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 새로운 전환점 (8/16)

10. 새로운 전환점

수정이 누나는 내 권유대로 그 주의 일요일에 내 자취방으로 짐을 옮겼다.

사실 짐을 옮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살림살이라곤 식기와 옷가지 그리고 생활필수품과 책이 전부였다. 누나의 지하방에 있던 가구와 장식대는 애초부터 그 방에 갖추어진 거였다고 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그 이전에 그 방에 살던 사람이 쓰던 것이었다. 즉, 지금 내방에 옷과 식기, 생활필수품만 가지고 들어가 듯 그렇게 그 방에 들어간 것이었다.

수정이 누나가 이사를 하던 날, 나를 통해 수정이 선배 이야기를 들은 혜정선배는 수정이 누나의 이사를 도우며 꼼꼼하게 모든 것을 챙겼다. 여려서 싸움도 못하는 수정선배를 대신해서 수정이 누나가 살던 집의 주인 아줌마와 대판 싸움도 벌렸고, 계약사항을 뜯어보면서 하마터면 떼일 뻔 했던 돈의 일부도 되 찾았다. 난 처음으로 혜정선배의 거친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존재했다.

몇 일만에 찾은 내 방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몇 일을 비운 사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있었고, 책상 위에 아빠의 메모와 함께 쇼핑백이 올려져 있었는데, 나는 얼른 책상으로 다가가 메모지를 슬쩍 보고는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네 새엄마가 사준 옷이다.-

간단한 메모의 내용이 의미하듯 아빠는 종종 내방에 들렀다. 아빠와 함께 사는 그 여자와 갈등이 있은 다음부터 그 여자 대신 아빠가 가끔 내 방에 들렀고, 청소된 방이 의미하듯 엄마 역시 여전히 소리 없이 내 방에 들렀다. 그건 즉흥적으로 수정이 누나에게 내 방에 살라고 권유할 때에는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분명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혜정선배의 말처럼 수정이 누나를 혜정선배의 집에 들어가 살게 하는 것은 내가 못마땅했다. 그 집은 혜정선배와 나만의 공간으로 그 곳에 다른 누군가가 침입하는 건 싫었다.

“여기에 네 부모님 정말 안 오는 거지?”

혜정선배가 다시 다짐을 받듯 말했다.

“예.. 안오세요..”

난 같은 질문에 짜증이라도 난 것처럼 대답했다.

“제발 좀 믿어요..”

“응…. 그럼 상관없지만…. 혹시 모르니까…”

“뭐 만약 오신다면 수정이 누나랑 동거한다고 하죠 뭐…”

“뭐…?”

내 말에 수정이 누나는 방에 딸린 작은 주방에서 식기를 정리하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요즘 동거하는 대학생들 많잖아요.”

“뭐야.. 너 정말 수정이에게 마음이 있는 거야?”

옷장에서 내 옷을 정리하던 혜정선배가 말했다. 하지만, 그런 오해는 이미 수정이 누나를 굳이 내 방으로 옮기게 하겠다고 내가 고집을 부릴 때부터 의심을 받았던 거라 그냥 대답않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제스쳐만 취했다.

“수정아 너 조심해야겠다. 저 녀석이 이상한 짓 하면 바로 말해…”

“예.. 언니…”

“남자는 다 늑대야… 항상 조심해야 돼…”

“풋~~”

혜정선배의 말에 수정이 누나가 가볍게 웃었다.

“거짓말 아냐… 혹시 저 녀석이 술 먹고 와서 자기 집이니 자겠다고 해도 절대 재워주면 안돼. 알았지?”

“예…?”

“저 녀석 잠자면서 이상한 짓 해…그러면서 다음날 기억도 못하고..”

“……”

수정이 누나는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혜정선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수정이 누나의 반응에는 아랑곳 없이 선배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저 녀석에게 그래서 코 꿰였거든.”

