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첫 키스의 느낌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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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엉...
흐리멍덩한 눈으로 천장에 붙어있는 별 스티커를 바라보던 미유키는, 귀에서 왱왱거리는 모기 소리가 들려오자 상체를 스르르 일으켰다.
좀비처럼 고개를 툭 떨어뜨리고 나니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기분이다.
“.....”
마츠다는... 없다.
내려간 건가?
그러고 보니 누워있는 자신에게 뭐라고 말하면서 약한 딱밤을 때렸던 것 같은데...
자신의 이마 정중앙을 만지작거리던 미유키는 돌연 입술로 손을 가져갔다.
“아...!”
마츠다와의 키스가 생생하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두근! 두근!
멈춰있는 것 같던 심장이 순식간에 벌렁벌렁 뛰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입 안에선 미약하게 민트 향이 맴돌고 있다.
가글... 그래, 이건 가글 맛이다.
마츠다와 대화를 나눌 때, 그리고 입술을 맞댔을 때, 그에게서부터 구강 청결제 특유의 향을 맡았던 것 같다.
그리고 마츠다의 혀가 들어와서...
“으아아...”
자신의 이빨을 슬며시 핥았던 물컹하고 촉촉한 촉감.
그것을 상기한 미유키가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어찌됐든 간에, 자신의 입엔 마츠다가 썼던 구강 청결제의 잔향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구강 청결제라...
설마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방에 들어오기 전에 화장실에 갔었던 건가?
애초에 키스할 생각으로 방을 구경시켜 달라 했던 거야?
‘아냐...’
마츠다는 양치를 나름 잘 한다.
학교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도, 시간이 촉박하지 않는 이상 꼭 하는 편이고...
자신 또한 마츠다가 거실에서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때, 양치를 하고 왔잖은가.
식후 양치질은 청결을 따지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한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넘겨짚지 말자.
그리고 자신도 오늘 뭔가 야리꾸리한 일이 일어날 거라고 직감했잖은가.
마츠다를 탓하는 건 옳지 않다.
사실 탓할 건덕지도 없다.
왜? 거절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으니까.
물론 무섭긴 했다.
키스를 해본 적이 없어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고, 정색한 마츠다의 얼굴을 보고 그 감정이 더욱 올라왔었다.
그래서 마츠다가 더 가까이 오면 하지 말라며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마츠다가 진심을 다해 사과를 하자마자 괜찮아졌고,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뭔가 기대를 하게 됐다.
[미안해, 미유키.]
마츠다가 했던 사과를 다시 되새겨보던 미유키는 베개를 숨이 막힐 정도로 잡아당겼다.
안 그래도 중저음의 목소리인데 더 낮아지니까 듣기가 엄청 좋았고, 심적으로 안정이 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저 목소리만으로 감정이 바뀐다는 게.
그런데 문득 궁금한 게 생긴다.
혹시... 마츠다는 키스를 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설마 자신의 입에서부터 점심에 먹었던 음식 맛을 느끼고 불쾌해하는 건 아니겠지?
“아아아아...!”
베개에다 대고 꽉 막힌 비명을 내지른 미유키가 다리를 교차하며 침대 시트를 마구 찼다.
마츠다가 진짜로 불쾌감을 느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양치를 했다고는 해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입 안엔 음식의 잔향이 남아있잖은가.
아니, 아니다.
마츠다에게선 청결제 맛밖에는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입에서도 치약 맛만 났을 것이다.
라며 애써 정신을 가다듬으려던 미유키는, 자신이 키스를 하기 직전에 메론을 먹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 맞다...! 메론...!’
흠칫하며 베개에서 얼굴을 떼어낸 미유키의 표정이 울상으로 변했다.
양치한 직후 메론을 먹었다면, 그 맛과 남아있는 치약 맛이 섞여서 괴상한 맛을 자아냈을 수도 있다.
이러면 완전히... 망한 것이잖은가.
‘미치겠네...’
왠지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한 것 같은 자신이 한심하다.
어이가 없어진 미유키는 저도 모르게 자신의 입술을 혀로 핥다가, 다시 한 번 민트 맛이 나자 저 혼자 깜짝 놀라버렸다.
“아 진짜...!”
