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00071장 남매혼잣말2
* * *
(대체... 어째서? 지금껏 왜 바보짓만 하고 있었던 거야? 이럴 때 도와준다면 부모님들도 오빠를....)
"하지만 난 도와주지 않을 거야. 난 언제까지나 멍청한 놈으로 보여야 하거든."
(어... 어째서? 어째서야? 가족에게까지 멸시를 받으면서까지 멍청한 것처럼 행동하는데?)
"귀찮은 건 질색이니까. 난 게으르거든."
(뭐?.....)
(제정신? 겨우 그런 이유로?)
이세인은 자신도 모르게 다리가 풀려 넘어질 뻔했다.
덜컹
"응? 무슨 소리가?"
(이... 이런 걸리면 안 돼.)
이세인은 뒤꿈치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2층 자기 방으로 내려왔다. 평소 엘리트 교육의 목적으로 온갖 운동을 섭렵한 그녀이기에 이주인이 문을 열고 나오는 그 몇 초 동안, 순식간에 방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방금.... 진짜야? 그 바보가... 아니 오빠가...."
이세인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자신들이 비하하고, 모욕하고, 욕하던 오빠가, 실제로는 자신의 천재성을 단지 귀찮다는 이유로 숨기고 있다니...
하긴, 이상하긴 했다.천재들로 이루어진 엘리트 가문에서 단 한 명만 멍청한 무능이 나온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엘리트인 부모님, 자신과 같은 피를 이은 형제가 멍청할 리가 없는 것이다.
"확실히 공부를 잘하는 것과 머리가 똑똑한 것은 다르지...."
운동선수들이나 가수들을 보면, 그들은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며 그 분야에서 독특한 천재성을 발휘하고 있다.
하다못해 노숙자였던 이가 천재적인 능력을 보여 예술가로 다시 일어서는 일도 있었던 것이다. 굳이 공부를 못하더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고, 오빠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세인은 오히려, 자신이야말로 지금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멍청이로 생각되었다.
"그... 그럼 내가 해야 할 일은 오빠에게 도움을 청하면... 아니야, 오빠에게 말해봤자 도와주지 않을 거야. 당장 내일 할아버지에게 찾아가야겠어."
이세인은 자신이 이번 일을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빠가 모든 해법을 다 알려준 것이다. 이 이상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오빠는 나서기 싫어하니까.
이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이주인은 방에서 혼자 부모님이 사기당한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사기꾼은 이미 중국으로 튀어버린 상황, 할아버지나 부모님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우~ 우리 집 망했네. 으이그~ 그러게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슨 투자를 한다고. 뭐, 집안에 돈은 많으니까. 어떻게든 되것지."
"그러고 보니... 사기 치고 중국으로 튄다는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뭐였더라."
"흥행 실패한 3류 조폭물이었는데.... 아, 찬란한 형제였던가."
이주인은 이전에 본 영화가 기억났다. 찬란한 형제 20XX년 작품.두 조폭 끄나풀인 형제가 주인공인 영화.
두 형제가 조직의 돈을 가지고 중국으로 튄 후, 자신들이 중국에 있는 것처럼 속인 다음 몰래 한국으로 돌아와 산골 동네로 숨어 떵떵거리며 산다는 3류 건달 영화였다.
조직은 중국에서 다른 조직원을 고문 끝에 살해하고 난리를 피지만, 결국 중국에 없는 두 형제들을 찾을 수는 없었고, 중국과 공조수사 중인 경찰에게 붙잡혀 일망타진되어 버린다.
어설픈 연기와 뻔한 결말로 흥행은 참패. 시간 때우기로 영화제공 사이트에서 100원에 다운로드해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이미 수십 년 전의 영화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진 망작이였지만, 영화 매니아답게 이주인은 한번 본 이 영화를 기억해 냈다.
"그러니까... 그 영화 내용이 이랬었지...."
"음... 이렇게 하면... 지금 상황이 영화내용이랑 비슷한데.."
"후후후후."
"하!! 멍청한 아버지하고는... 중국을 백날 천날 뒤져봐라!! 아무것도 찾지 못할 거다."
"........"
