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 00171장 남매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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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 차지 학원의 장요한은 키 170센티 정도의 마른 몸매를 가진 날카로운 눈빛의 남자였다. 몸은 말랐지만, 부드럽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근육이 단단히 잡혀있어, 일반인이 보더라도 운동 등에 매우 단련되어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멋지게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그는, 마치 어느 회사의 디자이너 팀장 같은 세련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원장인 장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프리 차지를 배우고 싶다고요?"
"예. 몸을 날렵하게 하고 싶어요."
"하하! 프리 차지는 몸을 날렵하게 하는 게 아니에요. 뭐랄까... 일반 운동과는 틀리다랄까. 그렇게 접근하면 안 돼요. 나중에 실력이 붙지 않아 지겨워하다가, 결국 얼마 못 가 그만두게 됩니다."
"그런가요? 그럼.. 어떤 식으로 배워야 좋을까요?"
"프리 차지는, 장애물을 이용해, 그것을 이겨내며 자유를 느끼는 스포츠입니다."
"자유를 느낀다고... 요?"
"그래요. 장애물이 장애물이 아니게 될 때, 그리고 그 장애물 위를 뛰어넘어 달려나갈 때, 자유를 느끼게 될 겁니다."
"아...."
"자, 저기 언덕 위 건물 보이죠? 그 뒤의 산까지... 일직선으로 달려갈 수 있겠습니까?"
"네? 중간에 도로도 있고 상가도 있는데... 어떻게 달려가요?"
"프리 차지를 배우면 저곳은 당신에게 그냥 단순한 길이 될 겁니다.'
"진짜로... 제가 가능할까요?"
"그래요. 저 건물들은 어떠한 장애물도 되지 않습니다. 프리 차지를 배우게 되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어도 갈 수 있는 길이 보이게 되죠.“
”오오오...“
"그렇게 길이 보일 때, 그리고 어떠한 곳이던 뛰어넘어 달려나갈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를 느끼게 될 겁니다."
장요한이 말하는 것을 이주인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자유를 느낀다니... 언제나 혼자 살길 원하며 자유를 그리워한 그에겐 너무 멋진 말이었다.
"빨리 배우고 싶어요!"
"하하!! 지금 제가 잘난척하며 말은 했지만, 제가 말한 수준으로의 고수가 되려면 몇 년 가지고는 안됩니다.“
”에에에...“
"배울 게 많아요. 수많은 낙법과 악력 기르기, 파지법 등... 배우기 전에 확실히 말하는데, 그 어떠한 것도 안전이 먼저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그럼요. 저도 저의 안전을 위해서 배우려는 것이었거든요."
"네??... 어쨌든, 프리 차지를 배우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정말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답니다."
"네. 배울 겁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꾸준히 해보세요. 프리 차지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해야 재미를 느낄 수 있거든요."
이주인은 프리 차지를 배우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단순히 더 잘 도망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단지 트랙을 달리는 것만으로 정말 자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살아가는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이주인은 오늘도 프리 차지 학원을 다녀왔다. 아직 배우는 거라고는 기본 중의 기본인 달리기와 멀리뛰기, 턱걸이 같은 것이었지만, 기초체력을 기르는 운동, 그것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녹초가 되게 힘들었다.
그와 동시에 정말 즐겁고, 기분 좋은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이러한 종류의 즐거움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이주인 이었지만, 오늘도 부모님은 계시지 않았다. 아버지는 대학병원 교수로 대통령의 주치의가 된다니 안된다니 하며 자주 집을 비웠고, 어머니 역시 유명한 검사로 검찰의 장이 된다니 안된다니 하며 밤늦게 집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저번의 사기 사건 이후, 자주 싸우던 두 사람은 더욱 집에 늦게 돌아오게 되었다. 어차피 둘 다 어딘가에 애인이 있지 않을까.
