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7 약혼식 =========================================================================
잠시 침체되었던 분위기는 금새 떠들썩하게 변했다. 장내에 악단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저 마다 술과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 대상은 다름아닌 러스였다.
"굉장하던걸. 그런 엄청난 마력이라니."
"아아. 적어도 상급 이상이야. 어떻게 몽마가 그렇게 강할 수 있는건지."
어느새 러스를 몽마라고 무시하던 시선은 온데간데 없었다. 투왕 카론에게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던 모습에 존경을 품은 이들 까지 여럿 보였다.
"군주 앞에서 그런 기백이라니. 엄청난 강심장이야."
"몽마의 몸으로 그토록 강해질 수 있다니. 엄청난 가시밭길을 걸어왔을게 분명하다."
실상은 전투가3 섹스가7이었지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으리라.
"너무 멋있지 않니? 잘생긴건 물론이고 강하기까지!"
"내 여자 한테 무슨 짓이냐고 나선건 또 어떻고! 무려 군주 앞인데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말이야."
"남자가 그 정도는 되어야지. 아아, 러스트 님 같은 남자 어디 없나."
여성 마족들은 몽롱한 눈으로 러스를 흘깃거리며 도란도란 속닥였다. 몽마라고 비웃고 무시하던 여인네들은 어디 갔는지 러스에게 반한 여성들이 한 가득이었다. 한 편에는 옛 기사단의 동료와 회포를 풀고 있는 브레너도 있었다. 술을 꽤나 마셨는지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너희들 말이야, 러스 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 줄 알아?"
"확실히 아까보니 보통내기는 아니던걸."
"그정도가 아니라고! 러스 님은 지하격투장에서 우승을 했단 말이다, 이 말씀이야."
"적절한 예시가 아니다. 지하격투장이라고 해봐야 상급 마족은 몇 없지 않나?"
한 마족이 그리 말하자 브레너가 가슴을 치며 말했다.
"답답한 녀석. 아까 러스 님의 옆으로 나섰던 두 마족 봤지?"
"발록과 수인족 말이군. 상당히 강해 보였어."
"맞아. 발록의 마력은 정말 대단하더군."
"묘족은 어떻고. 갑자기 그림자에서 솟구치는데, 그 전 까진 있는 줄도 몰랐다고."
주변의 동료들이 그에 동조하며 저 마다 느낀바를 말했다. 브레너가 씨익 입꼬리를 올리며 마치 제 자랑이라도 하듯 으스댔다.
"둘 다 지하격투장 출신이다. 묘족은 상급 마족이고, 발록은 확실치는 않지만 최상급 마족일 거야. 둘 다 러스 님에게 패하고 종속되었지!"
하지만 동료들의 반응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말도 안 돼!"
"상급은 그렇다 치고 최상급 마족이라니. 그럴리가 없잖아?"
"그래, 최상급이 왜 지하격투장 같은 곳에 있겠어."
"허풍이 너무 심한 걸, 브레너."
기사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브레너의 말을 허풍이라 여겼다.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된 브레너가 인상을 잔뜩 구겼다.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못 믿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때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던 한 기사가 입을 열었다.
"아니, 정말 최상급 일지도 몰라."
"펠?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직접 지하격투장에서 봤어. 3중으로 친 결계가 러스트 님과 발록의 싸움에 박살이 났었지. 덕분에 싸움의 여파에 휘말려서 죽어나간 마족도 꽤 있었다."
"...결계가 허술했던 건 아니야?"
"아니. 느낀바로는 7서클, 적어도 6서클 이상의 결계였다."
"허... 그런 결계 세 겹이 날아갔다고?"
"그래, 이 자식들아. 그리고 그런 놈을 이긴게 바로 우리 마스터의 부군 되시는 러스 님이란 말씀이지."
펠은 기사들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축에 들었고 거짓을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동조하자 기사들은 그제야 브레너의 말을 믿고 저 마다 감탄을 내뱉었다. 브레너가 제 일 처럼 뻐겨댔음은 물론이다. 기사들 중 하나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했다.
"저 자식 원래 저렇게 말 많았냐?"
"도대체 몇 병을 마신 거야? 야, 기사라는 놈이 그렇게 마시면 어떡해?"
"헹. 기사는 개뿔. 이 몸은 기사 자리 내려 놓은지 오래라고."
"참나. 복귀 안 할 것 처럼 말한다?"
"푸하! 누가 복귀한다더냐?"
브레너가 술병을 입에서 떼고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하자 기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브레너의 말에 동조했던 펠이 그게 무슨소리냐는 듯 브레너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용병시절 부터 브레너와 절친한 친구였다.
"이봐, 브렌! 복귀를 안 한다니?"
펠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다른 기사들도 브레너를 말렸다.
"그래, 상급으로 올랐으니까 복귀 따위 문제 없잖아."
"다시 용병으로 굴러먹을 셈이냐?"
"술 좀 작작 마셔. 그게 무슨 헛소리야?"
기사들이 브레너를 말리려 한 마디 씩 했다. 그 와중에 몸이 흔들린 브레너가 술병을 놓쳤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홀 안을 울렸다. 사람들의 이목이 그들에게로 집중되었다. 하지만 이내 관심은 사그라 들었고 시녀가 와서 깨진 술병을 정리했다. 브레너가 술이 조금 깼는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러스 님의 밑으로 들어갈 거다."
"뭐?"
"이미 정했어. 난 러스 님의 모든 시합을 봤다고. 러스 님은 평범한 몽마가 아니야. 난 그 분을 따를거다."
기사들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브레너를 봤다. 하지만 브레너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가 본 러스는 몽마라는 종족 카테고리를 떠나서 대단한 사람이었다. 러스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성장속도를 보였다.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강해졌다. 그것은 비단 브레너의 기준만은 아니었다. 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다른 유저들과 비교해 보아도 러스의 레벨업 속도는 두드러졌다.