그렇게 말한 혜정선배는 더 이상의 말은 하지 않고 계속 하던 일에 열중했고, 수정이 누나는 그런 선배를 바라보다 나에게 싱긋 웃고는 말없이 자신도 자신의 할 일을 했다. 왠지 그런 두 여자의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문득, 나는 내가 괜한 고집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미래의 두 여자의 모습을 미리 보는 듯 야릇한 기분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기분은 잠시였고, 이내 내 머리 속에서는 처리해야 할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아빠와 엄마가 이 집에 못하게 조치해야 함은 물론이고, 내 방을 자기들 여관 쯤으로 생각하는 과 동기 놈들도 처리해야 과제였다. 물론, 과 동기 놈들은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혜정선배와 사귀기 시작하면서부터 집을 자주 비운 탓에 이제는 술먹은 날 내가 그 녀석들을 이끌고 오지 않는 한 그 녀석들이 그냥 내 집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기에 그냥 이제 집에서 등하교를 한다고만 하면 될 일이었다. 단지, 술을 너무 많이 먹고서 비몽사몽이 되어 내가 여기로 오는 일만 없으면 되는데, 이상하게도 술을 아주 많이 마시면 3번에 1번은 혜정선배의 집이 아닌 내 자취방에 와서 잠을 잤으니 그건만 조심하면 되었다.

남은 것은 이제 엄마와 아빠였다.

그리고 그건 가장 큰 문제였다. 수정이 누나의 사정을 말하면서 임시로 있는 것이니 이해해달라는 동의를 구하는 것이야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그건 곧 내가 엄마나 아빠의 집에서 생활을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마 생활을 한다면 당연히 엄마의 집이 되겠지만, 그건 엄마와의 부부생활 같은 야릇함을 나에게 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혜정선배와의 동거아닌 동거 생활이 막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즉, 지금까지의 생활이 역전이 되는 것이다.

엄마와의 부부 같은 생활, 혜정선배와의 밀회 같은 생활. 사실 굳이 따지자면 난 혜정선배가 편했다. 나의 내면 한 편에서 아직 엄마의 존재는 완전한 한 여인의 존재로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생활의 불편함은 엄마 쪽이 더 큰 반면에 그런 성적인 흥분과 쾌감이 더 강열하기는 했지만, 그런 쾌감은 순간일 뿐이지 않은가. 성적인 쾌감이 마음의 안식처가 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생각은 아마 엄마도 같을 것이라 생각했다.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엄마에도 여전히 나를 대함에 있어 완전히 긴장을 풀어놓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아마 그런 엄마와 나의 사라지지 않는 긴장감은 이 세상이 근친상간을 법으로 만들어 놓고 허용을 하며 장려를 하지 않는 이상 사라지지 않을 것일지 몰랐다.

오랜만에 내 침대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때늦은 점심상이 차려졌는지 혜정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 먹어…”

“우와… 진수성찬이네..”

“수정이가 한 거야.”

“누나 잘 먹겠습니다.”

“응… 많이 먹어..”

“우와… 맛있다.. 선배보다 더 잘하는 거 같네…”

내가 혜정선배를 보며 말하자, 선배는 눈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그래서…? 불만이야?”

“뭐 불만은 무슨… 그냥 그렇다는 거지…”

“두 사람 잘 어울려요…”

수정이 누나가 입을 가리며 나와 선배를 보며 말했다.

“처음 두 사람이 사귄다고 했을 때, 무척이나 놀랐는데….”

“어울리긴… 그냥 코가 꿰여서 만나는 거 뿐이야..”

“그런데 두 사람 정말 어떻게 사귀게 된거에요?”

“아까 말했잖아..”

“…..?”

“아까 말 그대로야. 저 녀석이 잠자면서 이상한 짓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어.”

“…? 정말 그 뿐이에요?”

“응… 그렇게 어영부영 된 거야. 하루 밤 자고 나더니 계속 찾아와서 내 옆에 자더라구. 마치 자기 부인이라도 되는 양 말이야.”

“믿지 말아요. 누나.. 잠자는 사람이 어떻게 여자를 덮치겠어요?..”

“응…? 으응…”

수정이 누나는 혜정선배를 보면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답변을 했고, 내 말에 선배는 나를 살짝 흘겨보았다. 더 말하다가는 이상한 말이 나올 것이 뻔했기에 나는 얼른 화재를 돌려야만 했다.

“그런데 누나… 아기일 때부터 고아원에 있었던 거에요?”

나는 그만 화재를 바꾼다는 것이 그렇게 말을 해버렸다. 해놓고 나서 그건 누나의 아픈 과거라는 생각에 아차 했지만, 다행히 수정이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아니… 내가 4살 무렵인가 그랬어…”

“4살?”

의외라는 듯 혜정선배가 반문했다.

