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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3화 (3/313)

〈 3화 〉 유치하고 진부한 클리셰

* * *

미츠다 켄도, 현실의 나도 원래부터 공부를 못했다.

그래서 저 교수가 뭐라고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미유키를 보니 수업에 집중하며 공책에 능숙하게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모범생답다. 내가 아는 그대로의 미유키라서 안심도 되고.

교수의 수업을 최대한 따라가려 노력하던 나는 시선이 느껴져 눈을 돌렸다.

테츠야가 날 놀랍다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다.

제대로 수업을 듣는 것이 신기한 모양.

콧방귀를 낀 내가 정면을 주시하며 작게 속삭였다.

“공부하는 사람 처음 보냐?”

“미, 미안... 근데 페이지가 틀려서... 15페이지가 아니라 32페이지를 펴야 돼...”

소심한데 할 말은 다 하네.

하긴, 이놈은 원래 그런 놈이었지.

마지막에 미유키가 고백했을 때만 빼면.

“누가 알려달랬냐? 네 거나 신경 써라?”

“아, 응...”

대화를 나누고 나니 미유키가 이곳을 흘끔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여전히 적대적인 눈빛. 마음이 아프다.

괜히 짜증이 난 나는 교과서 일부를 찢어 공을 만든 뒤, 앞자리의 죄 없는 학생에게 던졌다.

미유키가 보란 듯이 말이다.

툭.

학생의 머리에 맞고 튕겨나가는 쓰레기.

미유키의 눈이 부릅떠졌다.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교수에게 말하겠다는 티가 역력했기에, 난 어깨를 으쓱이며 교과서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는 미유키 몰래 앞자리 학생을 콕 찔렀다.

“미안. 실수야.”

그러자 익숙한 듯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리는 그.

만화나 애니엔 나오지 않았었지만, 내게 괴롭힘을 많이 당한 것 같다.

딩­동­! 딩­동­!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종소리가 들리면서 수업이 끝났다.

미유키를 한 번 쓰윽 쳐다보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드르륵­!

“켄! 켄!”

교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자 인상을 구겼다.

친구들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있듯, 당연히 이놈들도 나처럼 양아치였다.

땡땡이는 일상이고, 아카데미 안에선 금지된 술과 담배마저 거리낌 없이 하는 놈들.

난 이놈들과 어울리기 싫었다.

아카데미 교칙을 위반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랑스런 미유키에게 음담패설을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건 덤. 그래서 더 짜증난다.

미유키는 오직 나만 그렇게 쳐다볼 수 있다.

어쨌든 연을 끊고 싶은 놈들이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왜? 미유키의 호감작을 위한 훌륭한 제물이 될 테니까.

근데 얘네 이름을 모르겠다. 알 필요도 없지만.

의자에 기대어 한숨을 쉰 나는,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재수 없게 생긴 놈이 다가오자 말했다.

“뭐.”

“오늘 이케부쿠로 가지? 술자리 잡아놨어.”

“안 가.”

“아앙? 예약까지 잡아놨는데 왜?”

아앙이라니... 리액션이 참 일본스럽다고 해야 할지...

헌데 거부감이 전혀 없다.

어쩌면 나... 이곳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걸지도?

“피곤하니까 쉬려고.”

“쉰다고? 네가? 어디 아프냐?”

“시끄럽고, 난 안 가니까 니들끼리 놀아라.”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야! 하나자와! 오늘은 잘 지냈냐?”

대화가 끝나자마자 미유키를 놀리려는 녀석.

가방을 싸고 있던 미유키가 속눈썹을 치켜뜨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다.

그 틈을 탄 나는,

빠악­!

손바닥으로 친구의 뒤통수를 아주 강하게 갈겼다.

“아아악!”

그리고는 고통스러워하는 친구에게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이 새끼는 맨날 이러네. 빨리 꺼져.”

“뭔... 갑자기 왜 때리고 난리야?”

“아 이 씨발... 시끄럽게 하지 말고 꺼지라고. 귀 아프니까.”

“별 것도 아닌 걸로 지랄이야...”

투덜거린 친구는 곧 나머지 떨거지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이런 걸로도 미유키의 호감도를 쌓을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미유키는 날 저놈들과 똑같은... 아니, 더한 놈으로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서서히 바뀌어나가는 거지.’

