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 02394장 학교생활막간전쟁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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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단둘뿐이라면 이걸 벗어 내 얼굴을 보여주지.”
“뭐....!! 소령님!?”
“진심이냐, 게릭?”
“헤에~ 좋아. 숨겨야 할 게 있다면 이해할 수 있어~”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게릭은 발라클라바를 벗어 얼굴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용병들과 정대원은 크게 놀랐다. 그들이나 다른 누가 농담식으로라도 그의 얼굴을 보고 싶다고 하면, 게릭은 살기까지 내보이며 냉정하게 거절을 해왔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쉽게 이세인에게 얼굴을 보여주겠다고 하다니...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 이라면, 절대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다.
“넌 내 고용주가 될 사람이니, 보고 싶다면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안돼고, 조건도 있다.”
“조건이라고? 그건 뭐지?”
“단 둘이 되면 말해주지.”
“오케이!! 모두 나가.”
“이런, 이세인 아가씨. 괜찮으시겠습니까?”
“요한 니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경호원 필요 없다고. 괜찮으니 나가. 난 저 녀석 얼굴이 보고 싶어. 크크크크....”
정대원, 장요한, 그리고 게릭의 부하들이 모두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고, 사장실이 조용해졌다.
게릭은 아무 말도 없이 이세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더 상황을 해석하고 판단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릭은 그러한 상황파악 능력으로 여러 불가능한 전투에서 이겨나갔던 것이다. 게릭이 파악한 이세인은 완전한 거짓투성이의 존재였다. 그는 이러한 존재를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가면을 쓰고 있는 그녀의 참모습을 보고 싶었다.
혹시... 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그녀가 자신이 생각하는 그 존재라면 없애야 할지, 따라야 할지 선택해야 할 것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얼굴 정도 보여주는 건 싸게 먹히는 것이었다.
이세인이 입을 열기 전에, 게릭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 얼굴을 보여주는 건 상관없어. 하지만, 보여준 다음... 니 얼굴도 보여주는 게 조건이다.”
“내 얼굴?”
“그래.”
“내 얼굴 지금 보고 있잖아? 이쁘지? 키키키키...”
“만들어낸 가짜 얼굴 말고.”
“....?”
“다른 녀석들은 눈치 못 챈 듯싶지만, 난 니 표정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걸 안다. 난 이전에도 너 같은 인간을 만나봐서 알아. 꾸며낸 표정 말고, 네 진짜 얼굴을 보고 싶다.”
“헤에~ 나 방금 이야기하면서 뭔가 너에게 들통난 게 있나?”
“난 수많은 전쟁에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며 배워온 게 있다. 나에겐 상대방의 본질이 보인달까. 거짓을 알아차리는 눈치가 빨라. 그래서 지금껏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르고.”
“너에게 난 어떻게 보이는데?”
“넌 모든 게 다 거짓이다. 거짓 웃음 말고, 진짜 네 웃음을 보여줘 봐.”
“호에에~~”
“........”
“그런 거 어떻게 아는 거야? 많은 경험?”
“나 역시 모든 게 다 거짓이니까. 네 거짓도 알아차리기 쉬운 거다.”
“후!! 알겠어. 안 흉내 내고, 내 모습을 보여줄게.”
“좋아.”
“그럼 너부터 그거 벗어봐.”
“좋아. 내 발라클라바를 벗은 맨얼굴을 본 사람은 세 손가락에 꼽는다. 이제는 너도 포함되겠지.”
게릭은 살짝 미소지으며 모자를 내린 후, 발라클라바를 벗었다.
“흐음....”
“됐는가?”
“왜 가리고 다니는 거야? 대체. 별것도 아니네.”
“후후. 그렇지?”
“죽은 사람 얼굴이 뭐 어때서? 그걸 가릴 필요가 있나?”
“........”
“왜?”
“넌 날 놀라게 하는군. 아무렇지도 않은가?”
“뭐가?”
“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지?”
“얼굴이 죽어있잖아. 사람 얼굴 껍질을 뒤집어쓴 것도 아닌데. 왜 얼굴이 죽어있지? 그런 썩은 얼굴은 어떻게 하는 거야.”
“호오...”
“창백한 피부까지, 마치 시체 같은데. 너 꽤 재미있는 놈이야? 이히히히.”
“전혀 동요하지를 않다니. 할 말이 없군. 그럼 이제 네 차례다. 이세인.”
