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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46화 (46/313)

〈 46화 〉 풋풋한 설렘, 묘한 고양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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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박.

후끈한 물을 어깨에 치댄 미유키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탕 안에서 노곤한 표정을 지었다.

실내 노천탕까지 있는 집은 처음 보는데...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자그마한 미닫이 창문으로 담장밖에 보이지 않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좋은 노천탕이었다.

마츠다는 웬만해선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런 좋은 곳을 가만 놔두다니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하아...”

나른한 한숨을 내쉰 미유키는 아까 일어났던 일을 생각해보았다.

자신의 골반과 허리를 쓰다듬으며 키스를 하던 마츠다 때문에, 너무 놀라서 카페에서처럼 혀를 깨물어버릴 뻔했다.

그 뒤엔 간질간질한 느낌과 함께, 몸이 확 달아오르면서 묘한 흥분감이 찾아왔었다.

낯선 감각이었지만, 기분이 꽤...

‘좋았던 것 같아...’

마츠다가 자고 가라고, 외롭다고 말하며 자신을 껴안은 뒤에 따뜻해서 좋다고 말했을 땐...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면서 가슴이 설렜다.

그 이후 마츠다가 자신의 엉덩이에 손을 가져가자 그런 설렘이 확 깨져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마츠다 군...! 뭐해애...!】

【미안, 미안.】

언성을 조금 높이며 따지자, 능글맞음 반, 진심 반이 섞인 목소리로 사과를 했던 마츠다.

당시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려보던 미유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긴장 같은 게 전혀 안 되나...?’

자신은 키스를 할 때 온몸이 굳을 정도인데, 마츠다는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막... 더듬는다.

저번엔 유혹을 참아내는가 싶더니, 이제부터는 슬슬 발동이 걸리는 건가?

남자들이 원래 이런 건지, 아니면 마츠다가 특별히 밝히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가만 보면 웃기기도 했다.

둔부에 남자의 손길이 닿은 건 처음인데도 이렇게나 침착할 수 있다는 게.

그만큼 자신이 마츠다를 믿고 있다는 방증이겠지.

그리고 자신의 마인드가 점점 오픈되어가고 있는 듯한데... 좋은 징조인지 아닌지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

투둑. 투두둑.

탕에서 몸을 녹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미유키는 굳게 닫혀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많이 오네...’

벽면에 닿아 발생하는 투둑거리는 소리가 마치 백색 소음 같다.

절로 안정이 되는 느낌.

그러나 마츠다만 생각하면 생체리듬이 마구 널뛴다.

불량한 학생이었던 그가, 자신의 조언을 따라주며 변해가는 게 좋다.

다소 독불장군 기질이 보이긴 해도, 자신을 위하는 게 눈에 보여서 좋다.

낯설기 그지없었던 이성 관계에 점점 눈을 뜨게 되는 것도 즐겁다.

그냥 마츠다와 함께하면 즐겁다.

그런 생각을 하던 미유키는, 저도 모르게 온갖 감정이 함축되어있는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미치겠네...”

우우웅­!

“허억!”

그러다가 탕 벽에 붙어있는 휴대폰 거치대, 그곳에 들어가 있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화가 오고 있다. 발신자는 엄마다.

늦은 시간까지 돌아오지 않아 걱정을 하고 있는 듯했다.

황급히 탕에서 나와 수건으로 손을 닦은 미유키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벌써 여덟 시 반이 다 됐는데 연락은 왜 안 하는 거니?

“미, 미안... 친구랑 노느라... 근데 엄마, 비 많이 오는데 우리 집은 괜찮아?”

­응. 괜찮지 그럼.

“창문 닫아놨지?”

­당연하지. 얼른 들어와. 10시부터 비가 더 심하게 내린대.

비가 내리는 날 특유의 꾸릿한 날씨는 운치가 있긴 하지만, 외로움도 함께 가져다준다.

그리고 마츠다의 집은, 창문을 겸하는 문을 닫아놓아도 방음이 잘 안 된다.

가뜩이나 외롭다고, 자고 가라던 그인데...

비가 지금보다 더 심하게 내리는 늦은 밤에 홀로 누워있다 보면 무척 힘들어할 것 같았다.

‘자고 가는 게 맞을까...?’

제안을 하며 자신을 꼭 껴안은 마츠다의 목소리엔 행복감, 그리고 충족감이 서려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 안엔 어떠한 성적 욕구도 없었다.

물론 이후 자신의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려 하긴 했지만, 적어도 따뜻해서 좋다고 말할 땐 순수했다.

‘어쩌지...’

마츠다에게 믿음은 있었다.

그러나 예고도 없이 확 들어온 제안이라서 머뭇거려졌다.

