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턱밑까지 잠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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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둑.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였다면 듣지 못할 정도로 미세한 소리였으나,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귀는 그 소리를 캐치했다.
마츠다의 품에 안겨 얕은 잠에 빠져있던 미유키는 눈을 떴다.
그녀는 마츠다가 깨지 않게끔 조심하며 고개를 빼꼼 내밀어 활짝 열려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다. 뭐가 뭔지 분간할 수가 없었지만, 눈을 끔벅거리며 적응을 시키고 나니 사물이 차츰 보였다.
많이는 아니지만 비가 오고 있다.
가랑비인가? 영화를 보러 갈 때 조금 습할 것 같다.
“.....”
원래 자신은 비가 오는 날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사실 싫어하는 쪽이었다. 물이 튀어서 신발이나 옷이 젖으니까.
하지만 마츠다를 만난 이후로부터 좋아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가 쏟아지는 날 그와 껴안고 잔 이후부터라고 해야 옳았다.
싸늘한 날씨에 마츠다의 따뜻한 품에 안겨있으면, 달아올랐던 고양감이 내려가면서 안정감이 찾아온다.
그 안정감이 떨어지는 빗소리와 조화를 이루면 하루가 아늑했다.
배시시 웃으며 생각을 마친 미유키는 재빨리 마츠다의 팔 안으로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으음...”
잠꼬대를 하며 몸을 약간 뒤척이는 마츠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중저음의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무척 듣기 좋다. 더 듣고 싶다.
그리고 혼자만 깨어있다는 사실이 왠지 억울하다.
미유키는 마츠다의 복부에 자신의 검지를 대고 넌지시 힘을 주었다.
이후 마츠다의 반응을 살피고는, 그가 여전히 잠에 빠져있자 몸 이곳저곳을 약하게 찔러댔다.
이런 장난을 치며 사람을 깨우는 건 못된 짓이다.
그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유혹을 이겨내기가 힘들다.
자제력을 잃고 마츠다를 콕콕 찌르던 그녀는,
“뭐하냐...?”
잠에서 깨어난 마츠다가 졸린 목소리로 타박하듯 물어오자 곧바로 사과했다.
“미안...”
물론 가식이었다.
속으로는 마츠다가 깨어난 게 무척이나 기뻤고, 자신을 꽉 보듬어줄 거라 생각하니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지금 몇 시야?”
“몰라... 두 시쯤 되지 않았을까...?”
“왜 벌써 일어났는데...”
“비와서...”
“빗소리 안 들리잖아.”
“난 들었어...”
“그래...?”
마츠다가 미유키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자신의 몸에 미유키를 밀착시킨 그는,
“쪼그만 게 야해가지고...”
칭찬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을 하더니, 미유키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자신의 허리를 만져오는 마츠다의 손길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은 미유키가 침을 꼴깍 삼켰다.
몇 시간 전 밤과는 달리, 쓰다듬어지는 게 아니라 만져지고 있다.
마츠다의 손이 자신의 옆구리를 마구 주물럭대고 있다.
문제는 자신이 얌전하게 그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거다.
마츠다가 자신에게 살이 쪘다는 이야기를 할까 무서워 복부에 힘을 주고,
심지어는 만지기 편하도록 몸을 약간 떨어뜨려놓기까지 하고 있다.
긴장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들뜬 긴장이지, 두려움으로 인한 건 전혀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눈살을 찌푸렸을 텐데 지금은 고분고분하다니 어이가 없다.
자신이 미친 건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던 미유키는, 방금 마츠다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야해가지고...】
야하다.
뭔가 천박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마츠다가 만족스러워한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자신이 먼저 혀를 들이밀었던 것도 그렇고...
지금 이렇게 가만히 마츠다의 손길을 느끼고 있는 것도 그렇고...
예전에도 생각했었지만, 점점 성에 눈을 떠가는 자신이 낯설지만 즐겁다.
또한 마츠다와 더욱 달콤하고 뜨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가슴이 좋은 쪽으로 두근거린다.
눈동자를 데굴 굴려 마츠다를 흘끔 쳐다본 미유키는, 괜히 뾰로통한 척 투정을 부렸다.
