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무단침입
* * *
끼이익...
습기를 머금어 기름칠이 벗겨진 소리.
마치 폐가에 온 것 같은 그 불길한 소리에 오싹함을 느낀 나는 비몽사몽 상체를 일으켰다.
“뭐야...?”
거실로 통하는 미닫이문이 열려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기다란 머리카락을 가진 호리호리한 검은 형체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희미한 달빛에 비친 그 형체를 바라보던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 뭔데...?”
바짝 쫄아있던 나는, 그 검은 형체가 저벅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자 잠이 확 달아났다.
“이런 씨...”
뒤로 물러나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는 찰나,
“욕하지 마...!”
검은 형체에게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스러움이 섞여있는, 야단을 치는 듯한 말투.
목소리의 주인이 미유키임을 알아차린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하... 너 지금 뭐하냐...?”
“마츠다 군 보러 왔는데...? 일어나면 연락하라며...”
“연락하랬지 언제 직접 오랬어...? 지금 몇 신데?”
“새벽 세 시...”
일찍 자서 일찍 일어난 거구나.
“대단하다 너도... 아니, 근데 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초인종을 누를까 전화를 할까 고민하다가 대문을 열어봤는데... 열려있어서 그냥 들어왔어. 문 좀 잘 잠그고 다니지...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래? 사람이 조심성이 없어...”
“그랬냐...?”
“응... 그리고깨워서 미안해. 마츠다 군 몰래 들어와서 자려고 했는데... 잠귀가 밝을 줄은 몰랐지이... 나 손이랑 발 씻고 올게...”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하게 씻고 나온 미유키는, 썼던 수건을 세탁 바구니에 넣어놓고 조심스레 다가와 내 옆자리에 누웠다.
“문화제 때 귀신의 집에서도 그러더니... 왜 이렇게 겁이 많아...?”
“문화제는 그렇다 쳐도 이번 건 누구라도 쫄았을 걸? 여기 소리 들어봐.”
나는 미유키의 얼굴을 끌어와 가슴팍에 딱 붙였다.
자신의 귀를 내 심장에 대어본 그녀가 놀란 투로 말했다.
“어, 엄청 빨리 뛰어... 아까부터 이랬어...?”
“어. 비와서 꿉꿉하고 스산한데 갑자기 문이 열려봐. 이건 안 놀라는 게 이상한 거지. 택시타고 왔냐?”
“응...”
“이렇게 마음대로 나와도 돼? 아주머니랑 아저씨가 뭐라고 안 하셔?”
“엄마한테 친구한테 고민이 있어서, 급하게 간다고 문자 남겨놓긴 했는데... 몰라...”
“뭐 이렇게 대책 없이 오냐 너는?”
“마츠다 군이 외로워할까봐...”
웃기시네. 그냥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거겠지.
가식을 떠는 미유키의 정수리에 턱을 괴고 하관을 올렸다 내렸다 하자, 그녀가 아프다며 칭얼거리더니 내 허리를 꼬집기 시작했다.
“따갑다. 하지마라.”
“.....”
“너 손버릇 나빠졌다?”
“마츠다 군이 먼저 아프게 했잖아...”
“버릇도 없어졌네. 자꾸 까불고.”
“뭐래애...!”
나는 미유키의 얼굴과 내 얼굴이 수평을 이루도록, 그녀의 엉덩이에 손을 받치고 위로 쭉 밀었다.
몸을 꿈틀거리며 올라온 미유키의 표정은 꽁해있었다.
그런 그녀의 코에 코끝을 마주대고 아주 살짝 누른 내가 말했다.
“야.”
“왜...”
“앞으로는 늦은 시간에 나 없이 싸돌아다니지 마라. 차라리 전화를 해. 안 받으면 받을 때까지 해. 그럼 데리러 갈게.”
“.....”
“대답.”
“아, 알았어...”
은근히 기뻐한 미유키가 내 얼굴을 구석구석 만지작거렸다.
피부 상태를 살펴보려는 듯한 행동.
