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76화 (76/313)

가벼운 발걸음의 테츠야.

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내가 미유키에게 조용히 물었다.

“네가 기념품을 줘서 그런가? 저놈 오늘 텐션 높네?”

“저놈이라니... 말 예쁘게 해.”

“아침부터 잔소리냐 너는?”

“잔소리하게 만들지를 말아야지. 그리고 집 청소도 좀 해. 돼지우리에 사는 것도 아니면서... 히약!?”

미유키가 까무러칠 정도로 놀랐다.

내가 그녀의 엉덩이를 톡 건드리고, 살짝 움켜쥐었기 때문.

그에 흥얼거리며 앞서가던 테츠야가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왜 그래?”

“아, 아니이... 버, 벌레... 벌레 있어서... 갑자기 귀뚜라미가 확 튀어올라가지구...”

다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은 미유키가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무척 수상쩍게 생각할 서툰 연기였지만, 테츠야는 당연히...

“그래? 하긴... 넌 예전부터 귀뚜라미를 싫어했지. 괜찮아? 많이 놀랐어?”

눈치채지 못했다.

“응... 괜찮아... 그냥 순간적으로 놀랐던 것뿐이어서... 지금은 진정했어.”

“얼굴이 빨간데?”

“노, 놀랐으니까 빨갛지... 걱정해줘서 고마워...”

고개를 주억거린 테츠야가 다시 교문을 향해 가자, 미유키가 숨을 죽인 채 나를 노려보았다.

테츠야의 눈치를 슬쩍 본 그녀가 볼멘소리를 냈다.

“왜 이러는 건데에...!”

“네가 잔소리하니까. 근데 너 저번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러네? 내가 벌레 같냐?”

“아니... 하... 마츠다 군. 진짜 혼날래?”

“웬만하면 채찍으로 때려줘.”

“.....”

미유키의 입이 꾹 다물렸다.

뻔뻔한 내 태도에 기가 막힌 모양.

나와 보폭을 맞춰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던 그녀가 토라진 얼굴로 말했다.

“진짜 채찍으로 때릴 거야...”

“좋아. 그럼 밧줄 구해놓을게.”

“밧줄...?”

“묶어서 때리라고.”

“.... 하...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니면 내가 묶어줄까? 귀갑묶기 해볼래?”

“무, 무슨...! 이상한 말 좀 그만해...!”

“좋아서 그러는 건데.”

“좋긴 뭐가 좋아...! 날 곤란하게 하려고 놀리는 거면서...!”

말은 저렇게 하면서도, 좋다는 말에 은근히 기뻐하는 게 티가 난다.

나는 미유키의 얼굴에 내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입술을 내밀었다.

“무, 뭐하는 거야...?”

말없이 입술을 톡톡 두드리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린 미유키가 당황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후 내 손목을 잡아끌고, 주차장에 늘어선 자동차들 사이로 데리고 갔다.

“됐어... 이제 앉아봐...”

부끄럼이 묻어나오는 말투로 쪼그려 앉더니, 내게도 앉으라고 손짓하는 미유키.

그 귀여운 행동에 살웃음을 터뜨린 내가 무릎을 굽히자, 미유키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부딪치려고 했다.

그 틈을 탄 나는 혀를 내밀어 미유키의 윗입술 안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미유키가 반응할 틈도 없이, 혀끝을 갈고리처럼 오므려 그녀의 입술을 안쪽에서부터 당겼다.

움찔.

어깨를 달싹이며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뜨는 그녀.

놀란 낯이 역력하지만, 이내 날 그윽하게 쳐다본다.

미유키는 이런 간을 보는 듯한 스킨십을 시작으로 애정표현을 하는 걸 좋아했다.

키스를 할 듯 말듯하며 애를 태우고, 그 뒤엔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쉽게 말해 몸을 천천히 달구는 스타일이라는 거다.

어느 여자가 그렇지 않겠냐고 하지만 미유키는 특히나 도드라졌다.

“.....”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미유키의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이 담겼다.

야외라서 부담되지만, 나와의 스킨십은 계속하고 싶은 모습.

이럴 땐 등을 조금만 떠밀어주면 된다.

미유키의 코끝과 맞닿을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들이댄 나는, 그녀의 뒷목을 손으로 잡아 아주 약한 힘으로 당겨왔다.

그러자 그녀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다가, 곧바로 멈췄다.

점차 보기 좋게 휘어지는 미유키의 눈가.

본능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증거였다.

