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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6화 (16/313)

〈 16화 〉 여름축제 #2

* * *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하는 보육원 원장.

그들에게 타코야키 30박스가 아니라 40박스를 전달한 나와 미유키는 다시 신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2층으로 눈을 돌려보니, 타코야키를 훔친 꼬마가 작게 고맙다고 말하고 있었다.

새끼... 앞으론 물건 같은 거 훔치지 마 임마.

아니, 훔쳐도 되는데 미유키 것만 훔치고 나한테 잡혀.

“아까 그 아이네?”

나와 함께 꼬마를 향해 손인사를 하던 미유키의 말이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일인데 쟤 얼굴을 봤다고? 너 눈썰미가 좀 있다?”

“응. 그런 편인 것 같아. 근데 마츠다 군.”

“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한 거야? 마츠다 군은 엄청 이기적이잖아.”

또 놀리기 시작하는구나.

헛웃음을 켠 내가 한쪽 뺨을 긁었다.

“그냥 뭐... 부모 없는 처지가 비슷해서... 그... 뭐라고 해야 하냐...”

“동질감?”

“그래. 동질감. 그걸 느낀 거지. 근데 아저씨는 괜찮을까?”

“뭐가?”

“손해가 장난 아닐 거 아니야. 40박스면 12000엔인데.”

“아빠는 나누는 걸 좋아해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다행이지만... 괜히 나 때문에 이렇게 돼서 죄송하네.”

그 말에 미유키가 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

한동안 그러고 있던 그녀가, 내 유카타를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마츠다 군, 맨날 영양가 없는 음식만 먹더니 드디어 죽은 거야?”

“뭐라는 거야. 재수 없는 소리 할래?”

“미안. 근데 오른쪽 옷깃을 위로 여몄잖아. 그러면 고인에게 입히는 수의가 되어버려.”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나 있잖아. 잠깐 가만히 있어봐.”

내 코앞까지 다가온 미유키가 허리를 고정한 오비를 풀기 시작했다.

스르륵거리는 소리가 왠지 야하게 들린다.

벌써부터 야외섹스를 하고 싶어서 옷을 벗겨주다니.

우리 미유키는 노출증 성벽이 있구나.

나중에 테츠야의 집 주변을 알몸으로 산책시키면 되겠다.

내 오비를 든 미유키가 뒤를 돌더니 말했다.

“왼쪽 옷깃이 위에 오도록 여미고 말해.”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신 나는 미유키의 말대로 했다.

“말.”

그러자 다시 날 돌아본 미유키가 헛웃음을 켰다.

리액션하기 짜증나는 농담이지? 나도 알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꼼꼼하게 오비를 묶어주는 그녀.

그냥 나더러 하라고 하면 되는데, 직접 채워주는 걸 보니 이번 사건으로 인해 내 평가가 올라갔나보다.

일을 전부 끝마친 미유키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많이 남았으니까 즐길 수 있겠다. 얼른 가자.”

“넌 장사해야 되는 거 아니냐?”

“안 해도 돼. 아빠가 너랑 축제 즐기래.”

“그래? 아버지 혼자 일을 하게 놔두다니 불효녀네.”

“아까 그 야키토리는 어디서 샀어?”

이젠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경지까지 성장했군.

자랑스럽다.

“신사 입구에 있더라. 사먹으러 갈까?”

“응. 날씨 진짜 시원하지 않아?”

“그러게. 어떻게 축제 날 딱 이러냐.”

우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어두운 길을 걸었다.

뒤통수에 손깍지를 끼고 미유키에게 농담을 건네는 나.

키득거리며 웃어주다가 재미없는 넌센스 퀴즈를 내는 미유키.

분위기가 제법 좋다.

미유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

“나는 다리살로 할래.”

“내가 사갔던 게 다리살 아니었나?”

“맞아.”

“그런데도 또 먹어?”

“맛있잖아. 마츠다 군은 뭘로 먹을래?”

“가슴살.”

“알았어. 선생님! 여기 다리살이랑 가슴살 두 개씩 주세요!”

발랄한 목소리로 주문을 한 미유키는, 복주머니처럼 생긴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선수를 쳐서 값을 치렀다.

그러자 미유키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내가 사려고 했는데...”

