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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89화 (8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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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빌런이 정의의 히어로와 팔을 맞부딪친 채, 힘에 겨운 듯 눈썹을 꿈틀하는 모습...

마치 검도의 코등이 싸움을 하는 것 같아서 멋졌고, 작중 최강의 빌런이 히어로를 힘에 부쳐한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넌지시 알려주는 게 마음에 든다.

-파바박!

그렇게 시작된 결투!

두 남자가 엄청난 속도로 합을 나누는데, 눈이 호강한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절로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의 격렬한 액션신이다.

다만...

“흐믓...!”

현재 치나미 자신은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어깨를 사근사근 주물러주고 있는 마츠다 후배 때문이었다.

팝콘을 먹기 위해 바짝 붙은 그를 보며 긴장한 상황에서 영화를 보다가, 영화가 초반부에 들어서면서 어깨가 뻐근해졌다.

어찌 저찌 참다가 중요한 액션신이 나오는 지금 목을 잠깐 까딱거렸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마츠다 후배가 조용히 손을 뻗어 어깨를 마사지해주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목까지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깨를 주무르면서 손끝이 조금씩 닿았는데, 그럴 때마다 몸에서 이상한 감각이 피어났다.

찌릿찌릿하기도 했고, 간지럽기도 했다.

심지어는 마사지와 별 상관이 없는 아랫배까지도 큥큥 시큰거렸다.

더 이상한 건, 당장 멈추라고 말해야 함에도 그럴 수가 없다는 점.

마츠다 후배의 손길은 복숭아를 처음 먹었을 때와 비슷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때 말랑말랑한 물복 침대 위에 벌러덩 누운 느낌이 났다면, 지금은 농익은 복숭아가 무수히 많이 열린 복숭아밭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츠다 후배의 냄새가 무척 좋았다.

마초적인 향, 거기에 희미한 자두 향이 섞여 달콤하고도 묵직한... 그런 냄새가 풍겼다.

“므헤...”

저도 모르게 헤픈 웃음소리를 낸 치나미의 눈이 풀리려다가 부릅떠졌다.

팝콘을 다섯 개나 집고 입으로 가져간 그녀는 최대한 영화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기분 좋은 마사지도 받아야 되지, 영화의 중요한 액션신도 봐야 되지, 마츠다 후배의 몸에서 풍기는 좋은 체취도 맡아야 되지, 복숭아 가루를 뿌린 팝콘도 냠냠 먹어야 되지...

몸이... 아니, 정신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파밧! 팟!

[커억...]

인생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스크린을 바라보던 치나미는, 빌런의 가슴이 히어로의 손에 꿰뚫리자마자 온몸에 힘을 뺐다.

강렬한 액션신이 끝나면서 긴장이 살짝 풀려버린 것이다.

그때, 마츠다 후배의 손이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쌌다.

“흐갹...!”

소스라치게 놀란 치나미의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무언가 찌리릿한 느낌이 순식간에 올라왔다.

그로 인해 몸을 달싹인 그녀의 무릎 위로 팝콘 몇 개가 떨어졌다.

투둑.

그리고 마츠다 후배는, 딱 붙인 허벅지 사이에 올라가있는 그 팝콘을 집어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이후 치나미 자신을 쳐다보며 시원스럽게 웃었다.

‘흐아아...’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미소와, 자신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는 큼지막하고도 부드러운 손.

그 두 가지 맛을 느낀 치나미가 침을 꼴깍 삼켰다.

스윽.

그 순간, 마츠다 후배가 손을 목에서 떼어냈다.

“미안해요.”

갑작스럽게 사과를 하는 그.

표정을 보아하니 허락 없이 함부로 목을 만져서 죄스러운 모양이다.

“흐흐흠... 괘, 괜찮아요...”

목을 가다듬은 치나미의 다리가 배배 꼬였다.

아랫배가 찌르르 울려왔기 때문이었다.

왠지 모르게 화장실을 가고 싶은 마음을 참아내면서, 그녀는 컵 홀더에 놓인 복숭아 아이스티를 쭈욱 들이켰다.

