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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레이하는 용사님-190화 (190/233)

〈 190화 〉 185화 외면과 대가 (2)

* * *

포르시카에서 마차를 타고 동쪽으로 조금 나가니 꽤 넓은 호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따로 특별한 도구는 필요 없어? 생선을 잡아와야하는 거면 그물이나 낚시대라도 필요한 거 아냐?"

"으음, 말했다시피 내가 제안하는 방법은 꽤 거친 방법이라 말일세."

마차에서 내린 우리는 호수 주변이 넓게 보이는 자리에 자리잡고, 주변을 둘러본다. 포르시카에서 가까운 호수다보니, 우리가 받은 무지개 도미 이외에도 꽤 다양한 퀘스트를 하는 파티들이 보인다.

평범하게 낚시대를 던지고 있는 사람도 보이고, 작은 조각배를 띄워서 그물을 던지는 사람도 보인다.

...정 안되면 저 중에 무지개 도미를 잡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돈으로 대신 사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평화로운 호수의 풍경을 구경하고 있는데, 레아가 호수 먼 쪽에 있는 몬스터들을 가리킨다.

"확률이 높은 편은 아니네만, 무지개 도미를 잡기 위해서는 상당히 복잡한 공정을 지나쳐야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네. 아까 시프라가 언급했던 과정을 따라가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을걸세."

나와 유나는 레아를 뒤따라 그녀가 가리키는 몬스터들을 향해 다가간다. 평범한 호수에서 발견할 수 있는 동물들과 다르게, 저 몬스터들은 평범한 동물들에 비해 몇배나 되는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몬스터는 빅터틀과 빅크로커다일. 이 두 몬스터일세."

거북과 악어. 간단하군. 크기도 큼직큼직해서 구별하기도 쉽다. '빅'이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덩치도 엄청나다. 거북은 걸음을 옮길때 2미터 50은 족히 될만큼 커다란 등껍질을 가지고 있었고, 악어는 입을 벌리지 않고 평범하게 호숫가에 누워있어도 높이가 내 허리에 닿을 정도로 커 보인다.

"엄청 위험해보이는데."

"종이나 위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호전성이 강한 몬스터들은 아닐세. 아종이 아니라면 크기만 크고 그리 강하지 않은 녀석들도 많고. 함부로 건드리지만 않으면 굳이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는 타입도 많다네. 아마 이 녀석들도 그런 모양이군."

꽤 가깝게 다가가는데 커다란 거북도, 악어도 모른척한다. 강한 인간들이 많으니 굳이 건들고 싶지 않다는 걸까. 귀찮아하는 기색이 보인다. 썩 강하지 않다는 레아의 말이 거짓이 아닌 모양이다.

조금 거리가 떨어져 있지만, 호수 여기저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몬스터들이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 있기 때문이겠지. 곁에서 이런 커다란 녀석들이 기어다니고 있으면, 아무리 호전성이 적은 몬스터라고 해도 여유롭게 낚시대를 들이밀고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거다.

"그런데 이 몬스터들로 어떻게 무지개 도미를 잡을거야?"

"몬스터로 할 거라면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응? 몬스터로 할 거라면...

"이 녀석들을 사냥할거야?"

"정확히 말하면 이 녀석들을 괴롭힐걸세. 사냥이나 다름없지만."

레아가 그렇게 말하며 창을 길게 잡는다.

"케이여, 예전에 우리가 장작패기를 할 때 우리 옆에서 장작을 패던 사제와 광전사를 기억하는가?"

"음... 기억나."

우리가 장작패기를 할 때, 근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장작을 패던 파티들이 있었다. 레아가 하는 말은 그 중에 한 파티를 말하는 것이었다. 여사제와 검을 들고 있던 광전사.

광전사가 광분하며 엄청난 속도로 장작을 팼고, 여사제의 축복이 그를 보조했다. 장작을 패는 속도는 엄청났지만, 일부 장작의 제대로 된 모양으로 패지지 않아서 통과는 했지만, 꽤 많은 금액을 감액해야만 했다.

"그걸 보고 떠오른 거네만,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어느 정도의 훼손이나 변수는 눈감아주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네. 실제로 장작패기는 '절반으로 잘린 형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 그럭저럭 전부 통과시켜주었지. 손으로 가르던지, 다른 무기를 활용하던지 하는건 별로 신경쓰지도 않았지."

"응, 맞아."

레아의 지적은 정확한 지적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레아가 씨익 웃는다.

"그래서 이번에도 우리가 목표로 하는 '무지개 도미'를 조금 훼손된 형태라도 확보하면 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네. 물론 완벽한 물건을 확보하지 못해서 생기는 감액은 감수해야겠지. 하지만 우리는 당장의 돈 몇푼이 중요한 상황이 아니지 않은가?"