주말에 부모님이 모두 집에 있을 때가 있었지만, 어차피 이주인의 부모님은 이주인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말을 안 건네는 것이 좋았던 것이, 스트레스를 풀거나, 이주인에게 욕하기 위해 잔소리나 화풀이를 하는 것 외에는 말을 건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이주인으로서는, 아무도 없는 것이 더 좋은 편이었다.
가정부가 차려놓은 밥과 반찬으로 늦은 저녁을 때우고 이주인은 샤워 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 시간에는 동생인 이세인도 집에 와 있었지만, 가끔 마주칠 때 이외에는 이주인에게 말을 건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여동생의 행동 역시, 이주인에게는 그다지 나쁜 행동이 아니었다. 방에 돌아오면 자기 전까지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거나 영화를 보았기에,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았던 것이 형편이 좋았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똑. 똑. 똑.
"오빠 뭐해?"
".......세인이!!?"
"오빠?"
"게임하는 중이다. 들어오지 마."
"알았어. 들어갈께."
"아니, 들어오지 말라구."
"어, 들어갈게."
벌컥.
”말을 귀로 듣는 것이 맞냐?“
이세인은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언제나 그렇듯이 안하무인인 성격은 그대로였다. 이주인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동생은 이주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궁금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최근 욕을 안 하고 묘하게 쳐다보는 식으로 태도가 바뀐 것은 알았지만, 굳이 늦은 밤 방에까지 들어올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야 넌 좀... 오빠 말 좀 들어!! 헉....."
"여기 좀 앉을게."
이세인은 성큼성큼 들어와 침대 위에 기대앉았다. 이주인은 이세인을 아무 생각 없이 보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방금 샤워를 하고 온 동생은, 하얀 스포츠 브라에 짧은 숏팬츠를 입고, 반나체로 방에 들어왔던 것이다.
운동을 하고선 씻고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약간 축축한 몸에 입은 스포츠 브라와 숏팬츠는 이세인의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브라는 작은 가슴의 모습을, 숏팬츠는 아래의 윤곽까지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탄력 있는 지방 하나 없는 마르고 단단한 몸에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복근은 묘하게 요염함을 풍겼다. 거기다 살짝 풍기는 샴푸 냄새까지, 이주인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야... 너 왜 속옷만 입고 내 방에 온 거야?"
"속옷 아니니까 괜찮아."
"아니, 그거... 브라랑 밑에 밖에 안 입었잖아."
"요가 할 때나 운동할 때는 이렇게 입는데?
"그... 동생님."
"왜."
"혹시 숏팬츠 밑에... 아무것도 없으십니까?"
"음... 몸에 딱 맞게 입는 거라 속옷은 못 입어. 맨살인데."
"허걱."
이주인의 말에 이세인 역시 창피함에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녀 역시 이런 차림으로 오빠의 방에 찾아온 것이 창피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세인이 이런 모습으로 이주인의 방을 찾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세인은 방과 후 서점에 들러 애교를 부리는 방법에 관한 책을 찾아보았다. 애교라니, 이세인은 평생 애교 같은 행동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런 일에 그녀는 전혀 지식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정대원에게 부탁을 할 수도 없었다. 같은 여자도 아니고, 아저씨에게 어떻게 물어본단 말인가. 이세인은 서점을 돌아다니다, 연애 관련 책들이 있는 곳에서 눈에 띄는 것을 찾게 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어떤 여성 블로거의 남자를 유혹하는 법, 남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책이 있었던 것이다.
그 책의 목차에는 남성에게 애교를 부리는 방법, 그리고 남자를 사로잡는 방법 등이 적혀있었다. 이렇게만 하면 남자를 마음대로!!! 물론, 이 책은 썸을 타는 남자를 꼬시는 연애관련 책으로 성관계를 목표로 한 서술이 되어있는, 어른들의 기술을 다룬 책이었다.
하지만, 이세인이 그것을 알 리도 없었고, 결국 그녀는 이 책을 사고야 말았다.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야한 방법들이 잔뜩 적혀있었으나, 이것이 정상적인 것이라 잘못 판단하고 말았다. 그녀가 성에 관해 지식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녀 역시 충분한 성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다만 책의 내용을 고지식하게 믿어버린 것이 잘못이었다.
