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27화. 결혼(2)
에드워드는 입을 다문 채, 베라의 검지손가락을 열심히 빨기 시작했다. 그 간질거리는 생소한 느낌에, 베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베라 자신이 색욕에 빠진 건지, 저런 단순한 행동도 음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릴 적 그녀의 손가락을 빨던 모니카와는 다르다. 입도 혀도 굉장히 야했다. 무슨 꿈을 꾸는 걸까. 자신의 손가락을 핥는 방식도 야했다. 아이라면, 아들이라면 이런 식으로 혀를 놀리지 않는다고 베라는 생각했다.
꿀꺽-
자신의 손가락의 맛을 잔뜩 머금은 침이 에드워드의 목울대를 지나 넘어갔다. 크게 움직이는 남성적인 목울대와, 그 주변에 도드라진 굵은 핏줄. 남성스러운 특징 때문에, 자연스레 시선이 가는 그곳도. 지금까지 남성을 성적으로 바라본 적은 별로 없었는데, 에드워드는 그의 체취 때문인지 태도 때문인지 자꾸만 그녀가 이성으로 의식하게 했다.
‘남편한테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었는데.’
아니, 정신 차리자. 지금은 어쩌다가 몸까지 섞게 되었지만, 원래 이 남자는 자신의 사위가 될 이였다. 지금은 모니카보다 베라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결혼하게 되고 부부생활을 하다 보면…
‘그게 맞는 거야.’
베라는 고개를 빠르게 도리질쳤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렇지 않으면 방금 느꼈던 아쉬움이라는 감정의 편린이, 부풀고 부풀어 올라 그녀의 가슴을 전부 채워 버릴 것 같았으니까. 한 손 손바닥을 볼에 갖다대며 달아오른 얼굴을 식힌다. 그러다가, 어느새 눈을 뜬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쳤다.
“…이, 일어났어?”
‘뭐 하는 거지?’
이렇게 해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걸까. 베라가 내 입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며 장난을 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최대한 닿지않게 하려 해도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이 입안 곳곳에 닿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그러다가 혀에 손가락이 닿으면 짭쪼름하다기 보다는 달콤한 맛이 났다. 베라의 몸은 이런 맛이 나는 건가. 살짝살짝 맛보니까 감질난다. 그러고 보니 입술과 손가락 말고는 맛본 적이 없네.
처음 잠이 깼을 때는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실눈을 뜨고 상황을 지켜보자 베라를 놀릴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우선 눈은 그대로 뜨지 않고,
앙-
“읏!”
베라가 깜짝 놀란 듯한 소리를 낸다. 음, 반응이 만족스럽다. 베라 손가락의 달콤한 맛도, 쪽쪽 소리를 내며 빨아주니 원 없이 느껴진다. 베라는 내 입에서 손가락도 빼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묘하게 흥분한 듯한 기색이다. 여자가 무언가를 빠는 모습이 야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여자가 느끼기에도 같은가?
베라의 시선이 살짝 아래를 향하고 있는 틈을 타, 눈을 반 정도 떴다.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묘한 열기를 띈 베라의 시선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자지를 꺼냈을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기품있게 행동하는 그녀였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는지 노골적으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래 봤자 사춘기 소녀 정도의 흥미지만. 아, 눈 마주쳤다.
“…이, 일어났어?”
쫍.
베라가 재빨리 손가락을 뺐다. 눈이 마주쳤다고 바로뺄 줄이야. 막을 새도 없이, 내 입안에 들어 있던 손가락은 베라의 손수건 속으로 숨었다.
“볼 때마다 손수건이 바뀌네요?”
손수건은 원래 빨아서 쓰는 것 아니던가?
“아, 저번에 썼던 것들은 다 오래된 거라… 버렸어.”
음, 새것 같았는데. 뭐, 중요한 건 아니니 넘어가자.
“말 돌리지 말고, 에드워드 학생. 공부를 하는데 그렇게 잠들어 버리면 어떡하니.”
“죄송합니다, 선생님.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공부하기 싫은 핑계는 언제나 찾자면 열 가지도 찾을 수 있어. 그걸 참고 견뎌내야지.”
“에이, 그래도 좀만 쉬었다 해요.”
“안되는데... 공부해야 되는데…”
“어제처럼 같이 산책이라도 나갔다 올까요?”
“으음…”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히는 베라. 싫지는 않았는지 쉽사리 거절하지는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이다.
“그래도 안돼요… 아니 안돼. 모니카가 왔을 때 알리바이가 있어야 하니까…”
알리바이까지 준비하다니. 베라가 진지하게 나와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어하는 게 느껴진다. 단순히 모니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있겠지만, 이미 나랑 섹스하는 시점에서 실망은 이미 시키고 있다고.
결국 베라가 꺼내든 것은, 다른 방식의 공부였다.
“아무래도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건 아직 에드 학생에게 좀 일렀던 것 같네요. 저번에 하던 걸로 다시 돌아가야겠어요.”
