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님말고 어머님R-100화 (100/178)

〈 100화 〉 99화. 임신(2)

* * *

너무나도 충격적인 고백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할 말을 잊어버린 채, 멍하니 위니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못 들었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재차 확인시켜주기 위해 말하는 건지. 위니가 다시 말했다.

“내 뱃속에, 아이가 있어. 너 말고는, 남자 손도 잡아본 적… 없고.”

그건 에드워드도 잘 알았다. 그와 잠자리를 가지기 전에는 여자를 좋아하던 위니가, 처녀였던 그녀가 외간남자를 만나 보기는 했겠는가. 그래도 쉬이 믿기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에드워드는 반사적으로 장난을 치는 거냐고 물어보려다가, 방금 들었던 말을 떠올리고 그 말을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피임… 피임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말했잖아. 그, 절대, 라는 건 없다구….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거야. 내가 만든 피임약에도.”

질내사정을 그렇게 하고도, 피임 좀 했다고 임신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요행이라고 생각하기는 했다. 애초에 한 번도 뚫리지 않고 전부 막아내야 하는 방패와, 한 번만 적중시키면 되는 창의 싸움이었으니. 그 횟수가 적다면 모를까, 맞붙는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방패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확실한 거야?”

“응. 내가 아는 방법은, 전부 시험해 봤으니까.”

처음 위화감을 느꼈던 건, 모니카와 베라가 아무 문제없이 마시는데 위니 그녀 혼자 마시지 못했던 그 차였다. 그 이후로, 이상한 느낌을 받은 위니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자신의 임신 여부를 알아내려 했다. 처음에는 몇 개만 음성 반응이 나오면 역시 돌팔이였다며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양성 반응이 뜨지 않는 검사가 없었다. 오류라고, 검사 도중 실수가 있었을 거라 생각하며 철저하고 꼼꼼하게 다시 시도했지만, 오히려 위니가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확신하게 해줄 뿐이었다.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되묻는 에드워드의 모습에, 위니는 슬픔을 느꼈다. 누가 봐도, 원치 않는 아이가 생겨 당황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이성적으로는 이 아이의 존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위니 주변에 남자라고는 유부남인 에드워드밖에 없는데, 갑자기 아이가 생겼다고 하면 당연히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에드워드의 반응에 슬픈 감정을 느끼면서도, 미리 만들어놓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 저 임신 중절을 위한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몇 주는 더 걸렸을 것이고 임신이 더 진행된 만큼 효과는 더 약하고 끔찍했을 것이다.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달싹여, 에드워드에게 그 사실을 고했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

“…응?”

도저히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바닥만 바라본다. 그 얼굴을 보고, 뱃속에 에드워드를 닮은, 잘생긴 아이가 자라고 있을 거라는 걸 떠올리면 이 결심이 흔들릴 것 같았다. 지금도 바닥을 바라보는 시야 한쪽에 들어오는 그녀의 아랫배 때문에 계속 아이 생각이 났지만, 억지로 머릿속에서 치워냈다. 이성적으로, 이게 최선이니까. 율스타인의 모두를 위해서.

“혹시나 아이가 생기면 곤란할까봐, 무를 수 있는 방법도 다 마련해 놨으니까.”

방 한쪽, 화덕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약을 가리키며 말했다. 깔끔하게 아이의 존재를 지워줄, 그 약. 그녀의 몸에 큰 부작용은 없을만한 약으로 위니가 엄선한 것이다. 마음 한 쪽의 공허함이라는 부작용은 크겠지만.

“저걸 마시면, 내가 임신했던 건 없는 일이 될 거야.”

없던 일로 하고 싶지 않다. 솔직하지 못한 그녀를 대신해, 그녀의 몸이 붙잡은 사랑하는 이의 일부였다. 그녀가 에드워드의 여자라는 사실을, 다른 여자보다 가장 앞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이미 결혼했으니까, 책임질 여자가 하나 더 있으면 피곤해지잖아?”

책임져 줬으면 한다. 아니, 그냥 그녀를 아껴 줬으면 한다. 그녀의 절친한 친구, 그리고 그녀가 어머니처럼 따르는 사람이 있기에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첫 번째 여자가 되고 싶었다. 가장 아끼는, 당당하게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

“딱히 서로 사랑하는 사이도 아닌데 말이야.”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애초에 그는 자신을 사랑하기는 할까. 그녀가 매달려서 일방적으로 시작한 관계였다. 훨씬 여성스럽고, 온화하고, 따뜻한, 사랑스러운 여성을 애인으로 둔 에드워드가, 훨씬 빈약하고 퉁명스럽게 대하는, 사랑한다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그녀를 사랑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이냐. 맨날 성욕을 처리해준다는, 성 취향을 교정해달라는 얼토당토 않는 이유로 달라붙는 여자를 말이다.

