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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85화 (85/313)

나와 대련했던 상대들은 모두 웃는 낯으로 사과를 받아주었다.

나답지 않은 무덤덤하지만 진중한 말투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 것이 주효했다.

애초에 실력 차이가 워낙 컸던 데다 요새 개과천선하고 있다는 평가가 큰 몫을 해주기도 해서, 나는 무탈하게 대련 사건을 넘겼다.

그렇게 치나미와 함께 보관실로 향한 나는, 다시 평소의 순둥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를 향해 씨익 웃어보였다.

“이제 됐나요?”

“네. 아주 잘하셨어요.”

“그럼 볼살 만져도 되죠?”

“.... 네?”

입을 헤 벌리는 치나미.

어안이 벙벙해진 것 같은 얼굴이다.

“대련에서 이기면 만지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제, 제가 언제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요...? 후배님 혼자 만지겠다고 말씀하신 거잖아요...! 저는 허락해준 적이 없구요...!”

“그때 호면을 두 번 때림으로서 허락을 해준 게 아닌가요?”

“그게 어떻게 허락이 되나요...? 후배님은 정말 병원이 절실한 것 같네요...!”

“한 번만요.”

“싫어요.”

“진짜 딱 한 번만... 너무 만지고 싶어요.”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는 나를, 치나미가 황당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대체 왜 사람의 볼살을 만지고 싶은 건데요...?”

“사람의 볼살이 아니라, 스승님의 볼살이라서 만지고 싶은 겁니다. 말랑할 것 같아요.”

“볼살이니까 당연히 말랑하지요...! 어쨌든 안 돼요...!”

“오늘 대련도 앞뒤 다 빼놓고 과정만 보면 잘했고... 스승님의 말대로 진심어린 사과도 했는데, 상은 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런 포상도 없으면 제자가 어떻게 발전하겠어요?”

“그래서 마침 아이스크림을 사드리려고 했어요...”

“맨날 아이스크림만 두 개씩 먹다보니 배가 아픕니다.”

저벅, 저벅.

치나미에게 걸어갈 때마다, 그녀가 내 보폭만큼 뒷걸음질을 쳤다.

“후, 후배님...! 이러면 안 돼요...! 이건 옳지 않아요...!”

조교물의 히로인 같은 대사를 내뱉는데, 깜찍하다.

툭.

좁진 않지만 그렇다고 넓지도 않은 보관실 안이라, 치나미의 등은 금세 벽에 닿았다.

도망갈 곳이 없어진 그녀가 까치발을 들어, 자신의 몸을 벽에 밀착하다시피 한다.

귀신이라도 본 듯 눈을 크게 뜨며 삼백안을 드러낸 게 예쁘다.

복숭아 향을 풀풀 풍기고 있는 치나미를 그윽하게 내려다보자,

“.... 흐아아...”

기다란 탄식을 내뱉은 그녀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마치 그녀의 프로필 사진에 있는 모모님처럼 헤롱거리고 있는 모습.

그런 치나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는 말없이 한손을 뻗어보았다.

“으익!”

예전이었다면 고개를 홱 돌려 피했을 텐데, 지금은 그런 기색이 없다.

그저 짧은 감탄사를 터뜨리며 눈을 질끈 감기만 한다.

말없이 건드려보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만져도 돼요?”

먼저 물어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

감았던 한쪽 눈을 부스스하게 뜬 치나미.

입술을 달싹이던 그녀가 모기만도 못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만지게 해주면 앞으로... 말을 잘 들으실 건가요...?”

내가 언제 말을 잘 듣지 않은 적이 있던가?

시키는 일은 곧잘 했는데.

“물론이죠.”

“그, 그러면 10초만 허락해드리겠어요...! 자, 어서 만지세요...!”

네가 그런 식으로 묘한 대사를 하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꼴리잖아.

세상 행복하다는 듯 시원하게 웃은 나는, 내 표정을 살핀 치나미의 얼굴이 약간 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틈을 탄 나는 그녀의 양 뺨에 손을 올렸다.