"맞아. 졸업시험이 시작하기 전에 최대한 많은 별을 확보하는게 중요하지."

"그러니 이 꼼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네. 호수 근처에 있는 대형 몬스터들은 대부분 호수 내에서 먹이를 확보하지. 물론 그 커다란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먹이가 필요하겠지."

나를 보며 색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 레아의 얼굴에서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그래, 아무리 이 호수가 넓다곤 하지만, 이만한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먹이가 많겠지. 먹이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깊은 물 속까지 들어가야할거야."

"그렇다네."

"예를 들면... 무지개 도미가 서식하고 있는 깊은 물 속까지 말이지."

"굳이 편식을 하지는 않았을걸세. 그냥 닥치는 대로 보이는 생선들을 먹었겠지."

"그래서 확률에 대해 이야기 한거구나."

레아는 내 말에 굳이 답하지 않고 빅터틀을 향해 창을 겨눈다. 그제서야 레아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녀석이 도망치려하지만 이미 조금 늦었다.

"첫번째 복권을 긁어봐야겠네."

­ 쉬이이잉!

레아의 창끝이 바닥을 향하고, 바람의 기운이 그녀를 감싸더니 등을 돌리고 도망치려는 거북의 등껍질 아래쪽으로 날이 들어간다.

"하아앗!"

"쿠어어어!"

낮은 비명소리를 울리며 빅터틀이 옆으로 기울어진다. 바닥으로 파고든 레아의 창이 위쪽으로 거북을 강하게 쳐서 거북의 몸을 기울게 만든다.

옆으로 쓰러지려는 빅터틀을 향해 레아의 주먹이 담긴 건틀렛이 강하게 파고든다.

"하앗!"

­ 퍼어어어억!

"우어어어­­­"

대형 몬스터 특유의 낮은 비명소리가 한번 더 크게 울리며 빅터틀이 몇미터 정도 날아간다. 날아간 빅터틀은 오히려 뒤집어지려던 자세를 다잡고 다시 네 발을 바닥에 붙이지만, 레아의 주먹은 그 몬스터에게 꽤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 속에 있는걸 게워낼 정도로...

"어어, 우어어..."

두어번 크게 속에 든걸 토해내고, 빅터틀이 네 발을 놀리며 도망간다.

"음,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네."

"큭큭, 어쩔 수 없지 않나."

레아가 어색한 웃음을 보이며 터틀이 속을 게워낸 자리를 살핀다.

"이전에 공작타조새의 깃털을 얻기 위해 쫓았던 것처럼, 단순히 몬스터를 사냥할 때보다 다른 방식을 활용해서 더 많은 부산물을 얻는 방법이 있지. 이것도 그 중 하나라네. 가끔 물 아래 깊은 곳에 있는 특별한 아이템을 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지."

"흠... 그래?"

"이외에도 조개 타입의 대형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기절시킨 다음 진주를 빼내는 건 나름 유명한 방식이지. 포르시카에서 채집과 사냥을 별도로 구분해서 퀘스트를 요구한 것도 이런 것들도 고려하라는 판단이 아닐까 싶네."

그렇게 말하고 레아가 물로 도망친 거북을 가리킨다.

"저 녀석도 근시간동안은 내게 겁먹어서 뭍에 올라오지 않겠지만, 또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깊은 물에서 생선을 배불리 먹고 올라오겠지. 그 때 또 복부를 가격해 깊은 곳의 생선을 얻는 건 꽤 괜찮은 방법이지 않나?"

"으음, 그래도 그런 물고기를 회로 해서 먹기엔 조금 힘들겠는걸."

회를 뜰수 있다며 우리에게 무지개 도미를 부탁하던 시프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레아, 네가 시프라에게 주는걸 꺼려한 거구나. 확실히 이렇게 얻은 도미를 회로 먹기엔 힘들겠어."

"음... 어쩔 수 없지 않겠나. 모른 척 토한 물고기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렇게 말하고 다시 레아는 그녀의 무기를 들었다.

레아가 우리에게 방법을 가르쳐주고, 실제로 보여주기까지 했다. 깊은 호수의 아래까지 들어가서 물고기를 먹는 대형 몬스터의 복부를 가격해 먹은 것들을 토해내게 만드는 방법.

당연하지만, 레아가 첫번째로 토해내게 만든 빅터틀은 무지개 도미를 내놓지 않았다. 반 이상 소화된 생선들도 많았고, 미역처럼 보이는 해조류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소화물도 가득했다.

"..."

작게 한숨을 쉰다. 그래도 방법이 없다. 나도 해머를 꽉 쥐고 다른 몬스터에게 향한다. 썩 깔끔한 방법은 아니지만, 중간의 수많은 공정을 건너뛰고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이다. 조금 더러운 수법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겠지.

