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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22화 (22/313)

〈 22화 〉 여름방학의 끝 #2

* * *

전통방식으로 오봉을 쇠긴 커녕, 해수욕장에 사람이 바글바글하다.

하긴, 현대인에게 있어 이런 명절은 긴 휴일이긴 하지.

미유키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마츠다 군.”

“왜.”

뒤에서 들려오는 미유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는 화들짝 놀랐다.

미유키가 아닌 카나가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무, 뭐야...?”

차 안에선 분명히 다른 목소리였는데, 지금은 미유키의 그것과 완전히 똑같다.

당황스런 모습을 보이자, 카나가 깔깔거리며 멀어졌다.

그런 카나를 못 말리겠다는 듯 쳐다본 미유키가 내게 다가왔다.

“언니가 장난이 좀 심해서... 미안해. 테츠야 군도 당한 적 많아.”

“혹시 저 누나 직업이 성우야?”

“그건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자주 저래.”

미유키와는 다르게 장난이 많은 타입인가보다.

저러면 두 명의 미유키와 쓰리섬도 가능한가?

좋은데...?

“바다 진짜 예쁘지 않아? 기분 좋다...”

양팔을 벌린 채 눈을 감고 바닷바람을 맞는 미유키.

역풍 때문에 티셔츠와 치마가 뒤로 확 밀려서, 그녀의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언제 봐도 미친 가슴이다. 허리도 잘록하고 골반도 넓고...

특히 Y존 아랫부분에 약간 불룩하게 튀어나온 치구... 저게 너무 꼴린다.

“마츠다 군! 와서 수박 먹어!”

미도리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미유키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수박 먹으러 가자.”

“응.”

나는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서, 미유키의 가족들과 함께 돗자리에 앉아 여러 음식들을 먹었다.

테츠야는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겠지.

지금쯤 미유키에게 계속 연락을 하고 있을 텐데, 미안하지만 미유키는 휴대폰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단다.

“마츠다 군, 왜 이렇게 소심해졌어? 우리 가족들이랑 있어서 그래? 평소대로 해봐.”

그저 날 놀리는데 재미를 붙이고 있을 뿐.

내 귓가에 속삭이듯 말하는 미유키를 흘끔거린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손을 뒤로 뺐다.

그리고는 미유키의 등을 약한 힘으로 꾸욱 눌렀다.

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행동이었다.

이런 내 의도를 눈치챈 미유키가 헤실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츠다 군은 수영하러 안 가?”

“지금? 소화는 시키고...”

“놀면서 시키면 되지. 마츠다 군이 항상 그러잖아.”

“아니 내가 언제...”

“지금 안 할 거면 여기서 우리 물건 좀 보고 있어줄래? 언니랑 나랑 옷 갈아입으러 가려구.”

“그래라.”

미유키는 수영복을 챙기고 카나와 함께 탈의실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와타루가 혀를 찼다.

“저 저... 버릇없이...”

“미유키가 평소보다 더 신난 것 같네. 미안해. 마츠다 군도 수영하러 가.”

미도리의 사과에, 나는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전 딱히 수영할 생각은 없었고, 바닷바람만 쐬러 오려고 했던 거예요. 그냥 제가 여기 있는 물건들 전부 지키고 있을게요. 두 분도 놀러 가세요.”

“우리도 딱히 바다에 들어가려고 온 건 아니야. 마츠다 군도 우리처럼 풍치를 즐기는 타입인가보네?”

“즐긴다기보다는... 휴일인데 집에 혼자 있으면 심심해서...”

와타루, 미도리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나는, 미유키와 카나가 옷을 다 갈아입고 다가오자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그냥 일반적인 비치웨어를 입은 상태였다.

스커트처럼 보이는 반바지, 그리고 지퍼가 달린 긴팔 아우터 말이다.

미유키가 비키니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기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매를 드러내는데 별 관심이 없다.

그건 카나도 마찬가지인 것 같고... 역시 피는 못 속이나 싶다.

그래도 미유키의 새하얀 허벅지를 볼 수 있는 건 좋다.

“진짜 안 가?”

빌려온 비치볼을 내 등에 통통 튕겨대며 묻는 미유키.

날 편하게 느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많이 까불어둬라. 나중엔 엉엉 울면서 나한테 고마워할 테니까.

“안 가. 너 공놀이 할 거면 스트레칭부터 해.”

“놀면서 자연스럽게 되겠지. 깊은 곳에 갈 생각도 없어서 괜찮아. 그럼 우리 갈 테니까, 심심하면 찾아와. 알았지?”