특이한 플레이.
몽마라는 종족의 이점.
신혈이라는 히든피스.
강해질 요소는 충분하다. 이유를 안다면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터였다. 같은 조건이라면 분명 러스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 세상의 마족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들이 보기에 몽마인 러스의 강함은 이해불가한 것이었다. 브레너는 러스의 시합을 하나도 빠짐 없이 봤다. 러스의 성장을 모두 지켜 본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있어 러스는 평범한 마족이 아니었다. 한 차원 다른 세계에 있는 특별한 사람. 브레너는 거기에 끌렸다. 러스와 함께 있는 동안 상급 마족이 되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느꼈고, 앞으로 있을 일을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동료들 앞에서 과감하게 이런 말을 내뱉은 것에는 술기운이 상당했기 때문이지만, 그 말에 거짓은 없었다.
브레너는 흔들리는 시야를 바로잡으며 동료들을 한 번 쓸어보았다. 어째선지 모두 얼빠진 표정이었다. 그렇게 충격적인 말이었나? 짜식들 떨어질 생각을 하니 아쉬워하는 거구나. 브레너는 조금 감동했다. 그래서 술잔을 들고 건배를 하려고 하는데, 동료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약혼 축하드립니다!"
약혼? 뭔 소리야. 여자도 없구만. 이새끼들이 뜬금없이 염장을 지르네. 브레너는 그리 생각하며 입을 열려고 했다. 그때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브레너."
"누구?"
갸웃 고개를 기울이며 뒤돌아선 브레너는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본 순간 석상 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그 앞에는 러스가 난감한 표정을 지은채 서 있었다. 러스의 뒤로는 재밌다는 얼굴로 빙글빙글 웃고 있는 바렌과 아르냐가 있었다. 브레너가 떠듬떠듬 말했다.
"러, 러스 님. 아, 야, 약혼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어, 언제부터...?"
"그, 잔이 깨졌을 때 부터."
"아......"
다 들었다는 소리다. 브레너는 순간 술기운이 머리 끝까지 치솟아 핑- 도는 느낌이었다. 속이 울렁거리고 눈 앞이 어지러웠다. 무어라 설명을 해야 되는데 생각이 구체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슬쩍 눈을 돌리니 자신을 걱정하는 동료들의 눈이 보였다. 어휴 저 병신새끼 하고 혀를 차는 놈도 있었다. 브레너는 다리에 힘을 풀었다. 털푸덕, 무릎을 꿇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러스 님!"
그리 말하며 헛손질을 하는 바람에 러스의 바지를 잡아버린 브레너.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상당히 묘한 장면이다.
"어머어머. 이게 무슨 일이야?"
"꺄아아~ 웬일이래."
여성 마족들의 흥미 가득한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
세리아가 양 뺨을 감싸고 수줍은 소녀 처럼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짐짓 과장된 어조로 말한다.
"꺄아~ 마성(魔性)의 몽마 러스 님이다!"
"...그만 놀려."
러스는 눈을 찌푸리며 말했다. 세리아가 재밌다는 듯 입을 가리고 킥킥댔다. 옆에서 무표정한 채 하면서 입가를 바르르 떠는 샤레은 더 얄미웠다. 몇 번 째인지 모르겠다. 러스는 복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뒤끝있는 남자였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응?"
세리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떻게 하긴. 술 부터 깨고 오라고 했지."
"잘하셨습니다. 혹시 브레너를 종속마로 삼으시려는건..."
"그건 아니야."
러스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샤렌이 안심이라는 듯 얼굴을 풀었다.
"브레너에겐 미안하지만 종속마는 아니야."
"올바른 판단입니다. 종속마는 신중히 결정하십시오."
"물론."
러스는 브레너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종속마는 무한정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게도 브레너를 종속마로 만드는 것에는 아무런 메리트가 없었다. 그는 아르냐 처럼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바렌 처럼 무식하게 강하지도 못 했다.
"하지만 뭐... 밑으로 들어오는 것에 종속마가 되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음... 다른 쪽이라면 쓸만할 겁니다. 용병 출신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재주가 많으니까요."
"차차 생각해봐야지."
러스의 메인 퀘스트는 몽마종을 이끌고 부흥시키는 것이다. 그에 분명 브레너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리라. 문득 귓가로 음악 소리가 들렸다. 홀 안은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어 마음에 맞는 남녀가 밀담을 나누거나 춤을 추고 있었다. 마계라고 해도 기본적인 것은 중간계와 다를게 없었다. 러스는 세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도 한 곡 춰야지?"
세리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 러스는 피식 웃곤 한 쪽 무릎을 꿇고 세리아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아름다운 레이디, 세리아. 부디 제게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좋아요. 그대와 함께 춤을 출게요."
그제야 만족스레 미소짓는 세리아다. 러스는 세리아의 손을 이끌고 홀 한복판으로 나갔다. 주인공의 등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악단의 움직임이 바뀐다. 음악이 바뀌고, 한 층 더 섬세한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허허... 1시에 올리다가 12시 쯤 올렸더니 조회수와 선작수가 반토막... 아니 그 밑으로 떨어졌더군요... ㅡ,.ㅡ;;
역시 인기없는 작품은 12시 경쟁에 끼면 압살당하나 봅니다ㅎㄷㄷ...
다음은 오랜만에 씬이 나올 예정입니다!
그나저나 이제 스토리를 짜야 되겠어요. 즉석에서 짜다보니 계속 막..ㅎ..ㅕ..ㅂㄷㅂㄷ
독자님들 모두 굿밤되시라요!
선추코쿠폰 언제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