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여름방학의 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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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만... 물을 많이 마셨다고 했으니 부종이 걱정되네요. 하루 정도는 입원해서 상태를 봅시다.”
모든 검사를 끝낸 의사의 소견.
미유키의 뒤에 있던 미도리가 답했다.
“네.”
“입퇴원창구에 가셔서 약정서를 작성해주시면 병실로 안내해드릴 겁니다.”
“감사합니다...”
느릿느릿 고개를 꾸벅 숙인 미유키는 터덜터덜 진료실 문을 나섰다.
밖엔 와타루와 카나, 그리고 테츠야가 미유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쓱 둘러본 미유키가 와타루에게 물었다.
“아빠... 마츠다 군은?”
“여벌옷이랑 신발을 안 갖고 와서, 길거리 옷가게에 사러 갔다.”
“그래...? 돈은 줬어...?”
“줬는데도 안 받겠다고 한사코 거절하더구나.”
“그래도 줘야지이... 옷 사고 여기 온대...?”
“그런 얘긴 안 했는데...? 병원 이름도 알려줬으니까 오겠지.”
정신이 없는 상황이 지나가고 나니, 바다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선명하게 기억난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온 마츠다의 머리를 붙잡고 물에 가라앉힌 것도 모자라, 뒤에서 구조를 하려는 그를 막 잡으려고 했다.
그러다가 이마를 두 번 맞았는데... 어지간히 화가 났었나보다.
근데 어떡하는가.
그 당시 자신을 향해 다가온 마츠다가 방어율 0점대의 구원투수처럼 보였는데.
라이프가드가 끌고 온 보트 위에서도 뭔가 잡을 게 필요해서, 본능적으로 마츠다에게 다가가려다가 물을 토한 건 덤.
너무 미안했고, 창피했으며, 고마웠다.
“연락처는? 알려줬지...?”
와타루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종이에 써서 줬다.”
“종이...?”
“마츠다가 휴대폰을 잃어버렸다더구나. 바다에 빠뜨린 것 같다는데.”
미유키의 눈이 질끈 감겼다.
목숨을 빚진 데다 휴대폰까지...
마츠다를 볼 면목이 없다.
“미유키, 의사 선생님은 뭐래?”
한 발 앞으로 다가온 테츠야의 물음.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를 쳐다본 미유키가 대답했다.
“문제는 없지만... 하루 입원하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대...”
“정말 다행이다... 엄청 걱정했어.”
“고마워... 테츠야 군은 가족들이랑 휴가 안 보내?”
“네가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휴가를 보내겠어. 우리 엄마랑 아빠도 걱정하시더라.”
“응... 나중에 연락드릴게.”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몸만 신경 써.”
몸에 진이 다 빠져서, 더 이상 대화할 힘이 없다.
허우적대는 데에 기력을 다 써버린 모양.
테츠야에게 고맙다고 말한 미유키는, 가족들과 함께 입원수속을 마치고 병실을 배정받았다.
“병실 안은 가족들이라도 들어갈 수 없대. 라운지에 있을 테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바로 말해. 알았지?”
샤워를 마치고 환자복을 입은 미유키는, 미도리의 당부에 알겠다고 했다.
간호사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침대에 편히 누운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4인실이지만 아무도 없다.
조용한 곳에 홀로 있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카나가 그랬다. 마츠다가 자신을 엄청 빠르게 구했다고.
정황상으로는 물에 빠지자마자 달려든 것 같다는데...
그렇다면 자신을 계속 보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마치 운명 같은 우연의 일치?
‘물어보고 싶다...’
책방에서처럼...
아니, 책방에서보다 더한 절박한 마츠다의 표정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마츠다는 언제 올까?
설마 연락처가 적혀있는 종이를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게다가 마츠다는 바보라서, 병원 이름마저도 까먹었을 가능성이 있다.
온갖 걱정거리를 안고 천장만 물끄러미 바라보던 미유키는,
우우웅!
휴대폰에 진동이 울리자 화면을 쳐다보았다.
화면 중앙에 나타난 와타루의 문자를 본 그녀가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마츠다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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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미유키는...”
아니, 장모님. 들었던 얘기를 수십 번이나 또 들으니까 조금 지루한데요.
근데 제 손을 꼭 잡아주는 건 너무 좋아요.
손이 아주 따뜻하시네요. 맘마통 한 번만 빨아도 되냐?
“휴대폰부터 보러 가자. 우리가 새 걸로 하나 살게.”
“전 괜찮아요.”