이주인은 이전에 본 영화 내용에 이번 사건을 섞어, 잘난척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가끔 이주인은 영화나 혹은 비슷한 만화 스토리에도, 자신을 주인공에 대입해 상상하며 즐기기도 했다.
이렇게 즐기는 이유는, 마치 자신이 영화나 만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면 창피하고 바보같이 보일 혼자서 떠드는 1인극이었지만,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하는 이런 장난은 꽤 즐거운 것이었다. 그리고, 부족한 자존심을 높이는 데에도 나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방 안에서 나오질 못해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된 이주인에게, 이런 1인극을 즐기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 나이때 다른 아이들도 자주 만화나 영화를 상상하며 즐기는 주인공놀이기도 했다.
"......“
”..............“
"하지만 난 도와주지 않을 거야. 난 멍청한 놈으로 보여야 하거든."
"귀찮은 건 질색이니까."
"후후후후후후~"
(아,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무 잘난 거 아닌가.)
(마무리까지 너무너무 멋졌구요. 최고였어요. 이주인.)
한참을 자아도취에 취해 있던 중, 갑자기 문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덜컹
"....!!!"
"응? 무슨 소리가?“
”..........“
”어............설마?“
"아.....아아아..."
"혹시.... 누가 들은 거 아니야?"
"우... 우아아아아!! 안돼!!"
"안돼!! 안돼!! 안돼!! 안돼에에에에!!"
"오 시.. 신이여. 신이여. 제발... 제발!!! 그 누구도 들었으면 안 됩니다..."
"아아아아아아"
"죄송해요, 죄송해요. 혼잣말이었어요. 장난이었어요!!"
"못 들은 척 해주세요오...."
"우아아아아아!!"
이주인은 창피함에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상태로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었다. 얼굴은 터져나갈 듯했고, 쪽팔림에 귓불까지 새빨갛게 물들었다.
덜컥.
다행히 방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저... 저기..."
"누구.... 있어요...?"
".....“
”없냐?“
"휴~~ 아무도 없네. 다행이다."
"딸꾹!!"
"으으으..."
"아, 진짜... 아무도 보지 않았겠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여.... 우와... 우와아아아... 나 미쳐."
"딸꾹!!"
"십년감수 했네. 정말 죽을 뻔 했다."
"좀 더 조심해야겠어..."
(누군가 내가 혼자 말하던 걸 본다면 창피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특히 세인이가 본다면 난 끝이다. 평생을 비웃을 거야.)
(그 녀석에게 들켰다면 난 자살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간담이 서늘했다.
부모님이라면야 헛소리한다고 혼나고 말겠지만, 동생인 이세인이 본다면 평생을 이 일로 놀려먹을 것이었다.
"으으... 생각만 해도 정말 너무너무 무섭다."
"내가 대체 뭐 하는 짓이람..."
"우우... 창피해..."
이주인은 자신도 모르게 자괴감에 빠졌다. 재미있게 즐긴 1인극이었지만, 혼자 있을 때나 하는 장난이지, 그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행동인 것이다. 이주인은 컴퓨터를 켜고, VR게임을 실행시켰다. 이 비참함을 씻기 위해서는 게임이라도 해서 풀어야 했다.
주말, 이세인은 혼자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수도권 근방에 위치한 할아버지의 집은 2층짜리 단독에, 입구에서 집까지 100미터는 걸어가야 할 만큼 넓은 부지에 지어진 집이었다. 할아버지의 집은 크지 않았으나, 이 넓은 부지에는 경호원들이 지내는 건물과 사용인들이 머무는 장소, 그 외 여러 건물들이 집을 가운데에 두고 지키듯이 지어져 있었다.
집 앞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취향에 맞는 정원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고, 입구와 주차장 옆에는 펜스가 설치되어 경호원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으며, 초소 근처에는 훈련된 도사견 10여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누군가 침입자가 있다면 이 도사견들이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부지 위로는 최첨단 침입자 방지용 드론 여러대가 날아다녔다. 철통같은 경비에, 웬만한 사람들은 근처만 와도 주눅이 들것 같은 엄중함이었다.