경고를 무시할 줄 알았다.

오늘따라 네 안전불감증이 물이 올랐구나.

상큼하게 손을 흔든 미유키는 곧 카나와 함께 바다로 향했다.

**

나는 미도리와 와타루에게 양해를 구하고 해변가를 거닐었다.

아무렇게나 걷는 게 아니라, 신나게 공을 주고받으며 노는 미유키와 카나를 육안으로 체크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는 두었다.

이 해수욕장엔 수심이 확 깊어지는 곳이 있다.

보통은 라이프가드가 돌아다니며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막고는 하지만, 한정된 인원으로 넓은 해수욕장과 수많은 사람들을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

이벤트는 라이프가드가 다른 곳에 있을 때, 카나가 공을 멀리 던짐으로서 발생한다.

미유키는 공을 주우러 가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그 깊은 곳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위험한 이벤트였다. 자칫하면 익사할 수도 있는.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미유키는 상태가 심각해지기 전에 라이프가드에게 발견되어 산다.

가만히 있었다고 해서 호감도가 깎이는 경우도 없고 말이다.

물론 내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다.

난 미유키의 마음을 내 쪽으로 확 잡아당기려고 이 이벤트에 참가한 거니까.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는 이벤트용 물건들을 체크한 나는, 해변을 산책하는 척 미유키와 카나의 근처를 맴돌았다.

테츠야는... 저기 멀리 보인다.

나처럼 산책을 하고 있나본데, 이벤트가 시작되고 얼마 뒤면 놈도 미유키를 발견하겠지.

이제 곧 발생할 시간이 됐는데...

시계를 보며 수십, 수백 번이나 했던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던 나는,

통!

“아 언니이...! 뭐해애...!”

멀찍이서 앙탈을 부리는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오자 바짝 긴장했다.

시작됐구나.

얕은 파도에 밀려 떠내려가는 공을 주우려 다가가는 미유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놀기에 바쁘고, 카나는 미유키에게 시선을 떼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갈매기를 구경하고 있다.

테츠야는 여기서 조금 더 있다가 미유키를 발견하고, 그녀의 고개가 뒤로 향해있는 것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챌 테니...

지금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건 나 하나뿐이다.

공이 멀어지는 속도가 꽤나 빨랐기에, 미유키는 곧 수영을 하기 시작했다.

서툰 포즈로 자유형을 하며 공을 향해 나아가던 미유키의 머리는, 공에 거의 다다른 순간 바다에 쏙 빠져버렸다.

이후 다시 튀어나왔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지금이다.’

그 장면을 본 즉시, 나는 누군가가 사용했던 분홍색 어린이 튜브와 구명조끼를 들고 전력으로 내달렸다.

“어!? 엄마아!”

뒤에서 쉬고 있던 꼬맹이의 놀란 외침이 들려온다.

내가 튜브를 훔쳐 달아나고 있는 줄 아는 모양.

쫄기는... 나중에 제 값 치러서 줄게 새꺄.

물이 허리춤까지 오자 저항 때문에 달리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

미유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간헐적으로 수면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그녀의 괴로워하는 표정이 시야에 점점 크게 잡힌다.

아무리 이벤트를 위해서라지만 미유키가 괴로워하는 걸 보기는 싫은데...

그냥 같이 놀다가 빠지자마자 바로 구해줄 걸, 괜히 멀리 있었나보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카나를 있는 힘껏 불렀다.

“누나! 누나!!”

그러자 카나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뭐야? 마츠다 군?”

“가드 불러요!”

나는 손가락으로 미유키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고는, 구명조끼와 튜브를 미유키의 근처에 던져놓고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첨벙!

그리고는 모든 힘을 쥐어짜내며 미유키를 향해 수영을 했다.

“케헥! 푸헤엑...!”

바닷물을 마셔 사레가 들린 미유키가 접근하고 있는 날 쳐다보았다.

괴로움으로 가득 차있던 그녀의 눈빛에 자그마한 희망이 담긴다.

떠내려가려던 튜브의 끝자락을 간신히 잡아챈 나는,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 그것을 던졌다.

찹! 하는 소리를 내며 미유키의 바로 옆에 떨어지는 튜브.

본능적으로 팔을 뻗은 미유키의 손이 튜브에 닿는다.

완벽한 슬라이더였다. 이정도의 구위라면 전국대회 입상도 가능하겠군.

마지막으로 구명조끼를 챙긴 나는 미유키의 지척까지 다가가, 뒤집힐락 말락 하는 튜브를 바로세운 뒤 미유키에게 괜찮냐고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튜브 대신 코앞까지 온 내 머리를 잡자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버리고 말았다.