“아, 그래. 약속은 지켜야지. 내 본 얼굴은 오빠 말고 보여준 적이 없는데. 오빠는 질색을 하면서 재수 없다고 치우라고 내 뺨을 때렸거든.”
“오빠....? 아, 정대원에게 들은 적이 있다. 너희 남매가 조직의 보스라고 했던데..”
“그래. 그 오빠 맞아. 그럼.... 자.”
“.........”
“이. 게. 내. 진.짜. 표.정.이.야.”
이세인은 감정을 흉내 내지 않은 자신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얼굴을 게릭에게 보여주었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자신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이제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연기하는 것을 버리고 본성을 드러낼 수가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녀의 오빠인 이주인만 알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게릭도 자신에게 숨기던 모습을 보여주었지 않은가. 그의 보스가 되려면, 신뢰를 얻어야 했고, 약속은 지켜야만 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세인은 꽤 고지식한 편이었다.
“......”
“어.때.”
“넌......”
“이.제. 됐.지?”
“........”
“왜.......?”
“쌌다.”
“르응? 무슨 소리야?”
게릭과 정대원이 본부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아직 건설중인 본부 건물 옥상은 황량해 보였고, 옆에는 간이로 만들어진 헬기 착륙장이 보였다. 그 옥상 난간에서, 둘은 바람을 쐬고 있는 중이었다.
게릭은 이전처럼 발라클라바와 모자로 얼굴을 다 가리고 있었으나, 그가 엄청나게 흥분하고 있다는 것은 목소리와 눈빛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게릭은 전쟁에 나서기 전처럼, 손을 떨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의 담배를 잡고 있는 손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비, 빌어먹을. 어떻게 저런 게 또 존재할 수가 있는 거지?”
“게릭. 너답지 않게 흥분하고 있군.”
“이봐, 정대원. 그녀와는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아가씨는 날 거둬주신 이중걸 선생님의 손녀분이시다. 이제는 내가 모시고 있지. 손자인 이주인, 손녀인 이세인. 이 두 분을 모신다는 건 나의 행운이며, 운명이다.”
“저 여자애, 아니 이세인을 언제부터 모셨던 건가? 저건 태어날 때부터 저랬던건가?”
“네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흥분하는지 모르겠지만... 평소의 네가 아니군.”
“대답이나 해. 이세인은 처음부터 저랬던 건가?”
“아니. 적어도 내가 처음 만나 뵈었을 때는 단순히 뛰어난 천재 소녀였어. 하지만...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그때부터 무언가 바뀌어서 저렇게 되버리셨지.”
“그럴 리가. 중간에 죽었다 살아난 게 아니면, 저건 애초에 저렇게 태어났다는 이야기인데.”
“흠....? 난 그녀가 살인을 하여 자신의 본성을 각성했다고 생각해. 보통 인간을 뛰어넘는 존재로...”
“너, 넌... 그녀의 얼굴이 어떻게 보였지?”
“아름다운 아가씨의 얼굴이 왜?”
“알아차리지 못했나? 자네는?”
“가끔 피를 탐하시다 광란에 빠져 공포스럽게 변하곤 하지만 그게 문제가 되나?”
“넌 눈치채지 못했군. 저건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을 가능성이 높아. 마치 평범한 소녀처럼 살아왔겠지. 아니, 행동했겠지. 그리고... 네 말대로 살인을 함으로 각성했을 거야.”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아가씨는 아가씨일 따름이네. 그럼, 네 눈에는 어떻게 보였는데? 게릭.”
“본인도 아직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는 거 같던데.”
“대체 무슨 소리인가.”
“저 이세인이라는 소녀를 연기하는 존재는 뭐지?”
“.........?”
정대원은 아까부터 평소와는 다르게 흥분한 상태로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릭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게릭은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 절대 이렇게 두서없이 궁시렁거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평소와는 다른 그였지만, 정대원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이세인 아가씨와 단둘이 있을 때 무언가 알게 된 것이겠지. 하고 추측할 뿐이었다.
“저건 이세인이 아니야. 이세인이라는 소녀를 연기하는 무언가다. 그러니까 저렇게 타인의 감정을 연기하지. 살인으로 인해 자신의 본성을 각성한 거고. 감정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게릭.”
“난 저런 존재를 만나본 적이 있어. 그리고 그 존재를 죽이기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쳤지. 그리고....
