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7화 〉유적에서 (2) (267/447)



〈 267화 〉유적에서 (2)

“신성력은 나한테만 있는  아니잖아. 레니, 일단 네가 해봐야 하는게 먼저 아닐까?”

“.......핫.”

레니는  말에 멍한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 이거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데.

“그, 그치만, 저기, 전에도 그 성검님이랑 , 그리고 어, 어, 언데드....!”

부들부들 떠느라 제대로 된 문장조차 만들지 못했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다. 전에 성검의 봉인을 풀고 언데드를 몰살시켰을 때 내 정액을 뿌려...음.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네. 어쨌든 그러니까, 이번에도 당연히 내...그걸 쓰는게 맞지 않느냐는 소리.

“음. 레니양. 그때는 그니까, 너한테 신성력이 없고 신성마법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내가 나선 것 뿐이고. 이건 그냥 신성력을 밀어넣는 일이니까...”

그렇게 레니의 당위는 곧바로 분쇄되어버렸다.

“아, 아으. 으, 으아아....흐아아앙.....”

그대로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은 레니. 그래, 이제야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한 거겠지. 자기한테 신성력이 있다는 것도 까먹고 일단 나한테서 뽑아내려고 들다니. 사제가 아니라 아주 그냥 서큐버스야, 서큐버스!

“...”

레니는 레니고. 나는 옆에서 딴청을 피우고 있는 둘을 보았다.

“흠...신성력을 필요로 해, 한다니.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 크흠. 없군.”

정말 웃기는 깐프다. 방금 전까지 내 바지에 달라붙어있던 주제에 이제는 방해하지 말라는 듯한 진지한 얼굴로 문을 살펴보고 있다. 그렇게 이쪽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주고 싶으면 일단 그 벌겋게 달아오른 귀부터 어떻게 해야하는게 아닐까 싶은데.

“아니야. 내가 어느새 이렇게 음란하게....내, 내가 그럴 리가 없어. 이건 전부  인간 때문에... 그래, 맞아. 머리 속에 야한 것밖에 없고 하는 것도 야한  밖에 없으니까, 어느새 나도 물든거야. 나를 세뇌한 거라고!”

유리는 충격받은 얼굴로 뭐라고중얼거리고 있었고. 그런데 세뇌라니. 나보고 맨날 바보라고 하면서 정작자기가 제일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잖아.

“야, 이 변태들아. 너희들도 다 똑같아.”

“뭣이?!” “변태?! 내가 변태라고오?!”

저거봐, 저 반응 좀 보라고. 안듣는 척 하면서  듣고 있잖아. 세상 억울하고 화나는 표정을 가득 우겨넣고 나를 쳐다보기까지.

으음. 왠지모를 희열이 느껴진다.

요즘들어 사정통제 당하거나 면간당하거나 하면서 끌려다니기만 했는데, 이렇게 놀릴 기회가 오니까 참을 수가 없다고!

“너희는 변태가 맞지. 아리엘, 네가 간밤에 하는 소리 못들은  같았냐. 한번으로는 부족하다면서 레니하고 투닥거리는 소리 다 들렸다고.”

“...!”

“그리고 유리야. 너는 사람 묶어놓고 장난감으로 겁간하려고 든 주제에 물들긴 뭐에 물들었단거냐. 그리고 알아서 엉덩이까지 깨끗하게 준비해왔으면서 변태가 아니라니 무슨,”

 말에 유리가 소리를 빽 질렀다.

“네, 네가 하고 싶어서 한 거잖아! 네가 하고 싶어서, 그, 그렇게나 준비를 했는데 너는....! 됐어, 이제 두번 다시 안해!”

“?!”

두번 다시 안한다고?! 안돼! 세상에, 내가 놀리지 말아야할 걸 건드린건가?!

“흑...후에....”

“역시, 너무 많이하다보면 이런 일이 생기는군. 역시 횟수를 줄여야. 역시, 이대로라면...”

“안해...안할거야...안해...!”

이, 이럴 수가. 우리 애들의 멘탈이 이렇게 약했다니! 야한걸 밝히게 됐다는게 그렇게 충격적인가?! 아니면 내가 놀려서?!

안돼, 이러다간 진짜로 섹스 빈도가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그것만은 일어나서는 안되는일이다.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얘, 얘들아 잠깐만! 그게 아니야, 농담이야 농담!”

내 필사적인 외침에, 세쌍의 눈이 내게로 모였다.

덜덜 떠는 레니, 나를 보는 듯 하지만 허공을 보는 아리엘, 그리고 어쩐지 엉덩이를 잡고 있는 유리.

“너,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하는건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래. 사실 너희만 그런게 아니야. 나도 하고 싶어. 할  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는 듯이 황당한 눈빛이었지만, 내 열변은 멈추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하루 종일 하고 싶을 정도야. 아니, 하루 종일이 뭐람, 1년 내내, 방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가고 싶을 정도라고! 그런데 나는 그렇게 살다가는 글러먹은 인간이 될  같아서 이를 악물고 밖으로 나오는 거라고.”

하루 24시간 1년 내내 박아넣고 사는 삶이라니. 얘기를 하다보니까 또 꼴리네. 큰일이야.

“크흠, 흠. 그래서 어쨌든 내가 이런데, 나와 함께 있는 너희도 나한테 물드는게 당연하다고 해. 그러니까 너희는 아무 문제 없어. 그래, 여기서 지금 한번씩 하고 갈까? 나는 그래도 괜찮은데. 안그래도 티나네랑 같이있어서 제대로 못했는데, 지금이 딱 적당한 기회...크헉!”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거야?!”