“만지지 마...”
“뭐래...”
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투정을 깔끔하게 무시하고, 계속 허리를 만지는 마츠다.
손길에 애정이 있다고 느껴지는 건 착각일까?
“춥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미유키의 정신을 돌아오게 만든 마츠다의 물음.
열린 창문을 통해 선선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는 것을 느낀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응... 추워...”
그러자 마츠다가 미유키의 허리를 만지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더욱 바싹 끌어안았다.
그에 미유키의 입꼬리가 더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찢어졌다.
이불을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바람을 눈치채고 껴안아준 마츠다가 너무 좋다.
속으로 헤실헤실 웃은 그녀가 말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마트 갈래? 아침 재료 사자...”
“뭐라고...? 안 들려.”
“아침 재료 사자구...”
“그냥 영화관에서 핫도그 같은 거나 먹자...”
“그래도 밥은 집에서 먹는 게 낫지 않아?”
“시끄럽고, 자라.”
“건강 생각해야지... 야채 들어간 걸로...”
“핫도그에도 야채 들어있어. 양파랑 토마토...”
“토마토...? 설마 케첩 말하는 거야...?”
“어...”
엉뚱한 말을 하는 마츠다가 웃기다.
또한 졸릴 텐데도, 짜증이 날만한데도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는 그가 고마웠고, 장난을 더 치고 싶었다.
“케첩이 무슨 야채야...”
“토마토로 만들었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근데 마츠다 군, 내일 영화 볼 때 저번처럼 옆사람한테...”
“야.”
“응?”
“혼날래?”
“아니. 이제 잘...”
이 정도만 해야겠다고 생각한 미유키는, 이제 잘 거라고 말을 하려다가 몸을 확 떨었다.
마츠다가 그녀의 엉덩이를 살살 토닥였기 때문이었다.
저번처럼 은근히 만지려고 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순간 놀라 까무러칠 뻔한 미유키는,
“자라...”
마츠다의 목소리를 듣고 가슴이 진정되어오자 굳어가던 몸에 힘을 풀었다.
마치 아이를 재우려는 듯 자신의 엉덩이를 일정한 리듬으로 두드리는 마츠다를 향해, 미유키가 새침하게 말했다.
“이, 이제 자려고 했어...”
“그래...”
신기하다.
민감한 부위라 할 수 있는 엉덩이에 마츠다의 손이 닿았는데도 거부감이 전혀 없다는 게,
그리고 이토록 침착할 수 있다는 게.
‘몰라아...’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한 미유키는, 한동안 계속되는 마츠다의 토닥임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아마 자신의 얼굴은 지금쯤... 곧 터질 것처럼 달아올라있겠지?
몸도 뜨거운 것 같은데, 마츠다가 더위를 타지 않을까?
내일... 아니, 오늘도 마츠다의 집에서 자면 안 되나?
먼저 제안을 하기엔 너무 싸 보이지 않으려나 싶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미유키는 곧 잠에 빠져들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아주 깊은 잠에.
**
일어난 내가 가장 먼저 본 것은, 곤히 자고 있는 미유키였다.
아늑한 표정을 지은 채로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내뱉는 그녀를 지켜보던 나는, 벽면에 붙어있는 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9시 20분.
지금 일어나서 준비하고 간다고 해도 빠듯하겠구나.
조조영화는 그냥 포기하자. 오래도 잤다.
항상 먼저 일어나 날 깨우던 미유키가 일어나지 않은 건 의외였다.
새벽에 일어나서 틱틱댄 주제에... 잘도 자고 있다.
그녀는 마치 죽부인을 안듯, 내 팔을 자신의 가슴 사이에 두고 꼭 붙든 채였다.
가만히 미유키의 가슴 감촉을 느끼던 나는, 그녀가 입맛을 다시자 헛웃음을 켰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이라도 꾸나?
행복해 보인다.
고개를 들어 미유키의 목을 확인해보니, 키스마크가 잘 정착되어있었다.