희망을 가지기로 한 나는 곧장 교실을 나섰다.

미유키는 굳이 보지 않았다.

그녀를 보면 시선을 떼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놓고 요에 누웠다.

혹시라도 늦잠을 자서, 이벤트가 일어나는 타이밍을 놓칠까 우려해서였다.

현실과는 달리 여긴 무척 조용해서, 낯선 요 위에서 자는 것임에도 잠이 아주 쉽게 왔다.

그러고 보니 이곳으로 오기 전에도 아주 빨리 잠에 들었었다.

평소엔 눈을 감아도 몇 시간동안 잠에 들지 못하는 건 기본이고, 중간에 몇 번이나 깨고 그랬는데.

‘깨면 현실이 되어있는 건 아니겠지?’

부디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며, 나는 이불을 덮었다.

**

지하철, 혹은 전철 치한은 ‘어? 그때 그 싸가지?’만큼이나 유치하고 진부한 클리셰다.

하지만 해결하기만 하면, 모든 만화나 애니, 미연시에서 호감도를 특대로 얻을 수 있을 정도로 효과는 굉장히 뛰어났다.

‘다 사용하는 이유가 있는 법이지.’

그리고 도키아카는 그 고전적인 클리셰가 일어난다.

언제? 바로 지금.

덜컹! 덜컹!

사람이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꽉 찬 만원전철.

미리 미유키가 탄 칸의 자리를 선점한 나는 큰 키를 활용해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테츠야는 보이지 않는다.

당연했다. 그는 미유키의 제발 도와달라는 문자를 받고 세 칸 옆에서부터 달려오니까.

그리고 미유키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전철 기둥에 몸을 기대고 책을 읽고 있었다.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뒤에 있는 치한이 분위기를 깨긴 하지만 말이다.

미유키의 뒤에 있는... 누가 봐도 ‘나 범죄자요’라고 할 만한 흉악한 얼굴을 지닌 녀석은 곧 주변 눈치를 슬쩍 보더니 몸을 꼼지락대기 시작했다.

미유키의 허벅지를 만지려고 하는 것이다.

‘어휴... 씨팔...’

나도 아직 만져보지 못한 미유키의 허벅지를 치한에게 먼저 양보해야하다니.

짜증이 솟구친다. 원래는 제복 치마 안으로 손을 넣기까지 기다리려고 했지만, 미유키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는 순간 바로 난입해야겠다.

그런 생각을 갖고 둘을 지켜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미유키의 몸이 움찔했다.

“....?”

눈을 크게 뜬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자신의 바로 뒤에 있는 치한을 발견한 그녀.

하지만 태연스런 놈의 면상을 보고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다.

사람이 많아서 몸이 그냥 부딪친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치한은, 미유키가 자신을 보았음에도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더욱 과감해져갔다.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 생긴 미세한 틈으로, 치한의 손이 미유키의 엉덩이 쪽으로 올라가려는 게 보인다.

허벅지는 다른 손으로 계속 만지고 있다. 조금만 있으면 치마 안으로 들어갈 것 같다.

그제야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한 미유키의 얼굴이 당혹스럽게 물들었다.

혐오스러움, 그리고 두려움.

미유키의 눈동자엔 그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해있었다.

그녀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가방 안에서 휴대폰을 뒤적거리려 하는 걸 확인한 나는,

“야! 이 씨발놈아!!”

덜컹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전철 칸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어제 교실에 들어갔을 때처럼 확 집중되는 시선.

이빨을 딱딱거리고 있던 미유키 또한 날 발견했다.

“마, 마츠다 군...?”

놀란 투로 날 부르는 미유키.

저 떨리는 목소리 안에는 간절함이 섞여있었다.

타이밍은 완벽했다. 치한도 찔끔해선 손을 뺀 상태.

더 들어가기 전에 막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사람들을 힘으로 밀어내며, 당황해선 머뭇거리고 있는 치한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놈의 지척까지 접근하자마자, 머리를 뒤로 확 젖히고 다시 앞으로 밀었다.

아주 강하게, 최대한의 힘을 담아서 말이다.

뻐걱­!

무언가가 부러지는 소리,

“꺽!”

