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마츠다 군이 아니라, 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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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다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던 미유키는, 그의 등을 몰래 낱낱이 살펴보았다.
흰색 제복 와이셔츠 안으로 잔근육이 얼핏 보이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절로 듬직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널따란 등이다.
‘.....’
분명히 예전까지만 해도 마츠다가 정말 보기 싫었고, 과장 좀 보태서 퇴학이라도 당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그런 그와 이런 관계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감회가 새롭다.
미유키는 자신의 입술을 꾸욱 꾹 눌러보았다.
교실 안에서의 두 번째 키스.
그저 입술만 맞부딪친 채로 십여 초간 가만히 있던 게 끝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솔직히 첫 키스보다 달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때와는 달리 준비된 상태에서, 자신이 직접 마츠다의 입술에 키스를 했으니 제대로 된 느낌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안 것 같은 느낌이다.
또 하고 싶은데... 오늘은 끝인가?
혹시 집에 데려다줄 때, 마츠다가 작별의 키스를 하자고 하지는 않을까?
마츠다의 뒷모습을 흘끗흘끗 바라보던 미유키가 흠칫하며 제자리에 우뚝 섰다.
망측한 생각을 해버린 자신에게 어이가 없어져서였다.
맨날 마츠다에게 변태, 변태 거렸는데, 이러면 오히려 자신이 변태 같잖은가.
‘미치겠네...’
속으로 자신을 타박한 미유키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퍽.
“악!”
마츠다의 등에 이마를 박고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제법 강하게 부딪쳤기에, 미유키의 균형이 일순 무너졌다.
뒤로 넘어지려고 하는 그녀.
그런 미유키의 팔을 엄청난 순발력으로 잡아챈 마츠다의 미간이 약간 좁혀졌다.
“뭐하냐? 정신줄 놨어?”
자신을 똑바로 세워준 마츠다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한 그녀가 대답했다.
“마, 마츠다 군이야말로 왜 멈춘 건데...?”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왜 틱틱거리는 투정이 튀어나오는지...
감정표현이 서툴러도 너무 서투르다.
이런 자신을, 마츠다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탈의실 도착했으니까.”
“아... 벌써...?”
“가까운 거린데 당연히 빨리 도착하지. 바보냐?”
“.... 몰랐어...”
마츠다의 코에서부터 짧은 바람이 새어나왔다.
가벼운 웃음을 터뜨린 그가 말했다.
“너도 얼른 갈아입어라. 나 들어간다.”
저리 말한 마츠다의 입꼬리가 양옆으로 쭈욱 찢어졌다.
주변이 밝아질 듯한 시원한 미소다.
요즘 마츠다와 있다 보면 저런 미소를 자주 본다.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
저 미소를 자신에게만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일까?
“응... 늦지 마...”
“왜 혼자 갈 것처럼 말하냐? 먼저 옷 갈아입고 기다릴 테니까 천천히 나와라.”
가만 보면 마츠다는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도 자신이 바라던 말을 해주고 있잖은가.
성격은 정반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심하지만...
왠지 자신과 마츠다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응...”
“소심해가지고...”
미유키의 앞머리를 큼지막한 손으로 살살 눌러준 마츠다는, 곧 남자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가 만졌던 자리에 자신의 손을 올린 미유키는, 홍조 띤 얼굴로 마음의 소리를 내뱉었다.
‘좋아해, 켄 군.’
그저 마음속으로만 말했을 뿐임에도 심장이 쿵쾅거린다.
시야가 좁아지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저걸 실제로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마츠다의 입에서 저 말이 나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예상이 전혀 가지 않아서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있다.
미유키는 부디 마츠다가 이번에도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 주길 바라며,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스리면서 여자 탈의실로 향했다.
**
“저는 잠깐 새로 들인 비품을 체크하러 가볼 테니, 마츠다 후배님께선 죽도를 잡은 채로 밀어걷기를 하고 계세요.”
“같이 가죠?”
“마츠다 후배님은 지금 진도가 많이 늦은 상태에요. 오늘부터는 연습량을 늘릴 생각이니까, 저는 걱정하지 말고 후배님은 훈련을 하도록 해요. 제가 발동작을 연습할 땐 뭘 중시하라고 했죠?”
“자연체요.”
만족스레 고개를 주억거린 치나미가 다리를 뽈뽈 놀리며 사라졌다.
말랑콩떡이 움직이는 것 같아서 귀엽네.