“예…”

“그럼 부모님 얼굴을 희미하게라도 기억하겠네…”

“엄마 얼굴만 기억해요. 그리고 나를 고아원에 맡기면서 나에게 했던 말도 기억나구요. ‘금방 올게..’라는 말과 함께 엄마가 사진도 주었거든요. 그 이후로 몇 번 엄마는 더 찾아왔었던 것 같은데, 어느 날부터 볼 수는 없었어요..”

“그럼 나중에라도 찾지 그랬어..”

“초등학교 때, 찾아갔었어요. 사진 뒤에 적힌 주소를 가지고요. 그런데 없었어요. 이웃들이 이민을 갔다고 하더라구요.”

“뭐…? 너를 고아원에 맡기고 이민을 갔다고?”

“그러게요…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익숙한 아픔인 듯 수정이 누나는 슬픈 듯 밝게 웃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엄마가 고아원으로 나를 몇 번 찾아왔을 때, 엄마의 배가 많이 불렀었는데, 아마 엄마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듯해요. 그리고 희미한 기억이지만 내가 고아원에 가기 전에는 늘 엄마와 나만 살았던 거 같아요. 주소를 들고 찾아간 그 허름한 집에서요. 지금은 재개발되어 없어졌지만..”

“………”

나와 혜정선배는 말없이 수정이 누나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는 배신감을 많이 느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이해될 것도 같았어요. 그러면서 나 혼자 엄마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참 많이도 만들어요. 미혼모라는 생각도 해보고, 남편이 찢어지게 가난한 죽은 여자라는 생각도 해보고… 그런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난 엄마를 용서했어요. 지금은 미국 어딘가에서 잘 살기만을 바래요.”

“한 번쯤 찾아올 수도 있었을 텐데…”

“찾아 왔어도 찾지 못했을 거에요. 어릴 때 고아원에 불이 나서 다른 고아원으로 모두 옮겨갔거든요.”

“그래도 찾으려면….”

“아니.. 그런 생각 안 해. 엄마가 나를 찾을 수 없었다고 생각해. 큰 불이었거든..”

내 말에 수정이 누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 그랬을 거야.. 수정아…”

혜정선배는 수정이 누나의 소망을 믿어주었다.

그 후로 우린 아무런 대화 없이 밥만 먹었다. 사람은 누구나 아픔이 있는 듯했다. 혜정선배도 그렇고, 수정이 누나도 그렇고 겉으로 보면 그런 아픔이 전혀 없을 것 같은데, 그냥 평범한 사람들 같은데… 모두가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예상대로 아빠는 별다른 의심 없이 수정이 누나에 대한 내 말을 믿어주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와 함께 사는 그 여자는 달랐다. 물론, 반응도 각기 달랐는데, 사정이 딱한 한 여자에게 잠시 동안 내 방을 빌려주고 나는 친구 집에 머물겠다는 말에 엄마는 바로 ‘그 친구 집 주소가 어떻게 돼?’라며 반응을 했고, 그 여자는 내가 엄마와 관계를 가진 것은 모르는지 ‘친구 집보다는 지혁씨 어머님 댁에서 지는 게 좋을 것 같네요’라며 아빠의 눈치를 보며 말을 했다. 그 여자의 말은 당연한 말이었지만, 이미 그 저의를 아는 나로선 상당히 불쾌했다. 확실히 기분상하는 여자였다.

어째건, 나는 엄마에게 주된 생활은 엄마의 집이 될 것이라고 하고서 피치 못할 경우에 친구 집을 이용할거라며 얼버무렸고, 그 여자의 말엔 대꾸도 안 했다. 결국 일 처리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엄마 집에서 생활하는 거야 피치 못할 사정이 맨날 생기면 그만이 아닌가? 도서관에서 늦게 공부했다고 해도 되고, 술을 마셨다고 해도 되었으니까. 그렇게 난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확실히 삶이란 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나의 주된 생활이 자신의 집이 된다는 말에 창고처럼 물건이 잔뜩 들어 있던 방을 비워 내 방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내가 그 방에서 자는 날은 일주일에 2~3일도 되지 않거나 일주일 내내 비우는 것이 많자 의심을 하게 되었다. 더구나 예전처럼 평균적으로 1주일에 1번씩 엄마 집에서 자는 날이면 가지는 엄마와의 성관계가 내 방이 생기고부터는 상당히 줄었다. 그 와는 반대로 혜정선배와의 성관계는 더욱 빈번해졌고, 거의 포르노 영화 수준으로 노골적이 되었다. 밤이 되면 선배 집의 모든 창의 커튼을 내리고서 나와 혜정선배는 온 집안을 성관계의 무대로 삼았는데, 책에서 나오는 모든 형태의 체위는 다 해보았고, 심지어 가장섹스도 했다. 가장섹스란 용어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선배와 내가 각각 상황설정을 해서 각자 어떤 역할이 되어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근친적인 설정은 없었지만, 선배와 나는 각각 간호사와 환자, 교사와 제사,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녀 등등 정말 벼라 별 짓을 다 했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놀이였기에 선배와 내가 성적인 욕망에 사로 잡힌 섹스중독자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스트레스를 푸는 놀이였으므로 그 외에는 각가 서로의 학업과 일에 충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때는 겨울방학을 하고 조금 지났을 때였다. 연말의 분위기가 다시금 온 나라를 잡아먹을 듯 유흥으로 몰고 가는 때여서, 난 망년회와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일주일만에 집에 들왔다.

