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성적 호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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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집 앞을 매일 지나갔는데, 어떻게 널 처음 보는 거지?]
TV에서 들려오는 남자 배우의 대사.
로맨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미유키는 저 대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겨를이 없다고 해야 옳았다.
마츠다의 허벅지 위에 두 다리를 올려놓은 채, 그와 진한 입맞춤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녹차 라떼의 달달한 맛, 우유의 고소한 맛이 입 안에서 느껴진다.
입 안으로 들어온 따뜻하고 촉촉한 무언가.
그것은 꽉 닫혀있는 윗니와 아랫니 사이를 꾸욱 누르며 벌리려고 했지만, 이내 머리를 돌려 자신의 이빨과 잇몸을 더듬고 있다.
훅...!
마츠다의 후끈한 콧바람이 인중과 입가를 간지럽힌다.
그 온기에 영향이라도 받는 건지, 몸이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걸까?
모른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서로의 얼굴이 가까워졌던 것 같다.
사실 자신은 상황이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했다.
그에게 오늘 복합 카페에 가자고 했을 때부터 말이다.
어쩌면 자신은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이런 일이 발생하길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고 마츠다의 혀를 받아들이는 걸 보면 말이다.
톡.
윗입술 안쪽의 말랑한 부분을 건드리는 혀.
입 안을 유린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
마츠다의 코가 너무 오똑해서 자꾸 뺨에 닿는데, 그 느낌도 좋은 것 같다.
그나저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적 호기심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점점 성에 눈을 떠가는 느낌인데... 정상적인 흐름일까?
아니면 그냥 자신이 변태일까?
후욱...!
참아왔던 숨을 코를 통해 뿜어낸 미유키는, 키스를 주도하고 있는 마츠다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궁금해졌다.
하여 슬쩍 실눈을 떴다.
“.....”
미간을 구기고 있는 마츠다가 보인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얼굴.
왜 저러는 걸까? 혹시 가만히 있는 자신이 별로인가?
입을 꽉 닫고 있었나? 그냥 벌려야하나?
아니면 조금 적극적으로 나서볼까?
‘하, 하지만 방법을 모르는데...’
미유키의 마음에 불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싹트려고 할 때, 그녀는 보았다.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라간 마츠다의 손이 꽉 쥐어졌다 펴졌다하는 것을.
불안해하고 있는 건 아닐 테고... 왜 저러는 거지?
마츠다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읽어내고 싶다.
라고 생각하던 미유키는, 마츠다의 손이 자신의 허리춤으로 오려다가 멈칫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제야 그녀는 마츠다가 왜 저런 반응을 보여주는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키스를 하면서 미유키 자신의 몸을 만지고 싶은 유혹을 참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이 불편해 할까봐, 혹시라도 깜짝 놀랄까봐.
음흉하다. 그러나 기특한 마음이 더 크다.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이성이 앞선다는 건, 자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뜻.
그래서 너무 좋다.
질투도 났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츠다는 분명히 여러 여자를 만났다.
다른 여자와 키스를 할 때 몸을 막 만졌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니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냐...’
질투에 미친 사람처럼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말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
마츠다가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자신만큼은 특별하게 대해주고 있다고.
스스로를 질책한 미유키는 다시 눈을 감고,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꽉 닫아버린 이빨을 살짝 벌렸다.
그러자 간만 보고 있던 마츠다의 혀가 확 들어와, 미유키의 혀와 부딪쳤다.
마치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던 것만 같은 그 기세에, 미유키의 몸이 눈에 띌 정도로 움찔했다.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각에 놀란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이빨을 닫아버렸다.
콰악.
마츠다의 혀가 들어와 있는 상태인 것을 감안하지 못하고 말이다.
“읍...!”
마츠다의 입에서부터 짧게 튀어나온 고통스런 신음.
동시에 그의 혀가 미유키의 이빨을 긁으면서 쏙 빠져나갔다.
“....?”
갑작스레 끝나버린 키스에 의아함을 느낀 미유키의 눈이 뜨였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입가에 손을 가져간 채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마츠다를 보며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렸다.