“잔돈 남길래 쓴 거니까 신경 쓰지 마라.”

“그래도... 그럼 다음 음식은 내가 살게. 고마워.”

“마음대로 해.”

“근데 마츠다 군. 유카타에 주머니도 없어 보이는데 어디서 돈이 나온 거야...?”

“궁금해?”

음흉하게 변한 내 얼굴.

내가 입은 유카타를 훑고 있던 미유키의 눈이 데구르르 굴러가더니, 입이 서서히 벌어졌다.

“서, 설마... 아니지...?”

거의 경악을 하려는 그녀의 시선은 내 하반신으로 가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기선 보일 리 없는 팬티를 보고 있다고 해야 옳았다.

혀를 끌끌 찬 내가 말했다.

“너 지금 내가 팬티에서 돈을 꺼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안에 반바지 입었어. 보여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진 미유키가 고개를 약간 숙였다.

“아, 아니...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귀까지 붉어진 채로 허둥지둥 거리는 모습이 귀엽다.

“그렇게 생각하긴 무슨... 그냥 순순히 인정하지 그래?”

“인정할 게 없는데 어떻게 인정을 해...”

“양심에 안 찔려?”

“.... 하아...”

기다란 한숨을 토해낸 미유키가 솔직히 실토했다.

“마츠다 군이 평소에 음담패설을 많이 했고, 방금 표정도 이상했으니까... 나로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내가 뭐 평소에 팬티에서 돈을 꺼낸다고 말하기나 했나? 게다가 편견을 갖지 말랄 땐 언제고...”

“펴, 편견이 아니라 고정관념이지... 아무튼 미안해. 내가 잘못 생각했어...”

“글쎄... 과연 잘못 생각했을까?”

능글맞은 태도로 그리 묻자, 미유키가 다시금 벙 쪘다.

“뭐...?”

“농담이야. 애가 왜 이렇게 순진하지?”

“.... 마츠다 군. 하나도 재미없거든?”

토라진 듯한 미유키의 말투.

킥킥거린 나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완성된 야키토리를 받아, 미유키에게 두 개를 내밀었다.

이후 그녀와 함께 신사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미유키와 본격적으로 축제를 즐기려던 나는 뜻밖의 불청객을 만났다.

신사에서 간단하게 준비한 퍼레이드를 가족들과 구경하던 테츠야가 미유키를 발견했던 것이다.

“미유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놈.

미유키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띤 채 테츠야에게 인사를 건넸다.

“테츠야 군! 재미있게 놀고 있어?”

“응. 근데 어디 있었던 거야? 와타루 아저씨가 운영하시는 가판대에 가봤는데 막이 쳐져있어서,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했어. 연락은 왜 안 받고?”

“아... 바빠서 휴대폰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거든. 미안해, 테츠야 군.”

“아냐. 근데 바쁜 일이라니?”

“나중에 말해줄게. 이야기하자면 길어.”

미유키가 날 흘끗 바라보자, 테츠야의 시선 또한 덩달아 내 쪽으로 향했다.

놀란 표정이 역력하다.

설마 이제야 날 발견한 건가? 그런 거라면 진짜 개새낀데.

잠깐 말을 잇지 못하던 테츠야가 물었다.

“마츠다도 있었네? 언제 왔어?”

“한참 전에.”

“진짜? 미유키랑은 이제야 만났어?”

의식하고 있구나.

태연한 듯 지껄이고는 있지만 다 티가 난다.

“나중에 하나자와가 말해줄 거다.”

“아... 그래...? 축제는 잘 즐기고 있어?”

“나쁘지는 않네.”

“그렇지...?”

뭘 그렇지야 이 거머리 같은 새끼야.

빨리 쫓아내야지 안 되겠다.

나는 미유키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가판대의 간판을 가리켰다.

“야, 하나자와. 너 금붕어 건지기 할 줄 알아?”

“할 줄은 알지.”

“나 살면서 단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지금 해보러 가면 안 되냐? 나 좀 알려줘라.”

“정말? 그러면 이참에 경험해보자. 그럼 테츠야 군, 가족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 나중에 아저씨랑 아주머니한테 인사드리러 갈 때 연락할게.”

그 말에 테츠야의 얼굴이 당황스러움으로 물들었다.

