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거사를 코앞에 두고 #2
* * *
사람들이 꽉꽉 들어찬 아카데미.
재학생들도, 외부에서 온 손님들도 문화제의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젖어 들어가고 있다.
아직 해가 쨍쨍한데도 수많은 인파에 발 디딜 틈이 없었는데, 정문을 지나 체육관 쪽으로 향하니 한산해졌다.
우우웅!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꺼낸 내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도착했어?
“방금. 이제 뭐하면 되냐?”
마사코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설명 듣고 시간 맞춰서 표 검사 시작하면 돼.
“넌 어디 있는데.”
나 지금 분장실에서 분장 중이야. 그럼 수고해줘.
“오냐.”
전화를 끊은 나는 귀신의 집으로 변한 체육관의 외관을 감상했다.
가짜 덩굴을 이곳저곳에 둘러놓고, 문은 어둡게 페인트칠을 한 뒤 양옆에 해골 장식을 붙여놓은 상태.
구색이 잘 갖춰졌다.
대련 이후 더욱 바삐 움직이던 미유키와 부반장 덕분이겠지.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린 채로 체육관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는데,
“저어... 마츠다 군.”
뒤에서부터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나는, 손에 빵 봉지를 들고 있는 마사코를 향해 히죽 웃어보였다.
“안녕, 빵녀.”
“아, 안녕...!”
“내 파트너가 너냐?”
“맞아... 나랑 표 검사하면 돼... 빠, 빵 먹을래...?”
조심조심 메론 빵을 내미는 그녀.
픽 하는 웃음을 터뜨린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너나 많이 먹어라. 근데 왜 손님이 없냐?”
“아... 그게... 아직 운영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귀신의 집은 해가 질 때쯤부터... 사람들이 몰리잖아...”
“그러네.”
“응...”
“너 지금 나 바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아, 아니야...! 콜록!”
“기침하는 거 보니까 맞나보네?”
“케헥! 콜록! 아, 아닌데... 콜록!”
헛웃음을 켠 나는 상체를 수그린 채 계속 기침을 해대는 마사코를 부축해 의자에 앉혔다.
이후 그녀가 진정이 될 때쯤, 간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흰 우유를 내밀었다.
“고, 고마워... 흐흠...!”
“너 혹시 천식 같은 거 있어?”
“아, 아니... 건강한데... 당황하면 이래...”
“나 이제 뭐해? 지금부터 표 검사해?”
“열 시부터 하면 되고... 분장한 애들이 뭐 필요하다고 하면... 안에 들어가서 갖다 주면 돼...”
“심부름을 하라고?”
미간을 팍 좁힌 내가 목소리를 가라앉히자, 마사코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그건 내가 할 테니까 너는 표 검사만...”
“농담도 못하겠네. 그냥 내가 할게.”
“아, 응... 그리고 표는 이렇게 생겼어...”
마사코가 내게 귀신의 집 표를 내밀었다.
귀신을 SD화 시킨 귀여운 입장권.
그림체를 보아하니 미유키가 그린 게 분명하다.
“하나도 안 무서운데.”
“그걸 노린 거래... 만만하게 생각하다가 들어오면 깜짝 놀랄 거라고...”
“너도 들어가 봤냐?”
“응... 엄청 무서웠어. 세트장도 장난 아니고... 애들이 엄청 고생했어...”
나는 아무런 고생도 안 하고 빈둥거리기만 했는데...
양심은 하나도 찔리지 않지만, 다음 주 평일에 간식거리라도 돌려야겠다.
**
찌이익.
절취선을 찢고 남은 표를 건네자, 표정에 설렘이 가득한 커플 둘이 조심스레 입구로 향했다.
끼이익...
음산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문.
안에서부터 찬바람이 확 불어와 등에 닿는다.
시원하다. 이 정도면 분장을 한 사람들은 꽤나 춥겠는데.
첫 손님을 받은 나는 옆에 있는 마사코를 향해 물었다.
“저 손님들은 그냥 바로 들어가는 거야? 상황설명 이런 거 없어?”
“아... 입구에 컨셉 설명해주는 애들이 두 명 있어. 걔네가 다 알아서 해줄 거야.”
“나름 꼼꼼하네.”
“그치? 미유키 덕분이야.”
학급 애들한테 굳건한 신뢰를 받고 있구나.
다른 사람들이 동경해 마지않는 여자가 내 앞에선 애교와 아양을 떠는 그림...
야동 한 편 뚝딱 나왔다.
그렇게 나는 마사코와 함께 입구 앞에 서서 표를 검사했다.
정오가 지나자 사람들이 슬슬 몰리기 시작했다.