실없는 웃음을 터뜨린 나는 죽도를 잡고 허공에 겨누었다.
그 상태에서 내가 나아갈 방향의 발을 먼저 움직이고, 다른 발을 끌어당기며 밀어걷기 연습을 했다.
혼자 이러고 있자니 약간 미친놈이 된 기분이다.
그렇게 몰래, 열심히 연습을 하고 있는데,
“죽도가 흔들리고 있잖아. 중심 똑바로 잡아야지.”
뒤에서부터 렌카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찔한 척한 내가 죽도를 회수하려고 하자, 렌카가 괜찮다는 듯 말했다.
“치나미한테 다 들었어. 따로 널 가르치고 있다고. 감독님한테만 걸리지 않게 조심해.”
“아, 예...”
“며칠 못 가서 그만둘 줄 알았는데, 의외네?”
네가 날 마음에 품기 전까지는 그만두라고 해도 버티고 있을 거다.
“그냥 뭐...”
말끝을 흐린 나는 연습을 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렌카가 내 맞은편으로 오더니 팔짱을 꼈다.
“자세 잡아봐. 잠깐 봐줄게.”
“예.”
“죽도의 선혁 부분은 명치에, 칼자루부의 끝은 단전에 위치하도록 해봐.”
“이렇게요?”
“맞아. 거기서 엄지랑 검지는 어디까지나 중심을 보조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해. 이 세 손가락으로만 힘을 주는 거야.”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고, 나머지 세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는 렌카.
대충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그녀의 말대로 했다.
“좋아. 거기서 자세 유지하고... 밀어걷기 시작해.”
렌카가 지켜보는 앞에서, 나는 상하좌우 밀어걷기를 다시 시도했다.
열정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저 딱 적당히, 렌카가 거슬려하지 않을 정도의 열의만 보였다.
‘마츠다 켄은 실력은 뛰어나지만 대회 참여에 열의가 없고, 부활동을 그냥 시간 때우기 정도로 생각한다.’
렌카가 날 이렇게 평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뒤에서는 진짜 열심히 연습해서, 대회에 참가시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성장할 거다.
이렇게 스택을 쌓고 쌓다가, 어느 날을 기점으로 빵 터뜨린다.
날 향한 렌카의 평가가 완전히 뒤집히도록 말이다.
강렬한 이미지 변신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법이지.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구상해놓은 나는, 치나미가 올 때까지 렌카의 앞에서 쇼를 해댔다.
**
부활동을 끝낸 테츠야와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면서 미유키를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부터 가슴팍에 학생회 뱃지를 단 그녀가 우릴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왔어?”
밝게 미유키를 맞이하는 테츠야.
미유키는 자동차 본 네트에 앉아있는 날 흘끗 살피더니, 테츠야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응. 근데 테츠야 군, 왜 자꾸 팔을 만지고 있어? 어디 아파?”
“아... 오늘 부활동 시간에 머리치기를 배웠거든. 죽도를 계속 휘두르다보니까 근육이 조금...”
“케... 음... 마츠다 군한테 맞은 게 아니라?”
켄 군이라고 하려 했던 것 같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지... 아깝다.
아쉬운 마음을 달랜 나는 인상을 팍 구겼다.
“이걸 확...”
한손을 들어 올리며 위협하는 척을 하자, 헤실헤실 웃은 미유키가 테츠야에게 말했다.
“살살하지 그랬어. 내일 알 배기겠다.”
“그러게... 운동 좀 해둘 걸 그랬나봐. 나 마사지해주면 안 돼?”
테츠야의 부탁에, 미유키가 순간적으로 내 눈치를 보았다.
이윽고 곤란한 얼굴을 한 그녀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오늘 무거운 거 나르느라 힘들었어. 미안해.”
“그럼 내가 팔 주물러줄까?”
“아냐. 마음만 받을게. 얼른 가자. 마츠다 군이 화내겠다.”
미유키는 테츠야의 말을 그냥 웃어넘겨버리고 차에 탔다.
오늘따라 예쁜 짓을 많이 하는데, 보답으로 팬티에 딜도를 넣어줘야지.
그 상태에서 수업 듣자. 괜찮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타고는 안전벨트를 매는 그녀.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테츠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딱히 왜 또 조수석에 타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아마도 저런 말을 하면, 자신이 굉장히 찌질해 보인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이번엔 눈치를 챙기긴 한 것 같은데... 이미 늦었다.