“괜찮긴 무슨...! 당연히 우리가 사줘야 하는 건데...”
“그게 아니라... 방금 새로 사고 왔어요. 어차피 바꾸려고 했던 거라서 정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하기는 힘들겠지.
그렇게 고마우면, 휴대폰 대신 나중에 집에 초대해줘라.
와타루와 미유키의 상태에 대해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나는, 소심하게 서있는 테츠야에게 다가가 그의 등을 약하게 툭 쳤다.
“미우라네? 이제 봤다.”
“안녕, 마츠다.”
“가족들이랑 놀러왔다더니?”
“미유키가 걱정돼서... 곧 가보긴 해야 해. 네가 미유키를 구해준 거 봤어. 진짜 대단하더라.”
너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라고.
빨리 사라져주는 게 예의 아닐까?
“봤으면 손이라도 좀 빌려주지.”
“미안... 내가 너흴 발견했을 땐 라이프가드 분들이 보트를 타고 다가가는 중이어서...”
“농담이야 임마. 오늘 머리 시원하고 괜찮네. 계속 그렇게 하고 다녀라.”
“고, 고맙다...”
은근슬쩍 테츠야를 맥인 나는, 코너에서 환자복을 입은 미유키가 걸어 나오자 한손을 흔들었다.
“왔냐?”
그녀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저벅저벅 걸어와 내 앞에 서선, 날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
미유키의 입술 색이 죽어서 가녀려 보인다.
병약한 미소녀 같아. 이럴 때 하는 교배프레스가 진국인데.
나는 괜히 무안해진 척 옆 관자놀이를 살살 긁었다.
그리고는 농담 섞인 목소리로 미유키를 타박했다.
“내가 스트레칭 하랬지? 앞으로 말 잘 들어라.”
그에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미유키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 한 군데 나사가 풀린 듯한 저 어리벙벙한 미소... 너무 좋아.
“알았어... 구해줘서 고마워, 마츠다 군.”
“아저씨한테 말씀 들었는데 하루 입원해야 된다면서? 푹 쉬어라. 난 이만 간다.”
“응...? 가다니? 어딜 가...?”
“기차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지.”
안 가. 난 너, 그리고 너희 가족들이랑 같이 저녁까지 먹을 거다.
그러니까 빨리 잡아라.
“무슨 소리야...! 이렇게 그냥 보내면 내가 뭐가 돼...! 집으로 돌아갈 땐 우리 아빠 차 타구 가... 태워다주신다고 했어... 지금은 나랑 같이 밥 먹자...”
“병원에서 밥 안 줬냐?”
“방금 입원했는데 무슨 소리야... 식당으로 가자.”
“막 움직여도 돼? 아파 보이는데.”
“그냥 힘이 다 빠져서 그래... 상태는 괜찮아... 병원 안에만 있으면 되니까 얼른 가자... 나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고파...”
내 옷의 소매까지 당기는 미유키.
내가 가는 것이 어지간히 내키지 않는 듯하다.
와타루를 흘끔거린 나는, 그가 웃는 낯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말했다.
“알았어.”
“테츠야 군도 같이 갈래...?”
여태까지 뻘줌하게 있던 테츠야를 향한 미유키의 물음.
놈이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기도 전에, 내가 선수를 쳤다.
“미우라는 가족들한테 가봐야 한다던데.”
“그래...? 그러면 잘 가, 테츠야 군. 나중에 연락할게.”
그러자 테츠야가 움찔하더니 더듬더듬 대답했다.
“아, 그래... 푹 쉬고... 꼭 연락해.”
“응.”
테츠야를 향해 힘없이 손을 흔든 미유키는 곧 내게 따라오라고 말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테츠야야, 그러게 왜 나불거렸어.
가족 얘길 꺼내지만 않았어도 나와 미유키의 사이를 방해할 수 있었을 텐데...
이래서 사람은 너무 솔직하지 말아야 해.
자꾸 골대가 앞에 있는데도 똥볼을 차게 되잖아?
**
“너 근데 환자식 먹어야 되는 거 아닌가?”
“아냐... 일반 식사로 먹어도 된다고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셨어.”
“그래도 담백한 걸로 먹어라. 신나게 바닷물 먹은 애가 배에 기름칠까지 하려고?”
키오스크에서 덴푸라를 누르려던 미유키의 팔을 밀어낸 나는, 요일별 가정식 요리를 눌렀다.
그리고는 미유키의 손에 번호표를 들려주었다.