생존본능이 깨어난 미유키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그녀를 뿌리치고 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을 정도.

설상가상으로 구명조끼까지 놓쳐버렸다.

‘아... 시발...’

익수자들을 직접 구하려 다가가는 건 위험한 짓이라더니, 그 말이 딱 이해가 간다.

너무 성급하게 접근했어.

미유키의 풍만한 가슴 감촉을 느낄 겨를도 없잖아.

이러다가 내가 먼저 뒤지겠네.

구명조끼부터 착용하고 다가갔어야 했던 건데, 미유키의 표정을 보고 다급해져선 한심한 짓거리를 해버렸다.

젖 먹던 힘을 다 쓰며 미유키의 골반을 밀어내자, 다행스럽게도 미유키에게서 떨어질 수 있었다.

그 상태에서 한쪽 다리를 마구 차고 있는 미유키의 뒤를 잡은 나는, 그녀의 엉덩이와 등에 팔을 올리고 힘을 주어 들었다.

수평으로 수면 위에 띄워진 미유키.

수면 아래에서, 그녀의 근처에 둥둥 떠다니는 구명조끼가 희미하게 보인다.

근데 바닷속에서 눈을 뜨니 더럽게 따갑다.

조끼 쪽으로 미유키를 유도하니, 허우적거리고 있던 그녀의 팔이 조끼를 잡았다.

미유키의 발악이 다소 완화된 것을 확인한 나는, 그녀를 들어 올린 채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자력으로 조끼를 입도록 하려는 행동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당히 진정이 된 미유키의 몸에서 부력이 느껴졌다.

구명조끼를 착용했구나.

안도한 나는 천천히 움직여 미유키의 뒤에서 나왔다.

“푸하아!”

참고 있던 숨을 토해내자, 계속 기침을 하며 물을 뱉어내던 미유키가 팔을 뒤로 뻗으며 내 머리를 잡으려 했다.

또 또 이런다. 겁을 먹은 건 이해하지만 같이 물귀신으로 만들려는 건 너무하잖아.

나는 미유키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때찌했다.

빡!

“콜록... 허으악! 콜록!”

중간에 비명소리가 섞여있는데, 뭔가 웃기다.

따악!

그런 그녀의 이마에 걱정 반, 분노 반이 섞여있는 딱밤을 한 방 먹인 내가 말했다.

“가만히... 허억... 있어 임마... 나까지 죽일 셈이냐? 지금부터... 끌고 갈 거니까... 제발 그대로 있어라... 알았어?”

“후으헥... 케헥...”

여전히 바닷물을 토해내던 미유키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졌다.

맞으니까 말 잘 듣네. 역시 약간의 체벌은 필요해.

나는 미유키의 겨드랑이를 잡고 아주 천천히 뭍으로 이동했다.

이거 근데 라이프가드들이 쓰는 기술 아닌가?

혹시 몰라 인터넷으로 많이 봐두긴 했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자연스레 튀어나올 줄이야...

주인공 파워 달달하다.

우린 곧 카나의 부름을 받고 다가온 라이프가드에게 구해졌다.

미유키의 상태는 야단법석을 떤 것에 비해, 익수자 상태등급의 1등급도 안 될 정도로 가벼웠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던 나는, 보트 위에서 콜록거리고 있는 미유키를 뒤로하고 주변을 살폈다.

카나가 요란스럽게 꽥꽥거렸기 때문인지, 주변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고 있다.

그 중간에는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보트를 쳐다보고 있는 테츠야가 있었다.

허접한 놈... 미유키가 익수한 건 알아챘는데 나 때문에 아무것도 못했죠?

속으로 놈을 한껏 비웃어준 나는 보트에 등을 지고 누웠다.

그러자 그렁그렁한 눈을 한 채 자신의 목을 누르고 있던 미유키가 내게로 엉금엉금 기어왔다.

설마 나한테 안기려고?

라고 생각하던 나는,

“콜록!”

큰 기침을 한 미유키의 입에서부터 물이 튀어나와 내 얼굴을 노려오자 잽싸게 머리를 움직였다.

귀를 스쳐지나가는 따뜻한 물.

순발력 미쳤다... 체대나 노려볼까 싶다.

아니 근데 저거 포상 아니었나?

괜히 피했다.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신 나는, 가드들이 미유키를 진정시키자 보트 위에 벌러덩 누웠다.

여름방학 이벤트는 이것으로 끝.

이제 뒷이야기를 즐기면서 개학까지 기다리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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