팔자주름이 생기는 자리인 상순거근 부근을 눌러보던 미유키가 말문을 열었다.
“푸석푸석해...”
“자다 일어났으니까.”
“그거랑 상관없거든...? 보습 제대로 해야 돼... 자고 일어나면 기초화장품 사러가자.”
“올인원인가? 그거 하나만 대충 바르면 되지.”
“안 돼. 하나씩 바르는 게 더 좋아. 내가 골라줄게.”
“사놔도 안 바를 것 같은데. 귀찮아.”
“그래도 발라.”
그냥 네가 매일 들러서 발라주면 안 되냐?
“노력은 해볼게. 여긴 괜찮아?”
“어디?”
“여기.”
딱 붙어있는 우리의 몸 사이로 손을 들이밀고 미유키의 가랑이 사이로 스르륵 내려 보내자, 움찔한 그녀가 골반을 뒤로 뺐다.
“괘, 괜찮아... 저번보다는 안 아파...”
“아프긴 하다는 뜻이네?”
“조금...”
고개를 끄덕인 나는 상체를 일으키고 다리를 벌려 앉았다.
이후 미유키 또한 일으키고 그녀의 등을 내 가슴에 바짝 붙였다.
그 상태에서 미유키의 어깨에 턱을 괴고 한손을 아랫배에 대어 고정한 뒤, 남은 한손으로 안쪽 허벅지를 살살 주물렀다.
“마, 마츠다 군...!”
낯부끄럽기 짝이 없는 포즈에, 미유키가 떨리는 목소리로 날 불렀다.
창피함이 묻어나오는 그 목소리를 깔끔하게 무시한 내가 잠자코 마사지를 하자,
“.... 후으...”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코에서 나른한 콧바람이 새어나왔다.
끙끙거리며 아빠다리까지 하는 그녀를 살핀 내가 말했다.
“좋아?”
“모, 몰라...”
“일어나서 밥 먹었어?”
“.... 아니... 씻고 바로... 온 거야...”
“그럼 이따가 라멘 가게에서 뭐라도 먹고 오자. 괜찮지?”
“응... 난 좋아... 우응...”
미유키가 아랫배에 올라가있는 내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손등에서 느껴지는 미유키의 체온이 평소보다 더욱 뜨겁다.
몸 또한 마찬가지. 실시간으로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나는 미유키의 내전근과 서혜부가 이어진 부근을 엄지로 스쳐지나가게 하면서 마사지를 계속해나갔다.
“.... 마츠... 흐아앙...”
노골적인 터치에 날 부르려다가 야릇한 신음을 내뱉는 미유키.
밖에선 청초하고 모범적이어서 모두에게 동경을 받는 그녀가 자연스럽게 성욕을 받아들이고, 날 것 그대로의 반응을 보여주는 모습이 보기 좋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한테만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좋다고 해야 옳겠지.
몸을 떨기 시작하는 미유키의 귀에 약한 바람을 후 불어준 나는,
“아아앗...!”
내 손등을 잡은 그녀의 손에 힘이 빡 들어가고, 어깨를 쭈욱 세울 때쯤 마사지를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미유키를 조심스레 눕혀, 저번처럼 약손을 하듯 복부를 쓰다듬어주었다.
“하아... 하아...”
숨을 헐떡이던 그녀가 내 손목을 잡았다.
“마츠다 군... 나 오늘 힘들었어...”
“알아.”
“그, 그래서 몸이 무겁고 찌뿌둥해... 마츠다 군도 오늘 나한테 미안해했잖아... 그러니까...”
“그러니까 더 해달라고?”
“.... 응...”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꼭 한 번 꼬네.”
혀를 찬 나는 미유키의 아래로 자리를 옮겨, 그녀의 발바닥부터 종아리, 그리고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살살 주물러주었다.
“밥 먹고 편의점 들러야겠다?”