가족단위는 거의 없었고, 대다수는 커플과 동성 친구들이었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아!!
체육관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손님들의 비명을 듣고, 입장권이 귀엽다고 쑥덕거리며 대기하던 여자들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의연한 척을 하고 있던 남자무리들의 표정 또한 굳어가고 있다.
손님들의 면면을 살펴보며 반응을 즐기고 있던 나는, 분장한 연기자들을 위한 브레이크타임이 가까워질 때쯤 마사코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검도부가 운영하고 있는 꼬치집으로 달려갔다.
“안녕히가세요! 어? 마츠다 후배님!”
만면에 미소를 띤 채로 손님을 응대하고 있던 치나미가 밝은 낯으로 내게 손을 흔들었다.
렌카는... 특유의 무덤덤한 얼굴로 꼬치를 굽고 있구나.
날 발견한 그녀의 눈빛이 꿈틀하는 게 보인다.
“안녕하세요.”
“오! 마츠다, 왔냐?”
검도부원들은 대련 이후 날 한층 편하게 대했다.
렌카와의 대련에서 재능을 보여준 이유 때문이 아니라, 대련 전에 웃긴 포즈를 잡으며 재롱을 부렸던 것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얌전히 매니저 일을 하고, 나름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주어서 슬슬 올라가던 평가가 그날을 기점으로 터진 것이다.
반 대항전에 참가하지 않은 부원들의 환대를 받으며 치나미의 앞으로 간 내가 말했다.
“다리살 여섯 개만 주세요.”
“다리살 여섯 개요? 후배님이 드시기엔 너무 적어요. 여덟 개 사가세요.”
“강매하는 건가요?”
“농담이에요. 귀신의 집은 잘 되어가고 있나요?”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꽤 많네요.”
“다행이네요. 지금은 휴식시간인가봐요?”
“예. 근데 얼마죠?”
“2400엔이에요.”
하나에 400엔, 전문적인 야키토리 가게도 아닌데 비싸다.
이런 축제의 상점은 바가지가 국룰이긴 하지.
야키토리 값을 지불한 나는, 치나미와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꼬치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렌카가 나를 불렀다.
“마츠다, 다 됐어. 이거 가져가.”
예쁜 포장 박스를 내미는 렌카.
그 안에 담겨있는 꼬치의 개수를 확인한 내가 물었다.
“일곱 갠데요?”
“서비스야.”
“서비스?”
“부원들이 주문하면 서비스로 하나씩 더 얹어주는 거야. 다른 뜻은 없어.”
“그래요? 그럼 다리살 하나씩, 다섯 번 추가로 주문할게요. 열 개 주세요.”
“.....”
“장난 좀 쳐봤습니다. 감사히 잘 먹을게요. 잠깐 쉴 때 체육관에 들러서 즐기고 가세요.”
씨익 웃으며 간단하게 입례를 한 나는, 치나미와 서로 마구 손을 흔들다가 체육관으로 향했다.
**
딩! 딩! 딩딩딩...
섬짓한 현악기 소리.
[오오오오오...!]
그리고 설치된 스피커 안에서 들려오는 으스스한 괴성.
귀신의 집 안으로 들어온 나는, 제법 무서운 분위기에 약간 긴장했다.
꼼꼼한 미유키가 칼을 갈았구나. 학생들의 문화제치고는 퀄리티가 아주 좋다.
애써 배경음을 무시하려고 노력하며 미로처럼 된 길을 걷던 나는,
“구에에엑...”
침인지 뭔지를 질질 흘리며 다가온 요괴가 기다란 손톱을 사르르 흔들자 거의 경기를 일으키듯 하며 몸을 떨었다.
“어어억! 씨발!”
“꺄아악!”
그리고 그 요괴 또한 내가 소리를 지르자 덩달아 놀라선 비명을 터뜨렸다.
외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 하이 톤의 목소리에 나름 진정이 된 나는, 떨어뜨릴 뻔한 야키토리 박스를 꽉 쥐고는 말했다.
“너 뭐냐...?”
“마, 마츠다 군이네...? 무슨 일이야...?”
“점심시간이라고 말하려고 왔다. 브레이크타임인데 연기는 왜 하는 건데?”
“아니... 그... 마지막 손님인 줄 알고... 미안.”
“대기실에서 밥 먹으라는 연락 못 받았어?”
“아... 휴대폰 꺼놔서... 지금 가면 돼?”
“어.”
“고마워.”
“그 분장으로 고맙다고 하지 마라. 더 무섭다.”
“응.”
내 반응이 재미있었는지 킥킥거리는 동급생.
그 이질적인 모습에 소름이 끼친 나는, 재빨리 거길 벗어나 아직 남아있는 연기자들에게 대기실로 돌아가라고 말을 하고 다녔다.
