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 첫 키스의 느낌은?
* * *
“엄마가 마츠다 군이 불량학생이었던 게 맞냐고 그러더라...”
침대에 걸터앉은 미유키의 말이었다.
“무슨 소리야?”
“오늘 엄청 예의 바르다고, 밥도 잘 먹어서 보기 좋댔어... 자주 놀러오래...”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에 앉았다.
미유키는 이런 내 행동에 무척 당황한 듯했다.
애꿎은 자신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던 것이다.
어여쁜 발가락을 꿈틀거리는 모습이 웃기다.
그녀를 보며 씨익 웃은 내가 물었다.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도 뭐... 같은 생각이야...”
“다행이네.”
마치 미유키의 좋은 평가에 안심한 것처럼 말하자, 미유키가 흠칫하며 날 쳐다보았다.
“다행...?”
“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내 모습이 낯설었을까?
미유키의 목이 꿀렁거렸다.
침이 목을 넘어가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려온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 그래, 다행이지. 우리 가족이라도 마츠다 군을 인정해줘야 앞으로 더 노력할 거 아니야... 그치?”
일부러 활발한 티를 내면서, 애써 가라앉은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려보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그런데 어쩌나. 난 받아주기 싫은데.
실소를 터뜨린 나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그러네.”
“.....”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미유키.
얼핏 불편해 보였지만, 내 옆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냥 긴장만 하고 있는 것 같다.
미유키를 바라본 내가 말했다.
“야.”
“.... 응?”
“천장에 붙어있는 건 뭐야?”
“아... 저거... 그... 어렸을 때 테츠야 군이랑 같이 붙였어...”
“어렸을 때 붙였다고? 그럼 여긴 꽤 오래된 집이라는 뜻이네? 내외부가 깨끗하길래 지은 지 얼마 안 된 줄 알았다.”
“관리를 잘 하니까... 그런 거지... 마츠다 군도 집에 신경 좀 써... 식물들도 챙기...”
움찔.
미유키가 눈에 띌 정도로 몸을 들썩거렸다.
내가 자세를 고쳐 앉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포갰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러브 코미디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주인공과 히로인은 까무러칠 정도로 놀라면서 서로 미안하다고 얼굴을 붉히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다.
눈치없는 주인공이 될 생각 따윈 없다.
“.....”
미유키는 손등에 살이 닿으니 본능적으로 놀라기만 했을 뿐, 빼려는 기색은 없었다.
다만 당혹스러움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다짜고짜 옆에 앉은 데다, 대화도 얼마 안 하고 스킨십을 했으니 그럴 수밖에.
나는 미유키의 손등에 손을 올려놓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이후 어색함을 참지 못한 미유키가 무슨 말을 하려는 타이밍에 맞춰,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 손톱으로 콕콕 찔러대기 시작했다.
“마츠... 흐흠...”
날 부르려다 말고 헛기침을 하는 그녀.
미유키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그녀가 대고 있는 손바닥 주변의 침대 시트가 꾸욱 눌리는 게 보인다.
더 나아가도 될 것 같다.
판단을 마친 내가 미유키의 손가락을 벌려, 그 사이로 내 것을 들이밀려고 할 때,
똑똑.
미유키의 방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흐아앗...!”
거의 경기를 일으키다시피 하며 온몸으로 놀랐음을 표현한 미유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유키! 마츠다 군! 과일 많이 남았는데 그냥 올라가면 어떡해? 이거 가져가렴.
미도리의 목소리다.
거실에 놔두었던 접시를 가져왔나보다.
“어...! 나갈게...!”
몇 번 휘청거리면서 문 앞까지 걸어간 미유키가 문고리를 잡아당겨, 미도리를 맞이했다.
“과일... 그거야?”
“응. 덥지는 않니?”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미도리의 물음.
미유키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창문 열어놨잖아. 괜찮아...”
“그래...? 마츠다 군은 공부하고 있네?”
그 말에 미유키가 뒤를 홱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느 샌가 책상 앞으로 간 나를 얼이 빠진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다시 미도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응... 중간고사도 얼마 안 남았는데 당연히 해야지...”
“중간고사...? 아직 한참 남지 않았니?”
“마츠다 군의 입장에선 코앞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공부를 못하니까 그렇게 봐도 되잖아...”
