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 미유키의 가슴은
* * *
영화가 끝나고 점심까지 먹은 뒤 돌아오는 차 안.
약간의 애정 신이 곁들어진 로맨스 영화를 본 이후로부터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던 미유키는, 어머니인 미도리에게서 전화가 오자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응, 엄마. 아... 오늘...? 음...”
갑작스레 내 눈치를 보며 말끝을 흐리는 미유키.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지 대충 짐작한 나는, 마침 신호가 걸려있는 틈을 타 미유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합장해 한쪽 뺨에 붙이고, 고개를 꺾어 자는 시늉을 했다.
오늘도 우리 집에서 자고 가라는 내 뜻을 알아차린 미유키가 말을 이었다.
“오늘도 친구 집에서 자려구... 선물...? 응, 알아서 사고 갈게. 점심 전까지? 알았어... 아, 그리고 언니한테....”
사적인 대화를 나눈 이후, 미유키는 미안하다는 사과로 통화를 마무리하고는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자고 간다고 했어. 점심까지는 가야돼.”
“들었어.”
“왜 남의 통화를 엿들어? 그거 실례야.”
잠깐 말문이 턱 막혀버린 나는 미유키를 쳐다보았다.
어처구니없어하는 내 얼굴이 웃겼을까?
그녀가 입가를 가리더니 깔깔거렸다.
“진지하다고 뭐라 할 땐 언제고... 마츠다 군도 나랑 똑같이 반응하네?”
“인정한다. 근데 선물은 없냐?”
“선물?”
“아주머니가 신세지는 나한테 선물 사라고 하시지 않았어? 분명히 그랬을 건데?”
“그건... 엄마랑 통화할 땐 마츠다 군이 아니라 다른 친구를 언급한 거니까...”
“그래서 안 주겠다고?”
“안 주겠다는 게 아니라...”
나는 허벅지 안쪽에 손을 넣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미유키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너나 나나 농담에 반응하는 게 똑같네.”
“농담이었어...?”
“몰랐어?”
“마, 마츠다 군은 농담을 해도 항상 정색을 먼저 하니까...”
“너도 마찬가지지. 그래서 잘 어울리는 것 같지 않냐?”
은근하게 마음을 표현하자, 미유키의 고개가 옆 창문으로 홱 돌아갔다.
귀까지 빨개지려고 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나보다.
그런 그녀를 향해 피식한 내가 물었다.
“오늘 뭐할래? 돌아가서 조금 쉬다가 산책이라도 할까?”
“.... 비 오는데...”
“기분 나쁠 정도로 쏟아지는 건 아니잖아. 잠깐 동네만 돌아다니면 괜찮을 것 같은데.”
“난... 상관없는데... 먼저...”
“먼저 뭐.”
“공부...”
“뭐?”
“공부하자... 가르쳐줄게...”
토요일에 공부라니... 미유키답다.
근데 네가 과연 공부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럼 해.”
“응... 할 거야... 집중 못하면 벌 줄 거니까 열심히 해...”
“또 그 소리하네. 근데 너 아까부터 계속 거기에 손 올리던데, 그러면 더 티 난다.”
그 말에 무의식적으로 키스마크 위에 붙여놓은 정사각형 반창고를 문지르던 미유키가 화들짝 놀랐다.
“아, 아까부터 그랬어...?”
“어. 영화 볼 때도.”
“그래...?”
얌전히 손을 내려놓는 미유키.
그러나 내가 전방으로 시선을 돌리며 화제를 돌릴 때쯤, 다시 반창고에 손을 올린다.
아마 마크가 사라질 때까지는 계속 저럴 것 같은데, 내겐 좋은 일이었다.
**
내 생각대로, 미유키는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질 못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나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기는 지각동사인 이 단어가 들어가야... 아 진짜아...! 허리 그만 만지라니까...!”
그녀의 옆에 딱 붙은 내가 자꾸 스킨십을 해대니, 막 성에 눈을 뜬 미유키로서는 버틸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거 싫어?”
“시, 싫은 건 아닌데, 지금은 수업하고 있잖아. 끝나고 하든지 해...”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끝나고 하란다.