“아...!”
정신이 번쩍 든 그녀가 재빨리 마츠다의 상태를 살폈다.
“미, 미안해...! 괜찮아...?”
마츠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들썩거리며 킥킥거리기만 했다.
저건 분명히...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리라.
“미안... 진짜 미안해...”
얼굴이 거의 울상으로 변해선 연신 사과를 하는 미유키.
그녀를 보며 씨익 웃은 마츠다가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맨날 바보, 바보 거리더니, 정작 바보는 너 아니냐?”
목소리를 들어보니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웃었던 건 아마도 어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마냥 귀엽게 느껴서인 것 같았다.
미안했고, 쪽팔렸고, 한심했다.
키스를 하다 혀가 잘린 사람도 있다던데... 그렇게 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난 괜찮으니까, 영화나 마저 보자.”
귓가를 간지럽히는 중후한 목소리에, 미유키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는 대답했다.
“응...”
어깨를 축 늘어뜨린 미유키는 TV로 눈을 돌렸다.
영화 내용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배우들이 뭐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집중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좋았던 분위기가 와장창 깨져버려서 기분이 꿀꿀하다.
다음번엔 무조건 가만히 있어야지...
다짐의 다짐을 거듭한 미유키는 마츠다를 흘끗 올려다보았다.
입이 막 좌우로 움직이는데, 입 안에서 혀를 이리저리 굴려보고 있는 것 같다.
아직까지 아픈 모양인데...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진다.
‘망했어...’
속으로 기다란 한숨을 내뱉은 미유키는, 딸기 스무디를 쭈욱 들이켜며 발가락을 마구 꼼지락거리는 것으로 심란한 마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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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는 내 혀를 깨문 것을 사죄하기라도 하듯,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내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손톱으로 손등을 꾸욱 꾹 누르더니 십자 모양을 만들기까지 했다.
그 수가 벌써 다섯 개.
그녀 나름의 사과, 애정표현 같은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운전에 제대로 집중을 못하겠다.
“한손으로 운전한다고 뭐라 할 땐 언제고...”
“.... 그냥... 다 와 가니까...”
“내일도 문화제 회의 하냐?”
“응... 학생회 끝났다가... 왜? 어디 가려구?”
“아니, 기다리려고.”
“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그러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래...?”
미안하니까 먼저 가라는 말은 하지 않는구나.
나랑 같이 가고 싶은 마음이 큰가보다.
점점 내게 빠져가는 미유키를 볼 때마다 열정이 마구 솟아난다고 해야 할까?
온몸이 의욕으로 충만해지는 느낌이다.
“근처 마트에서 먹거리 사고 있을 테니까, 끝나면 전화해.”
“알았어... 근데... 아직도 혼자 있을 때 간장계란밥 같은 거 먹어?”
“어.”
“건강에 안 좋다고 몇 번을 말했는데... 그거 좀 안 먹으면 안 돼? 편의점에 도시락 팔잖아...”
“가라아게 도시락도 자주 먹지.”
“그런 거 말고... 건강한 도시락을 말하는 거야.”
“건강한 건 맛이 없어.”
기가 찼는지 콧방귀를 끼는 미유키.
여전히 내 손을 꼭 붙들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그래도 먹어. 그러다가 몸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미유키는 내게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할 땐, 예전의 모습처럼 당당하다.
지금도 그렇다.
높아진 목소리 톤으로 날 타박하고 있다.
“사람 몸은 쉽게 안 망가져.”
“그렇게 방심하면 어느 순간 엄청 아플 때가 올 거야.”
“너 지금 나한테 저주라도 걸고 있는 거냐?”
“저주가 아니라 걱정이지, 이 바... 힉!”
미유키의 몸이 마치 발작이라도 하듯 달싹였다.
내 손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으로 쏘옥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던 미유키가 자세를 고쳐 앉다가, 다리가 약간 벌어져서 생긴 일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마치 럭키스케베 같은 우연이라는 거다.
제복 치마가 눌리면서 그녀의 다리 라인이 드러나고 있다.