“얘는 면전에서 못 하는 말이 없네?”
“어, 어쨌든 고마워. 잘 먹을게...!”
“그래, 심심하면 내려와. 마츠다 군은 공부 열심히 하고... 힘내.”
온화한 미도리의 말에, 나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예, 아주머니.”
미도리가 찾아온 건 예상했던 바였다.
왜? 도키아카의 장르는 러브 코미디니까.
러브 코미디의 특징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한 방해꾼이다.
주인공과 히로인은, 초반, 혹은 중반부에 진한 스킨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하지만 스킨십을 하는 순간이나 그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때, 친구나 선생님, 혹은 가족들에게 방해를 받게 되어 오묘했던 무드가 완전히 깨져버린다.
그 이후엔 애써 천연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상황을 넘기거나,
아니면 들켜서 놀림을 받게 된다.
단역들이 천진난만하게 ‘뭐하고 있었어?’ 라고 묻거나,
주인공과 히로인의 얼굴이 빨개진 것을 눈치채고 ‘오오오...! 너희 뭐야?’ 라며 대사를 치는 건 대표적인 클리셰 중 하나지.
그래서 나는 일부러 가벼운 스킨십을 한 것이다.
이 클리셰가 내게 일어날 줄 알고, 어떻게든 빠르게 넘겨버린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서.
만약 바로 키스를 시도했다면, 미유키는 저렇게 태연한 연기조차 하지 못했겠지.
철컥.
미도리가 나가자, 미유키가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책상 위에 접시를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내 어깨를 약한 힘으로 툭 때렸다.
“언제 거기까지 간 거야...?”
“네가 일어나서 문으로 갈 때.”
“진짜 웃긴다... 과일 먹어...”
이젠 방해 이벤트는 나타나지 않겠지.
나는 메론을 우물거리고 있는 미유키를 향해, 먹기 좋게 잘려있는 딸기를 포크로 찍어 내밀었다.
“너 좋아하는 거다.”
“마츠다 군이나 많이 먹어...”
“너 먹으면 먹을게.”
미유키가 머뭇머뭇 손을 내밀어 포크를 받으려고 했다.
그 틈을 탄 나는, 자유로운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흐끕!”
곧바로 딸꾹질이 튀어나온 미유키.
갑작스런 내 행동에 놀랐나보다.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 나는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 히끅! 흡...!”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모습이 귀엽다.
딸꾹질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는 게 가장 좋겠지만, 지금 이대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불안하다.
손은 잡을 수 있는 사이라고는 하나, 키스까지는 허용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
오늘 꼭 뽀뽀 이상은 하고 간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무 조급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은 그냥 놓아주었다가, 문화제 이벤트까지 기다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좆 까.’
속으로 부정적인 고민을 하던 나는 스스로에게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약 3개월간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댔고, 이벤트도 제대로 챙기면서 호감도를 채웠으며, 단둘이 데이트도 자주 했다.
심지어 방에 들어오기 전 화단에서, 미유키는 오늘 어떠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뭐가 두려워서 이러고 있는 거지?
이런 식으로 자꾸 타이밍을 재려 들다간 나도 테츠야처럼 소심해지게 된다.
나답게 가자고 다짐했잖은가.
3개월 만에 키스를 시도하는 것도 늦은 거다.
그러니 그냥 지르자.
의자에서 일어난 나는 미유키의 손목을 잡은 채로 야금야금 발을 놀렸다.
내가 천천히 다가갈 때마다, 나와 같은 보폭으로 뒷걸음질을 치는 그녀.
“흡...! 흐흡...!”
빈도가 빨라진 딸국질은 현재 그녀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근데 너 그거 알아?
조금만 더 뒤로 가면 걸린다는 거.
턱.
“흐급!”
침대 모서리에 오금이 걸려 털썩 주저앉게 되어버린 미유키의 입에서 다소 높은 톤의... 마치 신음 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더 이상 커지지 않을 정도로 뜨인 눈이 그렁그렁하고, 눈동자가 사방팔방으로 굴러가고 있다.
툭.
미유키의 무릎이 다리에 닿는 느낌이 났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상체를 숙여 미유키의 얼굴에 내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이번엔 미유키의 몸이 뒤로 쏠리고 있다.
각도가 내려가던 그녀의 등이 침대에 털썩 닿는다.
