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 마츠다 군, 변했네. #3
* * *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교실에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다.
“야, 미우라.”
내 친구가 테츠야의 그림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저 새끼 이름이 뭐랬더라? 저번에 들었었는데...
“응...? 왜? 와타나베.”
테츠야의 대답을 들으니 곧바로 기억이 났다.
와타나베 타카시였다.
“네가 그리는 건 대체 뭔 애니 캐릭터냐?”
“아, 이건 애니 캐릭터가 아니라...”
“됐고, 이 캐릭터 벗길 수 있지?”
“응...?”
“다음 수업 끝나고 다시 올 테니까 그때까지 그려줘라. 알았지?”
부탁조지만 뉘앙스만큼은 명령조.
건들거리며 테츠야를 괴롭히는 타카시를, 미유키가 부글부글 끓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녀가 나서기 전에 재빨리 교실 안으로 들어간 나는,
빠아악!
타카시의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어억! 어떤 개새끼가...”
뒷머리를 싸매고는 뒤를 돌아보는 타카시.
날 발견한 그의 표정이 울상이 됐다.
“켄...! 너 저번에도 그러더니 나한테 왜 이러냐?”
“뭘 왜 그래야 이 새... 흐흠... 이 자식아. 허락도 없이 내 자리에 앉아있으니까 그런 거지. 빨리 비켜.”
“진짜 개 씨발새끼...”
진심을 다해 투덜거린 타카시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맞은 것에 대해 복수라도 하려는 듯, 내가 앉지 못하게 발로 의자를 밀어버린 건 덤.
나는 자신의 교실로 돌아가려는 놈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끄아아아아!! 켄!! 켄!!”
머리가 뒤로 휙 젖혀진 타카시가 비명을 질러댔다.
이놈은 여전히 리액션이 과장스럽다.
손맛이 찰져.
“의자 원위치.”
“야 이 씨발...! 뒤진다 진짜...! 놔라?”
“원위치.”
“할게...! 하면 될 거 아니야 이 씹... 그러니까 일단 놓고... 흐어어어억! 아파! 아프다고!!”
풍성한 머리숱을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주자, 타카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며 팔을 쭉 뻗었다.
간신히 의자 머리를 잡은 녀석은, 끙끙거리며 내 책상 앞으로 의자를 돌려놓았다.
그제야 손에 힘을 푼 내가 말했다.
“너네 반에서 놀아라. 여기서 행패부리지 말고.”
그에 자신의 머리를 마구 마사지하던 타카시가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나 같으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바로 달려들었겠다, 허울뿐인 새끼...
책상 서랍에 있던 간식거리를 휙 던져주자, 놈의 표정이 곧바로 풀렸다.
참 단순한 놈이다. 약간 모자란가 싶을 정도로.
타카시가 헤실거리며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미우라를 쓱 쳐다보았다.
이후 노트를 턱짓하며 지나가듯 말했다.
“잘 그렸네.”
“아, 고마워... 근데 뺏어가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
아니, 이 새끼는 타카시 같은 놈한텐 설설 기면서, 왜 나한텐 따박따박 기어오르는 거지?
의외로 내가 편한가?
아니면 나랑 한 판 붙을 준비를 하고 있어서 도발하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본능적으로 느끼는 건가? 내가 미유키를 노린다는 것을.
확 한 대 쥐어박아버리고 싶지만 참자.
미유키의 공략을 위해 그녀의 주변 인물에게 호감을 쌓아두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니까.
그 대상이 테츠야라는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여태 내가 쌓아왔던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쯤은 감수할 수 있다.
껌을 짝짝 씹은 나는, 언제나처럼 우리 둘 사이를 가로막은 미유키를 올려다보며 짜증을 냈다.
“또 잔소리하러 왔냐?”
“마츠다 군은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뭐가.”
“내가 다가오기만하면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행동하잖아.”
“맨날 나한테 와서 훈수를 두니까 그런 거 아니야. 엄마 노릇은 저기 미우라한테나 해라. 뭘 봐?”
뒤를 쳐다보는 통통한 동급생을 향해 인상을 팍 쓰자, 그가 흠칫하며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미유키가 여느 때처럼 날 불렀다.
“마츠다 군.”
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내가 조교되는 기분이다.
원래는 반대가 되어야하는데... 큰일이야.
부모님의 잔소리에 지친 사춘기 학생마냥 질린 표정을 지은 내가 말했다.
“알았다고. 가만히 있으면 될 거 아니야.”
