 고쳐보려 했으나, 오른쪽 어깨가 함몰되는 바람에 시간이 오래 소요됐다.

“산채로 심장을 뽑아버릴 거야!”

“산채로 내장을 뽑아버릴 거야!”

그 빈틈을 파고들어 엘프 자매가 창끝을 앞세워 돌진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녀들에게 공격을 허용했다.

이번엔 도움닫기를 해서 그런지 각각의 창날은 심장과 내장을 관통한 걸로 모자라, 등 쪽 갑옷을 뚫고 벽에 박혔다.

“죽은 거야?”

“그런 거 같은데?”

엘프 자매는 제멋대로 나를 시체로 낙인찍었다.

아직도 모른 건가.

아무리 몸을 들쑤셔봤자, 내게는 소용없다.

“꺄아악!”

내가 창 자루를 잡자 동생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곧장 그 자루를 부러트리고, 몸에서 뽑아낸 뒤.

“정말 마족이야…? 이건… 괴물보다 더… 끅!”

언니 엘프의 목에 찔러 넣었다.

“어, 언니!”

부러진 창을 내팽개치고 언니의 목에 박힌 창날을 뽑으려는 동생.

살 틈 사이로 빠져나가는 핏줄기를 틀어막으며 가쁜 숨을 토해내는 언니.

그렇게 그녀들이 서로를 챙기고 있을 때, 나는 여유롭게 함몰된 어깨 갑옷을 뜯어내고 벽에 박힌 대검을 뽑아 들었다.

“아, 안돼…! 도, 망쳐…! 빨, 리……!”

“말하지 마, 언니! 추, 출혈이 심하지 않아! 내가, 그, 내가 어떻게든…….”

“도망, 쳐……!”

“언니─!”

콰득!

대검으로 동생의 머리를 내려찍었다.

그런데 두개골에서 대검을 꺼내려 했지만, 머리카락이 날에 엉겨 붙어서 뽑히지 않았다.

“크아아! 용서 못 한다! 나, 너 뭉개버린다!”

오크가 포효하더니, 사람 머리만 한 어깨를 앞세워 돌진한다.

“으극, 커헉! 꺼억!”

나는 언니 엘프의 목에 박힌 부러진 창을 잡아, 그녀와 함께 오크에게 던졌다.

그러면 오크가 돌진을 멈추고 동료를 받을 줄 알았건만.

“멍청, 한, 오크…! 동생 말… 들을걸…….”

퍼억!

동료가 부딪치건 말건 오크는 마치 붉은빛을 본 황소처럼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마차에 치이듯 튕겨 나간 엘프는 벽에 머리가 부딪쳐 절명했다.

재밌는 녀석이다.

나는 동생 엘프의 다리에 발을 올려 고정하고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오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곧 걸음은 뜀박질 되고, 돌진이 되었으며.

이윽고 충돌했다.

쿵!

망치와 대검을 바닥에 꽂은 채 바닥을 쓸며 떨어졌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자세를 고치고 다시금 격돌한다.

깡!

대검의 날이 망치의 중앙을 박혔다.

이제 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괴력이 더 강한 자가, 그리고 물러서지 않는 자가 이긴다.

“크윽! 강하다! 너는 너무 강하다!”

먼저 나가떨어지는 자는 오크였다.

그는 망치로 검날을 막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에 나는 품위 있는 검술보단, 단순히 모루에 망치를 내려찍듯이 몰아붙였다.

깡! 깡! 깡!

연신 대검을 휘두르며 오크의 머리를 바닥으로 떨어트린다.

“너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땅바닥에 누워 망치로 자신의 얼굴을 가려보지만.

“마족은 더더욱… 아니다!”

힘에 못 이겨 망치는 점차 아래로 떨어졌다.

“괴물… 보다… 더… 강한…….”

점점 그의 코가 무너지고, 이빨이 부서지고, 눈알이 터지고, 머리가 납작하게 뭉개졌을 때.

그제야 오크는 망치를 놓았다.

이제 한 놈만 남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 있던 커너에게 눈을 돌렸다.

그러자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쓰게 웃었다.

“살육에 미친 괴물이구만.”

모욕과 감탄이 담긴 한마디를 내뱉고, 그는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잘 알고 있군.”

도망칠 틈이 없도록 대검을 대각선으로 크게 휘둘렀다.

하나, 그는 예상을 깨고 내 머리 위로 도약했다.

역시 생긴 것과 다르게 재빠른 놈이다.

등 뒤에 착지한 커너는 바로 검을 휘두른다.

“몸을 베어봤자 소용없을 테고.”

나는 회전하면 대검을 일자로 세우고 방어하려 했다.

“머리나 목을 잘라야 죽겠구만? 그렇지?”

그러나 커너는 검이 대검에 닿기 전에, 빠르게 회전하여 반대편을 공격했다.

마치 독사가 사냥감에게 달려들듯 가공할만한 속도였다.

다행히도 그의 검날이 목에 박히기 전에 반대편 팔로 막아냈다.

그리고 그에게 대검을 휘둘렀으나, 그걸 예상이라도 한 듯 커너는 거리를 벌렸다.

“그 어깨… 분명 부서졌을 텐데.”

나는 과시하듯 망치에 가격 당했던 어깨를 한 바퀴 돌려 몸을 풀었다.

“하, 도대체 정체가 뭐야? 찌르고, 찍고, 베고, 후벼 파도 어떻게 멀쩡할 수 있냐고.”

커너는 허탈하게 웃으며 물었으나, 답해줄 의리는 없기에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대답이 됐는지 그는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뭐가 됐든 죽여버리면 되지.”

다시 달려드는 커너.

다시 대검을 휘두르는 나.

그리고, 커너의 일방적인 공세가 이어졌다.

내가 몇 번이건 대검을 휘둘러도 그는 쉽게 피하고 빠져나갔다.

그렇게 유연한 검술로 나의 살가죽을 찢고 갑옷을 해체하며 피해를 축적시켰다.

“멍청한 새끼. 이미 넌 내 손바닥 위야!”

이미 그는 내 움직임, 버릇, 행동 방식을 모두 꿰뚫어 봤다.

때문에 그에게 검날은커녕 손끝조차 닿지 못했다.

싸움에 참전하지 않고 먼발치에서 구경만 하던 이유가 이거였나. 관찰력이 뛰어나군.

“인간 행세를 하는, 그 눈깔 먼저 파내 주마.”

“……!”

커너는 머리를 노리고 검을 뻗었다.

나는 방어를 위해 검신으로 얼굴을 보호했다.

그러나 그는 날이 넓적한 검을 놓고, 허리 뒤에서 얇은 단검을 꺼내더니.

용사의 화살에 의해 부서졌던 대검의 원형 홈으로 그 단검을 찔러 넣었다.

촤악.

결국, 나는 찢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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