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성검의 문제
[ 반려 사유 : 이 씨발 ]
뭐라고?!
나는 깜짝 놀라서 다시 로그를 확인했다.
[ 반려 사유 : 스킬의 필요성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
하지만 여신의 적나라한 욕설은 사라지고 없었다. 뭐지? 내가 잘못본건가?
아냐, 내가 그런걸 잘못 볼리가없어. 아마 눈 깜빡할 사이에 지운 모양이군.
그래도 여신이 이렇게 대놓고 욕을 한 적은 없었는데. 내가 그동안 스킬 제안을 통해 어처구니 소리를 하더라도 여신은 나름대로 격식을차렸었다.
예를 들면, 이렇게.
[ 「안티 발정」 스킬이 반려 되었습니다. ]
[ 반려 사유 : 그따위 꼼수로 빠져나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
[ 「무빙 정액」 스킬이 반려 되었습니다. ]
[ 반려 사유 :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우십시오. ]
...격식 차린거 맞지?
아무튼 이런 쌍욕이라니. 무슨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도 있는 걸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엘프 정수기를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쉬운데. 논리를 보충해서 다시 한번 시도해보면...
“...”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자중해야 할 때다. 여신이 이렇게 급발진 하면서 쌍욕까지 박았는데, 또 시도하기에는 너무 눈치가 보였다. 손가락에 정전기 수준으로는 안끝날지도 몰라. 이게 바로 아다여신의 노처녀 히스테리
-빠직.
“끄아악!”
...
중간에 헛짓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어쩄든 지금이라도 성검 녀석하고 대화를 나눠봐야한다.
나는 얼얼한 손가락을 털어버리고 성검의 옆에 누운 다음, 「몽상 공유」를사용했다.
# # #
이미 몇번 와본 새하얀공간....이기는 한데.
뭔가 좀 달라. 공간의 일부는 마치 픽셀이 깨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거지? 성검은? 녀석은 괜찮은건가?!
“...”
성검은 느긋하게 늘어져있었다. 태평하기 짝이 없는 녀석같으니.
히죽거리면서 늘어져있는 성검 주위에는 붉은 화면이 여러개 떠있었다. 마치 노이즈가 낀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경고창 처럼 보이기도 했고.
옆에 가서 화면을 살펴보자 이상한 점들이확실하게 눈에 띄었다.
[ 성화(聖火) ]
[ 성스러운 불길을 일으킵니다. 비축된 신성력을 사용합니다. ]
[ 성격(聖擊) (비활성화) ]
[ 성스러운 전격을 일으킵니다. 비축된 신성력을 사용합니다. ]
[ 성막(聖幕) (비활성화) ]
[ 성속성의 방어막을생성합니다. 비축된 신성력을 사용합니다. ]
[ 성창 (비활성화) ]
[성강 (비활성화) ]
...
일단 성화가 있는 걸로 봐서는 스킬창 처럼 보이는 것 같기는 한데. 군데군데 문자열이 깨져있었다. 척 봐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닌 모습.
[ 유저 인터페이스 - 활성화 단계 80% ]
[ 화신체 강림 - 활성화 단계 60% ]
그리고 한편에는 이런 창이 떠있었다. 화신체강림은 아마도 여신을 불러내는 무언가 처럼 보였지만, 유저 인터페이스라는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것보다 훨씬 중요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 비인가 수단으로 인한 형상 변환이 감지되었습니다. 인가된 수단을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 비인가 수단 사용으로 인해 다음 기능에 오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
[ 기능 : 감각, 형상, 인지능력, 스킬 ...(더보기) ]
비인가 수단 때문에 형상 변환에 문제가 생겼다고?
인가되지 않은 수단이란건 그 거울을 이요한 폴리모프라는건가, 하지만 기능오류라니.
그래. 짚이는게 있다. 이 녀석, 뭘 먹을 때마다 기절하고 난리가 났지. 나는 그게 단순히 이 녀석의 감각이 민감해서 그런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네.
“어, 뭐야. 너 언제왔어.”
조금 늘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옆을보니 성검이 졸린 눈을 비비적거리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성검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내 앞에 떠있는 창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아! 너!”
“응?”
성검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내게, 아니 내 앞에 떠있는 화면에 달려들더니 창을 꺼버렸다.
“....뭐하냐 너.”
“너야 말로 뭐야. 올거면 미리 말을 하고 와야할 거 아냐. 숙녀가 자고 있는데 예의도 없이.....봤어?”
“그래. 봤지.”
성검은 내가 눈을 부라리자 얌전히 꼬리를 말았다.
“저거 뭐였냐. 뭐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는데.”
“...몰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고.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칫.”
성검은 철푸덕 주저앉더니 입술을 삐죽였다.