“어쩐 일로..?”

초저녁 임에도 엄마는 집에 있어서고, 거실로 들어서는 나에게 건네는 말은 차가웠다.

“지수는?”

“네 아빠 집에…….”

“아빠 집? 무슨 일 있어?”

내 고개는 절로 갸웃거렸다. 친가라면 몰라도 수정이가 아빠 집에 간 것은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더구나 엄마 집과 아빠의 집은 엄청나게 멀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답변대신 차갑게 쏘아붙였다.

“일은 네가 있는 거 아니니?”

“아니 없는데…”

난 엄마의 차가운 느낌을 모르는 척하며 내 방으로 들어가 실내복으로 갈아 입고서 다시 거실로 나왔다. 엄마는 여전히 바른 자세로 앉아서 TV에만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뒷 모습만 보아도 뭔지 모르게 굉장히 화가 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수 안 데려와?”

난 주방에서 물을 마시며 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일을 하며 하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는 듯 엄마는 시선조차 나에게 주지 않았다. 난 다시 소파에 앉으며 물었다.

“지수 안 데려와?”

“보고 싶으면 네가 가서 데려와.. 그 애에게 너도 말해야 하니까.”

“무슨 말? 왜 그래?”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뭔지 몰라도 단단히 화가 나있었다. 물론, 직감적으로 내가 외박을 한 것 때문이라 생각을 했지만, 그게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새삼스레 이렇게 화내는 이유를 몰랐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태도는 이렇지 않았으니 말이다. 2~3일씩 외박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더니, 일주일을 비웠다고 화내는 건 뭔가 이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엄마가 입을 열었다.

“오늘 네 자취방에 갔었어.”

“내 자취방? 그기는 왜?”

그 곳에는 수정이 누나가 살고 있음은 엄마도 아는 사실이었다. 더구나 수정이 누나와 나를 불러서 저녁까지 사주면서 편히 살라고 한 건 엄마였다. 그리고 그 저녁식사에 아빠도 참석을 했었다.

“네가 오지 않으니까. 연락도 안되고.. 상의도 해야 하는데… ”

“무슨 말이야? 내가 왜 그 곳에 있어?”

나에게 상의를 할 것이 있다는 엄마의 말에는 관심도 가지 않았다. 엄마가 단독으로 수정이 누나를 만나는 것은 나와 혜정선배의 관계가 탄로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얼마 전부터 엄마는 내게 시간을 내어달라는 말을 하기는 했었다.

“그래.. 그 애 혼자 있더라 네 물건도 없고…”

당연한 말이었다. 내 물건의 상당수는 이미 혜정선배의 집으로 옮긴 뒤였으니까 말이다. 순간,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그 물건 들 다 어디로 갔니?”

낭패였다. 엄마는 나를 따갑게 쏘아 보았다. 마치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양. 난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지만 적당한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엄마는 다시 입을 열었다.

“거짓말 할 생각 하지마… 그 애한테서 다 이야기 들었으니까.”

엄마의 음성은 차갑고도 낮았다.

낭패감은 더욱 깊어졌다. 엄마는 넘겨짚기를 하는 사람이 못되었다. 혜정선배와 비슷한 성격으로 직선적이었다. 따라서 엄마가 수정이 누나에게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하면 정말 다 들은 것일 것이다. 더구나, 수정이 누나로서는 엄밀히 말하면 내 신세가 아닌 엄마와 아빠의 신세를 지는 사람이었으니까 엄마가 상황을 딱딱 부러지게 말한 후 차갑게 질문하는 하는 말에 아마 솔직하게 다 말했을 지도 몰랐다.