빅터틀과 빅크로커다일의 토사물은 허공을 날아다니던 조류들이 처리했다. 그래도 12마리째 거북을 넘어뜨렸을 때 그림과 똑같은 무지개 도미를 발견했다. 7마리째 빅크로커다일을 뒤집었을 때 두마리의 도미를 발견했지만, 두마리 다 절반 이상 잘려나가 있어 도저히 제출할 수 없어 보여서 눈물을 머금고 근처의 거위에게 던져주었다.

그래도 세명이서 각각 호수에서 올라온 빅터틀과 빅크로커다일을 토해내게 만들어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비교적 상태가 괜찮은 무지개 도미 세마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한동안 생선 요리는 먹지말자."

"...네."

"좋은 생각일세."

예상대로 우리가 가져온 무지개 도미를 받아든 직원은 눈을 찌푸리며 꽤 감액을 많이 했지만, 우리는 무사히 네번째 채집 퀘스트의 별을 획득할 수 있었다.

사냥 ☆☆☆

채집 ☆☆☆☆

생산 ☆

"이걸로 채집은 끝이야."

"음, 사냥 퀘스트도 조만간 끝나겠군."

레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 채집 퀘스트를 먼저 했을 뿐이지, 아마 오크를 상대로 하는 사냥 퀘스트도 그리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을 거다.

"생산 퀘스트는 쉽지 않겠네요."

"졸업시험까지 며칠 시간이 남았지만 아마 4성을 채우는 건 어렵겠지."

미샤처럼 치료나 회복에 재능이 있다면 하루에 두개정도의 생산 퀘스트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파티에 그런 인물은 없었다. 나도, 유나도, 레아도. 전방에서 강한 전사타입의 영웅들이라 장작패기 같은 몸을 쓰는 생산 퀘스트나 사냥 퀘스트에서 유리한 점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남은 시간동안 최선을 다해야지."

유나와 레아와 함께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그녀들에게 자유시간을 주었다. 그동안의 퀘스트를 하며 그녀들의 몫을 떼 주었으니 그녀들도 돈이 부족할 일은 없을거다.

"일하는 용사를 남겨두고 놀러가라니, 죄책감이 생기네만."

"할 거 없으면 그냥 숙소에서 먼저 뒹굴고 있어도 괜찮아. 얼룩이랑 가볍게 여기저기 바람 쐬러 다녀도 괜찮고."

"으음, 진심인가?"

"몇번이고 탈락할 각오를 하고 있어. 탈락한 남자의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거든."

편하게 놀러가라는 의미로 장난스럽게 말하자 곁의 유나가 반발한다.

"아니에요! 용사님께서 노력하는데, 절대 꼴사납지 않아요!"

"...농담이야, 농담."

조금 머쓱해져서 답하지만 유나는 내가 통과하길 기대하는 눈치다. 몇번이고 탈락할거라고 예상하긴 하지만, 끝내 통과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긴 하다. 미녀의 기대는 남자의 용기를 돋구는 법이지.

"뭐, 어쨌든 시험장에 들어가고나면 시간이 꽤 걸릴거야. 굳이 시험장에 들어와 있어도 상관은 없겠지만, 나도 너희들한테 신경 못 쓸거 같아. 이 참에 느긋하게 쉬고 있어."

유나와 레아는 조금 망설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다 함께 휴일을 맞이하는거면 모를까, 이처럼 그녀들만 쉬는 날은 처음이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다. 가끔은 이런 날도 있는 법이지. 오히려 셋이서 함께 모험을 하면서 쉬는 날이 별로 없었다. 이번 졸업시험이 끝나면 정기적으로 쉬는 시간을 좀 가져야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유나와 레아와 인사를 하고 혼자 응급치료 시험을 치는 장소로 들어갔다.

생산 분야중, '응급치료'는 위급한 상황의 사람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치료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분야였다. 실제 모험을 진행하는 도중 발생하는 응급상황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하는 것이었다.

물론 사제의 신성마법이나 다른 속성의 치유마법을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응급치료 시험을 합격하기 위해서는 제공되는 약초와 포션으로도 충분했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능력을 활용하지 않고, 제공되는 품목만을 활용해서 합격하는게 이 생산 퀘스트를 만든 목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몇번이고 재응시가 가능하니까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네."

내 앞에 선 직원이 생긋 웃으며 하는 말에 답하긴 했지만, 썩 도움이 되는 조언은 아니었다. 직원의 말대로 몇번이고 떨어질테지만, 결국 마지막에 통과할 각오로 왔으니까.

시험 방법은 간단했다.

