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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레이하는 용사님-78화 (78/233)

〈 78화 〉 77화 브라델 공방전 (7)

* * *

전투불능상태에서 돌아오고 나서의 상태는 어떤 상태인 걸까.

전투불능에 빠진 상태 그대로인가, 아니면 돌아온 시간대의 나의 모습으로 적용되는 것일까.

지금처럼 며칠이나 전의 상태로 회귀했다면 그 의문에 대한 답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상태창에서 볼 수 있는 나와 유나의 레벨, 능력치, 스킬, 인벤토리 내의 물건 등.

모든 점에서 회귀하고 난 이후에는 회귀한 시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퓰브르와 퍔필리아의 파티와 함께한 여행에서 전투에 나설 일이 없던 유나는 열심히 패링스킬을 연마했다. 그리고 여행기간동안 단련했던 패링스킬은 어제밤에서야 간신히 얻은 스킬인마냥 1레벨도 돌아와있었다.

초보자때나 잠시 쓰는 물건이라고 신기해하던 퍔필리아가 내 망원경을 '인챈트' 해주어 함께하는 기간 내내 주변의 적을 탐색하는데 유용하게 썻던 망원경도, 지금은 그저 멀리있는 물체를 편하게 볼 수 있는 그저그런 평범한 망원경이 되어 있었다.

그러니, 내가 과거로 회귀함으로서 이후에 얻었던 능력이나 아이템 등 모든 부분에 대해서 내가 소유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미니맵은... 내가 북쪽과 서쪽, 그리고 몬스터들에게 쫓기면서 깊게 들어갔던 산맥까지 여기저기 밝혀놓고 있었다.

'이상해.'

나는 지금까지 단순히 이 카드가 찢어지면 전투불능이 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준다'고 생각했다.

그 가정이 맞아떨어지려면, 내 상태창으로 표기되는 것들과 동시에 미니맵에 밝혀진 부분도 그 상태로 되돌아가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자는 되돌아가 있었지만, 미니맵은 전으로 돌아가있지 않았다. 그러니 조금 다른 가정이 필요했다.

이 미니맵은 다른 용사들에게 없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여기 있는 13개의 숫자가 적힌 13장의 카드들과 같이.

그러니 다른 용사에게 없는 이 미니맵... 그리고 이 카드가 찢어지면서 생기는 능력에 대해서는 회귀함으로서 발생하는 법칙의 예외가 적용되는게 아닐까.

...신기한 일이지만, 당장은 상상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다.

두번째 카드가 찢어지고나서 생긴 '갤러리'도 세세하게 살펴보지 못했으니 우선은 거기까지 추측을 해 둔다. 다른 가정도 떠올리지 않는데다가 당장은 내 가정이 옳고그름을 떠나서 활용할 여지도 떠오르지 않기때문이다.

오히려 우선시 해야하는 쪽은 이쪽이다.

나는 엘로트가 어깨에 메고 있는 남자를 슬쩍 살핀다.

평범한 인상. 체격이 조금 크긴 하지만, 이 정도는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니다.

어디서나 볼만한 평범한 남자.

이 남자는 왜, 누구의 사주로 성벽 위를 다니며 항마결계를 부수고 다녔던걸까.

그리고 저 남자의 품에 있던 수상한 붉은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종이들의 정체도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하나의 의문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에실과 사제를 만나자마자 해결할 수 있었다.

"이거, 항마결계를 만드는 증폭기를 파괴하는 마법진입니다. 일시적으로 증폭기의 신성력을 증폭기의 한계 이상으로 과부하시켜서 파괴시키는 마법진이죠. 여기 파괴된 증폭기를 보면 이해가 가실겁니다."

사제의 손가락이 한 방향이 부서져 있던 증폭기의 흔적을 가리킨다.

"증폭기에서 나오는 신성력은 원래라면 성벽방향을 중점적으로 퍼지되 사방으로 신성력을 퍼뜨립니다. 양옆에 있는 증폭기와 신성력이 연결되어 서로의 증폭기를 강하게, 그리고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것이 핵심 원리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 마법진을 이렇게 얹어놓으면 신성력이 과부하되어 아까 말했다시피, 퍼어엉!"