“진짜 모른단 말이야. 사람 모습으로 변하고 나서부터 나타난건데, 뭐가 뭔지 나도 모르겠다고.”
나는 기가 막혔다.
“아니, 야. 사람 되고나서부터 생겼다고? 왜 지금까지 말 안한거야?”
“...”
“척 봐도 엄청 심각해보이는데 이런걸 숨기면 어떻게 해. 무슨 문제가 생길 줄 알고 이런걸 말 안하는거야.”
“...그치만 이런거 말하면 네가 변신 풀어버릴 지도 모르잖아...”
목소리를 조금 높이자, 성검은 풀 죽은 얼굴로 내 눈치를살살 보기 시작했다. 으음. 머리가 아프네. 세상이 자기 것인양 까불거리던 녀석이 이렇게 또 버림받은 새끼고양이처럼 굴면 기분이 좀 그래.
나는 일단 화제를 돌렸다.
“쯧. 그래. 뭐라고 안할테니까 일단 화면 다시 켜봐. 뭐 좀 물어볼게 있어서 그래. 아니, 안할테니까. 진짜로.”
성검은 내가 거듭 확답을 주고서야 화면을 다시 활성화 시켰다.
[ 화신체 강림 - 활성화 단계 60% ]
“그래. 다른거 필요없고. 이거.”
이게 여신을 강림시키는스킬이라는건 너무나 명백했다. 하지만 비활성화되어있었는데 퍼센테이지가 올라가 있었다니.
“이거 언제 쯤 쓸 수 있을지 알 수 있을까?”
“...모르겠는데.”
너는 아는게 뭐냐? 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참아냈어.
성검은 내 눈총이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모르는 걸 어떻게 해....나도 내가 이상한 건 알아...하지만 정말로 기억이 없다고...뭔가 구멍 난 것처럼...혼자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는데 왜 뭐라고 하는거야...”
“...아, 아니. 그래 알았어. 모르는건 어쩔 수 없지. 괜찮아. 괜찮으니까. 알았으니까 울지마.”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성검을 타일렀다. 으악, 이, 이 녀석 훌쩍이면서 코까지 흘리잖아!
...
“하아...”
설마 내가 다른 사람의 코까지 풀어주게 될 줄은 몰랐어. 그나저나 어떻게 하지. 앞으로 던전에 가려면 성검을 다시 가지고 다녀야할텐데, 이 녀석은 곧 죽어도 원래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 보였다.
이 녀석을 어떻게 설득해야할까....
“으음. 성검아.”
“왜.”
“너 여기서 이러고 있는게 지겹지는 않니? 혹시 저택 바깥으로 나가볼 생각은 없어?”
“...아니? 안 지겨운데? 엄청 재밌는데? 안 나가도 되는데? 계속 여기서 살건데?”
성검은 나를 외면한채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지리멸렬하기 그지 없었다. 속마음 숨기는데에는 재주가 없군.
“네 앞에 뜬 메시지 보이잖아. 게다가 자꾸 기절해서 막상 깨어있는 시간도 얼마 안되고. 지금 이 상태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란거 알고 있지?”
“...”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다는건 너도 알고 있을거 아니야. 나도 가능하면 너를 이대로 놔두고 싶지만, 그래도 네가 아니면 안돼.”
음. 네가 없으면 안된다니. 좀 부끄러운 말이야. 나는 무기가 필요하다는 소리를 하려고 했는데, 왜 이런 말이 나왔지.
확실히 성검이 아니면 여러모로 곤란했다. 초진동 블레이드를 견딜만한 건 아무래도 성검 정도인 것 같았으니까. 다른걸 잡아봤자깨져버리겠지.
“...하지만, 아직, 아직 며칠 지나지도 않았잖아...어,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데....벌써 돌아가는건 싫어....”
성검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이내 우는 소리를 냈다. 이, 이 녀석,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데 소질이있잖아!
나는 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아니, 아니, 아니. 지금 당장 검으로 돌아가라는건 아니고. 던전에 들어갈 때. 그런 때만 같이 가자는 거야. 그리고 밖에 나가면 네가 사고 싶은 것도 사줄게. 그래. 대장간이라도 가볼래?”
“...뭐야 그게. 그런데를 왜가? 내가 쇳덩어리야?”
맞지 않나?
“대장간은 싫어. 어쨌든 내가 사달라는거 사준다고?”
“으응. 그래, 뭐, 너무 비싼 것만 아니면.”
성검은 어쩐지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어쩐지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다.
나는 그렇게 간신히 어르고 달래서 성검의 약속을 받아냈다. 어쩐지 애키우는 기분이 드는데.
“그럼 일단은...어?”
성검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