곧 죽어도 스킨십을 놓지 못하는 미유키를 향해 히죽거리자,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아무튼 지금은 허리 그만 만져...”
“그럼 다른데 만질까?”
“마츠다 군! 제발 집중 좀 해...!”
자꾸 색기를 풀풀 흘리고 있는데 어떻게 집중을 하겠니.
양손을 들며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나는 화제를 돌렸다.
“요 개서 올려놓는다?”
“올려놓는다구? 어디에?”
“어제 네가 그러지 않았냐? 비 오는 날에 다락방에서 자면 괜찮을 것 같다고. 마침 비도 오고 있으니까, 오늘은 2층에서 자자.”
“아... 그거... 공부 끝나고 해.”
“공부하기 싫어.”
질렸다는 표정, 등 뒤로 뻗어 다다미를 짚은 양손, 그리고 탁상 밑으로 쫙 펼친 다리.
이런 내 경박한 모습을 본 미유키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진짜... 우리 집에서 밥 먹을 땐 어떻게 그렇게 예의가 발랐는지 이해가 안 되네...”
“됐고,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만 하자.”
통보하듯 말을 마친 나는 다락방으로 요와 베개를 옮겨놓았다.
사실 다락방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높낮이가 낮고 좁아터진 곳이라 창고로밖에는 쓸 수 없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가로 넓이는 길어서 어찌 잠은 잘 수 있을 듯했다.
조명도 주황색에 어두운 터라 분위기도 살고 말이다.
허리를 잔뜩 숙인 채로 이부자리를 깔아놓은 나는 계단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미유키를 향해 손짓했다.
“올라와봐.”
그러자 등 뒤에 손을 옮겨놓고 멀뚱히 구경을 하고 있던 미유키가 총총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올라올 때마다 점점 숙여지는 그녀의 상체.
티셔츠의 라운드넥이 중력으로 인해 내려가면서, 그녀의 가슴이 얼핏 보인다.
윗가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가리는 브라렛을 차고 있는 그녀.
심심한 속옷이었지만 미유키가 차니 너무나도 야하다.
계단을 다 올라온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옆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지붕 구석에 자그맣게 자리한 창문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던 그녀는, 약간 노곤해졌는지 기다란 콧바람을 내뱉었다.
“되게 좋다... 아늑해...”
“졸려?”
“모르겠어... 산책 나갈까...?”
“샤워까지 해놓고 산책은 무슨... 그냥 조금만 자자.”
“응...”
꾸물꾸물 내 곁으로 다가온 미유키는, 곧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기 시작했다.
뭔가 기대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눈빛. 내가 만져주길 은근히 바라고 있는 듯하다.
우리 미유키... 많이 물들었구나.
딸깍.
나는 옛날식 전등의 줄을 잡아당겨 조명을 껐다.
시간대가 낮이라 다락은 꽤나 밝았다.
다만 비가 오는 날이니만큼 그 특유의 어둑함이 있었고, 거실처럼 개방된 곳이 아니어서 무드가 어제보다 더욱 묘해졌다.
“마츠다 군.”
물끄러미 날 쳐다보던 미유키의 부름.
그녀와 눈을 맞춘 내가 대답했다.
“왜.”
“그냥 불러봤어...”
“그러냐?”
“응. 근데 마츠다 군.”
“왜.”
“그냥...”
수줍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데, 아마도 포옹을 바라고 있겠지.
어제도 춥냐는 물음에 가식이 묻어나오는 대답으로 원하는 걸 얻어내더니... 영악한 게 마치 여우같다.
어이가 없는 듯 코웃음을 친 나는, 이불을 끌어당겨 우리 몸을 덮었다.
그리고는 미유키의 허벅지 위에 손을 올려놓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쓰다듬었다.
“장난치니까 재밌냐?”
“응, 재미있어... 계속하고 싶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내 손은 미유키의 부드러운 피부를 지나 반바지의 밑자락을 스쳐지나갔다.
이후 무릎 바로 위에서 멈췄다.
그 상태에서 손에 힘을 주었다 뺐다 하자, 미유키가 날 나무랐다.
“허벅지 만지지 마... 변태 같아...”