속으로 테츠야를 한껏 비웃어준 나는, 놈이 뒷좌석에 타자마자 차를 출발시켰다.
화기애애.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차 안에서, 우리 세 사람은 여러 대화를 나누며 테츠야의 집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놈이 조수석으로 가더니, 미유키에게 말했다.
“오늘 밤에 산책할 거지?”
“산책? 응, 하자.”
“알았어. 전화할게. 오늘도 고맙다, 마츠다.”
이어서 내게 인사를 건네는 테츠야에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놈이 집으로 걸음을 옮기자마자 악셀을 밟았다.
그러자 미유키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물었다.
“우리 그저께 영화 보기 전에, 상영관에서 하야토 주연으로 나오는 코미디 영화 광고했었잖아?”
“어.”
“그거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
쯔쯔... 미유키야.
내가 인생 살아가는 법을 좀 알려줄게.
만약 영화 예고편에 누구누구의 [유쾌한 반란]이라는 단어가 나오잖아?
그럼 그 영화는 십중팔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반 정도의 확률로 똥이란다.
그리고 네가 언급한 그 영화의 예고편엔, 오프닝부터 그 단어가 튀어나왔어.
딱 봐도 재미없어 보여.
하지만 네가 정 보고 싶다면... 참고 봐줄 수는 있지.
난 널 정말 사랑하니까.
“보고 싶은가보네?”
“그런 건 아니구... 시간 남을 때 보러 가면 어떠냐는 거지...”
“날짜 잡아보든가 그럼.”
“알았어... 그럼 갈게...? 태워줘서 고마워...”
자신의 집에 도착하자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안전벨트를 푸는 미유키.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가 말했다.
“야.”
“응?”
“오늘 무거운 거 날랐다며. 팔 주물러줄까?”
나는 미유키의 어깨가 눈에 띌 정도로 달싹이는 것을 보았다.
눈치챘구나. 내가 테츠야의 말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것을.
잠깐 눈을 데구르르 굴리던 그녀는,
스윽.
날 향해 수줍은 듯 팔을 내밀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은 나는, 그녀의 얇은 손목을 잡아 손바닥에서부터 팔목까지, 적당한 지압으로 꾹꾹 누르며 올라갔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미유키의 몸은 따뜻하다.
빨리 꼭 껴안고 자고 싶어.
묵묵히 팔을 주물러주던 내가 물었다.
“시원하냐?”
“.... 응... 시원해...”
목소리가 미세한 떨림을 발하고 있다.
설레어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관계가 더욱 깊어지면 자동차 영화관에 가도 되겠다.
차를 스크린과 등지도록 세우고, 트렁크 안에 나란히 누워 영화를 보는 거지.
그러다가 분위기가 달아오르면... 이런저런 일도 하고.
적당히 마사지를 끝낸 나는, 다 됐다는 뜻으로 미유키의 손목을 살살 풀어주었다.
“됐다. 들어가라.”
“아... 그... 저녁이라도 먹고 갈래...? 엄마 아빠한테 인사도 할 겸...”
“다음에.”
“.... 왜? 불편해서 그래...?”
“그게 아니라, 미리 말도 안 했는데 불쑥 찾아가면 실례잖아. 조만간 찾아봬도 되냐고 오늘 들어가서 여쭤봐.”
“아, 알았어... 약속했다?”
“어.”
반색한 미유키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가방끈을 양손으로 붙잡은 그녀는,
“잘 가... 켄 군.”
날 돌아보며 아까 미처 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더니, 차에서 내려 문을 조심스레 닫고는 언제나 무거운 자신의 가방을 꼭 껴안고 집을 향해 도망치듯 달려갔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이름을 들은 나는 잠깐 가만히 있었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면서, 허둥지둥 현관문을 열려는 미유키가 보인다.
열쇠를 땅에 떨어뜨리고는 깜짝 놀라선 쪼그려 앉는 그녀.
부끄럽기가 짝이 없어 보이는 저 행동 덕분에 정신을 차린 내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마츠다 군이 아니라, 켄 군이 됐네?
미유키의 성격상 매일 이름으로 부르지는 않겠지만, 가끔은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용기를 내줘서 고맙다.
다음엔 경칭은 빼고, 그냥 켄이라고 불러주길 기대할게.
무척이나 다급해 보이는 미유키의 모습을 감상하며 연신 피식거리던 나는, 결국 현관문을 여는데 성공한 미유키가 잽싸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 브레이크에서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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