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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작.
입 안 가득 퍼지는 물복 특유의 많은 과즙, 뒤이어 느껴지는 크림의 단맛.
마지막으로 접시에 함께 나온 크럼블로 아삭한 식감까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얼굴이 절로 헤벌쭉해진다.
도톰한 볼을 열심히 움직이며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디저트를 먹는 치나미.
그녀의 모습이 귀여웠던 렌카는 픽 웃고 말았다.
“그렇게 맛있어?”
그에 꼼꼼히 복숭아를 꼭꼭 씹어 삼킨 치나미의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네. 친우님께서는 왜 안 드시나요?”
“난 커피 마시고 있잖아.”
“커피랑 먹어도 맛있는데요? 자, 아 하세요.”
가장 크게 썰린 복숭아 조각을 포크로 집은 치나미가 그것을 렌카의 앞에 내밀었다.
그러자 렌카가 웃는 낯으로 호의를 거절했다.
“괜찮아.”
“아 하시라니까요?”
“괜찮대도? 너 많이 먹어.”
재차 거절의 의사를 밝히자, 치나미가 아쉬워했다.
끔찍이도 좋아하는 복숭아를 렌카 자신에게 주려는 건 정말 고마웠다.
하지만 솔직히... 질렸다.
치나미와 만나는 날엔 복숭아가 빠지지 않다보니 일어난 일이었다.
“한정판 모모님 굿즈는 구했니?”
“아니요. 요즘 모모단이 많아져서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에요.”
모모단은 모모님의 팬덤을 부르는 애칭이었다.
치나미와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모모님과 관련된 것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렌카가 말했다.
“요즘도 새로 들어오는 모모단이 많아?”
“물론이에요. 모모님은 귀여우니까요. 마츠다 후배님도 모모단에 관심을 보이고 계세요.”
렌카의 눈썹이 꿈틀했다.
설마 마츠다의 이름이 튀어나올 줄은 몰라서였다.
“마츠다까지...?”
“네.”
마츠다가 애니 피규어에 이어 모모님 굿즈에도 관심을 보인다는 말인가?
피규어 같은 경우는 어찌 이해할 수는 있다.
이번에 그가 본 것이 액션 장르에다 작화가 뛰어나서 애니에 관심이 없던 남자들도 굉장히 많아 봤고, 그것으로 입덕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모님의 경우는 조금... 수상했다.
물론 모모님은 귀여운 브랜드다.
하지만 마츠다 같은... 좋게 말하면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사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치나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인가...?’
편견을 갖고 싶진 않지만, 아마 자신의 생각이 맞을 것이다.
마츠다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이성의 환심을 사기 위해 관심사를 공유하는 건 좋은 접근법이라고 보니까.
하지만 그 대상이 치나미라서 너무 걱정된다.
일단 지켜보자고 생각하긴 했지만...
우웅-!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렌카는, 테이블 위에 놓아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자 화면을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부장. 다짜고짜 죄송합니다. 집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받아허리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어서 문자 드렸습니다.]
미우라 테츠야에게 문자가 와있다.
검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구나.
처음엔 형편없기 짝이 없던 실력이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는 것도 보이고... 크게 될 후배다.
“누구인가요?”
벌써 디저트를 반 이상 먹은 치나미의 물음.
한쪽 다리를 꼬고 편하게 앉은 렌카가 대답했다.
“미우라야.”
“미우라 테츠야 후배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받아허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나봐.”
“학구열이 대단하신 후배님이로군요. 저번에 대련을 할 때 보니까 재능도 있어 보이던데...”
“맞아. 대회에도 관심을 보여서, 동계 대회 때까지 한 번 키워보려고 해.”
“앗! 그런가요? 저도 마츠다 후배님을 동계 대회에 내보내려고 했는데, 그러면 단체전을 목표로 수련에 정진해볼까요? 저희 제자님들이 같은 팀이 된다면 그림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마츠다가 대회에 나간다?