­미유키? 듣고 있니?

“아, 응... 그...”

말끝을 흐린 미유키는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심정이 뭔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는 곧 결론을 내렸다.

껄끄러움보다는, 그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렇다면 된 것 아니겠는가?

이런 파격적인 답을 내리는 자신이 정녕 하나자와 미유키가 맞나 의심스럽긴 한데, 지금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충실하는 게 맞다고 본다.

짧은 시간에 생각을 모두 정리한 미유키가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친구 집에서 자고 갈게.”

­친구? 누구?

미유키는 일순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마음의 결정은 내리긴 했지만, 어머니한테 말하는 건 다른 영역이다.

마츠다의 집에서 잔다고 말하면, 어머니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두렵다.

친구 집에서 외박을 한 적은 많다.

그러나 모두 동성 친구의 집이었지, 남자의 집에서 잔 적은 전혀 없었다.

가장 오래 알고 지낸 테츠야의 집에서도 마찬가지.

항상 늦기 전에 돌아갔었다.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나이라고는 해도, 남자와 함께 잔다는데 걱정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진짜 친구들의 이름을 얘기하기도 그랬다.

어머니는 자신의 친구들을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거짓으로 말한다 하여도 어머니가 사실 확인 겸 전화를 하지는 않을 테지만, 그래도 마음에 찜찜함이 남는 건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재빨리 머리를 굴린 미유키가 대답했다.

“아카데미에서 새로 사귄 친구야.”

­새로 사귄 친구? 고작 한 학기동안만 알던 친구일 텐데 실례 아니야?

“엄청 친해져서... 그리고 친구가 먼저 자고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어...”

친해진 것도 맞고, 먼저 제안을 받은 것도 맞다.

그러니 거짓말은 아니다.

그렇게 최소한의 양심을 챙긴 미유키는,

‘제발 엄마가 친구를 바꿔달라고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어머니의 말을 기다렸다.

­그래? 그러면 지금은 친구 집에 있는 거니? 내일 아카데미로 바로 가게?

왠지 승낙해줄 것 같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미유키가 대답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집에 들를 거야. 제복 갈아입어야 되잖아...”

­하긴... 알았어. 그럼 얌전히 있다가 와. 여자들끼리 늦게까지 대화하다가 늦잠 자지 말고.

남자의 집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는 듯한 말이었다.

여태까지 정조를 지켜왔던 것이 빛을 발하는구나...! 라며 혼자 주접을 떤 미유키가 말했다.

“응. 그럴게.”

­친구 부모님한테 인사 꼭 하고, 나도 감사하다고 전해줘.

“싫어.”

긴장이 확 풀린 미유키의 애교 섞인 말투에, 미도리가 헛웃음을 켰다.

그에 헤픈 웃음을 터뜨린 미유키가 말을 이었다.

“농담이고, 꼭 전할게.”

­그래. 참, 마츠다 군은 잘 지내지?

움찔.

제 발등을 찍은 사람마냥 찔끔한 미유키.

침을 꼴깍 삼킨 그녀가 대답했다.

“잘 지내지... 근데 갑자기 마츠다 군은 왜...?”

­문화제 끝나고 밥 먹으러 온다는 게 생각나서 물어본 거야. 이번엔 나베로 먹을까? 나베 좋아한대?

어째 자신보다 엄마가 더 마츠다를 반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걔는 먹성이 좋아서 다 잘 먹어...”

­그래도 한 번 물어봐.

“알았어... 이만 끊을게.”

­응.

전화를 끊은 미유키는 탕에 더 들어가 있을까 하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는 샤워를 했다.

이후 욕실 문을 약간 열고 제복을 집어가려다가, 문 바로 옆에 있는 수납대 위에 티셔츠와 편한 트레이닝 반바지가 곱게 개어져있자 멈칫했다.

마츠다가 갖다 놓은 모양이다.

습해진 제복을 입으면 찜찜할까봐 배려를 해줬구나.

입가에 미소를 띠운 미유키는 티셔츠를 펴보았다.

사이즈가 엄청 크다. 이정도면 거의 무릎까지 덮을 것 같다.

현재의 마츠다가 입기에도 큰 사이즈인데, 혹시 옛날에 살이 많았나?

문득 그의 예전 사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티셔츠에선 마츠다에게서 자주 풍겼던, 은은한 시트러스 향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진 미유키는 부드러운 티셔츠의 감촉을 느껴보다가,

‘응?’

반바지 옆에 놓인 자그마한 플라스틱 상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후 상자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입을 떡 벌렸다.

그건 캐미솔과 햄 라인 팬티였다.

편의점에서 흔하게 파는 여자 속옷 말이다.