젖어있음이 분명한 팬티를 갈아입어야한다는 소리를 에둘러 하자, 언제나처럼 내 말의 속뜻을 눈치챈 미유키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킥킥거린 내가 미유키를 놀렸다.
“다행이네. 우리 집에선 눈치 보지 않고 세탁기 쓸 수 있어서.”
발 마사지를 해주는 내 손가락을 발로 꼬집는 그녀.
꼼지락거리고 있는 앙증맞은 발가락이 귀엽다.
놀리는 내가 얄미웠는지 행동으로 투덜거리고 있는 미유키의 발등을 찹! 소리가 날 정도로 가볍게 치자,
“악!”
그녀의 입에서부터 꽤나 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엄살은... 가만히 있어라.”
“.....”
언제 아파했냐는 듯 입을 꾹 다문 미유키를 보며 피식한 나는, 그녀의 한쪽 다리를 살짝 들어올리고 뒤쪽 허벅지를 쓰다듬듯 만지기 시작했다.
“으잇...!”
그러자 간지러움을 느낀 미유키가 허벅지에 힘을 주었는데, 적당히 단단해져서 만지는 느낌이 더욱 살아난다.
피부 탄력이 너무 좋아서 찰싹 때려보고 싶을 정도다.
엉덩이에 손자국을 만들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어나지만... 참자.
“좋아?”
“응... 좋아...”
“나중에 시간 날 때 여기서 입을 옷가지들 갖다 놔.”
의미심장하기 그지없는 말에, 미유키가 한동안 침묵하더니 물었다.
“.... 왜...?”
“계속 편의점에서 살 수도 없잖아. 매일 쇼핑백 안에 넣어놓는 것도 번거롭고...”
“나는 괜찮은데...”
“그래서, 싫어?”
“시, 싫다고 한 적은 없는데... 생각해볼게...”
상기된 목소리를 들어보니 조만간 이삿짐을 꾸려서 올 것 같은데 생각은 무슨.
저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가면은 언제쯤 벗겨지려나 싶다.
그래도 점점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인가?
**
“갈게...”
무릎 위에 조신하게 손을 올린 미유키의 말.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고 있던 내가 중얼거렸다.
“그냥 집 앞까지 간다니까 또 고집부리네.”
“우산 있으니까 괜찮아...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샤워할 거라서...”
“알았다. 그리고 또 오늘처럼 막무가내로 오면 혼날 줄 알아.”
“.... 그건 진짜 미안해... 많이 화났지?”
화? 전혀 나지 않았단다.
적극적으로 변해가는 네가 좋아서 미칠 것 같은데, 내가 왜 화를 내겠니.
“그게 아니라 걱정돼서 그러지. 내가 집에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랬냐? 돈은 돈대로 날리고, 기분은 기분대로 꿀꿀해졌겠지.”
“근데 있었잖아.”
결과론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네.
날 닮아가고 있는 건가?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켠 내가 말했다.
“이번 주 안으로 열쇠 복사해놓을 테니까 갖고 있어.”
미유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열쇠...?”
“어.”
나는 언제든지 집을 오픈해도 괜찮다,
네게 정말 큰 믿음을 갖고 있다.
열쇠를 준다는 건 이러한 뜻이 담겨있는, 의미가 큰 행동이었다.
내가 자신을 무척 신뢰하고 있음을 알아차린 미유키의 안색이 환하게 폈다.
“나, 난 괜찮은데...”
몸이라도 배배 꼬지 말고 그런 말을 하든가... 어이가 없네.
“괜찮긴 무슨... 얼른 들어가.”
“알았어... 그리고 테츠야 군이 오늘 점심쯤에 게임하러 가자고 하던데...”
“저번에 했던 거? 모닥불 피우고 집 만들고?”
“글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안 해. 재미없어.”
“음... 그러면 나도 쉬어야지.”
그래, 그딴 따분한 놈이랑 둘이서 시간을 보내느니, 나와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나누는 게 더 재미있고 값지지?
우리 미유키... 많이 발전했네? 나중에 같이 테츠야를 능욕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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