그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미유키는, 곧 테츠야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나랑 말할 때와는 온도가 전혀 다르다.
질투가 난다. 태도를 확 바꿔버릴까?
아니다. 계획한 대로 가자. 지금까지 아주 잘 통하고 있잖아.
근데 미유키야. 나 아까부터 욕 한 마디 안 하고 있었는데, 칭찬해주면 안 되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날 알아주지 않는 거야?
서럽다... 서러워.
**
“요새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상체를 수그린 채 붕대를 갈아주던 양호선생의 말.
고개를 빼고 그녀의 가슴골을 쳐다보던 내가 반문했다.
“뭐가요?”
“네가 화장실 청소도 잘하고, 수업에도 집중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 심지어는 주말에도 나왔었다며?”
“그게 이상한 소문인가요?”
“평범하진 않지.”
이놈의 양아치 이미지는 언제 벗나.
“다 됐어. 물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예.”
“눈 좀 다른 데로 돌리고.”
가슴을 빤히 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구나.
근데 보이는 걸 어떡하라고.
저 맘마통을 안 볼 수가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확신한다.
그나저나 지도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 가슴을 어필하는 옷을 입고 있으면서... 가식이 너무 심하네.
확 서브히로인으로 공략해버릴까 보다.
“교수님한테 말씀드렸다고 했지?”
“네. 이 상태로 운동을 어떻게 해요. 땀나면 안 되는데.”
“그러면 여기서 조금 쉬었다가 가.”
“알겠습니다. 근데 선생님. 혹시 남자친구 있어요? 아니면 결혼하셨나?”
“네가 상관할 일은 아니라고 봐.”
똑똑.
대화를 나누는 도중 양호실 안을 울리는 노크 소리.
양호선생이 들어오라는 말을 하자, 문이 드르륵 열리며 체육복 차림의 미유키가 나타났다.
박시한 체육복으로도 가릴 수 없는 가슴, 그리고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새하얀 정강이...
당장 달려들어 핥고 싶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는 미유키를, 양호선생이 웃는 낯으로 반겼다.
“하나자와네? 무슨 일이야?”
“아, 체육수업인데... 마츠다 군이 없어서 찾다가... 혹시나 해서 와봤는데 여기 있었네요.”
양호선생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츠다 군은 여기서 쉬는 거 아니었어? 체육수업은 빠져도 된다고 그러던데?”
“네...? 그래요?”
“응. 직접 물어봐.”
미유키가 날 찾으러 올 줄은 몰랐는데... 예상치 못한 이벤트다.
이제는 날 신경 써주기로 한 건가?
교화가 될 것 같다고 느낀 거야?
긴 다리를 성큼성큼 움직여 내게 다가온 미유키가 물었다.
“교수님한테 말씀 드렸었어?”
“어.”
“언제?”
“전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바로 말했는데? 교수님도 알겠다고 했고.”
“그, 그래...? 난 몰랐네...?”
“너 설마 내가 땡땡이칠까봐 잡으러 온 거냐?”
“잡으러가 아니라... 인도하러 왔다고 해야 옳지...”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
손으로 코끝을 훔친 나는, 그런 미유키를 향해 손을 휘저었다.
“나는 떳떳하니까 이제 그만 가라.”
“아니... 가긴 할 건데... 마츠다 군이 교수님한테 직접 말씀드렸다는 게 믿기질 않네...?”
“거짓말 같으면 전화해서 확인이라도 해보든가.”
“아냐... 믿을게. 그리고 마츠다 군.”
“뭐.”
“요즘 많이 변해가는 것 같아.”
듣고 싶었던 말이다.
기분이 좋다. 하지만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다.
테츠야와 나의 거리를 다시 비교해본 직후라 그런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말자. 상황 자체로만 따지면 아주 순탄하다고 할 수 있었으니까.
“변하다니? 내가?”
“응. 최근엔 욕도 안 하고, 맡은 일도 꼼꼼히 하잖아. 남자애들이 화장실이 깨끗하다고 좋아하더라. 근데...”
“근데?”
“폭력은 좀... 자제해줬으면 좋겠어. 아까도 와타나베 타카시의 머리채를 잡고 막... 그러는 모습, 보기 안 좋았어. 치한 사건은... 예외로 할게. 심하긴 했지만 정말 고마웠으니까.”
폭력을 쓰지 말라는 미유키의 말은, 이후에 내게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일본식으로 양키라 불리는 불량한 학생들과 어울렸다.