이후 미유키가 있는 설녀 코스에서 멈췄다.
다른 곳보다 더욱 추운 장소.
연기발생기까지 틀어놓아서 굉장히 스산하다.
세트장도 어디 설산에 온 것처럼 잘 만들어놓았다.
그곳으로 발을 들인 나는, 고풍스런 장식이 수놓아진 기모노를 입고 있는 미유키가 쪼그려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연기 속에 있는 그녀는 새하얀 가발을 쓰고 있었다.
사람의 살색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화장을 한 그녀는 어디서 구했는지 빨간 콘텍트 렌즈까지 끼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서 순간 정신을 놓아버릴 뻔했다.
이러니까 귀신의 집을 즐기고 나온 놈들이 설녀가 엄청 예쁘다고 하지.
“마츠다 군.”
일부러 차가운 목소리로 날 반기는 미유키를 본 나는 연기 발생기를 끄고 아직 남아있는 연기를 모두 날려 보냈다.
그리고는 문을 닫은 뒤 근처 소품으로 막기 시작했다.
이런 내 행동에 당황한 미유키가 자신의 새빨간 입술을 움직였다.
“뭐하는 거야...? 왜 문을 막아...?”
“있어봐.”
대충 물건을 다 옮겨놓은 나는, 문이 잘 닫혔는지 확인해보고는 구석에 쪼그려 앉았다.
“앉아. 야키토리 먹자.”
“야키토리?”
“네가 좋아하는 다리살로 사왔어. 식기 전에 먹어.”
박스를 열고 미유키에게 내밀자, 그녀가 내 옆에 다소곳하게 앉더니 꼬치 하나를 집어들었다.
“언제 사온 건데?”
“방금.”
“내 거만?”
“어.”
자신만을 위한 음식이라 기뻤을까?
헤실거린 미유키가 야키토리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먹기 시작한 그녀가 입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마츠다 군. 아까 욕한 거 다 들었어.”
“그랬어?”
“목소리가 엄청 컸는데 당연히 들을 수밖에 없지...”
“놀라면 욕 좀 할 수도 있지.”
“엄청 저렴해보였어.”
저렴하다는 말은 오랜만에 들어보는 것 같다.
날 나무라는 미유키의 입가엔 야키토리 소스가 묻어있었다.
좋은 생각이 난 나는, 미유키에게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빼려는 미유키의 목덜미를 잡아 목을 고정시킨 나는, 혀를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할짝 핥아 소스를 닦아냈다.
“무, 뭐하는 거야아...!”
갑작스런 행동에 기겁을 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 그녀.
히죽거린 내가 말했다.
“소스 묻어서.”
“휴, 휴휴휴지로 닦으면 되지 왜...!”
“안 춥냐?”
능글맞게 화제를 돌리자, 꼬치를 잡은 손을 벌벌 떨던 그녀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조금...”
어색함을 감추려는 듯 야키토리를 앙 무는 미유키.
그런 그녀의 몸을 껴안은 나는 기모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미유키가 어깨를 들썩이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어헉!”
미유키의 몸은 평소에 비해 더욱 따뜻했다.
차디찬 방 안, 그리고 따뜻하고 말랑한 몸...
겨울에 미유키를 꼭 끌어안고 자면 비슷한 느낌이 날 것 같다.
“마츠다 군...! 이러려고 문 막은 거지...!?”
“시끄럽고, 설녀가 몸이 이렇게 따뜻해도 돼? 사람을 얼려 죽여야 맞는 거 아닌가? 이 정도면 얼어 죽을 사람도 살리겠네.”
“.... 거, 겉은 차가워 보이니까 괜찮잖아...”
“오늘 문화제 구경은 못하겠네?”
“귀신의 집... 늦게까지 해야 하니까... 미안해...”
귀신의 집이 끝날 때쯤은 밴드부 공연이 하이라이트에 접어들 시간이었다.
그때 함께 문화제의 하이라이트인 밴드부 공연을 보는 게 정석이긴 하지만, 현재 나와 미유키의 관계는 그 정석적인 흐름에서 아득히 벗어난 상태다.
밴드부 공연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큰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딴 걸 보면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지.
미유키의 허리를 가볍게 주물럭거린 내가 말했다.
“난 끝나면 먼저 가있을 테니까, 뒤풀이 때 연락이나 해.”
“응... 근데 나 야키토리...”
“먹어.”
“놔줘야 먹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미유키는 내 몸을 절대 놓지 않으려는 듯 꽉 끌어안고 있었다.
먹던 야키토리까지 박스에 놓아둔 채로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