그의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바램 하나만으로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그녀 말고는 아무도 원치 않는 아이를 혼자서 잘 키울 자신이 없었다. 베라 정도라면 도와줄 수도 있겠지만… 언제까지고 그녀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 더 이상 폐를 끼치는 것보다는, 그냥 깔끔하게 지우는 게 나았다. 그녀 한 명만, 바램 하나만 포기하면 되는 거니까.

에드워드는 반응이 없었다. 이 정도로 길게 말할 때까지 참는 성격이 아닌데. 그는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난감한 표정? 다행이라는 표정? 두 달 만에 보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하는 건 슬픈 일이었지만, 에드워드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위니에게는 더욱 두려웠다. 에드워드가 기분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 위니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이를 지우는 게 꺼려지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혼자 키워도 되니까… 읏….”

에드워드의 크고 투박한 손이 고개숙인 그녀의 양 볼을 붙잡았다. 고개를 들지 않으려 버텼지만, 위니의 힘으로 그에게 저항하는 것은 무리였다. 눈동자를 피하다 강제로 눈을 맞추고, 그가 온 얼굴로 전하는 그 강렬한 감정을 받아들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그녀가 방금 한 말 때문인지, 아니면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잔뜩 화난 목소리로 에드워드가 말했다. 하지만, 분노한 그 얼굴에서는, 그럴 리 없다 생각하면서도 그녀가 내심 바라던, ‘기쁨’이라는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에드워드가 끓고 있던 솥을 집어들었다.

“그, 그건 어떡하려고.”

화난 표정의 에드워드가 말없이 솥을 들고 창가로 향했다.

“아, 안 뜨거워? 괜찮아?”

약을 만들다 몇 번 솥에 데인 적이 있는 위니로서는, 에드워드의 손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저 뜨거운 걸 맨손으로 잡다니, 화상이라도 입으면 어떡하려고. 그리고 철저하게 없애버리겠다는 듯, 에드워드는 내용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바깥에 부어버렸다. 그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위니는, 손을 다쳤을 그를 위해 연고를 찾았다.

“손. 손 줘. 어떡해….”

빨갛게 달아오른 거친 손에, 열심히 만든 연고를 아낌없이 바른다. 손바닥이고 손가락이고 전부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프지 않은 척 신음을 삼키는 에드워드의 모습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하나하나 붕대를 감아 주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에드워드가 말했다.

“저런 거 먹을 생각 하지 마.”

“하, 하지만….”

“하지 마.”

에드워드의 강렬한 눈빛이 그녀를 바라본다. 그 눈빛에 순간적으로 정말 낳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정신을 차렸다. 이건 에드워드에게도, 그녀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다.

“…정말?”

하지만 위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다. 무심코 새어나온 본심을 주워담지 못하고, 눈 앞의 남자가 입술을 떼길 기다렸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강하지만,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가두는 팔이 느껴졌다. 서로의 심장이 가장 가까워진 상태에서, 눈앞까지 다가온 에드워드.

“정말이야.”

너무 오랜만에 본 건가. 위니의 기억과는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았다. 그녀가 알던 에드워드는 좀 더 껄렁거리는, 기사답지 않은 남자였는데. 이렇게 남자다운 말을 할 줄 아는 사내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그녀의 눈에 뭔가가 씌인 것 같았다.

“물론, 네가 싫다면 안 그래도 돼. 애초에 너와 내가 관계를 가진 것도, 네 취향을 정상화하고 내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그 뿐이었을 관계니까.”

처음 에드워드와 보냈던 밤이 떠오른다. 저런 얼토당토 않은 핑계를 대고 관계를 가졌었지. 저 때만 해도 에드워드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정도 관계에서 끝나고 싶지 않은 거라면.”

에드워드가 숨을 들이마셨다. 그에게도 긴장되는 말인 걸까. 차분히 숨을 내쉰 에드워드가, 위니가 본 가장 애정 어린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내 곁에서, 내 아이를 낳아줘, 위니.”

“…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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