사제가 조금 과장스런 손동작으로 부숴진 증폭기의 폭발을 표현한다. 그 모습을 보고 엘로트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이 자가 여기 증폭기들을 부수고 다녔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우리를 만나고 도망치려는 모습을 보인데다가 증폭기를 부술 수 있는 물건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응. 충분히 의심스럽지."

나도 엘로트에게 동의하자, 엘로트가 에실과 사제를 바라본다.

"사제님은 여기 에실과 남아서 혹시라도 수리할 수 있는 증폭기가 있는지 조금 살펴주시겠습니까?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여기 에실이 지켜줄겁니다."

"네. 그리고 수리가 안되더라도 항마결계를 유지하는데 증폭기의 위치를 조금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연속으로 부숴진 증폭기를 두는 것보다는 중간중간에 작동하는 증폭기를 두는게 성벽을 잘 지킬 수 있거든요."

사제가 그리 말하자 에실이 가볍게 웃으며 답한다.

"이렇게 보여도 저도 나름 힘이 괜찮슴다. 후딱후딱 처리하겠슴다."

"부탁할게, 에실."

엘로트의 말과 함께, 나와 유나는 다시 신전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리는 다른 방향의 성벽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방의 성벽을 확인했는데, 네 곳 모두 [항마결계]를 파괴하려는 사람이 있었고, 결계를 구동하는 증폭기의 일부가 파괴되었다라..."

브라델의 영주, 레아는 성벽으로 보냈던 인원들이 돌아와서 한 보고를 듣고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다행히 그 중 두 방향에선 범인을 잡아왔지만, 레인저 부대가 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도주한 걸 보면 미리 도주경로나 방법을 준비하고 왔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성녀도 이 마법진에 대해서 알고있는가?"

"네, [항마결계]를 만드는 신성력 증폭기를 파괴하는 종이군요."

성녀가 우리가 가져온 종이를 집어들고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제작하는데 굉장히 큰 수고를 들이는 물건은 아니지만, 시장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도 하지요. 신성과 마법의 지식을 둘 다 갖추고 있어야 제작할 수 있는 물건이니까요."

레아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다.

"물리력으로 쉽게 부술 수 없는 신성력이 담긴 증폭기를 파괴하는데 쓸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기도 하지."

이미 그녀는 이런 물건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신전이 습격받았고, 성벽의 방어체계도 파괴하려는 시도가 있었지. 다행히 신전의 습격은 우리가 막아냈고, 성벽의 [항마결계]도 꽤 약화되었지만 완전히 부숴지는 건 막아냈다네."

"파괴되었다는 숫자를 보았을 땐... 서쪽과 북쪽은 비교적 피해가 적어서 평소의 70%, 남쪽과 동쪽은 파괴된 증폭기가 많아 평소의 50%정도라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성녀의 말에 레아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이런 상황에까지 의심하지 않는건 바보같은 생각일걸세. 아니, 의심할 여지도 없이 브라델이 누군가로부터 계획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고 보는게 맞겠지. 그리고 솔직히 어느정도 윤곽도 보이긴 하다네. 이런 전형적이고 기본적인 방식으로 도시를 무너뜨리는 형태를 보고도 모른다면 바보겠지."

영주가 눈을 돌려 성벽의 방어막을 부수다가 잡혀온 자들을 내려다본다.

총 두명.

한명은 나와 유나, 그리고 엘로트 부대장이 함께 잡아온 남자.

다른 한명은 다른 방향 성문에서 잡혀온자다.

내가 잡아온 자는 꽤 평범한 인상이었던 것과 다르게 다른쪽에서 잡혀온자는 상당히 인상적인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기 위한 옷을 입고 있었지만, 상당한 덩치와 인상은 그가 썩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래, 마치 손에 칼을 하나 들고 있으면 '산적'이라고 해도 될법한...

"..."

나는 그를 내려다보다 조금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지. 어디서 본듯한 인상인데.