“마사지해주는 거야. 오늘 걸어 다니느라 고생했다고.”
“오래 걷지도 않았잖아... 그냥 대놓고 만지겠다고 하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덜 음흉해보이잖아.”
“아니. 오히려 더 음흉해보여.”
“그럼 더 좋은 거고.”
태연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미유키가 키득거리며 내 가슴팍을 살짝 밀었다.
많이 대담해진 태도를 보니, 미유키의 마음속에 내가 영원히 자리하는 날이 곧 다가왔다고 느껴진다.
우웅!
거실에서 희미한 진동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의 휴대폰일까?
모르겠다. 그리고 관심도 없다.
나는 요에서 나가려 꿈틀거리는 미유키의 어깨를 꾸욱 눌렀다.
그러자 미유키가 자신의 큰 눈을 두어 번 끔벅이더니,
“.....”
내 눈빛을 보고는 무슨 일이 일어날 건지 직감했는지 얌전해졌다.
그런 미유키를 그윽하게 바라보던 나는, 그녀의 눈이 지그시 감겨오자 곧바로 입술을 들이밀었다.
“.... 흐븝...!”
꽉 막힌 신음을 터뜨리더니 자연스레 입을 벌리는 미유키.
그 안으로 혀를 들이민 나는 상냥하게, 하지만 평소보다 더욱 깊게 혀를 굴리면서 미유키에게 오묘한 감정을 심어주었다.
이런 내 계획이 성공했을까?
키스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던 미유키의 다리 한 짝이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내 다리 위로 올라왔다.
미유키의 코에선 후욱! 하는 콧바람이 새어나왔고, 몸은 내게 완전히 밀착했으며, 손은 가만 놔두지 못하고 티셔츠 앞자락을 꽉 쥐고 있다.
본질적인 성욕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 같은 모습인데, 내 아래가 무척 딱딱해져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겠지.
나는 어제처럼 미유키의 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럼에도 미유키는 약간 멈칫하기만 했을 뿐, 여전히 키스를 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 틈을 탄 나는 손을 움직였다.
미유키의 갈비뼈를 스쳐지나가, 밴딩 처리가 된 브라렛 밑을 살살 더듬고,
봉긋한 가슴 라인을 따라 한쪽 가슴 전체를 감싸 쥐듯이 대어놓았다.
그러자 미유키에게서 곧바로 반응이 왔다.
“.... 후으...”
입술을 떼어낸 그녀가 힘겨운 숨을 토해내더니, 흔들리는데다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날 쳐다보았다.
무서울 것이다. 처음 겪는 일이라 특히나 더.
하지만 성적으로 눈을 뜬 상태라 기대감도 크겠지.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
어떤 느낌일까 하는 호기심이 새록새록 피어나 두려움을 덮어씌울 터.
또한 연인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인 접촉이라는 생각이,
지금까지 여러 스킨십을 해왔는데, 다음 단계로 나가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생겨나면서 결정을 내리는데 지지부진하게 만들 거다.
“.....”
예상대로, 미유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나만 쳐다보고 있었다.
불안해하는 표정이지만,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자 안색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미유키의 가슴을 감싼 손에 힘을 준 건 그때였다.
꾸우욱.
약간의 저항감을 해치며 눌린 다섯 손가락에서부터 말캉한 감촉이 느껴진다.
짜릿한 기분이 손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진다.
속옷 바깥에서 만졌는데도 이 정도인데, 안으로 손을 들여보냈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터질 것 같다.
“케, 켄 군...! 잠깐만... 나...”
미유키가 다급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손을 가슴에 둔 채로 멈칫한 내가 나직이 속삭였다.
“왜?”
다정한 목소리에 안심했는지,
“후아...”
미유키가 흥분인지, 긴장인지 모를 한숨을 내쉬고는, 내 머리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로 인해 웃기는 자세가 된 것 같지만 상관없다.
미유키는 지금 내 자세 같은 건 신경도 쓰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욕구를 최대한으로 절제한 채, 미유키의 품에 안겨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렸다.
“우응...”
미유키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나올 때까지,
그리고 자신이 내뱉은 그 야릇한 소리를 자각한 그녀가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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