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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55화 (55/313)

〈 55화 〉 거사를 코앞에 두고

* * *

결과적으로, 나는 점수를 따지 못했다.

유효격자를 먹일 수 있는 죽도의 격자부로 타격한 게 아니라, 그 바로 밑의 칼날부로 타격을 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사거리 조절 실패였다.

그 이후부터는 제대로 된 공격조차 해보지 못하고, 내리 2점을 주며 패배했다.

뭐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허리 두 방에 끝났는데, 아마 진심으로 날 공격했던 것 같았다.

‘아쉽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상쾌했다.

왜? 점수만 따지 못했을 뿐이지, 렌카의 심리에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였으니까,

그렇게 이벤트의 주역이 된다는 목적을 완수했으니까.

렌카는 진중한 모습으로 대련을 한 테츠야보다는, 나를 더 머릿속에 크게 각인시키겠지.

그거면 된 거다.

그나저나 신기하다.

검도는커녕 검도 비슷한 무술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본능대로 움직이니 기가 막힌 장면이 튀어나왔다.

이게 바로 주인공의 재능인가? 너무 달다.

“마츠다 후배님.”

치나미의 부름에, 그녀와 함께 보관실에서 호구를 닦고 있던 내가 고개를 들었다.

“예?”

“아까웠어요. 렌카를 상대로 한판을 따낼 수 있었는데...”

치나미의 목소리는 다소 가라앉아있었다.

자신이 못 낸 점수를 내가 거의 낼 뻔해서 질투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치나미는 그 정도로 속이 좁지 않다.

저 반응은 아마도... 렌카의 허리를 후려갈기던 내 모습을 보고, 본격적으로 상단세를 가르칠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리라.

나는 아빠다리를 하고 있는 치나미의 옆에 거의 달라붙다시피 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스승님 덕분이에요.”

“네...? 제 덕분이요?”

“스승님이 두 번째 경기 때 이노오 선배의 허리를 공격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걸 어설프게나마 따라해 본 거예요.”

“그, 그랬어요...? 그걸 어떻게 보셨지...? 천재신가...”

“보답으로 마사지해줄게요.”

“네...? 아뇨... 전 한 게 없고... 응긱...!”

내게 뒷목을 부드럽게 잡힌 치나미의 귀여운 신음.

목덜미에서부터 서글서글한 잔털이 만져진다.

그곳을 손끝으로 살살 누르며 마사지를 표방한 애무를 해주자,

“흐아아...”

치나미가 그녀 특유의 늘어지는 소리를 냈다.

힘이 풀려버린 그녀의 고개는 내가 힘을 주는 방향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뒷목이 성감대가 맞구나. 반응이 정말 재미있다.

“으익...!”

이를 악 문 치나미가 몸을 옆으로 빼며 내 손에서 벗어났다.

상기된 얼굴로 씩씩댄 그녀가 날 나무랐다.

“후배님...! 제가 말했잖아요...! 허락도 없이 남의 목을 잡는 건...”

“저희가 남인가요?”

“무, 물론 사제지간이긴 하지만... 이건 옳지 않아요...!”

옳지 않다고? 왠지 야하게 들리는 말이다.

“제자로서 스승님을 안마해주려던 것뿐인데요.”

“마음만 받을게요...! 앞으로는 먼저 물어보세요...!”

“알겠습니다.”

순순히 물러나는 태도를 보이자, 치나미가 심호흡을 하며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렇게 다시 내 옆에 앉은 그녀는 목을 이리저리 꺾고는 호구를 청소했다.

아까의 마사지가 생각나는지, 아니면 먹을 거라도 생각하는지 입맛을 찹찹 다시며 집중을 하는 치나미.

나는 그녀를 향해 휴대폰을 내밀었다.

“스승님 연락처 하나만 주세요.”

“연락처요? 아, 그렇죠... 혹시 검도에 대해서 궁금한 게 생긴다면 물어봐야겠죠.”

그런 건 네가 먼저 언급하지 않는 이상, 단 하나도 물어보지 않을 거란다.

그냥 잡담하면서 놀 거야.

앙증맞은 손으로 번호를 꾹꾹 눌러준 치나미가 내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후배님의 가능성은 엄청 커요. 내일부터는 상단세의 비중을 늘리는 것도 좋겠어요. 대신 기본기도 확실하게 익혀야 해요. 경험이 없고 중단을 제대로 모르다보니 두 번째 경기부터는 꼼짝도 못하셨잖아요.”

“알았어요. 근데 절 인정해줬네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공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절대 자만하면 안 돼요. 아시겠죠?”

“예. 스승님한테 인정도 받아서 기쁜데, 아이스크림 사줄까요?”