통한의 꼬집기가 작렬했다.

후, 이제야 모든게 정상으로 되돌아온 느낌이 든다. 그래, 다른 것보다 유리 녀석이 문제다. 레니가 나랑 안한다는건 상상조차 할  없고, 아리엘은 니니엘때문에 반강제적으로도 해야할테고. 이중에서 오직 즐거움만이 목적인건 유리였으니까. 특히 엉덩이를 위해서라면 이정도 양보쯤은 아무것도 아니지..

“진짜 믿을 수  없다니까. 아무튼 빈틈을 보일 수가 없어.”

“저,저는....”

“음.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는 조금. 할일도 있지 않나.”

“...”

각자 한마디씩 하자, 레니는 말을 하다가 말았다. 어쩐지 그 생략된 뒷부분을  것 같아. 이 와중에서도 각을 보고 있었던건가! 레니양, 평소와는 다르게 몸을 사리는 군.그만큼 음란한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자기가 충격적이었나? 좀 새삼스럽네.

어쨌든 돌아가면 원하는대로 실컷 해줘야지. 그러기 위해선 이 정체를  수 없는 유적부터 후딱 답파해야겠지.

...

조금 진정한 뒤에, 나는 레니를 앞세웠다.

“레니. 그럼 부탁할게.”

“아, 네. 네에...”

레니는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이 몸을 배배 꼬면서 앞으로 나섰다. 이윽고 손에서 신성한 빛이 흘러나와 문을 비추기 시작했다.

“...해...요...”

레니는 얼굴을 푹 숙인채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시, 신성력이 부족해요오....”

“...”

모기만한 목소리라못알아들을 뻔했어.

왜 저러는....아하.

처음에 자기가 한 말이 괜히 한 소리가 아니라 이거지. 자기 힘만으로는 열  없으니까, 결국 내 정액이 필요하다는 소리다.

그리고 욕망도 조금 섞여있는  같았고. 전부터 신성력이 부족하다고 꿍얼거리면 내가 마구 해줬으니까. 변명도 조금 섞여있고. 하지만 내 눈에는 뻔히 보인다. 신성력이 아주 넘치는데 뭘!

너무 대놓고 거짓말이라서 차마 크게는  못하는구나!

힐끔힐끔, 내 눈치를 보면서 꿍얼꿍얼.

-끼기긱.

안타깝게도 레니의 은근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적의 문이 열리고 말았으니까. 그리고  안에는...



#



“특별할 게 없네?”

그저 심플하고 길다란 회랑일 뿐. 아무런 특징이 없다.

여신의 문양이 있는 유적이라길래 뭔가 휘황찬란하고 호화스런 석상이라던가, 역사를 나타내는 태피스트리라던가 그런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양 옆으로 말끔한 벽과 바닥 그리고 빛이 흘러내리는 밝은천장 뿐.

“....함정은 없는 것 같은데. 일단 들어가보자.”

신성력을 요구하는 던전이니 몬스터가 있을 것 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방심은 금물. 우리는 진형을 만들었다.

전방에 나, 그 다음은 유리, 레니가 중간이고, 마지막으로 아리엘. 정석적인 근접 / 원딜 / 힐러 / 유틸이다. 특히 유리는 감각이 내 미니맵에 버금가니까, 아마도 함정에 걸릴일은 없을...

-쿵.

유적의 문이 다시 닫혔다.

“설마 갇혔....안갇혔네.”

문은 미니까 다시 열린다. 문은 그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기능이 있었을 뿐. 괜히 놀랐잖아.

“...!”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UI에 시스템 로그가 올라왔다.

[제출 중.............]

-띠링!

[ 심사 중… ]

지난 번부터 계속 렉걸려있던 스킬 제안이 마침내다음 단계로 넘어갔어. 대체 뭐냐 여기는.

“왜 그래?”

“아니, 갑자기 막혀있었던게 뚫려서...”

“그게 무슨 소리야?”

스킬 제안이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하자, 레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처에 남아있는 미미한 신성력을 보면.... 혹시 여기는 여신님의 영역이라서 그런게 아닐까요?”

“그런가...?”

그러니까 와이파이 핫스팟이라도 되는건가?

“흐음. 여신님의 영역이라니. 그렇게 거창한 장소라고? 그냥  깔끔하기만 하고 특별한건 없어보이는데.”

조금 얕잡아보는 듯한 유리의 태도에 레니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입을 열기도 전에 아리엘이 선수를 쳤다.

“그렇지도 않다. 석재에 대해 잘 아는건 아니지만, 이런 말끔한 마감은 아무데서나 볼  있는게 아니지. 게다가 이런 종류의 유적은 발견된 적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갓 만들어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유적이라면, 그 형태보다는 기술력에 주목해야겠지.”

“음....”

아리엘의 말도 말이었지만, 나는 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 뭔가 지나치게 익숙해.”

아리엘의 말대로  만들어진 새 것이라는 느낌도 느낌이었지만,양식 자체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 마치 갓 개장한 현대미술관의, 혹은 근미래 SF 영화의 새하얀 복도같은 느낌.

기묘하게도 현대적인 느낌이다.

“....이건 가짜로군.”

벽을 살펴보던 아리엘이 말했다.

“가짜라고?”

“이걸 봐라.”

아리엘이 벽에 손을 뻗자, 그대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