그를 지켜보는 시선들이 느껴지는지 산적과 같은 인상을 지닌 남자가 슬쩍 주변을 둘러보다가 살짝 눈이 마주쳤다.

"어?"

내가 그를 알아보고 조금 놀란소리를 내자 레아가 내게 시선을 돌린다.

"왜 그러는가? 혹시 아는자인가?'

"어? 어어??"

레아의 질문을 받고도 계속 고개를 갸웃거린다. 맞는것 같은데?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도 조금 든다.

두어번 더 고민하다가 내 대답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레아와 눈을 맞춘다.

"제가 처음에 브라델에 왔던 날, 산적 두명을 잡아왔던걸 기억하시나요?"

"음, 기억하네. 산적들이 도시 근처에서 배회할정도로 브라델의 치안이 좋지않으니, 주변 영주에게 그 산적들을 보내서 지원을 요청했지. 그건 케이, 자네도 알지 않나?"

그걸 왜 묻냐는 듯한 레아의 말에 나는 그녀에게 받은 시선을 저 산적과도 같은 외모를 지닌 남자에게 넘기면서 답한다. 레아는 내 시선이 끝나는 곳에 있는 남자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이 된다.

"...그게 저 남자란 말인가?"

"네. 복장은 좀 다르지만, 그때 그 산적 맞는것 같은데요?"

내 말에 그 남자가 입을 움찔거린다. 반박해야하나 하며 고민하는 것이겠지만, 지금은 무슨 말을 하든지 유리한 말은 없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혹시나싶어 그를 잡아온 레인저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저 남자 혼자 있었나요? 같이 있던 여자는 없었나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두명이서 함께 있었는데, 여자는 놓치고 저 남자만 간신히 잡았습니다."

"아마 긴 금발을 하고 있었을 것 같은데, 맞나요?"

레인저가 놀란 얼굴이 된다.

"네, 네. 맞습니다."

역시나.

나는 레인저의 대답을 듣고, 오래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본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 유나와 인사를 나눈뒤 우리를 습격했던 산적.

마치 산적에게 쫓기고 있는 행색을 하고 있던 여자에게 속아 나는 쓰러졌고, 뒤따라온 산적이 유나를 쓰러뜨렸다.

잊을 수 없던, 첫 패배의 기억.

그리고 내가 쓰러진 뒤의 광경도 내 눈에 확실히 들어와 있었다.

내 품을 뒤지며 역시나 특별한게 없다고 아쉬워하던 긴 금발의 여성.

그리고 도끼를 휘두르며 힘으로 유나를 압도하던 남성.

그 광경에서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불렀었다. 그리고 거기서 분명 서로를 부르던 이름이...

"아마 이름이... 다부르. 그리고 함께 있던 여자의 이름이 네타샤?"

내게 이름이 불리자, 산적. 아니, 다부르가 조금 몸이 움찔거리는게 보였다. 최대한 동요를 숨기려했겠지만, 그의 입장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일이었을테니까.

2회차. 그러니까 카드가 하나 찢어지고나서 유나와 나는 그들의 습격을 반대로 이용해 저들을 격퇴했다. 혹시나 그들을 잡아온 데에 포상이 있을까 싶어 그들을 들고 브라델로 향하는 도중, 다부르는 우릴 향해 실수하는거라며 협박을 한마디 내뱉긴 했지만 그들의 이름을 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패배했던 상황에서 위기감없이 내뱉었던 서로의 이름.

그것을 내가 알고 있으니 자기도 모르게 조금 놀란 반응을 보인 것이겠지.

그래도 놀란 것은 산적, 다부르만은 아니었다.

"내가 직접 대면한 것은 아니지만, 수하들에게 시켜 심문하고 주변 영지에 보내도록 했다네. 그런데 잡혀있어야 할 자가 성벽의 방어막을 부수고 있었다는 말은..."

레아가 뒷말을 잇지 않았지만, 어떤 의심을 하고 있는지는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영지로 보내졌는데 풀려나거나 시주를 받아 브라델로 돌아왔다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촉박하다. 그렇다면 범인의 소속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브라델 소속의 누군가가 그들을 풀어주었다.

