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두 번째 초대 #2
* * *
“마츠다 군.”
뒤에서부터 미유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마치고, 화장실로 양치를 하러 가던 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안 통해요.”
“.... 아쉽네. 어떻게 알았어?”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실토하는 카나.
그제야 몸을 돌린 내가 씨익 웃었다.
“왠지 그럴 것 같더라고요.”
사실 음의 높낮이를 듣고 알았다.
첫 관계를 가진 이후, 미유키는 쑥스러움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날 부른다.
애써 태연한 척은 하지만 상기되어있음을 감출 수 없는 목소리.
그 풋풋한 음색은 카나가 날 부를 땐 전혀 없었으니, 금방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감이 좋은 거야? 아니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거야?”
카나가 자신의 등허리로 손을 가져간 채 상체를 약간 숙였다.
미유키와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녀와는 다르게 무척 요망해 보인다.
눈을 게슴츠레 뜬 모습이 마음에 든다.
젖치기 해달라고 하면 해주려나?
“뭘 숨겨요?”
“아무것도 아냐.”
싱겁게 굴기는.
발랄한 발걸음으로 내려가는 카나의 뒷모습을 보던 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이후 열심히 양치를 끝내놓고 1층으로 내려가려다, 미유키가 자신의 방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자 피식했다.
“뭐하냐 거기서?”
“얼른 들어와... 과일 먹자.”
“아저씨랑 아주머니는? 안 내려가 봐도 돼?”
“응. 괜찮아. 먼저 올라간다고 했어.”
알아서 판도 깔아주고... 우리 미유키 다 컸네.
뿌듯하다.
그녀의 방으로 들어간 나는 문을 닫으려다가, 미유키가 걸어놓은 마네키네코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미간을 구겼다.
그것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미유키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옛날에 테츠야 군이랑 같이 샀던 건데... 귀엽지?”
“저번에도 있던데... 항상 걸어놓는 거야?”
“응.”
“소리는 거슬리지 않고?”
“딱히...? 마츠다 군은 저거 별로야?”
“어. 마음에 안 들어.”
“왜?”
나는 말없이 미유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시선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그녀가 재차 물었다.
“왜 마음에 안 드는데?”
“저거 혹시 미우라가 걸어놓으라고 한 거냐?”
“그건 아니구... 그냥 서로의 방에 걸어놓자고 했는데...”
테츠야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겠지.
각자의 방에 걸어놓자고.
“이거 미우라 방에도 있어?”
“응. 아마 있을 걸?”
“빼자. 남의 여자친구 방에 저런 거 있으니까 기분 나쁘다.”
‘여자친구’라는 단어에, 미유키의 몸이 움찔했다.
은연중으로 사귀고 있음을 어필하니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낀 듯했다.
두 눈을 끔벅거리며 나와 목걸이를 번갈아 쳐다보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건 그냥 추억, 우정 기념품 느낌으로 산 건데...”
“네 방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미우라 방에도 있잖아. 이젠 빼고 이거 걸어놔.”
나는 주머니에서 평일에 주문하고 어제 받아왔던 것을 꺼냈다.
H.M, 그리고 M.K라는 알파벳이 나란히 붙어있는, 누가 봐도 미유키와 내 이름 이니셜을 딴 것으로 보이는 목걸이였다.
“목걸이네...?”
“어. 어제 받아왔어.”
미유키는 내 손 밑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금색으로 반짝이는 그 목걸이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시선을 떼지 못하던 그녀는,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내게로 눈을 돌렸다.
“이거... 왜 이니셜로 만든 거야?”
“네가 라멘 집에서 포스트잇에 그림 그릴 때 이니셜 적었잖아. 좋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지. 원래는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말하려했는데, 저거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어. 이걸로 걸어놔.”
“뭐야... 질투하는 거야 지금...?”
“마음대로 생각해.”
말을 마친 나는 미유키에게 목걸이를 쥔 손을 내밀었다.
이게 빨리 바꿔 걸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행동임을 알아챈 미유키는, 어쩔까 아주 잠깐 고민하다가 내가 준 목걸이를 받아들었다.
“알았어... 바꿔 걸어놓을게.”
테츠야와의 추억이 담긴 마네키네코를 한 번 쓰윽 바라본 그녀는, 딱히 망설이는 기색 없이 목걸이를 교체했다.
그리고는 마네키네코를 책상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이제 됐어?”
“일단은.”
오늘은 딱 이거 하나만 바꾸는 것으로 만족해준다.
나중엔 갖다 버리게 해야지.
“오늘 되게 이상하네...”
침대에 걸터앉아 저리 중얼거린 미유키가 멜론 하나를 포크로 찍더니, 내게 내밀려다 멈칫했다.
첫 키스 때 내가 멜론을 주고, 그 이후 키스를 했던 게 생각난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가까이 다가간 내가 말했다.
“이상한 게 아니라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해. 미우라 이 새끼... 지 방에도 걸어놓는 걸 보면 음습한 놈이었네.”
“마츠다 군...! 욕하지 마...!”
“욕이 나오는데 뭐 어떡하라고.”
미유키의 손에서 포크를 반강제적으로 가져온 나는 멜론을 입에 집어넣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미유키가 실소를 터뜨리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눈엔 마츠다 군이 더 음습해 보여...”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한테 떳떳하게 음습한 거고, 테츠야는 소심하게 음습한 거야.
자아성찰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 두 가지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지.
“뭐래. 과일이나 먹어라.”