“흐늇...!”

이후 놀란 감탄사를 터뜨리는 치나미의 뺨 이곳저곳을 만져보았다.

무척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진다.

잡아당기면 쭈욱 늘어나고, 꾸욱 누르면 넓은 면적으로 펴지는 게 마치 모찌 같다.

찌르면 움푹 들어가는 말랑말랑함은 덤. 고작 뺨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정신없이 치나미의 오동통한 볼살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흐해힘! 흐망...!”

마침 뺨이 눌러 붕어처럼 변한 치나미의 선홍색 입술이 우물거려졌다.

“그만하라고요?”

“흐마해요...!”

좁아진 미간을 보니 더 이상 했다간 버럭 화를 낼 것 같다.

가슴속에 푹신하게 차오른 만족감을 느끼며, 나는 치나미의 뺨에서 손을 떼어냈다.

그러자 얼굴이 터질 것처럼 빨개져있던 치나미의 무릎이 휘청거렸다.

재빨리 그녀를 부축한 내가 물었다.

“괜찮아요?”

“후아... 후아아...”

긴장이 확 풀려버린 듯한데... 질펀하게 한판 한 것처럼 헐떡이고 있다.

눈을 계속 마주쳐서 그런가?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반응이 정말 재미있다.

거의 쓰러지려고 하는 치나미를 조심스레 바닥에 앉힌 나는, 묵묵히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죄송합니다. 제 욕심 때문에...”

그러면서 은근슬쩍 손끝을 목덜미로 가져가, 뒷목을 간지럽히듯 쓰다듬었다.

어깨라인과 이어지는 뽀얗고 부드러운 부위를 손톱으로 살살 긁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흐잇...!”

움찔, 움찔.

정전기라도 온 사람마냥 몸을 떠는 그녀.

어느새 흐리멍덩해진 눈으로 날 돌아본 그녀의 입이 어렵사리 열렸다.

“후, 후배니임...! 그만...”

“많이 안 좋아요? 제가 뺨을 만진 게 그렇게 싫었나요?”

“그, 그게 아니라앗... 히힉...!”

“그럼 왜 이러는 거예요?”

“아니잇...! 큿...!”

이를 악 문 그녀가 안간힘을 쓰며 내 몸을 밀어냈다.

헉헉거리며 숨을 헐떡이는데, 오랜만에 노골적인 성감대인 뒷목을 건드려주니 꽤나 큰 쾌락을 느낀 것 같았다.

저 잔머리가 있는 부위를 쪽 빨아들이면 어떤 반응이 튀어나올까 굉장히 궁금해진다.

“몸에 열이 많아진 것처럼 보이는데, 아이스크림이라도 드릴까요?”

걱정이 가득 묻어나오는 물음에, 치나미가 날 돌아보지도 않고 고개를 느릿하게 주억거렸다.

“네에... 복숭아... 복숭아 아이스크림이 필요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세요. 금방 사올게요.”

“아, 아니에요...! 휴게실 냉장고에... 있으니까...”

“여자 휴게실이라서 저는 못 들어가는데요.”

“제가... 다녀올 꺼예요...!”

낑낑거리며 일어난 치나미가 자신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리고는 심신을 가라앉히려는지 콧바람을 훅! 내뱉었다.

“금방 가지고 올 테니... 후배님은 여기 꼼짝 말고 있으세요...!”

“알겠습니다. 아, 제 거는 됐어요.”

“왜죠...?”

“말했잖아요. 하루에 두 번씩 먹다보니 배가 아프다고.”

“그럼 하나만 드세요...!”

통보하다시피 말한 치나미가 보관실을 나섰다.

오늘 보여준 반응을 보니, 슬슬 본격적으로 마사지를 해줄 때가 됐는데...

방금처럼 조금씩 쾌락을 주면서 중독시켜나가다가, 기회를 잡아보자.

**

학생회실이 있는 3층 복도는 왠지 모르게 책 냄새가 났다.

범생이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런 느낌이 있었다.

