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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결혼은 다정한 원수와-7화 (7/56)

7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렌티아는 들어와도 좋다는 뜻으로 설렁줄을 당겨 바깥과 연결된 종을 울렸다.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황후 폐하,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이만 휴식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호위 기사 베리타였다.

수석 시녀 엘리제와 더불어 황후의 최측근으로, 황후가 부르지 않았는데 먼저 들어와 휴식을 청하고도 주제넘다는 꾸중을 듣지 않을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글쎄, 아직 할 일이 산더미지만… 그래. 오늘 쉬어야 내일도 일할 수 있겠지.”

렌티아는 업무의 효율성을 고려해 호위 기사의 청을 받아들였다.

베리타는 문득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번에는 아랫사람의 선을 지켜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렌티아는 서류를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에서 대기하던 베리타와 엘리제가 황후를 모셨다.

엘리제는 촛불을 든 채 앞장서서 길을 밝혔고, 베리타는 검을 찬 채 황후에게 바짝 붙어 뒤따랐다.

방으로 돌아온 렌티아는 시녀들이 준비한 세숫물로 손발과 얼굴을 씻고 깨끗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아직 쌀쌀한 초봄에 황후가 춥지 않도록 시녀가 뜨끈뜨끈한 화로로 침대를 덥혔다.

렌티아가 침대에 눕자 시녀들은 촛불을 끈 뒤 물러갔다. 푹신한 이불에 파묻힌 몸은 곧바로 피로를 호소하며 축 늘어졌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너무 시끄러웠다.

‘…잘 도망치긴 했으려나. 함께 간 궁인들은 제대로 챙기고 있겠지? 설마 자기 혼자 살겠다고 피난길에 동행한 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 아닐까.’

이러고 싶지 않은데, 정말 잠들기 전까지 그딴 놈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황제를 계속해서 곱씹게 되었다.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일 중독 황후의 고질병이었다.

‘전부 잘 마무리되어야 할 텐데. 이번 전쟁 때문에 피해를 본 곳을 복구하고, 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피난민을 지원하고, 평화 협정도 맺어야 하고…….’

평화 협정. 그래, 평화를 되찾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히 제국 땅을 짓밟은 야만족 무리에게 보복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키기보다는 그들과 외교 관계를 맺어야 했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오직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미개한 무리였다면 기꺼이 그들과 맞섰겠으나, 렌티아가 본 그들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안 그래도 무능한 황제 때문에 나라 재정이 위태로운 가운데 전쟁을 위해 군사를 일으켜 돈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설령 복수전을 원하는 자들이 있을지라도 렌티아는 책임지고 그들을 만류해야 했다.

그녀는 싸움이 길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황후로서 최대한 많은 이의 목숨을 지키고 싶었다.

‘그나마 그 남자… 키르타라는 사람과 말이 통해서 다행이야…….’

단지 그가 제국어를 유창하게 써서만은 아니었다. 같은 언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다 말이 통하는 건 아니니까.

우아한 궁중 억양으로 천박한 독설을 퍼붓던 황제가 떠올랐다. 그보다는 차라리 동북부에서 온 조리 있는 이방인이 훨씬 나았다.

오늘에야 처음 만나 겨우 한 번을 대화했을 뿐이지만, 키르타에 대한 렌티아의 첫인상은 긍정적이었다.

‘적어도 비열한 인간은 아니야.’

위험한 인물, 겉과 속이 다른 남자, 끝까지 경계해야 할 적국의 장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하지는 않았다.

그를 신뢰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대화할 수는 있었다.

이런 상황에 차라리 황제가 여기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끼어들었다. 만약 그가 궁에 남았다면 자신은 반사적으로 그의 눈치를 계속 살폈을지도 모른다.

‘내가 뭐만 하면 월권이라고 싫어하니까. 자꾸 황제의 눈치를 보느라 협상에 집중하지 못했을 수도 있어.’

황제를 떠올리자 다시 기분이 나빠졌다. 그와 함께 떠난 정부를 떠올리자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법적 아내인 제게는 뒷일을 부탁한다며 수도에 남으라고 해 놓고 정작 제 애인은 데려간 그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키르타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 망정이지, 만약 그가 세간의 오해대로 잔혹한 야만인이었다면 렌티아는 그를 막으려다가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걸 뻔히 알면서 정부만 챙겨 달아난 남편을 생각하자 심사가 뒤틀렸다.

렌티아는 울컥 솟는 증오심을 가라앉히며 잠들려고 애썼다. 내일도 일하려면 수면 보충은 필수였다.

그러나 자기 전에 불쾌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그녀의 꿈자리도 사납기 그지없었다.

렌티아는 씁쓸하게 고민했다. 정말로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걸까? 내가 뻣뻣해서? 석녀라서? 그자가 원하는 만큼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머리로는 황제가 나쁜 놈이라는 걸 알았고 평소에도 자책하며 지낸 적은 없지만, 그래도 가끔은 마음에 선득한 두려움이 깃들곤 했다.

‘나 때문이야. 내게 문제가 있어서 황제가 나를 그렇게 미워하는 거야.’

내가 좀 더 유순했다면, 조금만 더 사랑스러웠다면, 남편에게 더 순종적으로 굴었다면, 나도 아내로서 존중받을 수 있었을까. 그딴 놈에게 이 정도로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전부 쓸데없는 고민입니다, 황후 폐하.”

“흐읏!”

“당신도 사실 아시잖아요. 당신이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걸.”

“하아, 앙…….”