답답한 마음을 육성으로 토해낸 그녀는, 침대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지그시 눈을 감았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
그래, 생애 처음으로 키스를 해본 느낌을 생각하자.
“.....”
미유키의 어깨가 달싹였다.
뺨이 발그레해지면서 체온이 마구 올라간다.
입꼬리가 자연스레 씰룩여지고, 안달이 나서 가만히 있질 못하겠다.
달콤하다.
현재 좋은 쪽으로 빠르게 뛰고 있는 맥박이 이러한 감상에 확신을 더해준다.
하지만 제대로 된 키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당황한 상태로 했기에 그런가보다.
멀쩡한 정신인 채로 한 번 더 해봐야 정확하게 알 것 같기도 하고...?
얼굴이 벌개진 채로 여러 상상을 해보던 미유키는, 돌연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우린 무슨 사이일까...?’
마츠다와 함께했던 시간을 상기해보면, 일반적인 관계는 확실히 아니다.
키스까지 한 걸 보면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듯한데...
그렇다고 해서 본격적으로 사귀는 사이도 아닌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마츠다는 자신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연인들은 어느 한 쪽이 고백을 한 뒤에 사귄다.
물론 자연스럽게, 아무런 말도 없이 커플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소수고, 대부분은 고백이 필수요소다.
제 할 말은 다 하는 마츠다가 좋아한다는 고백을 무서워하는 건 절대 아닐 텐데...
자신이 어떠한 마음을 갖고 있는지 헷갈려하는 건가?
자신 또한 마츠다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긴 한데...
문제는 이것뿐만이 아닌 것 같다.
가장 먼저 떠오른 문제는 호칭.
자신은 테츠야에겐 이름을 부르고, 마츠다에겐 성씨를 부른다.
그것을 옆에서 봐온 마츠다는, 아직 자신과 충분히 친밀해지지 않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날 갖고 놀고 있는 건가...?’
마츠다는 키도 크고 잘생겨서 여러 여자와 어울렸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애초에 방탕하게 살아왔던 그가 자신을 심심풀이로 생각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 왠지 비참해진다.
이런 과한 망상까진 하지 말자.
어쨌건 미끼를 확실하게 던져줘야 입질이 오듯, 요는 자신의 애매한 태도인 것 같았다.
일단 오늘은 마츠다와 놀러가기로 했으니까, 그와 함께 있으면서 반응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반응이 괜찮으면...
괜찮으면...
‘아 몰라...! 일단 가자...!’
철컥...
혼란스러운 상태의 머리를 마구 털어내며 침대에서 내려오려던 미유키는, 경첩이 풀리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오자 소스라치게 놀라선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그에 도둑마냥 살금살금 들어오려던 카나가 경기를 일으켰다.
“아아악!! 뭔데!? 뭐야!?”
눈앞에 나타난 사람이 자신의 언니임을 확인한 미유키가 버럭 화를 냈다.
“아 언니! 왜 노크도 없이 들어오는데!!”
“아니... 너 자고 있는 줄 알았지...”
“자다니...? 지금 시간에...?”
“응. 마츠다 군이 그러던데? 네가 피곤해 보여서 혼자 내려왔다고?”
“아...”
키스를 끝내고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던 자신 때문에 내려간 모양이다.
딱밤은 그래서 때렸구나. 말을 해도 반응이 없으니까.
놀란 마음을 다스린 미유키가 물었다.
“마츠다 군은? 아빠랑 얘기하고 있어?”
“아니, 갔어.”
“뭐...? 왜...?”
벙 쪄버린 미유키.
그런 그녀를, 카나가 이상한 사람을 보듯 하며 대답했다.
“뭘 왜야. 내려온 후에도 한 시간동안 있었는데, 돌아갈 만도 하지.”
한 시간...?
벌써 그렇게나 지났다는 말인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멍을 때리고 있었다고?
미치겠다.
‘그렇다고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
놀러가기로 했으면서...!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
물론 자신의 현 상태를 살피고 배려를 한 것이겠지만... 따져야겠다.
따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숨을 푸욱 내쉰 미유키가 물었다.
“언니는 왜 온 건데...?”
“책 빌리려고. 저번에 보던 소설책 있지?”
“있어. 책장 왼쪽 구석에.”
“가져간다?”
“응.”