어슬렁어슬렁 복도를 거닐던 나는, 저 앞에서 미유키가 책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날 발견한 미유키가 밝은 낯으로 손을 흔들었다.

“마츠다 군...! 청소 다 끝났어?”

“어. 미우라는 어디 갔냐?”

“잠깐 화장실 다녀온대. 배가 많이 아픈가봐. 그나저나 마츠다 군, 오늘 대련에서 엄청 혼났다며?”

테츠야 이 새끼가 또 내 얘길 한 모양이다.

자기 자신을 어필하면서 점수를 따도 모자랄 판인데... 여전하구나 너는.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올수록 나야 좋지.

네 곁에 있는 여복이 모두 날아갈 때까지 계속 그 폼을 유지해다오.

“맞아. 손속이 너무 사납다고, 부장이랑 나나세 선배가 뭐라고 했어.”

“어떻게 사납게 했는데? 막 다치게 한 건 아니지...?”

“내가 양아치냐?”

“아니었어?”

헛웃음을 켠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 잠깐 은밀하고도 야릇한 일을 하기에 제격이다.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마음을 읽어냈을까?

미유키가 어림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이상한 생각하지 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데?”

“야한 거.”

“야한 거 뭐.”

“대답 안 할래.”

유도에 넘어오지 않는 미유키를 보며 피식한 내가 물었다.

“아주머니한테 말씀드려놨어?”

“응. 자도 된대.”

“또 그 존재하지 않는 친구 집에 간다고 했냐?”

“어쩔 수 없잖아...”

“뭐라고 하려는 건 아니었어. 이제 가자.”

“지금? 테츠야 군은?”

“나 오늘 힘들다.”

진지한 내 말투에, 미유키가 남자화장실이 표시된 간판을 곁눈질했다.

“많이 힘들어...? 피곤해?”

“그 정도까진 아닌데, 미우라 한 명만 내려주는 건 귀찮긴 해.”

오늘은 미유키가 우리 집에서 자는 날이다.

쓸데없이 동선을 낭비하면서까지 그녀의 동네에 갈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꾸준히 테츠야를 데려다주었었다.

투덜댄 적이 많고, 몇 번 빼먹기는 했지만 대가 하나 바라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미유키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알았어... 그럼 먼저 주차장에 가있을래?”

“미우라한테 말하고 오게?”

“응.”

“뭐라고 할 건데?”

“아니 뭐... 마츠다 군이랑 선약 있으니까, 오늘은 먼저 돌아가라고 해야지...”

나름 솔직하게 말할 정도로 발전했네?

특히 날 언급한다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우리 미유키... 집으로 돌아가면 내가 상 줄게.

고개를 끄덕인 내가 말했다.

“잘 말하고 와. 그리고 오늘은 색다른 거 하나 해보자.”

“색다른 거...? 뭔데...?”

미유키의 눈동자가 데굴 굴러갔다.

일순 불안함을 느낀 듯한 모습.

그런 그녀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내가 말했다.

“집에 가면 알려줄게. 간다. 얘기 끝내고 빨리 내려와.”

왔던 복도를 되돌아가려는 내 손목을, 미유키가 확 붙잡았다.

“기다려...! 뭐냐니까...?”

“미리 알면 재미없는데?”

“아니? 미리 알아야 재미있을 것 같은데? 나 불안하게 하지 말고 지금 알려줘...!”

나는 미유키를 끌어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행동 덕에 불안함이 조금 가셨을까?

내 손목을 잡은 미유키의 손에 힘이 살짝 풀렸다.

“.... 이것만 말해줘... 아픈 거 아니지...?”

아프다니... 뭐 스팽킹, 채찍질 같은 거라도 생각했나?

“그런 거 아냐.”

“아, 알았어... 그것만 아니면 돼...”

“그래? 그러면 다른 건 다 되고?”

개구쟁이 같은 물음에 눈썹을 꿈틀하는 미유키.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내쉰 그녀가 낄낄거리고 있는 내 어깨를 밀었다.

“얼른 가... 바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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