그래도 확인할 것은 확인해야 했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혀야 하니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

“혜정이란 아이와 함께 산다는 말까지..”

엄마의 눈에는 배신감이 서려있었다. 수정이 누나는 정말 다 말한 것 같았다. 뒤늦게 혜정선배의 말대로 수정이 누나를 혜정선배의 집으로 옮겼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그런 후회는 아무리 하여도 안 된다는 건 이미 뼈저리게 느낀 나였다.

“정말 다 아네…”

“……..”

“맞어.. 변명 안 할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엄마의 눈빛이 어른거리더니 눈물이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난 또다시 엄마의 눈에서 눈물나게 만든 놈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로서의 눈물일까? 여자로서의 눈물일까? 착찹한 기분으로 여러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런 생각들이 엄마의 눈물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엄마 곁에 다가가 위로할 수도 없었다. 지금의 엄마와 난 완전한 모자관계도, 완전한 남녀관계도 아닌 뭔가 어정쩡한 그런 관계였으니까 말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말이다.

순간, 차가운 물이 내 얼굴에 뿌려졌다.

“……?”

놀라 물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니 엄마는 무섭게 나를 노려보며 손에 컵을 쥐고 있었다. 그건 생각보다 상당한 모욕감을 내게 주었다. TV에서 그런 장면을 봤을 때는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는데, 실제로 당하니 상당히 기분이 나빴다.

“그 애랑 같이 살면서 나를 가진 거였니?”

“예전에 같이 잤냐고 물어봤었던 것은 엄마 였잖아..”

“마음대로 상상하란 건 너였어!!”

“그게 그 말 아냐?”

“그래도 나를 가졌으면 그 애를 정리해야 되잖아!”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뭐….?”

내 말이 어이가 없었는지 엄마는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뭘 바라는 거야? 나와 결혼식장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거야?”

“그.. 그건….”

“엄마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지수에게 들킬까 겁내면서 한 밤중에 섹스를 하는 것 외에 엄마와 내가 한 게 뭐가 있어? 같이 영화를 보기를 해, 거리를 걸으면서 데이트를 하기를 해? 엄마 스스로 생각해봐 엄마와 내가 여자와 남자로서 과연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

내 말에 엄마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 삼켰다. 그리고는 나를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며 눈을 감았다. 난 계속 말을 이었다.

“선배와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하지만 엄마하고는 아냐. 엄마 스스로도 그런 건 싫어 할 테니까. 내가 그 여자와 같이 잠자는 게 열 받은 거라면, 그것도 말할게. 솔직히 엄마와 섹스하는 거 재미없어. 엄마는 가만히 누워만 있고, 나 혼자 엄마 몸 위에서 바보 짓하는 것만 같아. 내가 엄마와 잠자리를 같이 하면 어떤 느낌인 줄 알아? 엄마는 마치 ‘그래 너 마음대로 해봐. 나를 한번 만족시켜 보라구’라고 하는 것 같아.”

“그만해!!!!!”

갑자기 엄마는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고, 귀를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한 참을 그 자세로 있었는데, 충격이 큰 듯 간간히 몸을 떠는 엄마의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다시 나는 엄마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그런 생각. 나는 계속해서 엄마에게 요구만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금의 엄마의 모습은 결코 엄마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란 것은 나 역시도 안다. 내가 친 사고가 엄청나게 큼에도 엄마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자식인 나를 버리지 못하고 결국 엄마 스스로가 변했다.

지금의 엄마 모습. 아마도 ‘그래 죽으면 썩어질 몸둥아리. 아들을 잃어버리느니 아들에게 가랭이 벌려 주자’ 그런 결심으로 이루어진 모습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거라면 언제나 침대에서 나무토막처럼 가만히 내가 하는 대로 누워만 있는 엄마의 모습이 이해가 된다. 육체와 정신이 별개라 아들인 내가 가하는 집요하고 끊임없는 자극으로 인해 어쩌지 못해 흥분을 하고 절정을 느끼는 것은 엄마 스스로도 포기한 것일 거다. 그런데, 난 그런 엄마의 결심에 정면으로 도전을 한 것이다. 좀 더 많이 변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말이다. 마치 ‘엄마 몸 이제 관심 없어..’라는 것처럼 말이다.