“무슨 맛이요? 저는... 앗! 아니지... 축하도 할 겸 제가 사드려야 마땅하니까, 내일 복숭아 맛 아이스크림을 사올게요. 후배님은 맛있게 드셔주기만 하세요.”

“다른 맛은 없나요?”

“저는 복숭아를 좋아해요.”

“제 취향은 안 물어보세요?”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없어요. 후배님도 분명히 좋아할 거예요.”

치나미는 장사를 하면 잘할 것 같다.

저 순둥한 얼굴로 강매를 하면 물건을 사지 않을 사람이 없겠지.

다시 뒷목을 만져주면서 흥분시키고 싶지만, 치나미는 아직 공략 초반 단계다.

계속된 자극은 반발심만 일으킬 수 있으니까 참자.

**

검도부를 나온 나는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렌카와 테츠야를 보았다.

말하는 쪽은 거의 대부분 렌카였는데, 조언을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두 사람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렌카가 팔짱을 끼더니 물었다.

“치나미는?”

목소리가 꽤나 단조로운 것이,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잠깐 화장실 갔어요. 같이 돌아가나 보네요?”

“오늘은 같이 갈 거야. 그리고... 너한테 사과할게.”

“뭘요?”

“지도대련인데, 널 너무 쉽게 이겨버렸어.”

저건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자제력을 잃고 날 몰아붙인 자신에 대한 질책이 서려있는 스스로를 향한 사과이기도 했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대수롭지 않게 렌카의 사과를 넘겼다.

“상관없어요.”

“.... 그럼 다행이고. 그리고 너... 치나미한테 이상한 거 가르쳐주려고 하지 마.”

“이상한 거?”

“그거 있잖아. 무슨무슨 호흡 같은 거... 세상에 그런 호흡법은 없어.”

네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기술인데 무슨무슨 호흡이라니.

알면서 왜 모른 척하냐?

코미케에 가면 좋아하는 작가 앞에서 학학거리며 사인을 받는 주제에...

“그걸 들었어요? 어떻게?”

“우, 우연히 듣게 됐어... 어쨌든 하지 마.”

“그냥 농담으로 말한 건데요.”

“치나미는 농담이라고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말을 믿어버리는 순진한 사람이야.”

“그럼 나중에 농담이었다고 할게요. 됐죠?”

“.... 그래. 오늘 수고했고... 다음에 대련할 땐 충분히 잘 지도해줄게.”

다음 대련? 지도는커녕 속만 부글부글 끓게 될 걸?

포악한 수컷인 내게 절대 이길 수 없다며 좌절해버리고, 포식자로 인정하게 되는 그림...

언젠간 만들어주마.

“알겠어요. 전 갑니다.”

“응. 잘 가. 미우라 너도.”

테츠야는 렌카를 향해 예의 바르게 입례를 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렌카와 헤어지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테츠야를 흘끔거렸다.

같이 도전했는데 자신은 꼴불견인 모습을 보여주고, 나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줘서 자존감이 팍팍 떨어지고 있는 것 같다.

너도 검도에 재능이 있긴 하니까, 열심히 해봐라.

중간중간에 열등감을 폭발시켜주면 더 좋고.

나는 테츠야의 등을 팡! 하고 쳤다.

“오늘 왜 이러는지 도저히 모르겠네. 어깨 펴 새꺄.”

제법 아팠는지 인상을 구기며 등 근육을 수축시킨 테츠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고맙다 마츠다. 근데 너무 아프게 때린 거 아니야?”

“이 정도도 아프냐? 길 가다 넘어지면 뼈 부러지겠네?”

“그건 아니고... 어? 미유키다.”

정면을 바라본 테츠야의 낯빛이 환해졌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주차장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미유키가 걸어오고 있었다.

“마츠다 군! 왜 테츠야 군을 때리고 그래?”

질책하는 기색이 전혀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다가와 고개를 쭈욱 빼는 그녀.

질렸다는 듯 한손을 휘저은 나는 테츠야를 향해 협박하듯 물었다.

“내가 너 때렸냐?”

“아, 때리긴 했는데...”

“때렸다고?”

“지, 진심으로 때린 건 아니고... 격려 차 장난으로...”

그 대답을 들은 나는 미유키를 돌아보았다.

“됐지?”

“마츠다 군. 표정을 그런 식으로 무섭게 굳히면 누가 솔직하게 말하겠어?”

“또 또 시어머니 잔소리 나오네. 입을 막아버리든가 해야지...”

“왜 내 입을 막아? 막으려면 마츠다 군의 귀를... 꺄아악!”

비명을 지른 미유키가 몸을 뒤로 뺐다.

내가 손을 뻗어 그녀를 확 잡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웃음기가 섞여있는 얼굴로 멀찍이, 내 차 앞까지 도망을 간 그녀는, 내가 스마트키로 차 문을 열어주자 잽싸게 조수석에 탔다.

