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두 번째 초대
* * *
넷 카페의 다인실에서, 나와 미유키, 그리고 떨거지 테츠야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집을 짓고 여러 물건들을 만들어 생존해나가는 생존게임이었다.
풀밭 위에서 상하좌우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팬티만 입은 남자 캐릭터.
멍하니 키보드를 누르며 내 캐릭터를 움직이던 나는, 거적때기를 입은 미유키의 캐릭터가 다가오자 마우스를 클릭했다.
퍼억!
난데없이 한 대 맞은 미유키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날 돌아보았다.
“왜 때려?”
“그냥.”
퍼억!
그대로 갚아주는 미유키.
내 캐릭터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능선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되로 주고 말로 받았다는 게 이런 건가? 체력이 쭉쭉 닳고 있다.
데굴데굴 굴러가는 내 캐릭터를 본 미유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게임 안에서만큼은 너도 폭력적이구나.
“어떡해... 괜찮아? 많이 아프지?”
걱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물음.
헛웃음을 켠 내가 미유키를 쳐다보았다.
“곧 죽을 것 같은데 많이 아프냐고? 피 철철 흘리는 거 안 보여?”
“그러게 왜 날 때리고 그래... 정당방위야. 테츠야 군, 우리 이제 뭐해?”
그 말에 열심히 집을 만들던 테츠야가 대답했다.
“도끼로 나무 캐서 모닥불 만들어야 돼. 체온 떨어지면 죽는대.”
“도끼? 이건가?”
“응. 그거 맞아.”
기본 장비로 지급된 활과 화살을 든 나는, 열심히 도끼질을 하는 미유키의 캐릭터를 정조준했다.
이후 게임에 집중하는 미유키를 흘끗거리며 화살을 쏘았다.
퓩!
경쾌한 소리와 함께, 미유키의 캐릭터의 가슴에 꽂힌 화살.
체력이 닳았음을 확인한 미유키가 혼란스러워했다.
“뭐야? 누가 나 화살 쐈어.”
“이 근처엔 사람이 없는데?”
“이거 봐. 화살 박혀 있잖아.”
“그러네? 날아온 방향 뒤로 숨어.”
“어디서 날아온 건데?”
미유키와 테츠야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나는 미유키의 양쪽 엉덩이에도 화살 두 발을 쐈다.
그제야 내가 장난을 치고 있음을 알아차린 미유키가 성을 냈다.
“아 뭐해애...!”
“활 쏴보고 있잖아.”
“그냥 땅바닥이나 나무에 쏘면 되지, 왜 거기다가... 나 체력 없어...!”
그리 말하는 미유키의 입꼬리는 희미하게 올라가있었다.
그녀도 웃긴 것이다. 화살이 꽂힌 채 우왕좌왕하는 자신의 캐릭터가.
“그만 놀고 이리와. 같이 목재 줍자. 모닥불 만들어야...”
내 화면을 보며 조언을 해주려던 미유키가 경악을 했다.
조준선이 미유키의 캐릭터의 가랑이 사이를 노리려고 했기 때문.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내 마우스를 옆으로 휙 돌렸다.
“그만해 이 바보야...! 진짜 변태도 아니고...”
그럼 화살 대신 다른 거 꽂아도 되냐?
이런 말을 속으로 삼킨 나는 얌전히 미유키와 테츠야가 시키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우린 넷 카페를 나섰다.
테츠야를 내려주고 미유키의 집 앞에 차를 세운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들어가라.”
“응. 방학 이후 처음으로 세 명이서 놀았던 것 같네? 오늘 재미있었지?”
“그냥저냥.”
“별로였어?”
“별로까진 아닌데, 다음엔 둘이서 놀자.”
‘둘이서’라는 말을 강조하자, 미유키가 흠칫하더니 입을 앙다물었다.
테츠야는 미유키의 소꿉친구다. 그것도 아주 오래 된.
함께한 시간이 긴 만큼 같이 노는 건 이해하지만, 미유키는 놈과 보내는 시간을 줄여나가야 한다.
지금도 많이 줄어들긴 했는데, 더욱 줄여야한다는 얘기다.
오직 나와의 시간만을 즐겁다고 생각하게끔 해서, 테츠야는 안중에도 없게끔 만들어야지.
미유키를 향해 포근하게 웃어보인 내가 말을 이었다.
“알았지?”
내 온화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을까?
미유키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 아, 알았어...”
“착하다. 들어가.”