때늦은 후회를 했지만, 그리 후회스러울 것도 없었다. 혜정선배와 나를 이해 못하고서 따지는 엄마의 모습은 분명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엄마 스스로도 나의 완전한 여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다른 여자와 결혼할 것이란 것도 엄마는 받아들여 주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산이란 생각을 하며 난 애써 엄마의 지금 격고 있을 고통을 외면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얼마를 보냈을까.

고개를 숙이고 탁자를 바라보는 내 뒷목이 뻣뻣하다는 느낌이 들 때쯤 엄마의 차분한 음성이 들렸다.

“그럼 그 애에게도 솔직하게 모든 것을 다 말해. 너와 나 그리고 지수에 대한 것까지..”

엄마는 단호했다.

“뭐…?”

“네가 하지 않으면 내가 할거야.”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안돼? 뭐가 안되지..?”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눈은 표독스럽기까지 했다.

“언제까지나 그 애를 속일 생각이야? 영원히…? 그게 가능할 것 같아?”

“….!!!!”

마치 내가 행복하게 지내는 걸을 지켜만 볼 수 없다는 뜻 같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엄마의 태도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연인에게 배신당한 여자가 복수를 다짐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계속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나만 너를 이해해야 하는 거니? 내가 왜 그래야 돼? 내가 네 엄마라서..? 아들이 무슨 짓을 하건 엄마란 이유로 모든 것을 다 이해해야 되니? 아들이 내 몸 위에서 헐떡거리는 것까지 엄마로서 이해야 되는 거야?”

엄마는 내 대답을 요구하는 듯 잠시 말을 끊었지만, 눈빛은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머리가 있다면 생각을 해보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엄마의 말이 이어졌다.

“네가 여자를 원하면 여자가 되고, 엄마를 원하는 엄마가 되고… 내가 무슨 네 장난감이니?”

“그럼 엄마가 되고 싶은 게 뭐야? 내 여자야, 아님 엄마야…?”

“그것을 질문이라고 하는 거니?”

“맞아! 질문이라고 해… 난 엄마의 진심을 정말 모르겠으니까! 내 진심을 이야기 할까?엄마가 과연 내게 있어 무슨 존재인지, 무슨 의미인지 나 조차도 헤깔려. 엄마에게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도 모르겠으니까.”

“…….”

“어서 말해. 엄마가 되고 싶은 건 뭐야?”

“정말 몰라서 묻는 거니..?”

“그래 모르겠어. 도무지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구?”

“그래!”

“내 생각이 뭐가 필요하니? 이미 나를 가졌으면서….”

“엄마 몸을 가진 거? 나를 놀리는 듯한 그런 거는 필요 없어!”

“그럼 원하는 게 뭐야!!? 네가 바라는 게…”

“나도 모르겠다니까!!! 하지만 분명한 건 엄마는 내 여자는 아니야. 그런 느낌 전혀 안 드니까. 엄마를 가질 때마다 난 후회해. 죄를 지은 거 같아 괴로우니까. ”

“그건 네 문제야. 그거까지 내가 해결해 줄 수는 없어.”

“내 문제? 엄마 문제가 아니고? 엄마가 태도를 확실하게 하지 않으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뭔가 네가 오해하나 본데, 난 분명하게 행동했어. 그렇지 않았다면 너는 나를 가질 수 없었을 테니까.”

“내가 엄마를 가져? 도대체 엄마가 생각하는 그 가진다의 의미가 뭐야? 내가 뭘 가졌는데? 엄마의 몸에 내 몸을 포개기만 한 것이 내가 엄마를 가진 거야?”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데? 내가 어떻게 해주어야 해? 사람들에게 너를 내 남편으로 소개할까? 네 아빠에게 며느리로서 절이라도 올려야 되는 거니?”

순간 혼란스러웠다. 난 바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고, 엄마는 그런 나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 붙였다.

“난 이미 네 여자야. 난 네게 모든 것을 주면서 너를 남자로 받아들였어. 내가 무엇을 얼마나 더 주어야 하는 거니? 이미 모든 것을 다 주었는데 또 무엇을 더 주어야 하는 거야?”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즉, 절박한 상황에서는 예상치 못한 행동이나 말이 나오기 마련이었다. 예상치 못한 정도가 아닌 때론 스스로의 무덤을 파기도 하는데, 그때의 내가 그랬다.