여기서 더 나가볼까? 그래도 될 것 같다.
나는 속으론 긴장했지만 겉으론 태연한 척, 미유키의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었다.
“앞으로 나 없어도 이런 거 먹고 그래. 어른들 안 계시다고 기름진 음식만 먹지 말고. 알았지?”
노골적으로 아이취급을 하는 듯한 말투에, 미유키의 입이 세 치나 튀어나왔다.
하지만 표정만 저럴 뿐, 따로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내가 놀린 것 외에 다른 행동은 거슬리지 않아한다는 뜻이었다.
구조해준 게 제대로 먹혀들었구나.
속으로 쾌재를 부른 내가 구석에 있는 빈자리를 가리켰다.
“저기서 기다려. 딴 데 가지 말고.”
“마츠다 군은 뭐 먹을 거야...?”
“돈가스.”
“안 돼... 가정식으로 먹어.”
“내가 왜?”
“맨날 몸에 안 좋은 것만 먹으니까... 여기서라도 건강하게 먹어.”
그리 말한 미유키는 자신이 직접 가정식 버튼을 누르고 번호표를 뽑았다.
이후 맨 뒷줄에 서더니 날 향해 손짓했다.
뭔가 남편의 몸을 걱정하는 아내 같다고 느껴지는데, 착각인가?
나는 기쁜 마음으로 미유키의 뒤에 섰다.
물론 겉으론 툴툴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식을 받은 우린 아까 내가 가리켰던 빈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다.
미유키는 반찬엔 손도 대지 않고, 그저 밥만 깨작깨작 먹고 있었다.
생각이 많은 듯한 모습. 밥을 한 숟가락 크게 떠서 퍼먹은 내가 말했다.
“뭐하냐? 입맛 없어?”
“그게 아니고... 마츠다 군.”
“왜.”
“휴대폰... 잃어버리게 해서 미안해...”
“아저씨랑 아주머니도 똑같은 말씀을 하시더라. 너한테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말하는데,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바꾸려고 했던 거야.”
“그리고 구해줘서 고마워...”
자신의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인사를 하는 미유키.
헛웃음을 켠 나는 새로 산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 인사는 아까 하지 않았냐? 됐고, 번호나 찍어.”
“아, 응...”
조심조심 키패드를 누른 미유키는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이후 내가 전화번호를 저장하고 다시 밥을 먹기 시작하자, 우물쭈물하더니 말했다.
“마츠다 군.”
“또 왜.”
“나 이마에 멍 들었어?”
“아니.”
“자세히 봐봐. 멍 들었을 걸...?”
“머리 갖고 와봐 그럼.”
고개를 쭉 밀며 자신의 이마를 보여주는 그녀.
앞머리에 가려져있어 제대로 확인이 안 된다.
이 요망한 것... 내가 이마를 넘겨주길 바라는 거지?
원하는 대로 해준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올려, 이마를 지그시 살폈다.
그리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였다.
“안 들었어.”
“그래...?”
“안타깝게 됐네? 폭행으로 고소할 수 있었는데 증거가 없어져서?”
“.... 재미없어.”
“그거 아쉽네.”
힘없는 웃음을 터뜨린 미유키는, 자신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내게 사진을 하나 전송했다.
그건 다름 아닌, 저번에 함께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찍었던 우리 둘의 사진이었다.
머리를 거의 밀착할 정도로 가까이 붙은 그것 말이다.
“그거 저장해줬으면 좋겠어.”
“알았어. 돌아가서 할게.”
“.....”
대수롭지 않게 휴대폰을 집어넣고 다시 밥을 먹으려던 나는, 미유키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자 눈썹을 조금 구겼다.
“지금 저장하라고?”
“응, 지금.”
지금 그녀는 새로운 휴대폰의 기념비적인 첫 사진이, 자신과 내 사진이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저장하라고 닦달을 하고 있는 것이고.
여름방학 동안 할 수 있는 건 전부 했고, 이번 이벤트로 마무리를 지었다.
나는 오늘 얻어가는 것이 많아야했다.
그리고 미유키는 이런 바람을 갖고 있는 내게 아낌없이 선물을 주고 있었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태도로 뒤통수, 이마를 허용해준 것도 모자라, 집착스런 모습을 보여주며 첫 사진까지 강요...
미유키의 마음속에 있는, 나와 테츠야가 양쪽에 자리한 천칭.
그것이 내 쪽으로 무게가 더 쏠려지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이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다.
미유키는 충분히 용기를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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