그리고 그들은 아카데미 내에서 유치한 야쿠자 놀이를 하고 있었다.
왜 있잖은가. 서클을 하나 만들고, 그 안에 소속된 동료들을 가족이라고 칭하고...
타 아카데미 학생과 시비가 붙으면 패싸움도 빈번하게 하고, 서클을 나가려고 하면 무슨 수를 써서든 못 나가게 하는.
그리고 나는 그 서클의 대가리까지는 아니지만, 소속된 놈들에게 나름 인정을 받는 입장이었다.
이건 나중에 써먹을 수 있는 훌륭한 무기였다.
친하게 지내던 놈들과 서서히 거리를 두면서 범생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그들은 언젠가 날 향해 불만을 터뜨릴 것이다.
그 불만을 정면으로 맞이하게 된 나, 왜 요즘 우리와 어울리지 않냐는 물음에 양아치 놀이는 재미가 없어졌다고 말하고...
그로 인해 분노한 그들에게 반격조차 하지 않고 흠씬 두들겨 맞는 나...
그렇게 옥상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누워있는 내게, 소문을 듣고 다가온 미유키.
그녀는 엉망이 된 내 상태를 보고 왜 가만히 있었냐고 묻겠지.
그럼 그때 우수에 젖은 눈동자로 미유키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하는 거다.
‘네가 싸우지 말라며.’
그 뒤엔 끙끙거리며 일어나, 다리를 절뚝이면서 옥상을 벗어나는 그림...
이거 호감도 특특대짜리거든요?
‘너무 망상인가?’
물론 상황은 내가 바라는 대로 흘러간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 서클의 놈들이 내게 어떠한 반응을 보여줄지도 미지수고.
그러니까 일단은 미유키의 호감도를 더 키워놓는 데에만 집중하자.
언제고 내가 지금 했던 상상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그때 신중하게 써먹는 거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미유키의 말을 반박했다.
“오히려 날 칭찬해야 정상 아닌가? 넌 타카시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응. 엄청 싫어해. 하지만 걔는 네 친한 친구잖아.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언한 거야.”
“내가 걔를 쫓아내지 않았다면 미우라가 계속 괴롭힘을 당했을 걸?”
“아니, 절대 그렇지 않아. 내가 나서서 막으려고 했어.”
“네가 말을 걸어주면 좋다고 성희롱을 해대는 타카시인데, 막을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건 아니지만... 교수님을 부르면 됐으니까...”
우리 미유키는 저 순둥한 성격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는지 걱정이다.
“네가 교수님을 호출하러 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안 봐도 눈에 훤한데. 너도 잘 알잖아. 타카시가 어떤 놈인지.”
“.... 그건 그렇긴 해.”
“거봐. 솔직히 그때 쌤통이라고 생각했지?”
“마츠다 군은 와타나베 타카시를 좋아해서 걔랑 어울리는 거야?”
화제를 돌리고 있다.
타카시가 당한 게 시원했나보다.
감정이 다 보이네.
“머리가 모자라서 이용해먹는 거지.”
“너처럼?”
“.....”
미유키는 가끔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편이란 말이지.
그만큼 내가 편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지만, 당황스럽다.
내 어이없는 얼굴을 보고 킥킥거린 미유키가 말을 이었다.
“농담이야. 오늘 테츠야 군을 도와줘서 고마워. 앞으로 테츠야 군을 괴롭히지 말고, 둘이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그럴 의향은 전혀 없어.
아니지, 테츠야와의 사이가 좋아짐으로 인해 너와의 사이도 좋아진다면... 연기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굳이 그래야하냐?”
“응. 지금까지 괴롭혀왔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하면서 다가가면 테츠야 군도 용서해줄 거야. 테츠야 군은 착하니까.”
“싫은데?”
“변하고 있는 마츠다 군이라면 그렇게 해줄 거라고 믿어. 나 수업시간 다 돼서 이만 가볼게. 푹 쉬고, 다음 수업은 빼먹지 마.”
통보하듯이 그리 말한 미유키는 총총걸음으로 양호실에서 나갔다.
속으로 투덜거린 나는 침대에 누워 커튼을 반쯤 쳤다.
그리고는 양호선생을 향해 말했다.
“선생님, 저 목말라요.”
“정수기에서 직접 떠먹으렴.”
저는 선생님의 치료주머니에서 나오는 우유 맛이 나는 약을 먹고 싶은데요.
라는 뒷말을 삼킨 나는 눈을 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