“엄마가 내게 모든 것을 다 주었다고? 침대 위에서 마네킹처럼 가만히 누워서 내가 원하는 대로만 움직이면서 ‘그래 네 마음대로 해봐.’라는 태도를 취하는 게 나에게 모든 것을 다 준거야? 아빠랑 할 때는 아빠의 그기도 빨고, 아빠를 애무도 하면서 왜 나에겐 그러지 않는 거야?”

“무…. 무슨….?”

“내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게 궁금해? 그 여자는 다 해줘. 엄마가 아빠에게 해주었던 것 보다 더 나에게 잘해. 그 여자와 할 때는 엄마랑 할 때처럼 나 혼자 여자 몸둥아리 위에서 발버둥치지 않아. 그런 더러운 기분이 들지 않는다구.”

“무슨 이야기야!!!!!!!

엄마는 소리를 빽 질렀다.

“네 아빠랑 할 때라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쓸데없는 생각 마! 아빠랑은 상관없어. 똑똑히 내 귀로 들은 거니까.”

“들어…?”

“그래! 엄마와 아빠가 섹스할 때 밖에 들었어. 들으려고 했던 건 아냐. 집에 일찍 들어온 내 귀에 그냥 들렸을 뿐이니까.”

그기까지 이야기 한 나는 자기만족에 빠졌다. 내 말에 당황한 눈빛을 보이는 엄마를 보며 묘한 승리감을 느꼈다. 아주 우끼게도 말이다.

“그래서!!?”

당황하던 엄마는 순식간에 노기를 띤 모습으로 바뀌었다.

“네게도 그렇게 해주어야 한다는 거니!!!??”

“……”

“넌 내가 무슨 창녀인 줄 아는 거니!!? 내 몸에 올라온 남자는 무조건 만족시켜 주고, 그 남자를 위해 아무런 생각없이 같은 짓을 해야 하는 창녀로 보는 거니? 정말 그런 거니!!?”

승리감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움으로 바뀌었다.

“네가 그런 내 모습을 원한다면, 네가 네 아빠가 되면 돼!!”

“…!!?”

“의심스러우면 네가 사귀는 그 여자 애에게 물어봐. 그 애의 몸 위에 올라가는 남자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네게 했던 행동을 그대로 할 수 있는지 말이야.”

난 바보였다. 엄마의 말에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내가 엄마에게 가졌던 불만이 무엇이었는지, 그런 게 있긴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난 단지 성의 노예에 지나지 않았고, 칭얼대는 욕심꾸러기 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공격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네가 원하는 게 단지 그런 거라면, 그래 해 줄 수 있어. 발정 난 암캐마냥 암내 풍기며 엉덩이 흔들 수도 있고, 네 성기를 핥으며 노예처럼 굴 수도 있어. 그 보다 더 심하게 스와핑도 응할 수 있고, 그룹섹스도 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이 내가 원하지 않은 강요된 행동이라면 나는 너를 증오할거야. 그러길 바래!!?”

당연히 나로선 할 말이 없었기에 엄마의 시선을 피했다.

“말했듯 난 이미 네 여자야. 너에게 모든 것을 다 허용했어. 하지만, 지금까지 넌 나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 너는 나를 안고, 내 속에 들어와 네 성기를 꿈틀거리기며 욕망만 채웠으니까. 솔직히 창녀가 된 기분이었지만 난 참았어. 네가 언젠가는 나를 여자로 받아 줄 거라 믿었기에. 그런데, 너는 나를 안으면서 다른 여자를 또 안았어. 그리고, 오늘은 그 여자만큼 내가 네게 해주지 않는다며 불평까지... 그런 불평에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지 안다면 말해 줄래?”

“미안해…”

“지금 와서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조금만 더 나를 이해해 주면 안될까?”

“내가 만약 밖에 다른 남자를 만난다면 너는 이해 할거니?”

“……”

“왜 대답을 안 해? 그럴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그런 거 아냐… 단지, 엄마와 난………”

“말하지마.”

“……”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건, 네가 그 여자에게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거야. 그렇다면 네가 그 여자 만나는 것을 이해해 줄 수 있어.”

“못한다는 거 알잖아.”

“그럼 헤어져. 난 네가 만나는 여자에게 시어머니 노릇 할 수 없으니까.”

칼자루는 엄마가 쥐고 있었다.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엄마는 내게 혜정선배와 정리할 것을 그럴 듯한 조건을 걸어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말도 안 되는 조건이지만 어째건 엄마는 엄마로서의 아량도 베풀었고, 여자로서의 자존심도 지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