“마츠다 군한테는 너 일어났다고 연락해둘게. 걱정 많이 하더라.”
“알았어...”
힘없이 대답하며 침대에 다시 누우려던 미유키는, 머릿속을 스치는 어떠한 생각에 고개를 홱 들었다.
“연락이라니...? 언니가 마츠다 군한테 어떻게 연락을 해?”
“아... 전화번호 받았거든.”
휴대폰을 손에 든 채로 자랑하듯 흔드는 카나.
미유키의 얼굴 근육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언니가 왜 마츠다 군의 전화번호를 받아?”
뭔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하나도 모르겠다.
눈이 두 배는 더 커진 미유키의 모습을 보던 카나가 말했다.
“바다에서 멋있더라. 애가 행동력도 있고, 예의도 바르고... 그래서 연락해보려고 번호 받았어.”
관심이 생겼다는 건가?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
입을 떡 벌리고 있던 미유키의 정신이 확 돌아왔다.
“어, 언니가 딱 싫어하는 스타일이 마츠다 군인데...? 매너도 없고... 제멋대로에...”
“매너 좋던데? 말도 잘 듣고... 오늘 엄마, 아빠한테 하는 거 못 봤어?”
“그건... 그건 어른들 앞이니까 그런 거지...! 나한테는 막... 비아냥거리고... 맨날 놀리고...”
왜 자신의 입에서 마츠다를 향한 비판이 튀어나오는 걸까?
왜 언니에게 마츠다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각인시키려는 거냐고?
대체 뭐가 두려워서?
이러면 완전 찌질해 보이고, 여우같잖은가.
스스로가 한심해서 죽겠다.
“그건 장난으로 그러는 거지. 하긴, 넌 매사에 진지하니까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다.”
죄책감이 그득한 말을 하였음에도 씨알조차 먹히지 않고 있다.
이러면 보람도 없고... 마츠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아린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전화번호는 왜 주고 난리야...!’
“아무튼 책 고마워. 잘 읽을게.”
속으로 마츠다를 향해 꿍얼거리던 미유키가 카나의 말을 듣고는 손을 쫙 뻗었다.
“.... 생각해보니까, 그거 내가 읽을 거였어. 다시 줘.”
못마땅해져선 고약한 심보를 부리는 미유키.
카나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뭐래...? 줬다 뺏는 게 어디 있어?”
“아직 준 거 아닌데? 빌려주려고 했던 건데?”
“유치하게 왜 이래...? 네가 애야?”
“아무튼 줘.”
“지금 읽을 거 아니잖아.”
“지금 읽을 거야. 나 심심해.”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켠 카나는, 미유키의 앞에 책을 휙 던졌다.
“됐냐?”
책을 들고 첫 장을 편 미유키가 카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응. 이제 나가. 나 집중해야 돼.”
“참내... 어이가 없어서...”
투덜거린 카나가 방에서 나가자, 미유키는 책을 베개 옆에 던지듯 놓아놓고는 뒤로 벌러덩 누웠다.
성질이 막 뻗친다.
분위기를 잡고 자신과 키스를 할 땐 언제고...
카나가 번호를 달라니까 좋다고 줬다?
그저 여자라면 다 좋냐?
이 바보 같은 마츠다야?
마츠다의 입장에서, 키스는 아무 사람하고도 할 수 있는 가벼운 행위였나?
제 버릇 개 못 준 거야?
날 갖고 논 게 사실이었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막말로 카나가 마츠다에게 관심을 보인 건, 그가 보여주었던 태도 때문이다.
만약 마츠다가 예전처럼 안하무인이었다면, 카나는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우리 가족과 만날 수조차 없었겠지.
지가 누구 때문에 그렇게 변한 줄도 모르고...
“기가 막혀서 진짜...!”
머리에선 사정을 먼저 들어보라고 하고 있는데,
가슴에선 마츠다를 용서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미유키는 가슴 쪽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인상을 마구 구긴 미유키는 곧바로 휴대폰을 챙겼다.
그렇게 집을 뛰쳐나가려던 그녀는, 베개 옆에 놓인 책을 보고는 멈칫했다.
“.....”
보지도 않으려던 책을 달라고 강짜를 부렸던 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그녀는 결국 책을 카나의 방 앞에 놔두고, 두어 번 노크를 한 뒤에야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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