"정확히 누가 그들을 풀어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뒤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있다네. 어느 정도 눈치채고는 있지만, 그걸 확실히 하는게 아마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일걸세."

그리 말하며 레아가 다부르 앞으로 다가선다. 밧줄에 묶여 앉혀져 있는 다부르가 떨리는 눈으로 레아를 올려다본다.

대체 뭘 하려는 걸까. 궁금한 눈으로 그녀를 쫓자, 레아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연다.

"바람은 많은 정보를 가져다준다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 공기가 습한지 건조한지에 따라 그 날을 날씨를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창문을 열어서 아침바람을 맞으면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지."

레아가 검지손가락을 하나 들자, 그 손가락 주변으로 연녹색 기운이 그녀의 손가락 주위를 맴도는 것이 보인다.

그녀가 말한대로, 마치 그녀의 손가락 주위로만 가벼운 바람이 부는 것 같다.

"바람을 맞으며 본능적으로 깨닫는 그 정보들은 경험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가끔은 본능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네. 분명 보이지 않는 방향이지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져서 뒤돌아보면 실제로 누군가가 날 바라보고 있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나는 그것도 바람이 가져다 준 정보라 생각했다네."

레아가 무릎을 굽혀 다부르와 눈을 마주친다. 그녀의 손가락 끝이 다부르의 이마에 닿자, 그녀의 손가락 주위를 맴돌던 연녹색 바람이 조금 커져 다부르의 머리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렇게 누군가 나를 지켜보려는 '의지'가 바람을 통해 내게 닿은 것처럼, 내가 다루는 이 바람은 상대로부터 더 많은 정보를 더 세밀하게 내게 전달해준다네. 예를들면 나의 바람에 닿은 사람이 거짓을 말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말이야."

꿀꺽.

다부르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이는게 보인다. 레아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다부르에게 거짓말탐지기를 장착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유감스럽게도 이 바람은 상대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능력은 없다네. 그러니 다부르, 자네에겐 다행일지도 모르겠네. 이 바람은 상대가 말하는 내용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만을 판별하는 것만이 가능하니 반대로 침묵하는 상대에게선 아무것도 뽑아낼 수 없지. 그러니 내가 자네에게 작은 부탁을 하나 하겠네."

"..."

낮게 말하는 레아의 말에 다부르의 눈동자가 조금 떨리는 것 같다.

"지금부터 내가 자네에게 간단한 질문을 할걸세. 그리고 만약 자네가 내 질문에 답하는걸 망설인다면, 부탁하건데 최대한 오래 버텨주길 바라네. 내가 가지고 있는 바람은 이런 얌전한 녀석들만 있는게 아니거든. 스스로 말하기 조금 민망하네만, 이쪽 녀석은 많이 아플걸세."

레아가 반대편 손을 들자 그녀의 손에 새찬 바람이 휘몰아친다. 손 안에 들어갈 정도의 작은 사이즈지만, 일순 그걸 바라보는 모두가 침묵할 정도로 세찬 바람이 그녀의 주위로 휘몰아쳤다.

­ 휘이이잉!!!

단순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섬뜩한 기분이 드는 소리를 내는 차가운 바람. 다부르는 자신의 눈앞에서 세차게 흔들리는 바람을 보며 눈이 크게 떠진다.

레아의 스산한 말이 계속 다부르의 귓가에 들어간다.

"가능하면 자네에게서 '진실'의 바람이 불어왔으면 좋겠네. 물론 권고하는 것이네만, 최소한 침묵을 선택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네. 내 말 이해했는가?"

"네, 네...!"

눈앞에서 살을 찢어발길것 같은 바람이 흔들리자 다부르의 입에선 한순간의 지체없이 답변이 튀어나온다. 레아는 그런 다부르의 모습을 조금 만족스럽게 쳐다본다.

"좋아, 그럼..."

레아가 가볍게 웃으며 그녀가 준비한 첫 질문을 건넨다.

"자네의 뒤에는 마왕이 있는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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