미유키가 포크에 푹 찍힌 사과를 받아들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손을 스윽 밀자, 뒤로 빼는 척하더니 입을 앙 벌리며 자신의 앞니로 사과를 잘랐다.
조신한 눈빛으로 날 흘끗거리는 미유키.
입을 우물거리며 사과를 씹던 그녀는,
“흐힉!”
무릎 위에 올라가있는 자신의 손을 내가 살살 쓰다듬기 시작하자 딸꾹질을 하듯 몸을 달싹였다.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손허리뼈부터 끝마디뼈를 쓸어내리듯 살살.
그런 식으로 끈적한 분위기를 잡으면서, 나는 미유키의 손을 서서히 내 쪽으로 옮겼다.
“마츠다 군... 뭐해애...”
빠르게 사과를 삼킨 미유키의 질책이 섞여있는 물음.
손을 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그녀를 묵묵히 만져주던 내가 나직이 말했다.
“손이 예뻐서.”
“.....”
성감대만 터치하며 성감을 증폭시킬 필요는 없다.
그저 눈을 마주치고 나긋하게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가벼운 스킨십만으로도 얼마든지 자극을 줄 수 있다.
갑작스럽게 뒤바뀐 태도에 당혹스러워하던 미유키가 손을 빼내려고 하다가 멈칫했다.
그녀도 좋은 것이다.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해주면서 자신의 몸을 만져주는 것이.
다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일말의 거부감 정도는 있는 듯했다.
“여기서 이러면 안 돼... 여긴...”
“여긴 네 집이지. 근데 왜? 문제라도 있어?”
연인끼리의 스킨십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에둘러 표현하자, 내 말의 속뜻을 눈치챈 미유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건 아니지만...”
그녀의 몸은 잔뜩 수축되어 굳어버린 상태였다.
부모님과 언니가 있는 장소인 만큼 긴장한 모양.
하지만 내가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주자 금세 이완되며 온몸이 말랑해졌다.
“요즘 너 때문에 미치겠다.”
이런 오글거리는 말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감성을 자극하는데 좋은 발판이 된다.
예상대로, 순식간에 이 분위기에 취해버린 미유키가 내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 흐잉...”
입에서는 자신이 안달이 났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귀여운 추임새가 튀어나오고, 절대 내 몸을 놓지 않겠다는 듯 팔에 힘을 주고 있다.
고개를 천천히 돌린 나는, 그런 그녀의 뺨에 쪽 소리를 내며 키스를 해주었다.
“후아...”
그러자 미유키의 코와 입에서 후끈한 숨결이 새어나와 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벌써부터 달아오르기 시작한 그녀는 자신의 엉덩이를 움직여 나와 완전히 밀착했고, 엄지발가락을 지렁이처럼 꼼지락거렸다.
“이런 거 좋아하지?”
친근감과 장난기가 섞여있는 질문에, 미유키가 자신의 이마를 내 어깨에 댄다.
내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손은 어느 샌가부터 티셔츠를 찢어져라 쥐고 있었다.
“그치? 좋아하잖아.”
“.....”
“대답이 없네. 싫어?”
“아니이...! 좋아해...!”
부정적인 말을 하자 화를 내며 대답하는 그녀를 향해, 나는 낮게 웃어보였다.
그에 그르렁거리는 목소리가 귀에 확 파고드는 게 좋았는지, 온몸을 푸들푸들 떨던 미유키가 티셔츠 안쪽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까 있던 거부감이 온데간데없어진 그녀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쇄골 바로 위쪽에 입술을 댄 그녀는, 곧 쪼옵하는 흡착음을 내며 내 목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기 시작했다.
빨아들이는 힘이 강해 따끔하긴 하지만, 간질간질한 느낌이 더 커서 쾌감이 찾아온다.
잠깐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짜릿한 감각을 느끼던 나는, 키스마크를 만드는데 열중하고 있는 미유키의 귀에 입술을 대고 조곤조곤하게 속삭였다.
“변태야?”
“.....”
짓궂은 말투에 화가 났는지, 미유키가 내 허리를 약하게 꼬집었다.
여전히 살갗을 쪽쪽 빨아들이고 있는 그녀의 목덜미를 살살 주물러준 내가 말했다.
“문 잠가놨는데, 괜찮지?”
그 의미심장한 말에 미유키의 몸이 한 차례 움찔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눈으로 묻고 있는 그녀를 향해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 나는,
스윽.
그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넘어뜨렸다.
“읏...!”
슬슬 제대로 시작하려는 나를 올려다보는 미유키.
그 그렁그렁한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씨익 웃어주자,
“.....”
미유키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중얼거렸다.
“엄마랑 아빠 있으니까...”
“네 언니도 있잖아.”
“응... 언니도 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해... 진짜 조금만...”
하다보면 격해질 수도 있는 거 아닐까 싶은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나는 능글맞게 화제를 돌렸다.
“오늘 저녁에 산책이라도 갈까?”
“.... 마츠다 군... 대답부터 해애...”
“목이 따끔거리는데, 나도 반창고 붙이면 되나?”
“부, 붙이지 마... 아니... 대답해... 말 돌리지 말구...”
“오늘 예쁘다.”
직접적인 칭찬에, 미유키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내게 한 번 더 당부하려는 듯 가슴에 손을 대고 밀려던 그녀는,
“.....”
결국 날 설득하는 것을 포기했는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버렸다.
아니, 포기했다기보다는 자신도 이 분위기에 휩쓸리기로 결정했다고 보는 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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