혀에 가득 맴도는 복숭아 맛, 목 아래로 넘어가는 청량한 액체.

그에 가슴속이 시원해진 치나미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푸헤...”

만족스런 탄성을 터뜨린 그녀는, 마츠다 후배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자 움찔했다.

‘앗...!’

이럴 수가! 마츠다 후배의 손길이 너무 좋았고, 거기다 아이스 티까지 먹으니 기분이 굉장히 좋아져서, 본의 아니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버렸다.

마츠다 후배가 자신을 바보 같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하는 찰나, 마츠다 후배가 치나미 자신의 팔을 주무르듯 토닥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맛있어요?”

어감을 들어보니 방금 자신이 보여주었던 반응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안심한 치나미가 대답했다.

“네에... 그런데 영화는 안 보시나요...?”

“중요한 장면은 지나갔잖아요.”

“그렇기는 한데에...”

“이거 하나 더 먹어도 돼요?”

아직 무릎 위에 남아있는 팝콘을 가리키는 마츠다 후배.

허겁지겁 고개를 주억거린 치나미가 팝콘을 집어, 마츠다에게 주려고 내밀었다.

“여, 여기요...”

그러자 마츠다 후배가 예의 그 남자다운 미소를 짓더니, 팝콘을 가져와 입에 넣었다.

자신의 몸에 닿았던 음식을 먹는 그를 보니, 어째서인지 기분이 야시시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쑥스러워진 치나미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말았다.

계단이 있는 바깥쪽으로 몸을 뺄 수도 있었지만, 왠지 그러기는 싫었다.

어쩌면 마츠다 후배의 냄새가 좋아서, 더 맡고 싶으니까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한 치나미는 최대한 조신하게 팝콘을 먹기 시작했다.

영화나 봐야겠다.

집중해서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쿠키 영상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는 스크린.

속속들이 일어나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관객들을 둘러보던 나는, 멍해있는 치나미의 맨투맨 소매를 살짝 걷었다.

그리고는 얇고 새하얀 손목을 콕 찔렀다.

“스승님.”

“흠!?”

그에 몸을 부르르 떤 치나미의 정신이 돌아왔다.

“네엣...? 부르셨나요...?”

“예.”

“무, 무슨 일로...?”

“영화가 끝났잖아요. 이제 일어나야죠.”

“앗...! 그렇죠... 무척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집중하지도 못하고 혼자 움찔움찔했으면서 재미있기는...

“팝콘은 잘 먹었어요?”

“음... 물론 잘 먹었어요... 후배님도 많이 드셨죠...?”

네가 다 먹었잖아. 그것도 순식간에.

아무것도 기억을 못하고 있는 치나미를 향해 킥킥거린 내가 말했다.

“예.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행이에요... 그러면 이제 일어날까요?”

“손 먼저 닦으세요.”

“손이요...? 앗!”

자신의 손에 진득하게 묻어있는 복숭아 가루를 본 치나미가 흠칫하며 물티슈를 꺼냈다.

그냥 내가 빨아줄 걸 그랬나? 갑자기 후회되네.

내 눈치를 보면서 손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치나미.

묵묵히 그녀를 지켜보던 나는 홀더에 놓아놓은 일반 티슈 한 장을 뽑아, 그녀의 입가에 가져가 먼지를 털어내듯 살랑살랑 흔들었다.

“입도 닦아야죠. 가루가 많이 묻어서 입술 색이 변했어요.”

“.....”

입술을 세 치 정도 내민 채로 얌전히 내 시중을 받는 그녀.

입가에 묻은 가루를 대부분 털어낸 내가 티슈를 구기며 나긋한 투로 말했다.

“문득 궁금해지네요.”

“뭐가요...?”

“가루는 분명히 복숭아 맛이 났는데, 왜 색은 살구색일까요?”

“.... 그, 그건 저도 궁금하군요...! 집에 돌아가서 알아볼까요...? 아니면 가루를 만드는 회사에 견학이라도 갈까요...?”