등허리를 토닥여주며 미유키를 칭찬한 나는, 차에서 내린 그녀가 조신한 걸음으로 현관문을 향해 가는 것을 보고는 차머리를 돌렸다.
**
“하나, 둘, 하나, 둘... 어허!”
깜찍한 구호를 외치다가 못마땅한 소리를 내는 치나미.
죽도를 머리위로 든 채 발동작을 연습하던 내가 우뚝 멈췄다.
“왜요?”
“마츠다 후배님, 유효격자에 타돌할 시 점수로 인정을 받으려면 뭐가 필요하다고 했죠?”
“잔심, 그리고 기검체일치요.”
“잘했어요. 칭찬 도장 찍어줄게요. 하지만 현재 마츠다 후배님의 검(?)과 체(?)는 일치되어있지만, 기(?)가 없어요. 의욕과 기세가 전혀 보이지 않아요. 너무 흐물흐물해요. 흐물흐물...”
치나미의 팔다리가 연체동물마냥 유연하게 꿀렁거렸다.
왠지 모르게 꼴리는데 정상인가? 검사를 한 번 받아봐야 하나?
내가 했던 동작을 과장스럽게 표현한 치나미가 근엄한 척 팔짱을 꼈다.
“자, 이제 뭐가 잘못된 건지 아시겠나요?”
“알긴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흐물거리진 않았는데요.”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아뇨. 귀엽네요.”
“고맙습니다. 자, 다시 해보아요. 이번엔 제가 옆에서 도와드리도록 할게요.”
당황하게 만들려고 한 건데 순수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황당한 듯 헛웃음을 켠 나는, 생글생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치나미와 함께 나란히 서서 발동작을 연습했다.
장장 1시간 가까이 말이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해야겠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츠다 후배님.”
아직 날씨가 채 풀리지도 않은데다가 죽도를 들고 연습하느라 힘들 법도 한데, 치나미는 이마에 약간의 땀방울만 맺혔을 뿐 여전히 팔팔했다.
저 기운을 약간 죽여 놓은 다음 말랑말랑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은데... 이럴 땐 좋은 방법이 있지.
팔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피로해지려는 근육을 푼 내가 말했다.
“이제 뭐할까요?”
“오늘은 죽도를 전체적으로 체크해보도록 해요.”
“그럼 보관실로 갈까요?”
“네, 그래요.”
사이좋게 땀을 닦고 보관실로 향한 우린 죽도를 체크해보기 시작했다.
대나무가 약간 찢어져있는 것을 따로 빼놓고, 새 죽도를 옮겨놓고...
방혁이 더러워진 죽도가 있다면 사포로 갈아내 브러쉬로 청소를 하고...
그렇게 꼼꼼히 죽도 관리를 끝냈을 때쯤, 부활동을 끝낼 시간이 찾아왔다.
“저... 마츠다 후배님.”
비품 체크리스트를 살펴보며 마무리를 하던 치나미의 부름.
그녀의 뒤로 간 나는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예.”
“이거 뭐라고 쓴 거예요?”
“어느 거요? 가장 위에 있는 거?”
“네.”
“죽도라고 쓴 건데요.”
“.... 그, 그렇군요... 이해했어요.”
전혀 이해하지 못한 말투다.
내가 조금 악필이긴 하지.
나는 방심하고 있는 치나미를 은근슬쩍 떠보았다.
“아까 보니까 어깨가 굳은 것 같던데?”
“조금 결리긴 하지만, 집에 갈 때쯤 괜찮아질 거예요.”
“오늘 저와 함께 고생해줬으니까, 풀어드릴게요.”
“고생이라니요... 저는 마츠다 후배님의 실력이 나날이 올라가는 게 눈에 보이니까 즐겁기만... 흐이이잇...?”
치나미가 말을 하다 말고 자신의 어깨를 바짝 세웠다.
내가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전부 감싸고, 엄지를 뒷목에 가져다댔기 때문이었다.
이제 치나미는 분명히 이렇게 말을 하려고 할 것이다.
먼저 물어보라고 말했는데 왜 또 이러냐고.
그 전에 먼저 선수를 쳐서, 마사지 중간에 그 말을 할 수 없도록 만들자.
“저 때문에 스승님이 고생하시네요.”
그리 말한 나는 엄지에 약간 힘을 주고 바깥 방향으로 마사지를 하듯 살살 눌렀다.
“므헥...!”
저번처럼 괴상한 소리를 내더니 고개를 삐걱삐걱 돌리는 그녀.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어 뻣뻣하지만,
꾸우욱. 꾸욱.