반면 나는 쾌재의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미유키가 테츠야를 먼저 보내버리고 나와 둘이서 시간을 보내려 하는 게 감격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테츠야는 축제 초반에 일어나는 보육원 이벤트에 참가하지 않았고, 가족들과 쭉 함께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미유키의 성정 상, 그 시간을 방해하기 싫었겠지.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호감도 또한 미유키가 저렇게 말하는데 한몫했겠고.

“아... 응... 알았어.”

우물쭈물하던 무언가 말을 하려던 테츠야가 결국 수긍했다.

소심한 새끼... 이래서 너는 안 돼.

나 같으면 우리 사일 방해하기 위해서라도 냅다 끼어들었다.

**

“금붕어는 한 마리도 못 잡고 천 엔이나 썼네?”

신사 한가운데에서 불꽃놀이를 기다리고 있던 미유키의 말이었다.

머리를 벅벅 긁은 내가 툴툴거렸다.

“그물이 그렇게 잘 찢어질 줄은 누가 알았겠냐?”

“얇은 종이로 만들어졌으니까 천천히 하라고 그렇게 얘기해도 말을 안 들은 사람이 누구였더라?”

“아 시끄러. 생각하니까 또 짜증나네...”

나는 들고 있던 사과사탕꼬치를 물고 까드득 까드득 씹었다.

그러자 미유키가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초승달 모양으로 변한 눈가가 묘하게 섹시하다.

한동안 날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실실거리던 그녀가 물었다.

“건전하게 축제를 즐기는 것도 재밌지?”

“그냥저냥.”

“재밌게 놀아놓고선 평가가 박하네? 게다 때문에 걷기 힘들어서 그런가?”

“그럴지도 모르겠네. 이거 다신 안 신는다.”

“처음 신으면 원래 그래. 적응하면 시원해서 좋아하게 될 거야. 그나저나 나 오늘 엄청 놀랐다?”

“왜? 내가 금붕어를 너무 못 잡아서?”

“아니... 그게 아니라, 마츠다 군이 보육원 아이들을 생각할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했어. 의외였고, 다시 봤어.”

갑작스레 진지한 말투로 날 칭찬하는 미유키.

코를 쓱 훔치며 무안함을 표현한 내가 말했다.

“그냥 불쌍하니까 적선해준 거지.”

“아까는 동질감이 느껴져서라고 했잖아. 기억 안 나?”

“안 나.”

“양심에 안 찔려?”

야키토리를 살 때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데, 솜씨가 제법이다.

“하나도 안 찔리는데 어떡하냐?”

“거짓말.”

“거짓말인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그냥 알아.”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불꽃놀이나 구경해라.”

“불꽃놀이는 아직 시작도 안 했...”

피유우우웅­!

미유키가 장난스레 말대꾸를 하려는 타이밍에 맞춰, 하나의 폭죽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이윽고 퍼엉­!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하얀색의 불꽃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신사에 모여 있던 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타마야’라고 외쳤다.

오래 된 일본의 전통 구어였다.

예상치 못한 폭죽에 깜짝 놀라버린 미유키는 그 말을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는데, 실망해선 입을 삐죽 내미는 모습이 볼만했다.

첫 번째 폭죽을 시작으로 빠르게 이어져 쏘아지는 폭죽.

가지각색의 폭죽이 하늘에서 뻥뻥 터져나가며 밝은 빛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퍽 나쁘지 않다.

“와아...!”

언제 삐쳤냐는 듯 감탄을 터뜨리며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미유키.

폭죽이 터질 때마다 얼핏얼핏 보이는 그녀의 옆얼굴이 탐스럽다.

저 갸름한 턱선과 목덜미에 키스마크를 새기고 싶어.

“진짜 예쁘다... 마츠다 군도 그렇게 생각하지?”

망상에 빠져있던 나를 깨우는 미유키의 물음.

그에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미유키만을 보고 있던 나는,

그녀의 눈동자가 내 쪽으로 살짝 오는 순간에 맞춰 아주 천천히 하늘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서 입을 열었다.

“어. 예쁘네.”

예쁘다고 한 대상이 미유키인지, 아니면 폭죽인지 그녀가 헷갈려하도록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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