농담으로 말한 건데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웃기다.

그나저나 돌아가서 알아본다는 건 그렇다고 쳐도 회사 견학이라니... 치나미다운 답변이다.

치나미는 옆에서 하나하나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갓 도시에 상경한 시골 처녀처럼 보여서, 한눈을 팔면 순식간에 코가 베일 것 같아.

“나중에 같이 생각해봐요.”

“네...! 그래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꼭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다진 치나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일순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흐앗...!”

저럴 것 같았기에 미리 대비하고 있던 나는, 빠르게 치나미의 팔을 잡고 부축했다.

“영화가 참 재미있었나보네요. 힘까지 풀릴 정도면.”

“.... 네에...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어요... 어, 얼른 나가요. 저는 지금 화장실이 가고 싶답니다...”

“알겠습니다.”

느릿하게 움직이며 밖으로 나간 우리.

화장실로 들어간 치나미는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왔다.

깨끗하게 씻은 손으로 자신의 골반 앞쪽을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니, 아마 아래에서 흘린 찐득한 무언가를 처리하느라 진을 뺐으리라.

영화관 안에서 은근하게 애무를 해주었던 것이 제대로 먹혀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무안한 듯 자신의 옆머리를 손가락에 감고 빙글빙글 꼬는 그녀를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이노오 선배와는 언제 만나기로 했나요?”

“네...? 아... 이제 한 시간 정도 뒤에...”

“그때까지 뭐할 거예요?”

“후, 후배님과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먹고, 전철을 타고 가다보면 시간에 딱 맞을 것 같아요...”

“그럼 아이스크림을 먹고, 제가 이노오 선배와의 약속장소까지 태워다줄게요.”

“그러실 필요까진 없어요... 폐를 끼칠 수는...”

“제자 말 들어야죠?”

“네에...? 원래는 그 반대여야하지 않을... 히이익!”

치나미가 돌연 어깨를 바짝 세웠다.

내 손이 그녀의 목과 이어진 어깨라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목 뒤에 만져지는 딱딱한 경추를 손톱으로 콕콕 찌르자,

“아힉...! 흐으읏...!”

치나미의 입이 서서히 벌어지면서, 야릇한 신음이 토해져 나왔다.

눈꺼풀을 푸들푸들 떨면서 몸을 움찔거리는 그녀.

그런 그녀의 반응을 살핀 내가 재차 물었다.

“태워다줄게요. 알았죠?”

그러자 치나미가 이를 악 물고 정신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엣...! 태워주세요...!”

“다른 말하기 없기?”

“다른 말 안 해요...! 탈 꺼예요...! 그러니까, 그거, 그만해앳...!”

“근육이 많이 굳었는데, 조금 풀어주고 싶어요.”

“저, 저는 풀어달라고 한 적... 우읏! 없어요...!”

목소리가 슬슬 격앙되어가려고 하고 있다.

화내기 전에 그만해야겠다. 오늘 꽤 깊은 스킨십을 하기도 했고, 뒷목을 만졌다며 한소리를 듣지도 않았으니까 욕심내지 말자.

마지막으로 치나미의 등을 툭 두드린 나는 손을 떼어냈다.

“후엑... 후윽...”

단거리를 전력질주라도 한 듯 힘에 부친 숨을 토해내는 치나미.

무릎에 손을 댄 채로 한동안 호흡을 고르던 그녀가 상체를 삐걱삐걱 폈다.

“어, 어서 나가요... 이곳에서 벗어나야겠어요...!”

네가 그런 대사를 치면 막 납치하고 싶어지잖아.

눈앞에 망상이 펼쳐진다.

용사 파티로 위장한 마왕인 내 음모에 걸려들어 던전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가, 용사인 렌카가 있는 파티와 따로 떨어져 발이 묶여버린 순수한 성녀 치나미...

아무것도 모른 채로 동료인 나를 챙기려 하다가, 쾌락의 함정에 빠져버리게 되고 점차 타락해가는 그림...

지금 대충 이런 느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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