적당한 지압으로 풀어주기 시작하자 이내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힘을 푼다.
이제 그거 해야지?
“흐아아아...”
잘했어요. 칭찬 도장 찍어줄게요.
풀린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치나미를 향해 살포시 웃어주자, 후우욱 하는 기다란 콧바람을 내뱉은 그녀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마, 마츠다 후배니임... 잠깐...”
“응, 응. 힘 풀어요.”
아이를 다루듯 나긋나긋 말하며, 나는 치나미의 목을 엄지로만 다루는 동시에 그녀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눌러주기 시작했다.
“응큿...!”
치나미의 아래로 쭉 뻗은 팔이 갈비뼈에 딱 달라붙는다.
꽉 쥐어진 손은 바깥쪽으로 향해있었는데, 그 포즈가 마치 꼬마가 화를 내는 것 같아서 웃기다.
마사지를 하는 손바닥이 도복을 양옆으로 밀어내면서, 목덜미에서부터 이어지는 뽀얀 어깨선이 드러난다.
미유키보다 약간 더 하얀 피부.
입술을 대기만 해도 흔적이 새겨질 것처럼 야해 보인다.
“절 가르치는데 힘들지는 않으세요?”
“그, 그렇지 않아요... 힘들지 않앗...!”
힘겹게 대답을 하며 머리를 부들부들 떠는데, 몸을 뺄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몸이 너무 허접하잖아. 혹시 밑이 젖어있는 건 아니겠지?
“다행이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네에...! 저도 고마... 이히익...! 마, 마츠다 후배님...! 그만...! 이거 그만해요...!”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생각했는지, 치나미가 이를 악 물고 거부의 의사를 내비쳤다.
아깝긴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면 마이너스다.
슬슬 보관실 문 너머에 있는 부실이 소란스러워지는 것도 같으니까...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은밀하고도 야릇한 마사지를 끝낸 나는 치나미의 도복 매무새를 가다듬어주었다.
“집에 돌아가면 푹 쉬세요, 스승님.”
얼굴을 복숭아마냥 분홍색으로 물들인 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나를 올려다본 치나미의 입에서 참아왔던 숨이 토해져 나왔다.
“푸헤에... 후아...!”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려 심호흡을 한 그녀가 볼을 부풀리며 날 쏘아보았다.
“마츠다 후배님... 제가 뭐라고 했죠...? 분명히 먼저 물어보라고 했을 텐데요...?”
“마사지를 시작해도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길래 승낙하신 줄 알았습니다.”
“해,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셔야지요...! 아무리 절 위해서 하신 일이라고 해도 그게 기본 예의에요...! 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을 텐데요...?”
선 조치 후 보고가 정석 아닌가?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네...! 마지막 경고에요...! 만약 다음에도 이러시면... 호되게 혼을 낼지도 몰라요...!”
“명심하겠습니다. 근데 어땠나요? 스승님을 위해서 열심히 연습한 건데.”
“여, 연습까지 했어요...? 좋긴 했지만... 어쨌든 마지막이에요...!”
“알겠습니다.”
“흐흠...!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화를 내면서도 입례는 해주는 그녀.
반응이 너무 찰지다. 이러면 자꾸 괴롭히고 싶어지잖아.
다음번엔 가기 직전까지 해줄게. 기대하고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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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차를 잘 세워놓고 내린 나는, 박시한 티셔츠와 바지를 입은 미유키가 날 마중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를 향해 한손을 흔든 내가 물었다.
“아주머니랑 아저씨는?”
“기다리고 있어. 손에 든 건 뭐야?”
“선물.”
“이런 거 필요 없는데...”
필요가 없긴 왜 없어.
나중에 너희 집에서 온갖 일이 다 일어날 테고, 당장 오늘도 네 방에서 뭔가 일어날 텐데... 앞으로 자주, 내 집처럼 드나들려면 뇌물이 있어야지.
“들어가기나 하자.”
“응. 오늘 야채 많이 먹고 가.”
“알았어.”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며 현관문으로 간 나는, 와타루와 미도리, 그리고 카나가 앞에 서있자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신세지겠습니다.”
저번에도 이랬던 것 같은데... 데자뷰 같다.
다만 오늘은 첫 번째 초대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몸까지 섞은 젊은 남녀가 함께 있으면 온갖 일이 다 일어나는 법 아니겠는가?
낮이든, 밤이든, 장소가 어디든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