혀를 끌끌 찬 내가 테츠야에게 푸념했다.

“쟤는 날이 갈수록 장난기가 많아지네. 너한테도 저러냐?”

“.... 나한테는 저것보다 더 심하게 장난쳐.”

알아. 그래서 앞으로 너한테 하는 장난은 하나하나씩 금지해나갈 예정이야.

“피곤하겠네.”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재미있지 않아?”

“그런가? 가기나 하자.”

“그래. 오늘도 잘 얻어 탈게.”

**

집에 가는 동안, 테츠야는 곧 죽어도 내 활약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미유키의 앞에서 날 높여주기가 싫은 것이다.

테츠야의 소심하고 가소로운 반항에 속으로 콧방귀를 낀 나는 놈을 내려주었다.

이후 미유키와 단둘이 되자마자,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손깍지를 꼈다.

이런 내 행동에 배시시 웃은 미유키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한손운전 하지 말라니까...”

“그럼 뺄까?”

“아니이... 빼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그리고 마츠다 군, 왜 사람을 막 때려? 폭력 쓰지 않기로 나랑 약속했잖아.”

아까 테츠야의 등을 쳤던 일을 말하는 미유키.

진짜로 따지는 게 아니라, 그저 나와의 대화가 끊어지는 게 싫어서 저렇게 굴고 있는 것이었다.

“애가 쳐져있길래 힘내라고 격려한 거야. 오늘 미우라 못 봤어? 우리랑 얘기하다가도 딴생각하고 그러던 거?”

“하긴... 안색이 좋지는 않더라... 오늘 내가 한 번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마츠다 군한테도 알려줄게.”

“별로 안 궁금하니까 너만 알든지 해라. 문화제 준비는 잘 돼가?”

“응, 거의 다 끝났어. 분장하는 애들도 고생 많이 했고... 마츠다 군은 맨날 놀았으니까 문화제 때 얌전히 표 검사해. 어디로 새면 혼날 줄 알아.”

“미우라도 맨날 놀았는데?”

“테츠야 군은 점심시간에 우릴 틈틈이 도왔어. 그리고 귀신 분장을 하잖아.”

“그래? 뭘로 분장시킬 건데?”

“원래는 슈텐도지로 하려고 했는데... 안 어울릴 것 같아서 그냥 나마하게로 결정했어.”

“나마하게? 그 부엌칼 들고 다니는 얼굴 빨간 도깨비?”

“응.”

갓파로 만들 예정이었는데... 내가 너무 무관심했구나.

미안하다, 테츠야야.

미유키의 집에 거의 도착할 때쯤, 나는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가서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미유키의 얼굴에 내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두 눈을 끔벅거리며 나와 시선을 마주치던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얼굴에 홍조가 맺혀갔다.

“.... 왜 그렇게 쳐다봐...?”

“쳐다보면 안 되나?”

“그, 그건 아니지만...”

“넌 뒤풀이 필참이냐? 반장이라서?”

“응...”

“적당히 놀다가 늦기 전에 연락해 그럼.”

“연락하라구? 마츠다 군은 뒤풀이 안 가...?”

“안 가.”

“왜...? 같이 가면 좋은데... 마츠다 군은 친구 별로 없잖아... 이참에 많이 만들어둬야 맞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미유키를 향해 부드럽게 웃어보인 나는, 그녀의 목젖이 꿀렁거리는 타이밍에 맞춰 입을 열었다.

미유키가 좋아하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아주 따뜻하게.

“연락해. 알았지?”

이제는 완전히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수그린 그녀가 대답했다.

“아, 알았어... 연락할게... 그런데 뭐할 거야...?”

나는 잠깐 뜸을 들이며 미유키의 손등을 살살, 간지럽히듯 긁었다.

“이, 이거 하지 마...”

손에 힘을 꽉 주고는 날 만류하는 그녀를 무시한 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날 나랑 둘이 있자.”

“둘이...?”

“어. 둘이.”

이 정도까지 말했으니 미유키도 어렴풋이 눈치챌 테지.

지금은 아니더라도,집으로 돌아가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서 내 말의 속뜻을 알아차릴 거다.

물론 확신은 없을 것이었다.

그날 집에서 자라며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각오를 하고, 준비도 할 것이다.

“응... 그렇게 할게...”

깍지 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던 미유키의 대답을 들은 나는, 그녀의 손등에 내 손을 포개고 방긋 웃었다.

그러자 미유키가 숨을 훅 삼키더니 말했다.

“.... 그, 그냥 갈 거야...?”

“뭘 해줬으면 좋겠는데?”

“여기...”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대고 꾸욱 누르는 그녀.

그 노골적인 행동에 피식한 나는, 얕은 광택이 흐르는 그녀의 아몬드형 손톱을 바라보면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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