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굴 속 복수계약자-204화 (204/384)

204화

꼭짓점 (11)

라하르가 죽을 뻔한 이야기를 시발점으로, 그들은 마왕군으로서 겪었던 경험과 사건들을 하나씩 테이블에 풀었다.

그러면서 인안나와 라하르는 서로 투덜거리며 싸웠지만 진심으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게 아닌,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한 친구끼리 자잘한 다툼이었다.

나는 그런 친구가 남아 있는 게 부러운 한편, 전혀 모르고 있던 마왕군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반면에 라마슈투는 관심도 없는 이야기에 술도 금지됐으니 지루함을 버티다 못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밤공기를 쐬겠다고 나가는 뒷모습이 불안했지만 더 이상 멍청한 짓을 할 녀석은 아니기에 보내 줬다.

그리고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던 술자리는 술통이 바닥을 보이고 나서야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나는, 그, 뭐냐, 그… 그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알지?!”

“그렇게 말하면 못 알아듣습니다.”

“하이고, 이런 답답한 새끼야! 그러니까 자, 잘 들어! 내가, 그, 그 누누이 말하잖아! 이럴 때일수록 마왕군은, 그, 알지?!”

“힘을 합쳐야 한다, 그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식아! 언니 때문에 힘든 건 알겠지만… 그래도, 인마. 대업을 위해서라면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인안나가 새끼줄처럼 꼬인 혓바닥을 세차게 휘저으며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라하르를 탓했다.

그녀의 고민을 어렴풋 이해하는지 그는 쓰게 웃었다.

그러나, 이르칼라에게 복종한다는 말만큼은 절대 약속하지 않았다.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나는 벌레라도 잡는 것처럼 허공에 휘두르는 인안나의 손목을 낚아채며 말했다.

“뭐?! 벌써?! 이제부터 시작 아니냐?!”

“같이 마시자 해놓고 혼자서 술통을 전부 비웠으면 그걸로 충분하잖아. 그리고 우린 아직 만나야 할 보스가 남아 있어.”

“쩨쩨하게… 난 더 마시고 싶다고…….”

인안나는 반항하듯 몸을 웅크리고 턱을 테이블에 떨어트렸다.

그러나 이내 참새가 우는 것처럼 작은 콧소리를 흘렸다.

그새 잠든 건가.

하여튼 귀찮게 귀여운 녀석이다.

“라하르, 먼저 삼목산으로 가. 너뿐만 아니라 다른 녀석들도 기다리고 있을 거야.”

자리에서 일어서고 바닥에 널브러진 후드 망토를 건져 올려 그녀에 덮어 줬다.

그러다 문득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라하르의 주름 없는 연회복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그게 아니지. 헤기르와 닌카시에게 합류하면 된다고 말해 줘야 하겠군.”

정곡이 찔렸는지 그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맞대응하듯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본다.

“선생께선 저를 떠보시는 겁니까? 아니면 이미 알고 계셨던 겁니까?”

“어림짐작일 뿐이야. 너희가 누구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지 아직 모르거든.”

“하면, 어째서 의문을 의문으로 남겨 두는 겁니까. 그녀들과 당신이라면, 제게 진실을 심문하는 건 더없이 쉬웠을 텐데요.”

“쓸데없이 힘 낭비하는 건 사절이야.”

폭우 맞은 허수아비처럼 힘없이 테이블에 축 늘어진 인안나를 일으켜 등에 업었다.

그녀를 데리고 주점을 나가려던 찰나, 그를 돌아봤다.

“마음껏 부딪쳐 봐. 그래야 너희도 속 시원하게 패배를 인정할 거 아니냐.”

“선생은 저희 같은 방해꾼은 필요 없으시다는 말씀이신지…….”

“바위에 계란이 깨져도, 부서진 껍질 속에 노른자를 잃는 건 아니잖아?”

접시에 남은 노른자 부스러기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어 갔다.

“노른자는 내가 잘 받아 줄 테니까. 너희는 걱정하지 마.”

그가 아무 말도 못 하는 걸 보고 나는 짓궂게 웃으며 주점을 나갔다.

여관으로 향하며 달빛을 보고 있자니 저절로 사색에 잠겼다.

이로써 그들이 이르칼라에게 검을 겨눌 거란 건 기정사실이 됐군.

애초에 헤기르 때부터 이상했다.