‘뭐야...? 뭔데...?’

이것도 배려일까?

아니면 다른 뜻이 있을까?

전자라고 생각하고 싶고, 고맙기도 하지만...

순하다고는 할 수 없는 마츠다가 사온 거라서 의중을 모르겠다.

멍하니 속옷 세트를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일단 옷가지들을 챙기고 다시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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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유키는 마츠다가 사온 속옷을 입었다.

안 입기엔 무척 꺼림칙했기 때문이었다.

브라를 찬 채로 자는 것도 불편하고... 그래서 그런 거다.

절대 마츠다의 계획에 동조하려는 게 아니다.

그리 생각한 미유키는, 티셔츠와 바지까지 입고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요에 몸을 뉘고 있던 마츠다의 고개가 위로 들렸다.

“왔냐?”

태연한 말투를 들어보니, 속옷은 그냥 배려였구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모르게 아쉽다는 생각도 든다.

발을 거의 끌다시피 하며 마츠다의 옆으로 향한 미유키는, 마츠다의 머리에 물기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샤워했어...?”

“어.”

“언제...?”

“너 샤워할 때 다른 욕실에서 했어. 자고 갈 거지?”

대답하기가 부끄럽다.

애꿎은 티셔츠 자락을 만지작거린 미유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응... 대신 새벽에... 한 다섯 시쯤 일어나서 집에 가야 돼...”

“그럼 일찍 자야겠네. 얼른 누워.”

“혹시... 같이 자려고...?”

“그럼 아니야?”

“아니, 뭐...”

솔직히 그럴 거라고 예상을 하긴 했는데, 막상 실제로 들으니 긴장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미유키는, 마츠다가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때리자 가식은 그만두고 머뭇머뭇 누웠다.

그리고는 마츠다를 똑바로 쳐다보며 당부했다.

“아, 아까처럼... 만지려고 하면 안 돼... 알았어?”

“껴안고 자는 것도 안 되냐?”

“껴안으면서 막... 이상한 짓 할 거잖아...!”

“무슨 이상한 짓?”

다 알면서 시치미를 떼는 모습을 보니 약이 오르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매번 저런 모습을 보면서 적응해왔기에 그런 것일지도.

“아무튼 안 돼...”

“농담이고, 그런 짓 안 하고 딱 껴안기만 할게.”

“.... 진짜야?”

“약속한다. 손가락 걸까?”

새끼손가락을 눈앞에 내미는 마츠다.

믿음직하면서도 뭔가 어린애 같다.

“불안한데에...”

미유키의 몸은 마츠다의 곁으로 가고 있었다.

겉으로 내뱉은 말과는 달리, 속으로는 마츠다를 신용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 그녀의 행동에 낮은 웃음을 터뜨린 마츠다가 말했다.

“창문은 안 닫는다? 빗소리 들으면서 자자.”

“마음대로 해...”

약간의 앙탈이 섞여있는 말투에, 마츠다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변했다.

가벼운 미소를 지은 그는, 미유키를 자신의 품으로 조심스레 끌어왔다.

그리고는 아까처럼 미유키의 정수리에 턱을 괬다.

‘따뜻해...’

마츠다의 품은 무척 포근했다.

절로 눈이 감길 정도로.

“졸려?”

고막을 낮게 울리는 중저음의 목소리에, 미유키의 몸이 얕게 부르르 떨렸다.

아까 느꼈던 그 묘한 고양감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모르겠어...”

툭. 툭.

애매한 대답을 들은 마츠다가 미유키의 등을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렸다.

그에 엄청난 편안함을 느낀 미유키는,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며 마츠다와 완전히 밀착했다.

“편해?”

“응...”

“다행이네.”

오늘따라 더욱 나긋하고 친절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유키의 눈이 서서히 감기면서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마츠다의 손은 어느 샌가 자신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복잡한 생각을 하던 머릿속이 비워지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지며 나른해진다.

잠이 오고 있다. 그것도 솔솔.

‘좋다아...’

이토록 건전한 스킨십은 매일매일 해도 될 것 같다.

‘우리가...’

우리가 이렇게 서로의 몸을 부대끼며 자는 사이가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마츠다와 자신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과 기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새삼 격세감이 느껴진다.

‘언젠가... 우리도...’

오늘보다 더한 스킨십을 할 날이 올 텐데...

그때가 되면 자신은 어떤 행동을 할까?

모르겠다. 전혀 감이 잡히질 않는다.

그냥 생각을 말자.

괜히 걱정거리를 쌓아두기보다는, 지금은 마츠다... 아니, 켄과의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하자.

“기분 좋아...”

금세 비몽사몽해진 미유키는, 자신의 속내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잠에 빠져들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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