길다, 그리고 요염하다.
제복으로 덮여있어서 그런가?
해수욕장에서 맨다리를 봤을 때보다 더 만족스럽다.
그녀의 안쪽 허벅지가 내 손을 누르는 건 덤.
내게 뜻밖의 포상을 준 미유키는,
“.....”
그저 눈만 끔벅거리며 허벅지 안으로 들어간 손을 보고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니 어지간히 당황한 것 같았다.
조금 도와줘야지.
“깍지 풀어봐.”
“.... 어...? 응?”
“깍지 풀어보라고. 네 손이 누르고 있어서 못 빼잖아.”
“아...! 응... 그럴게...!”
허겁지겁 손을 푼 그녀가 멀뚱멀뚱 날 쳐다보았다.
왜 안 빼고 있느냐고 묻는 듯한 얼굴.
짓궂은 미소를 지은 나는, 미유키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면서 손을 빼냈다.
“흐익!”
이런 내 행동에, 미유키가 거의 까무러칠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였다.
온몸에 전류라도 흐르는 듯 몸을 부르르 떤 그녀가 내게 따졌다.
“마, 마츠다 군!! 이러려고 깍지 풀라고 했지!?”
“어.”
“.....”
앙칼진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얼빠진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는 그녀.
냅다 인정을 해버리니 할 말을 잃어버렸나보다.
그런 그녀를 향해 히죽 웃어 보인 나는, 양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조용히 차를 몰았다.
그렇게 서로 미유키의 집에 도착했을 때,
여태까지 아무 말도 없던 미유키가 안전벨트를 풀더니 말했다.
“내일 부활동 끝나고 도서관에 가서, 오늘 배웠던 거 복습하고 있어...”
허벅지를 만졌던 건 그냥 넘어가주려는 눈치.
변태 같다고, 앞으론 그러지 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다.
아까 카페에서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
“1시간만 기다린다.”
“아까는 기다린다고 했잖아. 그냥 가기만 해봐...”
“그냥 가면 어쩔 건데? 혼이라도 내려고? 아까처럼?”
말을 마친 내가 혀를 내밀어 미유키가 깨물었던 일을 강조하자, 그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 그건 혼낸 게 아니라...!”
“그럼 뭔데?”
“.... 마츠다 군은 언동이 왜 이렇게 경박해? 그러면 즐거워...? 재미있어?”
네가 너무 리액션이 찰지니까 나도 모르게 놀리고 싶어지는 걸 어떡하니.
화가 나고 약도 오르지만 성격은 착해서, 날 꼬집거나 때리지도 못하는...
할 줄 아는 욕이 고작 ‘바보’ 하나밖에 없는 네가 너무 좋다.
“미안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사과하자, 미유키가 입을 우물거리더니 기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진짜 한결같아... 나 갈게... 태워줘서 고마워...”
“조심히 들어가.”
“코앞이 집인데 조심할 게 뭐가 있어...”
지금도 봐봐. 자꾸 놀릴 각을 주잖아.
저번처럼 열쇠를 떨어뜨리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참아준다.
날 흘겨보며 새침한 투로 말한 미유키가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날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왜.”
“그냥... 조심히 들어가라구...”
“내가 했던 말인데?”
“나도 하고 싶어져서... 이제 진짜 갈게...”
힘없이 작별인사를 건넨 미유키는 조수석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내려서 달래줘야겠다.
덜컥.
운전석 문을 연 나는, 곧바로 차에서 내려 미유키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난데없는 소리가 들려오자 뒤를 돌아본 그녀의 눈이 커지고 있다.
그런 미유키에게 다가간 나는 예고도 없이 그녀의 정수리를 붙잡고 끌어와,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이후 아무런 말없이 그녀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 뒤, 차에 타고 집으로 향했다.
차가 멀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미유키가 사이드 미러 한가운데에 잡힌다.
산발이 된 머리도 퍽 어울리네.
내일은 집에서 밥해달라고 해봐야지.
내 건강이 그렇게 걱정되면 해줄 수도 있는 거잖아?
그치? 미유키? 믿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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