내 거라는 증표. 모두에게 공개하고 싶지만 미유키는 분명히 여기다 반창고를 붙이겠지.
조심스럽게 팔을 빼내려던 나는, 미유키의 인상이 찌푸려지자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새벽에 했던 것처럼, 몸을 옆으로 돌려 반대쪽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일어나.”
그에 미유키의 눈이 지그시 뜨였다.
눈을 몇 번 깜박거리며 날 쳐다보던 그녀는,
“.... 졸려...”
다시 눈을 감으며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내 팔을 더욱 끌어당긴 건 덤.
킥킥거린 나는 미유키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일어나라고. 팔 저리다.”
그러자 미유키의 어깨가 바싹 올라오면서 몸이 떨렸다.
“흐응...”
어제보다는 조금 덜 야한 콧소리를 낸 미유키.
눈은 여전히 감은 채다.
평소엔 똑 부러지던 그녀의 방심한 모습... 나쁘지 않다.
“물 마실래?”
“안 마셔어...”
애교가 묻어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니 꼴리려고 한다.
아, 이미 꼴린 상태구나.
지금 미유키의 아래쪽은 풀어져서 말랑해진 상태일 텐데... 유혹이 마구 솟구친다.
하지만 참자. 이제 뜸만 들이면 되는데 그간의 고생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마츠다 군... 손 좀... 가만히 놔둬...”
잠에 취한 채로 날 나무라는 미유키.
들은 체도 하지 않은 나는, 그녀의 허벅지에 오므린 손끝을 갖다 대고 천천히 폈다.
“흐익...!”
간드러지는 웃음소리를 내뱉은 미유키는 결국 내 팔을 놓아주고 상체를 일으켰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멍하니 전방만 바라보던 그녀는, 내가 그녀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자 엄지를 제외한 네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비볐다.
하는 짓이 예뻐 죽겠다.
그냥 나랑 같이 살면서 등교도 하고 그러자.
테츠야 같은 놈이랑은 절교하고.
“지금 몇 시야...?”
“아홉 시 이십 분.”
“뭐...? 그럼 빨리 준비해야...”
“굳이 조조영화에 집착할 필요가 있나? 천천히 해.”
“.... 그렇긴 한데... 이, 일단 나 화장실 갔다 올게...”
끙끙거리며 일어난 미유키는 터벅터벅 화장실로 들어갔다.
쏴아아 거리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후,
덜컥.
닫혀있던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마츠다 군...! 이거 어제 마츠다 군이 남긴 거지...!?”
미유키가 내 앞으로 걸어와 자신의 목에 새겨진 키스마크를 가리켰다.
붉어진 얼굴로 따지는 그녀를 쳐다보던 나는, 긴 하품을 하며 잠을 날려버리고는 대답했다.
“어.”
“뭐야 이게... 벌레에 물린 것 같아...!”
“내가 벌레냐?”
“그 말이 아니라...! 하아...”
날 못 말리겠다는 듯 쳐다보며 한숨을 내쉰 그녀는, 내게 무언가를 따지려다가 그만두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됐어... 바보야...”
내가 그녀를 좋아해서 키스마크를 새긴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심각한 일이라 여기지 않으려 는 듯한 모습이었다.
화는 안 내는구나.
요 위에 벌러덩 누운 나는, 미유키가 조신하게 옆에 앉자 그녀를 놀렸다.
“아까는 안 마셔어! 하면서 화내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단정하냐?”
미유키는 내 복부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쑥스러워하는 미유키의 부스스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준 나는, 그녀와의 사이가 더없이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오늘 노골적으로 엉덩이를 만졌음에도 그냥 넘어간 것도 그렇고...
지금 이렇게 경계심 없이 다가오는 모습도 그렇고...
미유키는 내가 깔아둔 늪에 점점 깊숙이 가라앉고 있었다.
“꼬르륵 소리 나...”
배에 귀를 대어보던 미유키의 말.
살웃음을 지은 나는 그녀의 뒷목을 주물렀다.
“배고파서 그래.”
다만 미유키는 혼자 가라앉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옆엔 내가 있었고,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사이좋게, 턱밑까지 잠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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