이세인은 책을 제대로 다 읽지도 않고, 앞에 부분에 나온 몇 가지 방법을 따라 하기로 했다. 만약 끝까지 다 읽었다면, 이 책의 내용을 잘못 이해했다는 것을 알았을지도 모른다.
(구매한 책에서는 샤워 후 속옷을 입고 들어가라 했는데, 그건 정말... 뭐냐고 이게 애교가 맞나? 아닌 거 같은데... 어쨌든 그건 못하겠어.)
(그래서 제일 속옷과 비슷한 옷을 입고 들어오긴 했는데... 으... 나도 창피하다고.)
"왜? 이렇게 입으면 안 돼?"
"아니... 안되는 건 아니지만... 눈 둘 곳이 없다고 할까."
"후후~ 이 방법이 좀 통하긴 하나 보네."
"뭐라고?"
"아니."
"으... 그래서 내 방에서 뭐 하려는 거냐. 니 방으로 가세요."
"있으면 안 되나? 하던 게임이나 마저 하셔."
"뒤에 헐벗은 여자아이가 뒹굴거리고 있는데 게임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주인은 이세인을 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여동생이 입은 옷들은 이세인의 중요한 부분만 가릴 수 있는 옷이라, 눈이 계속 그쪽으로 향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미녀였던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인형 같은 미소녀인 이세인이었다. 그녀가 몸매가 다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는 것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야한 모습이었다.
새삼스럽게 이주인은 이세인이 얼마나 귀여운 여자아이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전국 학교 미소녀 랭크에 오른 다든지, 몇 명에게 고백을 받았다든지, 연예인 데뷔를 제의받았다든지. 막돼먹은 동생에게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이렇게 보니 이세인은 아름답다고 불러도 크게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보니, 정말 내 동생과 나는 차이가 크게 나는구나. 외모, 공부, 운동... 뭐하나 내 동생은 모자라는 것이 없어.)
(열등감을 느낀다는 수준이 아니었구나. 내가... 동생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야. 나 참. 이래서야 반감을 가질수도 없겠어....)
이주인은 부모님이 자신과 이세인을 비교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그녀는 확실히 자신과 다르게 특별했다. 여러 가지로 모든 면에서.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면, 비교할 만도 하지 않을까.
"뭐해?"
"게임한다니까."
"무슨 게임 하는데?"
"말해도 니가 알겠냐?"
"왜 하는 거야?"
"...... 너 대체 뭐 하러 들어온 거야? 그냥 시간 때우려고 하는 게임이야."
"흐음~ 시간을 때운다고? 오빠가?"
"당연한 거 아니야? 별로 할 일도 없으니까."
"그런 필요 없는 행위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깝지 않아?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까나?"
"세인아.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는 것도 휴식이라고 하는 거야."
"그딴 짓이 휴식이라고?"
"그래... 밥 먹고 자는 것 말고도 이런 것을 즐기는 것도 몸을 편하게 해주는 중요한 행동이라고.“
”흠.......“
"그러는 세인이 너야말로 너무 몸을 혹사시키는 것 같아. 좀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친구들과도 만나고 했으면 좋겠네.“
”........“
”왜?“
"그... 난 친구가 하나도 없어."
"헉. 그랬냐."
"응...."
"뭐, 그런 것 가지고 뭘, 괜찮아!!"
"괜찮은 거야?"
"나도 친구가 하나도 없거든!! 아하하하하!!!"
"멍청아, 넌 지금 그게 웃기냐?"
"죄송합니다."
이세인은 타인을 무시하는 태도와 날카로운 성격으로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이세인의 아름다운 외모나 능력, 혹은 집안을 보고 접근하는 아이들은 많았으나, 이세인은 그들을 인간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친구가 되려면 이세인이 생각해 놓은 기준을 넘어야 했다. 웬만한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빠도 친구가 없었지. 나와 같네. 의외로 나와 같은 점이 많은 거 같아. 쿠후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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