그리고 치한의 짤막한 단말마.

완벽한 박치기였다. 치한의 거대한 몸뚱아리가 일순 균형을 잃고 휘청거릴 만큼.

나는 곧바로 상체를 숙여 치한을 넘어뜨렸다.

이후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깡그리 무시하며, 놈의 면상에 주먹을 갈겨댔다.

뻐억­! 뻑!

둔탁한 소리가 들릴 때마다 홱홱 돌아가는 치한의 고개.

놈의 머리맡에는 피가 묻은 자그마한 덩어리가 몇 개 있었다.

이빨이 나간 것이다.

제대로 싸웠다면 질 확률이 높았을 텐데, 솔직히 이렇게 돼서 다행이었다.

뻐어억! 뻑!

그렇게 계속해서 치한을 두들겨 패고 있는데,

“마츠다 군...!”

미유키가 조심스레 날 불렀다.

나는 일부러 못들은 척, 흥분한 척 치한을 계속 때렸고 말이다.

뻐억­! 뻐억!

치한의 얼굴이 점점 피로 덧칠되어가자, 웅성거리던 사람들 몇몇이 휴대폰을 들었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려는 행동이었다.

그것을 본 미유키는, 내가 주먹을 드는 틈을 타 내 한쪽 팔을 양손으로 붙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마츠다 군!! 그러다 죽겠어!! 그만해!”

팔에서 느껴지는 미유키의 풍만한 가슴 감촉이 황홀하다.

마침 전철도 다음 역에 섰겠다, 나는 주먹을 멈췄다.

그러자 미유키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단 여기서 나가자... 문 열렸어... 나가야 돼...”

“난 아직 덜 팼는데?”

“마츠다 군...! 그만하고 나가자니까...! 사람들이 무서워해... 빨리...!”

“알았어, 알았다고.”

마지못한 척 자리에서 일어나자, 미유키가 내 손목을 잡고 전철에서 내렸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무척 따뜻하다.

마치 그녀의 마음처럼.

**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야? 왜 그렇게 사람을 패?”

벤치에 앉아 미유키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아니, 치한한테 당했는데도 그런 얘기가 나오냐?”

“아, 아무리 그래도 기절한 사람을 막무가내로 때리는 건...”

갑작스레 우물쭈물하게 변하는 태도가 귀엽다.

코웃음을 친 내가 반박했다.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면서 아파하고 있었구만 기절은 무슨... 그리고 너 나 아니었으면 이미 팬티 벗겨졌다? 나한테는 꽥꽥거리면서 당당하게 따지더만 왜 저런 거엔 조용히 있냐? 혹시 취향이 그쪽인가?”

“무, 무슨 소릴...! 말이 너무 심하잖아...! 난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얼빵하기는...”

그 말에 발끈한 미유키가 내게 따졌다.

“마츠다 군은 저렴한 말투가 문제야. 왜 자꾸 사람 속을 긁어? 그렇게 하면 재밌어? 자존감이 막 채워져?”

지금 보니까 재밌네.

일일이 반응해주니까 더 하고 싶어지잖아.

“너 나한테 고마워하는 게 먼저 아니냐? 왜 자꾸 훈계만 하는 건데?”

“후, 훈계가 아니라... 어...?”

다시금 목소리가 낮아진 미유키가 내 손을 보고는 흠칫했다.

손가락 사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피를 본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마츠다 군, 손에서 피나...”

“익숙해.”

허세를 부리는 게 쉽지 않다.

“이, 익숙하다니... 일단 이걸로 닦아...”

징그러운 것을 본 양 눈을 감은 미유키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눈꽃처럼 새하얀 손수건. 그것을 본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피 묻으면 지우기 힘들 걸?”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됐어. 화장실에서 씻으면 돼. 지금 전철 오고 있으니까 넌 빨리 아카데미나 가라. 지각하면 점수 깎이잖아. 반장이 그래서야 되겠어?”

“그, 그래도...”

“정 마음에 걸리면 나중에 매점에서 음료수나 하나 사오든가. 나 간다. 수고해라.”

대충 손을 휘저은 나는 미유키를 돌아보지도 않고 화장실로 향했다.

수전을 틀고 손을 갖다 대니 진심으로 따가웠다.

