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8)

16. 작은 새와 큰 새 그리고 나비

 빛은 모두에게 내리쬐지 못한다. 

 그 밝음은 애초에 누구의 소유가 아니기에- 그 것에 분노할 수도, 억울해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밝음이 누구를 위해 향하기 시작했다면.. 그 것에 역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한다. 그 빛을 받은 그는, 내리쬔 빛에 고스란히 간직한 자신의 빛을 섞어 나에게 보여주었으니. 어쩌면 나에게도 빛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도 그 빛에 내 빛을 섞을 수 있지 않을까-

 삐빅- 철컥

 "어, 슬기야"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인 것은 차마 잠에 들지 못하고 주현언니의 걱정과 나를 기다림에 멍하니 서있던 승완이였다. 승완이는 내게 다가와 말없이 내 손을 잡았다. 그런 승완이와 마주보면서도 나는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 짧은 마주봄과 적막- 마일오빠의 집에서 나와 숙소까지 오면서 했던 모든 생각들을 정리해주는 듯했다. 

 "..무슨 말했어?"

 승완이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는 눈을 감았다. 심장은 세차게 뛰고있었다, 

 "뭐 별 말 없었어. 마일오빠는 주현언니에게 어울릴만한 사람이 되겠대"

 "얼마나 걸릴지 알고"

 "그러게 그 오빠도 참.. 그런데.."

 차마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순간 침을 삼켰다. 

 "문제가 생겼어.. 내 심장에"

 "어?"

 눈을 떴다. 승완이는 걱정과 궁금함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나 혼자 내려버린 내 마음의 목표.. 오빠가 내게 말해주었던 시가 계속 머리 속에 맴돈다. 

 승완이는 갸우뚱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유를 잃어버린 작은 새는, 날개를 다쳐 날지 못하고 있는.. 하지만 누구보다 큰 날개를 갖고있는 큰 새를 향해 날아가기로 마음먹었어"

 술에 취한 듯이 중얼거리고 있다. 내가 주현언니를 좋아했던 것이 심장의 고장이었을까, 혹은 지금 마일오빠가 날 고장나게 만든걸까.. 전자든 후자든 결국 난 고장난 것이었다. 

 "그럼.. 하늘의 구름보다, 땅의 꽃들보다 예쁜 나비에게.. 큰 새가 그 옆을 날아다닐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을-"

 내 동화같은 말들을 이해하지 못했을 승완이를 나도 모르게 껴안았다. 다리가 떨려 서있지 못할 것만 같았으니까-

 "..내가 전할 수 있을까?"

.

.

.

 위이이이잉-

 오래되고 먼지쌓인 선풍기가 영 좋지 않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멈출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몇 번이고 선풍기를 바라보게 만드는.. 

 창문 너머로 너무나도 밝은 햇빛이 내리쬐온다. 어느새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일까,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내며 원고를 그리는데 다시 열중했다. 담배를 끊어서일까? 생각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제 주현누나에대한 생각을 하면 난, 설레임과 두근거림이 따라온다. 정말 손에 잡힐 것만 같다. 나도 유명한 만화가가 되어서.. 성공해서- 

 "기다리라는 부탁은.. 너무 양심없으니까.."

 차마 하지 못하지.

 문득 다른 생각을 하다보니 손 아귀가 저려오고,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바라본 시계는 어느새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그렸으니.. 갑자기 배도 고파왔다. 이렇게 몸의 신호들도 무시하면서 빠져서 만화를 그렸던 것이 언제적이었을까.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이 뿌듯했다. 

 "그런데.. 주현누나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어쩌지?"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나에게 질문했다.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는데 정신이 아득해져왔다. 

 "에이씨 여자가 그 누나 밖에 없나, 확 슬기랑 사귀어버리지 뭐!"

 라고 얘기하면서 나 혼자 웃었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내 뺨을 내가 때렸다. 왜 하필이면 슬기가 튀어나온걸까, 난 벌떡 일어나서 핸드폰에 저장되어있는 슬기 이름을 보고는

 "미안하다 슬기야 오빠가 배가 고파서 헛소리를.."

 "엉? 나한테 뭐가 미안해?"

 "으악 깜짝이야?!"

 쿠당탕탕!!

 "오빠!"

 깜짝놀라 뒷걸음질을 치다가 낡은 선풍기에 걸려 그대로 쓰러졌다. 깜짝 놀라며 달려온 슬기에게 괜찮다고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지만 낡은 선풍기는 전혀 괜찮지 않은 듯 다시는 내게 미지근한 바람조차 보내주지 못했다. 

 "뭘 그렇게 놀라고 그래? 미안하다는건 또 뭐고?"

 "하하;; 아무 것도 아니여.. 것보다 노크 좀 하면 덧나냐? 주현누나가 맘대로 문 여니까 너도 그러냐?!"

 "왜 뭐! 주현언니도 오빠랑 사귄건 아니잖아-"

 전혀 예상못한 대답에 난 아무 말도 하지못했다. 슬기도 자기가 얘기하고는 민망했던지 갑자기 선풍기를 만지작거렸다.

 "이.. 이거 완전 고장났나본데 어떡해?"

 "그건 뭐 원래 오래된 고물 선풍기여서.. 아이씨 너 때문이잖아! 새걸로 사갖고와!"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오빠가 무슨 1900년대 무성영화 수준으로 놀라면서 자빠져서 이렇게 된거잖.. 호오 이 오빠 보소"

 갑자기 슬기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서는 내 턱을 검지손가락으로 척- 들었다.

 "뭐.. 뭐!"

 "설마 내 사진을 보면서 기분 좋은 시간을 가졌다거나.."

 "이게 아주 오냐오냐해주니까"

 "으악! 미안해 오빠!"

 그렇게 한동안 레슬링아닌 레슬링이 이어졌고, 결국 슬기를 제압하는데에 성공했다. 

 "아앙ㅠ 미안해.. 선풍기 물어낼게.."

 "뭐 정말?! 역시 내 의동생 착하다니.. 컥!"

 갑자기 내 손을 뿌리친 슬기가 내 턱을 발로찼다. 

 "누구 마음대로 의동생이냐 내가?!"

 "아우 아파.. 뭐 짜샤 내가 너 강에서도 구해주고-"

 "먼저 빠진게 누구신데? 나보고 고맙다고 그럴 땐 언제고"

 "너도 나한테 고맙대매!"

 "아이씨 몰라! 아무튼 의동생 같은건 절대 안해"

 "어.. 그러면.."

 내가 생각에 잠겼을 때, 슬기의 눈이 살짝 내게로 향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튼 놀리는 맛이 있는 애라니까..

 "강돌구! 좋네"

 "뭐?!"

 "왜 그 강아지처럼 쫄랑쫄랑.. 으악! 악! 야 꼬집는건.. 크억!"

 to be continu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