그의 인품에 대한 건 다 떠나서, 꽤 좋은 성적을 얻을 것 같다.
5인 단체전에 나간다고 가정했을 때, 잔머리 없이 정석대로 포지션을 짤 경우 마츠다에게 걸맞은 자리는...
초반 기세를 확실하게 가져와 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선봉이나,
경기 흐름을 뒤집거나 굳힐 수 있는 세 번째 자리인 중견.
모두 중요한 자리지만, 특히 선봉이 굉장히 잘 어울린다.
미우라 테츠야의 경우엔 선봉감은 아니다.
하지만 눈썰미가 좋고,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들어가는 대련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니까...
선봉이 얻어온 기세를 비겨서 유지하거나, 패한다고는 해도 상대방에게 질척대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두 번째 자리인 차봉이 어울릴 듯싶다.
이기면 더 좋고.
어쨌든 둘 다 재능이 있는 부원들임은 틀림없다.
감독인 고로도 군침을 흘리고 있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이다.
마츠다 쪽의 재능이 훨씬 뛰어나긴 하지만 말이다.
“마츠다가 대회에 나가고 싶어 한대?”
“제가 여쭤보았을 땐 긍정적이셨어요.”
긍정적이라고?
그만큼 열정이 있어 보이진 않았는데... 미심쩍다.
“그러고 보니 합숙훈련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슬슬 준비를 해야 할 때인가요?”
“응. 더 추워지기 전에 준비해야지.”
“장소는 어디에요?”
“아직 정하지는 않았어.”
“이번엔 개울가가 있는 곳이었다면 좋겠네요. 훈련이 끝나고 밤에 별을 보면서 발을 담그고 싶어요.”
구체적인 치나미의 계획에 살웃음을 지은 렌카는, 미우라에게 답장을 보내놓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독님과 좋은 곳으로 한 번 찾아볼게.”
**
“후배님.”
금요일을 앞둔 목요일.
새로 산 호구를 호면만 제외하고 착용한 채로 부실 뒤편에서 타돌 연습을 하던 나는, 정색을 한 치나미의 부름에 죽도를 회수했다.
“자세가 잘못됐나요?”
“아니요. 자세는 좋았어요.”
“그럼?”
“절 아프게 해서는 안 돼요.”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일까?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치나미에게 다가간 내가 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저는 보고야 말았어요.”
“뭘요?”
“마사지 동영상을요. 거기엔 아주 예쁜 모델이 흉악한 마사지사의 손길에 비명을 터뜨리고 있었어요. 모델의 온몸에선 뿌드득하는 소리가 났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머리를 마사지할 때 주먹을 쥐더니, 귀 뒷부분을 손가락 관절 부분으로 마구 긁어댔어요.”
뭔 말을 하나 했더니, 내일 받을 마사지를 예습한 모양이다.
뿌드득 소리가 났다면 아마도 도수치료처럼 지압을 세게 가져가는 마사지일 텐데, 봐도 하필 그걸 봤구나.
아니,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상의를 탈의한 채로 받는 아로마나 스웨디시 같은 영상을 봤다면, 노출이 있을 거라고 지레 겁을 먹은 치나미는 마사지를 받기 껄끄러워했을 테니까.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렇게까지라는 말씀은... 아프긴 아프다는 뜻이군요...?”
“아뇨, 말을 실수했네요. 부드러운 마사지만 할 겁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나요? 마사지를 받고 나면 나른할 거라고?”
“네.”
“아픈 일은 없으니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에 안도한 치나미의 표정이 펴졌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한 기색은 있었다.
항상 내 손길에 민감한 반응을 보여주던 자신이다 보니, 당일 어떻게 될지 정말 걱정스러운 듯했다.
치나미의 옆에 앉은 나는,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듯, 마사지가 별로라면 그만하라고 말하세요. 그럼 멈출게요.”
“.... 그게 정말인가요?”
“그럼요.”
“만약 그만둔다면 후배님이 느끼실 허탈감은 어떡해요? 후배님은 절 위해 마사지를 해주시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만해달라고 해버리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단다.