나름 내놓으라 하는 거대한 당의 대표였지만, 재벌과도 같은 과하다 싶은 집과 부유함이었다. 어디서 돈을 끌어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엄청난 재력과 지지자와 권력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헬기장까지 있는 그의 집을 유지하려면 얼마나 더러운 돈이 흘러들어오고 있는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언제나 보던 할아버지의 비서에게 인사하고, 들어가자 할머니가 반겨 주었다. 160센티 정도의 키에, 파마한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한 할머니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약간 날카로운 인상의 그녀는 이세인을 보자 바로 웃은 얼굴로 그녀를 반겼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왔어? 할미가 맛있는 거 해줄게. 저녁 먹고 가."
"우게에 엑... 저녁이라고 해놓고 일주일은 먹을 양을 먹이시잖아요..."
"무슨 소리야? 너 말라비틀어진 거 봐라. 뼈만 남아있네?"
"저... 괜찮아요."
"이 할미가 오늘 맛있는 거 해놨다. 걱정 말고 많이 먹고 가려무나!!"
"아... 아니..."
"알았지?"
"어... 그러니까"
"대답 안 해?!!!!"
"으겍!! 네...."
"그렇지, 그렇지!! 호호호."
"히잉..."
"많이, 많이 먹고 가야 한다!!"
"으으..."
"그런데 오늘은 웬일이니?"
"아, 네. 할머니. 오늘은 할아버지와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할아버지 계세요?"
"그래,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할아버지가 지금 화가 많이 났어요. 당 대표의 아들놈이 멍청해서 사기를 당했다고... 매스컴에도 알려져서 망신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네. 그 이야기 때문이에요."
"그래? 음.... 어쨌든 올라가 보려무나 서재에 계실 거다."
"네, 할머니."
2층 계단 왼쪽으로 쭉 가면 구석에 방이 하나 있고, 그곳이 서재였다. 할아버지는 생각할 것이 있을 때 그곳에 머물며 사색에 잠기곤 했다. 이세인의 할아버지 이중걸은 서재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똑똑. 할아버지, 저 왔어요."
"......... 후, 그래. 세인이 왔구나."
"왜 그렇게 힘이 없어요?"
"........... 내가!!! 그 멍청한 놈을 아들이라고!!! 으... 아니다. 미안하구나... 소리를 처서."
"매스컴에 알려졌다면서요?"
"그래. 현역 당 대표의 아들이 사기 사건에 휘말려 거액을 손해 봤다는 거다. 하하하하하! 빌어먹을."
이세인의 할아버지 이중걸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동안의 얼굴에 굉장히 인상이 좋은 남자였다. 키는 165 정도였으나, 살찐 체격에 얼굴도 동그랗게 커서, 마치 옆집 아저씨 같은 수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소리 지를 때의 그는, 맹렬한 박력을 지니고 있었고, 눈빛은 맹수처럼 이글거렸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3선을 국회의원으로 영임했던 그는 절대로 수수한 남자가 아니었다. 거기다 온갖 더러운 수를 다 써가며 총리까지 지내고 이제는 당 대표로 앉은 것이다. 그를 외모로만 판단하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실수였다.
"이런 망신이 있을 수가 있나!! 멍청한 아들놈이 아비를 이렇게 망신 주다니!!
거기다 이제 사기당한 돈까지 달라고 하지 않더냐. 아이고!!! 답답해서 원..."
"매스컴에 알려지면 타격이 큰가요?"
"그럼. 이 바닥에서 얕보이면 그걸로 끝이야. 그리고 하나의 틈이 생기면 바로 쓰레기들이 비집고 들어오지. 멍청한 아들놈 때문에 여기저기서 공격당하게 생겼다."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
"그래. 그래..... 아들놈도 그렇고 손주 놈도 그렇고 써먹질 못하겠구나. 우리 집은 너밖에 없다. 너도 앞으로 정치쪽으로 나서야 한다. 내가 길 잘 터줄 테니. 알았지?"
"오빠는 써먹을 곳이.... 아니, 그것보다 할아버지, 부탁이 있어요."
"뭐냐. 뭐든 말해보려무나."
"사람 잘 찾는 사람이 필요해요. 탐정 같은 사람. 하지만 알려진 사람 말고, 뒤로 쓸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사람도, 어린아이도 죽일 수 있는 사람으로."
"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