이제 도망갈 곳이 없는데, 어떡할래?
나는 미유키의 손목을 풀어주고, 그녀의 갈비뼈 양옆에 양손을 대었다.
“.... 흐끽...!”
괴상한 소리를 낸 미유키의 지진이라도 난 듯 떨리고 있는 눈빛엔 두 가지 감정이 맺혀있다.
기대감, 그리고 두려움.
그중에서 후자가 컸다.
여기서 계속 해버리면 약간 강제성을 띠는 키스가 된다.
나는 미유키가 첫 키스의 달콤함을 오롯이 느꼈으면 한다.
나만 좋자고 달려들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저 두려움을 해소시켜주자.
미유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던 나는,
“미안해, 미유키.”
평소 말투와 전혀 다른 부드러운 투로 그녀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그러자 미유키의 눈에서 두려움이 상당부분 사라졌다.
됐다. 이정도면 충분하다.
좋아한다고 말했으면 더 나았겠지만, 이건 다음 기회를 위해서 아껴둘 거다.
나는 미유키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흐끅!”
경직되어있던 근육이 풀리고 있다.
딸꾹질 빈도는 아까보다 줄었고, 떨리던 몸은 진정이 된 상태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입가를 가리고 있는 미유키의 손을 치웠다.
옆으로 툭 쓰러지는 팔.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
“.....”
“.....”
미유키는 부끄러웠는지 눈을 가만 두지 못하고 있었다.
굳게 앙 다문 입술이 무척 탐스럽다.
당장 달려들고 싶지만, 잠깐 텀을 두고 미유키가 준비를 끝마칠 수 있도록 해야겠다.
타는 속을 달래며 미유키만 응시하던 나는, 그녀의 몸의 떨림이 멎자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대면서 고개를 약간 틀었다.
그러자 미유키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해도 된다는 완벽한 승낙.
혼자 만세를 부른 나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그녀의 도톰한 입술에 내 입술을 부딪쳤다.
“흐훕!”
그와 동시에 튀어나온 미유키의 딸꾹질로 인해, 그녀의 고개가 살짝 위로 솟았다.
서로의 입술이 꾸욱 눌리면서, 말캉하던 감촉이 단단하게 변한다.
미유키의 본의 아닌 행동이 웃겼던 나는 짧은 콧바람을 내뱉었다.
그에 그녀의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나와 맞부딪친 입술도 벌어지는 게 느껴진다.
혀를 넣어도 될까? 아니면 참을까?
넣자. 어렵게 여기까지 온 만큼, 이정도만으로 끝내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다.
대신 나만 생각하지 말고, 미유키가 받을 느낌도 생각해보면서 조금만 더 나아가보자.
짧게 고민을 끝낸 나는 입술을 부딪친 상태로 혀를 빼꼼 내밀어, 미유키의 입 안으로 살며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그녀의 이빨을 마치 페인트를 칠하듯 부드럽게 핥았다.
“.... 으웁!”
놀란 미유키의 몸이 펄떡이면서, 벌어진 이빨이 콱 닫힌다.
욕망을 못 이기고 저 사이로 혀를 넣었으면 큰일이 났을 것이다.
참길 잘했다.
아마 그녀는 지금쯤 눈을 번쩍 떴을 터였다.
자빠질 만큼 놀랐을 텐데도 날 밀어내지 않는 걸 보면, 딱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듯하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에서 겪어봤기에 얌전히 있는 건가?
아니면 남자친구가 있는 동성 친구들에게 키스의 소감을 들어봤기 때문인가?
이도 아니라면 혼자 야동이라도 봤나?
뭐가 됐든 내겐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얌전히 눈꺼풀을 닫은 채 미유키의 이빨을 혀로 살살 굴리고 있던 나는, 그녀의 코에서부터 바람이 길게 새어나와 콧망울과 인중을 간지럽히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저 콧바람은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는 증거였다.
안심한 나는 이 이상 가지 않고, 다음번엔 더 진한 키스를 할 거라고 예고하듯 미유키의 바깥쪽 이빨만을 건드렸다.
입 안에 남아있는, 방금 그녀가 먹었던 메론 향을 혀끝으로 서서히 지운 나는,
미유키의 아랫입술을 내 이빨로 아주 살짝 깨물어 당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녀와의 첫 키스를 끝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