네 입에서 그만해달라는 말이 나올 수는 없을 테니까.
오히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짜릿한 감각에 계속해달라고 할 걸?
“벌써부터 그만둘 걱정을 하는 건가요?”
“앗...! 그건 아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자, 이제 다시 연습을 할까요? 이번엔 새로운 기술을 가르쳐드리려고 해요.”
“새로운 기술?”
“네. 상단세는 기본적으로 머리를 위주로 공격을 하게 돼요. 상대하는 중단세 또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수비 중점을 머리에 더 두죠. 그 심리를 역이용해서 상단을 치는 척하며 허리를 공격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제가 시범을 보여드릴 테니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세요.”
자신의 죽도를 들고 일어나 평평한 바닥을 찾는 치나미.
삐죽 튀어나온 돌멩이를 피해서 폴짝 뛰는 모습이 무척 귀엽다.
아니, 그냥 치나미의 모든 것이 다 귀여워서, 빨리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주고 싶다.
**
“가라.”
“그래, 고맙다. 미유키, 너도 조심히 들어가.”
여느 때처럼 순진한 면상으로 작별인사를 전하는 테츠야.
밝게 웃은 미유키가 차에서 내리는 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늘도 수고했어. 잘 가, 테츠야 군.”
“응. 아, 맞다... 내일 저녁에 가족끼리 밥 먹을래?”
“밥?”
“너희 부모님이랑 우리 부모님이랑 만난 지도 오래 됐잖아. 간만에 친목회 겸 식사나 하면 어떨까 해서. 저번에도 말했었는데 기억 안 나?”
“그랬나...? 미안. 내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일단 오늘 한 번 물어볼게.”
“알았어. 연락 부탁해.”
“응.”
만족스런 표정을 지은 테츠야가 뒷좌석 문을 닫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놈의 멍청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를 출발시키자, 미유키가 날 돌아보았다.
“만약 우리 엄마가 좋다고 하면... 내일 늦게 가도 돼? 확실히 요즘 교류가 뜸하기도 했고, 우리 엄마도 테츠야 군의 가족들이랑 식사 한 번 하자고 했었거든.”
“상관없어.”
이 정도는 흔쾌히 승낙해줘도 상관없다.
미유키가 내게 넘어오지 않은 상태였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았겠지만, 지금이라면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있어 테츠야는 이미 뒷전.
놈이 아무리 남자다움을 어필해봤자, 지금의 미유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놈의 찐따스러움만 부각돼서 지루해할 테지.
아닌가? 지금까지 잘 놀아왔으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잘 받아줄 수도 있겠다.
그러고 보니 미유키의 방을 내 색으로 마저 물들여야하는데...
언제 한 번 또 들러야겠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중간에 빠져나올 수 있으면 빠져나와서, 맛있는 음식 해주러 갈게.”
“그래라. 내가 준 목걸이는 방에 그대로 걸려있지?”
“응. 당연히 있지. 매일매일 보면서 힘내는데?”
테츠야는 그날 그 목걸이를 보려나?
아마 미유키가 우리 집에 빨리 오고 싶은 마음이 커서, 테츠야를 방으로 불러 놀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식사 자리에 눈치없이 끼어들고 싶긴 하다.
식탁 아래에서 미유키를 만지고, 표정관리를 하며 당혹스러워하는 그녀가 보고 싶어.
치나미와의 약속이 없었다면 당장 달려들었을 텐데... 나중에 기회가 있겠지?
그나저나 참으로 공교롭다.
어떻게 이 타이밍에 테츠야가 저런 얘길 꺼내지?
이거 딱 둔감형 주인공이 금태양의 하렘을 도와주는 NTR 스토리잖아.
테츠야의 그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으면 도리가 아니겠지?
**
평범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금요일을 보낸 나는, 테츠야와 미유키를 내려다주고 치나미를 만나러 갔다.