난 죽은 인간이 되었다. 전쟁으로밖에 삶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처음 듣는 소리인데.”
“.........”
“게릭. 자네 아무래도 오늘 좀 이상해. 이세인 아가씨가 좀 규격 외의 인간이긴 해도 말이지.
아니.... 넌 아가씨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인가. 그럼 놀랄 만도 해. 저렇게 작은 소녀가 얼마나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나도 가끔 놀라거든.”
“이세인... 저 소녀는 혹시 이전에 목숨을 잃었던 적이 있나?”
“내가 알기로는 없네.”
게릭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대원은 그가 장난이나 농담으로 말을 하고 있다고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세인은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나? 사고로 죽음에 가까운 경험을 겪어본 적이 있다던지, 아니면, 비슷한 경험이라도. 유사 죽음의 체험이라도 말이지.”
“없어. 이세인 아가씨는 이 나라의 여당 총수 손녀시다. 어렸을 때부터 얼마나 애지중지 키워져 왔다고. 게다가 나는 아가씨를 모시기 전에 그녀의 대략적인 모든 정보를 전달받았었다. 어려서부터 병으로 아프셨던 적도 없고, 사고를 당하셨던 적은 더더욱 없어.”
게릭은 정대원의 말을 듣고, 손을 떨며 한참을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줄담배를 피워대는 그에게, 정대원이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떤가? 아가씨 밑으로 들어오고 싶은가?”
“그래. 그녀가 우리를 마음에 들어 한다면, 기꺼이 같이하지.”
“너무 쉽게 아가씨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정하는 거 아닌가? 그 잃어버린 대대의 게릭이란 자가....”
“전쟁보다 더 재미있는 걸 볼 수 있을 거 같거든. 겸사겸사 좀 쉬고 싶고. 부대원들도 많이 줄었으니까.”
“그래. 그럼 아가씨께도 잘 말해두겠네. 일단 이곳 숙소에서 묵으며 며칠 쉬자고. 내일은 나랑 우리 직원들이랑 회식 자리를 마련해 놓았으니, 같이 술 한잔하자구. 괜찮지?”
“그래. 알았다.”
“먼저 내려갈 테니, 천천히 내려오게. 숙소는 어딘지 알지 게릭?”
“걱정 말아.”
정대원은 게릭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다면 자신에게 말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정대원이 옥상에서 내려간 이후에도, 게릭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공포와 흥분에 몸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그는 자신의 기저귀에 사정을 한 후였다. 이슬람 국민군의 최정예 제1기갑사단과 목숨을 걸고 싸울 때에도 사정을 안 했던 그가, 이세인의 얼굴을 보고 그 자리에서 싸버린 것이었다.
그가 별로 변태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공포에 질려 사정을 한 것이다.
“정말 이세인은 죽었다 살아난 적이 없는가? 이세인을 흉내 내고 있는 저건... 정말 그 이세인 자체인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아니야, 그럴 리가.”
게릭은 주머니를 뒤져, 소중하게 간직해오던 작은 상자를 꺼냈다. 한손에 다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상자안에는, 오래되어 색이 바랜 십자가가 하나 있었다.
게릭은 그 십자가를 꺼내, 떨리는 손으로 손에 든 후, 성호를 그었다. 십자가에는, 성월 기사단 12사도라는 라틴어가 쓰여져 있었다.
“이제는 잡는 입장이 아니라 그 밑으로 들어가게 되다니... 심연의 하수인이 되어 전쟁과 투쟁을 즐기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일까."
게릭은 그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그는 그제서야 겨우 떨리던 손을 멈출수가 있었다.
“드물게 심연에서부터 올라온 존재들이 인간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인간 흉내를 내곤 하지. 순수 악인 존재가 만들어내는 것은 혼돈과 무질서 뿐이다.
이곳에서 그것을 깨달은 것은 나 혼자뿐인가.... 아니, 평범한 인간이라면 알아차릴 수가 없다.”
“........”
“이세인은 대체 언제 뒤바뀐 거지? 아니면 뒤바뀐 게 아니라, 정대원 말대로 애초에 저렇게 태어난 것인가?”
“그건 지켜보면 알수 있을 것이다....”
“하하하하하.”
”재미있을것같다. 재미있을 것 같아!! 하하하.”
“으하하하하하하.”
게릭의 건조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바람 소리에 섞여 그의 웃음은 사그라들어 갔다. 게릭은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고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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