그렇게 우린 다시 서로의 마음을 드러내며 달콤한 키스를 시작했다.

처음엔 입술을 두어 번 맞부딪치며 쪽쪽 하는 소리를 내고,

그 이후엔 혀를 빼꼼 내밀어 서로의 입술과 잇몸을 핥아 맛을 보고,

또 그 이후엔 아예 뺨에 코가 닿아 눌릴 정도로 딱 붙어 끈적하게 혀를 굴리고...

그런 식으로 1분여 간 서로를 탐하던 우린,

“미유키! 마츠다! 어디 있어?”

테츠야의 의문 섞인 외침을 듣고 얼굴을 떼어냈다.

쭈욱 늘어지는 타액을 혀로 톡 끊어 삼킨 나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턱짓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쟤는 눈치 좀 챙겼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내 모습을 보고 오싹한 기분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던 미유키가 정신을 차리고 날 나무랐다.

“.... 그런 말은 하지 마... 그래선 안 되는 거야...”

그런 말을 하는 미유키의 표정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너도 테츠야가 거슬리는 거지?

우리 미유키... 많이 성장했네? 기특하다.

애써 아닌 척을 하고 있는 미유키에게 너그럽게 웃어준 나는, 그녀가 손에 꼭 붙들고 있는 휴대폰을 가리켰다.

“그냥 일어나면 의심할 테니까, 미우라가 전화하기 전에 먼저 문자 남겨. 나랑 매점 간다고.”

“아, 알았어...”

“어떤 방해꾼 때문에 고생이네...”

“마츠다 군...! 적당히 해...”

내 무릎을 툭 하고 친 미유키는 곧 다급하게 휴대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검도부 감독인 도지마 고로가 분위기를 잡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그간 잘 지켜봤는데... 슬슬 정식 부원이 되어도 좋다는 판단이 섰다.”

고로의 앞에 앉아 차를 홀짝인 나는, 그의 옆에 시립해있는 렌카를 흘끗 쳐다보았다.

무덤덤한 표정.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부실에서 활동해도 되지만, 네가 계속 매니저를 자처하겠다고 한다면 말리진 않으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 많은 걸 어떻게 나나세 선배한테만 시킵니까. 매니저는 계속하겠습니다.”

“그래. 나나세가 좋아하겠군. 네가 대련하는 모습을 봤다. 상단세는 나나세에게 배운 거지?”

“예. 상단세가 재미있더라고요. 혹시 문제가 있나요?”

“흥미가 돋는 겨눔세에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중단도 신경을 쓰도록 해라. 모든 검도에 기본이 되는 겨눔세니까. 아마 나나세도 비슷한 말을 했을 거다.”

고지식한 면만 가득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유도리가 있네.

도지마 고로 감독님, 와이프는 무사할 겁니다. 행복하게 사세요.

“알겠습니다.”

“좋아. 차만 다 비우고 나가봐라. 인사한답시고 일어나지 말고.”

“예, 감독.”

풍성한 수염을 양옆으로 쫙 늘어뜨리며 씨익 웃는 고로.

새하얀 이가 돋보인다. 이빨에 빛이 반사되면서 찌잉-! 하는 효과음이 들리는 건 착각인가?

대충 차를 다 마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례를 하고 감독실을 나갔다.

그렇게 부실 밖으로 나간 나는,

“기다려, 마츠다.”

뒤따라 나온 렌카가 날 불러 세우자 뒤를 돌아보았다.

“뭔가요? 부장.”

팔짱을 낀 채로 날 노려보는 그녀.

입을 떼었다 닫았다 하는 것이,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어떻게 운을 떼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았다.

주말에 치나미에게 어떠한 이야기를 들은 듯한데...

“왜 불렀어요?”

재차 묻고 나서야, 렌카의 입이 열렸다.

“너 말이야...”

“예, 말씀하세요.”

“.....”

계속 망설이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꺼낸 말로 인해 치나미에게 피해가 갈까봐 우려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렌카는 미유키처럼 속이 깊으니까, 아마 내 추측이 맞을 거다.

“왜 그러냐니까요?”

“.... 아냐... 지켜본다고...”

정식 부원이 되었으니 지켜보겠다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치나미를 어떻게 해볼 생각이라면 혼내주겠다는 뜻이 담겨있는 경고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는 않기로 했구나.

치나미를 끔찍이 아끼는 렌카가 차분하게 에두른 경고만 하는 걸 보면, 치나미와의 대화가 심각하게 흘러가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치나미가 자신의 감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얼버무렸을 가능성이 높겠지.