쓸데없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잠들기 전에 머리가 괜히 복잡해져서.

그래서 지금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꿈을 꾸는 게 분명했다. 이토록 음탕하고, 천박하고, 고고한 황후와 절대 어울리지 않는 꿈을.

“그러니 그딴 놈은 깨끗하게 잊고, 오늘은 오로지 즐기십시오. 당신의 발치에 입 맞출 자격조차 없는 황제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제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응, 읏! 자, 잠깐만, 아아!”

꿈속에서 그녀는 알몸으로 천장을 향해 다리를 활짝 벌리고 있었다. 그녀가 현실에서 한 번도 취한 적 없는 자세였다.

다리 사이에는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계속 매혹적으로 웃으며 굵직한 중지와 검지로 그녀의 음부를 쑤시고 있었다.

길고 단단한 손가락이 은밀한 통로를 왕복하며 입구를 문지르자 구멍을 둘러싼 겹겹의 분홍빛 속살이 물기를 머금고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양손으로 이불을 움켜쥔 채 겨우 버티고 있었다. 허공에 살짝 들린 동그란 엉덩이와 매끈한 허벅지가 파들파들 떨렸다.

“아, 아앙, 흣, 무슨, 이건, 이상해……!”

“이상한 게 아니라 낯선 거겠죠. 비열한 황제 놈 때문에 당신이 여태 배우지 못한 쾌락입니다. 본인은 즐길 걸 다 즐기면서 당신은 아무것도 누릴 수 없도록 방해하는 같잖은 이중 잣대입니다.”

“흐응, 잠깐, 천천히, 천천히……!”

어느새 그녀는 남자를 부추기고 있었다.

천천히, 어쨌든 멈추지 말고, 조금만 더 깊이. 촉촉해진 입구에서 달큼한 물이 흐를수록 그녀의 비명도 짙어졌다.

꿈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무의식에 그만큼 많은 욕망이 쌓여 있었기 때문일까.

렌티아는 어느덧 쾌락을 갈구했다. 지금 자신의 뜨거운 속살을 휘젓는 남자가 지적했듯, 남편의 역겨운 이중 잣대 때문에 여태껏 느껴 보지 못한 쾌락을.

본인은 정부와 놀아나면서 황후가 다른 사내에게 조금이라도 ‘과하게’ 친절하다고 생각되면 온갖 저속한 욕설로 그녀를 비난하던 황제였다.

고고한 성품을 지닌 황후는 다른 사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황제는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냐는 식으로 홧김에 애인을 찾은 적도 전혀 없었다.

그래도 가끔은 상상해 보았다.

서로 사랑하는 두 남녀가 나눈다는 뜨거운 쾌락을,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몸과 마음이 동해 짐승처럼 뒹군다는 이들의 원초적인 행위를.

황제는 황후에게 그런 정염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의무적인 합방은 전부 렌티아에게 비참한 기억이었다.

다정하고 뜨거운 전희 따위 없었다. 황제가 황후의 얼굴을 보는 걸 싫어했기에 그녀는 매번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침대에 엎드려야 했다.

제 몸에 뭐가 들어오는지 볼 수 없었기에 더욱 무서웠다.

시키는 대로 엎드린 채 눈을 질끈 감고 있으면 딱딱한 무언가가 다리 사이를 막무가내로 파고들었고, 끔찍한 통증이 뒤따랐다.

몸이 거칠게 흔들리고 뺨이 이불에 쓸릴 때마다 렌티아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것도 전부 의무에 불과하다고, 자신은 황후로서 제 몫을 다하는 거라고 필사적으로 되뇌며.

꿈속의 정사는 확실히 달랐다. 평소에 뭘 제대로 한 적도 없으면서 무의식의 상상력은 어떻게 이렇게 풍부한 건지 렌티아 본인도 알 수가 없었다.

“하응, 읏, 아아! 하으, 거기, 좋아……!”

렌티아가 울먹거렸다. 남자는 이제 손가락을 빼고 그녀의 끈적한 속살에 입술을 묻은 채 굶주린 들개처럼 그녀를 빨고 있었다.

미끈한 혀가 안으로 들어와 단꿀을 머금은 부위를 휘젓는 감각이 충격적이었다.

불쾌하거나 두려운 감각이 아닌, 온몸이 저릿저릿하게 떨리고 심장에 열기가 차오르는 아찔한 희락이었다.

남자는 아주 다디단 사탕을 먹는 것처럼 그녀의 은밀한 구슬을 입에 물고 혀와 입술로 현란하게 애무했다.

통통하게 솟은 정점을 자극할수록 달아오른 구멍은 왈칵왈칵 물을 뱉었다.

“아아, 흐…….”

렌티아는 땀에 젖은 허리를 틀며 신음했다.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됐으면 했다.

아니, 그래도 조금은 변화가 있었으면 했다. 그녀가 헐떡이며 남자에게 명령했다.

“어서, 어서 넣어 줘…….”

저 단단하고 묵직한 물건을, 황제에게 달려 있을 때는 너무나 징그럽고 끔찍했던 그것을 제게 깊숙이 박아 주었으면 했다.

남자가 헉헉대며 허리를 폈다. 그가 여인의 음부에서 입술을 떼자 끈적한 액체가 그의 입가에 묻어났다. 그가 야성적인 동작으로 입가를 훔쳤다.

“분부대로.”

남자가 씩 웃었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는 순간, 꿈속 사내에게 얼굴이 생겼다.

유목민의 군주 키르타의 미려한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렌티아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꿈에서 퍼뜩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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