시험을 시작할 때, 치료를 할 수 있는 품목이 들어있는 커다란 가방을 받는다.

안의 내용물을 확인하면 본격적으로 시험이 시작된다.

단계에 따라 특정한 상태이상이나 상처를 입은 모형이 제공된다. 까다로운 상처나 상태이상에 걸린 모형 인형이 나오는 경우도 있고, 한꺼번에 여러 모형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서 모든 단계에 통과하면, 응급치료에 능숙해졌다고 판단해서 별을 하나 얻을 수 있다.

다만 가방에 들어있는 품목도, 단계마다 나오는 시험의 문제도, 심지어 단계의 횟수도 바뀌곤 했다. 시험을 내는 직원은 응급치료에 꽤나 뼈가 굵은지, 순식간에 시험문제를 만들어내서 응시자들의 기량을 확인하곤 했다.

단순히 출혈만 발생하면 응혈제와 붕대를 활용하면 그만이지만, 두세개의 상태이상이 겹치면 그 순간부터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상처의 위치가 숨어있는 경우도 있고, 다른 상처를 살피다 급박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도 발생했다. '사망'판정이 나오면 즉시 탈락처리되었지만, 탈락한 순간 직원이 다가와 내게 친절하게 어떤 실수가 있었는지 알려주었다.

"알고 있겠지만, 결국은 생명력을 지킬 수 있게 하는게 핵심이잖아요? 애초에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약초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좋았을 것 같아요."

"아직 후반부 시험이 남아서 약초는 좀 아끼고 싶었어요."

"후후, 그것도 괜찮은 판단이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약초를 써봐요. 괜찮은 선생님의 도움이 있었던 것 같지만, 아직 케이 씨는 응급치료를 통과하기엔 조금 부족해요. 그러니 다양한 약초를 팍팍 써가면서 시행착오를 더 겪어봐도 괜찮을 것 같아요."

직원이 대놓고 아직 내 실력이 부족하다고 언급했지만, 나를 보는 직원의 시선이 그리 차갑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로 재시험 도전하실거죠?"

어서 더 노력해 달라고, 더 배워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다. 나는 직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새로운 가방을 받는다.

...

가장 해가 높은 곳에 있었을 때부터 시험을 반복했는데, 어느새 해가 지평선을 넘어갈 시간이 되었다.

정신없이 약초를 뿌리고, 붕대를 묶고, 포션을 사용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래도 바보는 아닌지라 몇번이나 비슷한 작업을 반복하니 몸도, 머리도 응급치료에 익숙해진다.

...그래, 조금 알겠어.

모형에 붕대를 감는 내 손이 거침없이 움직인다. 그러면서도 옆의 모형의 상처를 꼼꼼하게 눈으로 살핀다. 화상? 아니, 동상이다. 그 옆은 아직 생명력이 있는 것 같으니, 최대한 빨리 두번째 모형을 처리하고 넘어가면 될 것 같다.

"..."

곁의 직원이 빨라진 내 움직임을 보며 미소짓는다. 열명정도 가득찼던 실습실에 남은 인원은 나 뿐이지만, 직원은 나를 보며 귀찮은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능숙해지는 내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마지막 모형 인형에 남아 있는 모든 약초를 처리한다. 미샤의 말대로 일부러 빠듯하게 물품을 넣어두고 모든 시험에 적절한 양을 배분해서 사용해야했다. 사제의 축복이나 회복마법이 있었으면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만큼 열심히 응급치료를 한 보람은 있었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는 내 앞에 있는 상태창에 새로운 글자가 반짝인다.

스킬

­ 응급치료 (Lv.1) (NEW!!)

됐어...!

속으로 작게 기쁜 환호성을 지르는데, 곁에 있는 직원이 내가 응급치료를 마친 모형들을 살피며 미소짓는다.

"좋아요, 합격이에요. 모든 모형들이 생존했어요."

"..하하, 하..."

합격했다는 말에 오후 내도록 고생한 보람이 있어 작게 웃음이 흘러나온다. 기뻐하는 나를 보며 직원이 말을 잇는다.

"오후 내내 힘드셨을텐데, 계속 노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오래 걸릴 거 각오하고 왔는걸요, 뭐."

"후후. 각오하고 있더라도 계속 탈락하는걸 감내하는건 다른 이야기에요. 정말, 고생하셨어요. 케이 씨. 계속해서 발전하는 모습도 보여서 심사하는 입장에서도 무척 즐거웠어요."

직원이 내게 '응급치료'를 합격했다는 증서를 건네준다. 조금 지친 손으로,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받아든다. 나는 생산 퀘스트에 별 하나를 붙여넣는다.

사냥 ☆☆☆

채집 ☆☆☆☆

생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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