속내가 빤히 보이는 렌카를 향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 내가 받아쳤다.

“제가 사고를 칠 것 같아요?”

그에 괜히 정곡이 찔렸는지, 렌카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어. 가봐.”

“예, 수고하세요.”

고압적인 렌카를 바라보며 픽 웃어 보인 나는, 그녀의 눈썹이 꿈틀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몸을 돌렸다.

이후 부실 뒤에 자그맣게 마련된 빨래터에서, 색이 오염된 도복을 손빨래하고 있는 치나미에게 다가갔다.

“스승님.”

“앗!? 넷?”

소스라치게 놀라선 벌떡 일어나는 치나미.

오늘따라 평소보다 반응이 격하다.

그런 그녀에게 부드러운 웃음을 지어준 내가 말했다.

“감독님이 정식 부원으로 들어와도 된대요.”

“오오...? 정말인가요? 잘됐네요!”

제자리 뛰기를 하며 물개박수를 치는데, 손에 남아있는 물기가 내 얼굴에 마구 튄다.

그것을 눈치챈 치나미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조, 죄송해요...”

소매로 대충 얼굴을 닦아낸 나는 히죽 웃었다.

“괜찮습니다. 매니저 일도 계속 하기로 했어요.”

“그래요...? 아하...”

좋아라하고 있으면서 아하는 무슨.

“이제 스승님과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됐네요. 기쁘죠?”

“흐으음... 물론 기쁘지요...”

애써 침착한 척하고 있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다 보인다.

그녀에게 양손을 든 나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걸음 가까이 다가갔다.

“기념으로 마사지를 해드릴까요?”

“응큿...!? 마음만 받을게요...!”

반사적으로 어깨를 바짝 세워 거북이처럼 목을 감추는 그녀.

앙칼진 대답이 너무 귀엽다.

저 분홍빛이 감도는 입에서 앙앙거리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고 싶다.

“요새 절 거부하는 것 같아서 슬프네요. 제자의 마음도 몰라주고... 섭섭합니다.”

기다란 한숨을 내쉬며 자조적인 투로 투덜거리자, 움찔한 치나미가 내 등을 팡팡 두드렸다.

“흠흠... 제가 후배님의 마음을 왜 모르나요? 지금은 거부한 것이 아니라, 제 몸이 아직 마사지를 받을 정도로 굳지 않았으니까 괜히 힘 빼지 마시라는 뜻에서 한 말이랍니다. 자, 진정하세요. 옳지... 옳지...”

치나미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면 딱 어울릴 것 같다.

아니지, 어린이를 가르치기는커녕 같이 놀 게 분명하니까 별로인가?

허리를 펴고 치나미를 내려다본 나는 그녀를 불렀다.

“그런데 스승님.”

“네, 말씀하세요.”

“두 번째 아이스크림은 언제 사줄 거예요?”

“아, 벌써 요거트 피치에 중독되신 건가요? 엄청 맛있었죠?”

“뭐... 적당히 먹을 만은 하더라고요.”

“적당히...?”

심각해지는 치나미의 표정.

나는 재빨리 말을 정정했다.

“아뇨... 사실은 맛있었습니다.”

그제야 만족스레 고개를 주억거린 치나미가 뿌듯해했다.

“후후... 솔직히 실토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그러면 조만간 날짜를 잡아보도록 할까요?”

“그래요. 이번에도 제가 잡아도 될까요?”

“물론 된답니다. 하지만 미리 말씀해주셔야 해요. 얼마 뒤에 모모님 쿠션이 한정판매로 나오거든요.”

그놈의 모모님이 그렇게 좋냐?

확 쿠션을 빼앗아서 엉덩이에 깔고 앉아 마구 비벼버린다?

아니지, 네가 직접 모모님을 능욕하도록 타락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유치한 망상을 끝낸 내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연락할게요.”

“네! 참, 후배님이 정식 부원이 된 기념으로... 오늘은 상단세의 수업 비중을 늘리겠어요.”

“그거 좋네요. 역시 스승님은 제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참된 스승이군요.”

“아까는 제자의 마음을 몰라준다면서 섭섭하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제가 그랬나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으음... 후배님께선 병원에 다녀오시는 게 좋겠어요. 당분간 카레를 드시는 건 어떨까요? 기억력에 좋대요.”

진심어린 걱정을 하는 치나미를 보며 픽 웃은 내가 생각했다.

다음 데이트 땐 영화도 한 편 봐야겠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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