꺄아악 거리며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

아주 조심스럽게 손을 닦아내며 화장실을 나오던 나는,

“마츠다 군. 다 닦았어?”

지척에서 미유키가 내 이름을 부르자 정말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고야 말았다.

설마 그녀가 아직까지 여기 있었을 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 씨발...! 깜짝이야!”

욕까지 내뱉으며 기겁을 하는 나를, 역에 있던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치를 본 미유키가 자신의 가녀리고 긴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목청 좀 줄여주면 안 돼...? 사람들이 놀라잖아...”

상체까지 숙여가며 심호흡을 한 내가 투덜거렸다.

“하아... 놀라게 하지를 말든가...”

이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유키.

그녀가 돌연 입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테츠야에게 보여주는 싱그러운 미소보다 훨씬 모자랐지만, 정말 주변이 밝아질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세상에 뭐 저렇게 예쁜 사람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진정시킨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미유키를 대했다.

“무, 뭐냐...? 왜 쪼개고 난리야?”

“고마워...”

“뭐라고?”

“고, 고맙다고... 구해줘서...”

구해주길 잘했는 생각이 든다.

아니, 태어나길 잘했다.

뻘줌한 듯 옆머리를 긁적인 내가 말했다.

“됐다. 감사를 바라고 한 일도 아닌데.”

“아까는 고맙다고 하라며?”

“진짜 할 줄은 몰랐지.”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거든? 누구랑 다르게...”

“그 누구가 설마 나냐?”

그에 대답하지 않은 미유키가 화제를 돌렸다.

“그리고 마츠다 군은 욕을 좀 줄여야 될 것 같아.”

“아까는 말투가 저렴하다고 뭐라 하더니... 잔소리하지 말고 그냥 가라.”

“마츠다 군은 안 가?”

“PC... 가 아니라 넷카페 같은데 가서 시간이나 보낼란다.”

“제복까지 입어놓고 왜 결석하려고 해?”

“제복을 입으니까 결석하고 싶어지는 거지. 이거 한 번 맛 들리면 못 끊는다.”

“난 이해가 안 가는데...”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도 어찌나 예쁜지... 당장 덮치고 싶다.

“이해하라고 한 소리 아닌데?”

“그러지 말고 가자. 약 바르고 붕대 감아야지, 가만히 놔두면 상처 덧나. 내가 교수님한테 말씀드려놓을 테니까, 마츠다 군은 도착하면 바로 양호실로 가. 거기서 1교시 정도는 쉬어도 돼.”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진심으로 고마운 모양이었다.

호감도 특대... 제대로 얻었구나.

“웬일이냐? 땡땡이를 권장하고...”

“치료 겸 휴식인 거지. 대신 2교시 때부터는 들어와.”

“네가 우리 엄마야?”

계속해서 틱틱거리는 나를, 미유키가 질렸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한숨을 푹 내쉰 그녀가 말했다.

“하아... 알았어, 땡땡이를 치든 뭘 하든 상관없는데, 일단 양호실은 가.”

“싫으면?”

“그럼 네 마음대로 해...!”

약간 언성을 높이며 저리 말하더니 몸을 돌리는 그녀.

낄낄거린 나는 미유키의 바로 옆으로 다가갔다.

“근데 하나자와.”

“뭐...! 왜!”

“너도 피 묻은 거 알아?”

“나도...? 어디?”

“거기에 묻어 있잖아.”

검지를 펴고 가슴팍 부근을 가리키자, 미유키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자신의 가슴 부근에 피가 묻은 것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

가방으로 황급히 자신의 앞판을 가린 그녀가 날 보며 미간을 좁혔다.

“벼, 변태 아니야...?”

“난 순전히 호의로 말한 건데 왜 민감해하는 거지? 너야말로 변태 아니야?”

“그럼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말해주지 않았다면 가슴에 피 묻힌 채로 등교했겠지. 너는 공부는 잘하는데 이런 쪽으로는 약간... 멍청하네.”

“너, 너한테 그런 얘기 듣고 싶지 않아...”

사실을 말했는데 뭘.

히죽 웃은 나는 미유키와 함께 티격태격하며 다음 열차를 기다렸다.

오늘 이벤트는 대성공. 아주 마음에 들었다.

손은 아프지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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