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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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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테츠야 군.]
[미유키...]
[테츠야 군은 날 어떻게 생각해?]
그렁거리는 눈동자로 키가 큰 남자를 올려다보는 미녀.
밑 흰자위가 아주 살짝 보이는 삼백안이 무척 매력적이다.
그녀는 순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관능적으로 느껴지는 밝은 갈색 눈동자로 남자를 보고 있었다.
어서 빨리 네 마음을 말하라는 듯 말이다.
얼굴이 붉어진 남자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끝에서야 입이 열렸다.
[.... 미안해 미유키. 난 아직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저 문장을 본 순간,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나는 하체를 벌떡 일으켰다.
‘이 새끼 병신인가?’
아니, 세계관 최고의 미녀가 고백을 했고, 남자도 여러 히로인들 중에서 소꿉친구였던 이 미유키에게 가장 큰 마음이 있는데 이걸 왜...
게임의 최후반부인 지금까지 자꾸 사랑을 재고 있는데 어이가 없다.
시나리오 작가의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들어가 보고 싶을 지경이다.
헛웃음을 켠 나는 마우스를 클릭했다.
주인공이 그저 농담이고, 나도 네게 마음이 있다고 말하길 기원하며 말이다.
그런데,
[두근두근 아카데미를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나타난 화면엔 흔한 배경화면 하나 없이,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이 대문짝만하게 박혀있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저도 모르게 육성을 토해냈다.
“뭐 이 씨발아?”
뭐? 플레이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럼 끝이라는 거 아니야?
아니, 플레이어의 마음을 달달하게 녹이면서 끝낸 게 아니라,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든 다음 끝낸다고?
이렇게 끝내면 고백한 미유키는 어떻게 되는 건데?
실연의 아픔을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가 몇날며칠을 엉엉 울겠지.
다른 히로인인 렌카와 히요리는? 그냥 유기하는 건가?
이 게임은 달달한 러브코미디다.
갈등은 있을지언정 주인공과 메인 히로인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장르란 말이다.
그런데 이 미친 엔딩은 뭔가? 아무리 답답한 러브코미디라도 이런 경우는 없는데...
혹시 플레이어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이렇게 한 건가?
작가가 약간 사이코인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마지막 DLC를 이 따위로 낼 수가 없다.
“이거 완전 개또라이 아니냐?”
열린 결말로 끝내길 바랐다면 테츠야의 입이라도 닥치게 하든가.
차라리 그랬다면 긍정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을 텐데, 이건 뭐... 부정적인 생각밖에는 안 든다.
내가 이런 거 보려고 타 미연시보다 훨씬 답답한 주인공 새끼를 참아온 줄 아나...
인기가 없는 게임임에도 그림체가 취향이었고,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썸을 타는 게 마음에 들어서 정을 쏟았다.
테츠야에게 날 오버랩시키며 감정을 이입하기까지 하면서 즐겼고, 여러 DLC가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심지어 처음으로 브로마이드까지 샀다.
그런데 이렇게 뒤통수를 친다고? 미안하지도 않나?
이딴 식으로 히로인들에게 비극을 줄 거라면, 차라리 야겜으로 선회해서 서비스 신을 마구 넣어주든가.
그러면 감정이입 같은 건 집어치우고 딸이라도 잡았겠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방금까지 하고 있던 ‘두근두근 아카데미’, 약칭 ‘도키아카’를 종료했다.
이후 이 게임을 개발한 개발사 홈페이지에 접속해, 장문의 비판글을 썼다.
이토록 심한 분노를 표출한 것도, 비판글을 쓴 것도 생전 처음이었다.
그만큼 나는 이 게임에 몰입했었고, 거지같은 엔딩으로 내 시간을 낭비시킨 개발사와 작가에게 화가 났다.
달달함을 느끼려고 러브코미디를 하는 건데, 기분만 더러워졌다.
아무래도 나는 사상 최악의 쓰레기 게임을 한 것 같다.
모든 일을 끝내고 창문을 보는데 야음이 짙었다.
엔딩이 포함된 DLC가 나왔다고 들떠선, 문장과 그림 하나하나에 이입을 하다 보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나보다.
촤아악!
신경질적으로 암막커튼을 친 나는 베개에 머리를 묻었다.
‘씨발.’
내가 이 게임을 한 건 인생 최고로 후회할만한 일이었다.
근데 뭐 어쩌겠는가. 이런 식으로 전개될 줄은 몰랐는데.
‘그래도 달달하긴 했어...’
엔딩만 제대로 냈다면 갓겜 확정이었는데... 개 같은 새끼들...
도저히 진정이 안 되는 가슴을 억지로 가다듬으려 노력한 나는 벽에 붙어있는 히로인 세 명의 브로마이드를 바라보았다.
미유키, 렌카, 그리고 히요리.
정말이지 너무 예쁜 히로인들.
테츠야 같은 병신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오랜 시간 좋아한 게임인데, 엔딩 하나로 한순간에 똥겜이 되다니.
배신감이 장난이 아니다. 이제야 왜 이 게임이 인기가 없었는지 알겠다.
개발사가 생각이 없으니까 그런 거다.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푸욱 내쉰 나는 잠을 청했다.
화가 너무 많이 나서 잠을 못 이룰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수마가 쏟아지고 있다.
격렬하게 감정을 폭발시켜서 정신이 확 지친 모양이었다.
그래, 이러면 좋은 거지. 똥겜은 빨리 잊자.
그리 생각한 나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미유키... 렌카... 히요리... 너무 불쌍해...’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한 세 히로인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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