그녀가 숙면을 좋아하는 방탕한 자란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사탕발림 말에 쉽게 넘어올 만큼 무식한 자는 결코 아니다.

그건 지하에 굴을 파고 하루를 술로 보내는 닌카시도 똑같다.

이르칼라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으나, 반기를 들 정도로 어리석지 않을뿐더러 용기 있는 자가 아니다.

라하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녀들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면 전투에 앞서 자신의 힘을 시험하려던 게 분명하다.

언뜻 보기엔 불사의 각오를 가지고 이르칼라에게 대항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안나와 평범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걸 보면 그게 전부는 아닐 터.

아마도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 같다.

여태껏 숨어 있던 그들이 결정, 결심, 결단을 한날한시에 하게 된 배경 뒤에 분명 배후가 있다.

그리고 시기를 따져봤을 땐.

“야, 남타르.”

문득 등 뒤에서 인안나가 나를 불렀다.

“우리 그만 삼목산으로 돌아갈까?”

“그게 무슨 소리야. 아직 던전이 하나 남았잖아.”

“그렇지만, 검은 형제까지 가세하면 정말로 힘들 거야. 차라리 한 명씩 상대하는 게 좋지 않겠어?”

“애석하게도 그럴 시간 없어. 차라리 이르칼라에 대한 반감을 있는 그대로 맞부딪치는 게 나아.”

“설령 걔들을 굴복시킨다 한들, 언니가 용납할까?”

“환영할걸.”

그리 말하며 나는 쓰게 웃었다.

“이르칼라는 오로지 자신의 복수를 성취하는 데 혈안이 돼 있지, 마족의 운명 따위 관심 없어. 하지만 목적이 틀리다고 방향성이 다른 건 아니야.”

“…알아듣기 쉽게 말해. 도대체 뭔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뭐든 이용하기 나름이란 소리지. 그녀는 분명 복수를 위해 그들을 받아들일 거야.”

이르칼라의 복수든, 마족의 소명이든, 순혈이든, 힘이든.

그리고 나도.

말 그대로 이용하기 나름이다.

“매번 그럴듯한 말로 잘난 척하는 거, 존나 재수 없고 오글거리는 거 알고 있냐?”

“그럼 손발 간수 잘해야겠네.”

“새끼, 웃기는.”

“그보다 일어났으면 내려오지?”

“모처럼인데 이대로 데려다 줘.”

“하여튼…….”

그렇게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어느덧 여관에 도착했다.

한데 라마슈투가 돌아오지 않았다.

주점에서 나간 뒤로 시간이 꽤 지났건만 어딜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혹여 괜한 짓 하고 다니는 게 아닌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안 왔네?”

“안 되겠어. 이상한 짓 하기 전에 찾으러 가야 될 것 같아.”

“기다려봐, 새끼야.”

등에 업혀 있던 인안나가 꿈지럭거리며 앞으로 넘어왔다.

피부가 옷에 스치면서 향수처럼 퍼진 포도주 향기가 코끝에 아른거렸고, 문란함에 상기된 분위기가 등줄기를 타고 뇌리에 전달됐다.

이윽고 나무에 안착한 매미처럼 상체에 매달린 인안나.

그녀는 제철에 여문 과일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뺨과 촉촉한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봤다.

“오랜만에 하고 싶은데… 안 될까?”

“새침하게도 말하는군. 너한테 엄청 안 어울리는 거 알아?”

“윽, 뭐처럼 귀여운 척해 줬더니만, 꼭 분위기 깨야겠냐?”

인안나는 순식간에 표정을 구기고 혀를 차며 땅에 내려왔다.

그리고 내 멱살을 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갔다.

새처럼 작은 혀끝이 입술을 비집고 들어온다.

연이어 날렵하게 남의 혓바닥을 핥던 그녀는 그걸로 충족이 안 됐는지 목덜미에 팔을 걸고 더욱 끌어당겼다.

목젖에 닿을 정도로 깊숙이 다다른 혀가 구강 전체를 오랜 시간 탐닉하고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이뤄진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입맞춤이 끝나고, 인안나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주절주절 떠들지 말고 한판 하자고, 새끼야.”

인안나가 양해도 구하지 않고 손을 바지 사이로 넣었다.

자그마한 손이 안에서 꿈틀거리며 흉물을 일으켜 세운다.

“이것 봐라, 너도 할 마음 있었잖아.”