베라가 서랍에서 다시 수첩을 꺼내들었다. 돌아온 낱말 카드 시간. 오늘은 꼼짝 없이 공부를 해야 할 듯 했다.
“다 외웠습니다.”
“…”
“선생님, 다 외웠습니다.”
“흠, 이번에는 시간이 조금 걸린 것 같구나. 그럼 확인해볼까?”
베라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좋아하는 건지, 공부할 때는 선생님을 붙여서 부르지 않으면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스무 개의 단어 쪽지를 가져가서 섞은 후, 무작위로 하나를 뽑아 내게 내밀었다.
“창문.”
“잘했어요.”
이후로도 열 번 하고도 아홉 번을 더 반복. 또다시 다 맞았다. 점점 글자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건지, 먼젓번에 비해 굉장히 쉽게 단어를 외워가고 있다. 벌써 스무 개의 단어 묶음을 방금까지 합쳐 세 개 외웠다
“이번에는 무슨 소원을 요구할거니? 다시 한번 말하지만, 공부할 때는 공부하기 싫다는 소원이랑 야한 거는 들어줄 수 없단다.”
물론 ‘소원’이라는 보상이 주는 목적 의식도 굉장한 역할을 했다. 쓸모있는 거를 전부 막아둬서 그렇지. 첫 번째 소원으로 공부를 그만하자고 했다가 반려당하고 건포도 쿠키 하나. 두 번째 소원으로 질내사정 섹스하자고 했다가 또 어림도 없이 반려당하고 건포도 쿠키 하나. 으웩. 건포도 맛없어. 소원이 너무 짠 것 같다.
“또 건포도 쿠키 받을래?”
“아뇨, 괜찮습니다.”
“맛있는데…”
오독-
저 건포도 쿠키가 다 사라지기 전까지 소원을 정하자. 공부는 어차피 해야 하고. 베라 기준에서 야하지 않으면서 베라한테 요구할 수 있는 가장 야한 것… 아!
“베라 선생님. 자지 검사 해주세요.”
“콜록! 콜록.”
베라가 사레가 들린 듯, 격하게 기침을 해댔다. 빨리 물 한 잔을 따라 갖다 줬더니, 베라가 가슴을 두드리며 한 번에 들이킨다. 가슴이 워낙 커서 두드린다고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
“야, 야한 건 안된다니까!”
“베라 선생님이 자지 검사는 야한 게 아니라, 따님을 위한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 에드 학생.자꾸 그렇게 이상한 걸 가지고 선생님을 놀리면 못써요.”
“이상한 게 아니라 선생님이랑 맨날 하던 자지 검사에요.”
“그, 검사를 하긴 했지만…”
“자지 검사.”
“자, 자… 아니 부끄러워서 못 말하겠어요…”
베라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조금씩 존댓말을 쓰기 시작하더니, 자지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오자 아예 부끄러워서 놓아버렸다. 이 정도면 한계까지 노력한 건가? 저번에 자지보지 했을 때는 한창 성욕이 쌓여서 달아올랐을 때니, 지금의 멀쩡한 정신상태로는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바로 옆 의자에 앉아 있는 베라를 꼭 안았다. 지금 굳이 더 요구를 해서 피곤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모든 건 어디까지나 베라가 원할 때만 시켜야지.
“너무 그렇게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반말을 하기로 약속을 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야,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요. 누군가에게 말을 놓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가 않아서…”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럼 소원을 바꾸죠.”
소원을 바꾼다는 말에, 베라가 한껏 긴장한다. 또 어떤 요구를 할까 걱정이 되는 걸까.
“걱정 마세요. 이번에는 진짜 건전한 소원이니까.”
“제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거의 다 외워 가는데, 외울 단어를 제가 고르는 대로 정하는 건 어떨까요?”
“그게 소원이에요?”
“네, 선생님. 맨날 선생님만 단어를 생각해 내시느라 머리 아프신 것 같아서, 지금부터는 제가 한 번 해보려구요.”
베라의 얼굴 위로, 대견하다는 듯한 표정과 묘하게 아쉬워하는 기색이 동시에 스쳐 지나간다.
“좋네요. 안 그래도 슬슬 단어가 다 떨어져 가던 참인데, 에드워드 학생이 직접 단어를 고르면 제가 써 주는 것도 공부가 되겠어요… 아니, 되겠구나.”
야한 요구가 멈추자 뭔가 불만족스러운 듯한 얼굴을 하는 베라. 원체 자애로운 성격이라 토라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내 앞에서는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그녀답게 살짝 슬퍼 보일 정도로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말로 하자면 ‘약속을 못 지켰다고 나한테 실망한 걸까?’라고 써 있는 얼굴.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이번에는 베라에게 좀 수위 높은 단어들로 갈 거니까 말이야. 그래도 처음은 약한 단어로 살살 시작하자.
“음, 그럼 받아 적어 주세요. 드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