“애초에 이 상황을 누가 버틸 수 있겠어. 남자라면 전부 넘어올걸.”

“나라서 흥분되는 게 아니라?”

“물론 그것도 있고.”

흑발을 사이로 손가락을 넣으며 인안나의 머릿결을 어루만졌다.

그 행위가 기분 좋았는지 그녀는 은근슬쩍 머리를 손바닥으로 밀접시켰다.

이게 그녀의 본색이다.

자신의 아담한 체형이 남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도록 거친 말투와 욕설로 치장하지만, 속으론 누군가에게 평범한 여성이길 바라고 있다.

장군이란 직책에 맞게 권위를 중시하며 행동하고 있으나, 사실은 남에게 기대고 싶고 어리광도 부리고 싶다.

그저 마왕군이란 환경과 순혈이란 핏줄이 그녀에게 가면을 강요하고 있다.

참으로 애통하기 그지없군.

“전부터 너무 거칠게 했었지. 이번엔 살살할게.”

모처럼 평범하게 해 주겠다고 했건만, 그녀는 멋쩍게 눈을 피했다.

“아,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어째서, 너도 가끔 남들처럼 평범하게 하고 싶을 것 아니야.”

“그게, 느긋한 건 영 성격에 안 맞아서 말이지. 그냥 예전처럼 평범하게 해 줘.”

예전이 평범하다니, 오히려 그 반대일 텐데.

게다가 기껏 마음 써주려고 했건만 단번에 걷어차고. 정말 인안나도 한결같다.

어쨌든 원하는 게 그런 거라면 내가 어쩔 수 있겠나, 바라는 대로 해줘야지.

“으윽……!”

부드럽게 어루만지던 머리칼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목이 부러지지 않는 한에서 입술을 위로 노출시켰고, 이번엔 내가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탐하는 게 아니라 범하는 건가.

억지로 입술을 열어젖히고 즙을 짜듯 혀를 휘감아 조였다.

숨통이 틀어 막힌 탓에 인안나는 연신 거친 콧김을 뱉으며 간신히 목숨을 이어 간다.

하지만 그녀가 고생하든 말든, 나는 본인의 만족을 위해 혀를 움직였다.

“으음, 쮸읍, 자, 잠시만, 츄르읍, 그, 그만…….”

버티지 못하고 내 가슴을 두드리며 애원하는 인안나.

소원대로 그녀를 놔주긴 했으나, 재미없게 그냥 풀어 주겠는가.

상대방의 명줄을 끊을 때처럼 딱딱한 침대에 밀어 쓰러트렸다.

그러자 쓰게 웃으며 흥분에 젖은 눈동자로 나를 노려본다.

“크으, 점점 재밌어지네. 이렇게 나와 줘야지.”

여유롭게 도발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뺨을 긁적였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목소리 멋들어지게 까는구만. 그래, 내가 어떻게 해 줬으면 좋겠어?”

“일단 그 말버릇부터 고치도록 하지. 예전처럼, 늘 그랬듯이.”

느슨하게 부풀어 오른 흉물을 꺼내 그녀의 얼굴에 올려 뒀다.

“으읏, 내, 냄새…….”

자신의 안면에 맞닿은 흉물에 코를 들이민다.

이어서 자그마한 혀를 뻗어 표면을 핥으려던 찰나, 나는 뒷걸음질 치고 일부러 흉물을 떼어냈다.

“아아…….”

그러자 그녀는 아쉬운 듯 탄식을 뱉었다.

“마, 맛보게 해 줘… 열심히 핥을 테니까… 제발, 응……?”

“그러기엔 자세가 마음에 안 드는데.”

“자세…? 내가 어, 어떻게 하면 돼?”

나는 말없이 턱 끝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근육에 경련이 일어난 듯 인안나는 기쁨에 꿈틀거리는 입술을 감추며 옷을 벗었다.

그리고 옷을 잘 포개 두고, 그 옆에서 무릎을 꿇는다.

“나, 남타르님의 전용 좆집이 머리 숙여 부탁합니다…….”

그리 말하며 이마를 조아린다.

“당신의 그것을 봉사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저의 그곳을 멋대로 마음껏 사용해 주세요…….”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그녀의 표정은.

“부디 제 자궁이 남타르님의 정액을 수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세요.”

희열을 참지 못하고 결국 입술이 헤벌쭉 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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