밖은 가을 장마철답게 비가 오고 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즐기기에 딱 좋은 으슥하고 추운 날씨였다.
치나미가 날 부른 곳은 맨션이 아니라 번화가의 가게였다.
몇몇 종류의 모모님 굿즈를 상시 판매하는 곳.
주차를 마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 나는, 입구 근처에 있던 치나미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오자 피식 웃고 말았다.
“신나 보이네요?”
“모모님 굿즈를 구경하는 건 언제나 신나요. 참고로 여기 있는 굿즈들은 한 가지를 제외하고 모두 저희 집에 있어요.”
작은 가게지만 있을 건 대충 다 있어 보이는데, 저것들을 하나 빼고 다 샀다고...?
치나미의 모모님 사랑은 언제 봐도 놀랍다.
“저랑 같이 와서 구경하면 되지, 왜 먼저 이곳에 왔던 건가요?”
“아, 그건 이유가 있었어요.”
치나미가 자신의 손에 들고 있는 봉투를 열었다.
거기엔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그마한 모모님의 면상... 아니, 얼굴들이 빽빽하게 붙여져 있는 스티커 세트가 있었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모모님콘 스티커인데, 혹시 품절될까봐 미리 와서 산 거예요. 다행스럽게도 제가 계산을 마쳤을 땐, 딱 두 세트가 남아있었답니다.”
“근데 보이는 건 하나네요? 개인당 하나씩만 구매가 가능했나요?”
“아뇨. 두 세트씩인데... 뒷사람을 위해서 하나는 남겨두었어요.”
나 같으면 뒷사람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싶어서 두 개를 다 샀을 텐데.
“그렇군요. 스승님은 역시 착하네요.”
밝은 낯으로 칭찬을 해주자, 치나미가 헤실거리더니 말했다.
“같은 모모단으로서 서로서로 도와야지요. 자, 이제 그 콩닥콩닥 마사지를 받으러 가볼까요?”
콩닥콩닥 마사지라니.
치나미다운 작명센스다.
진짜 콩닥거리게 해줘야지.
“중고 거래는 없었나요?”
“네. 매물이 나오지 않았어요. 듬직한 후배님과 함께 거래를 하게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됐네요?”
“괜찮아요. 단기간에 구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만약 구하게 되면... 꼭 저나 이노오 선배에게 연락해서, 동행 하에 같이 가야 됩니다. 알겠죠?”
“명심하고 있답니다.”
치나미의 텐션은 상당히 올라있는 상태였다.
여기저기 잔뜩 늘어서있는 모모님 굿즈를 보니 안정과 활기를 얻은 건가?
아마 그런 듯싶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며 차에 탄 우린, 미리 예약해둔 러브호텔로 향했다.
“그런데 후배님, 후배님은 마사지 샵의 직원인가요? 아니면 그런 경험이 있다거나...”
방금의 하이 텐션이 온데간데없어진 치나미의 질문.
약간 긴장한 듯 낮아진 목소리가 웃기다.
여전히 전방에 시선을 둔 내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아뇨.”
“그럼 어떻게 마사지 장소를 구하신 건가요? 혹시 마사지 샵을 대절하신 건 아니겠죠?”
“그 정도로 스케일이 크지는 않아요. 하지만 좋은 생각이기도 하네요. 다음번엔 진지하게 고려해봐야겠습니다.”
‘다음 번’이라는 말에, 치나미의 몸이 작게 달싹였다.
설마 이번 한 번만으로 끝낼 생각이었던 거니?
그건 좀 실망인데.
“그, 그런가요...? 그럼 오늘은 어디서...?”
“지금 도착했네요. 저깁니다.”
와이퍼가 움직이고 있는 앞 유리의 사선을 가리키는 내 손가락.
그것을 따라간 치나미의 눈이 어느 한 건물의 간판에서 멈췄다.
“호텔... 라피아...? 여기가 맞나요?”
“예. 거깁니다.”
“여긴 호텔인데요...? 혹시 이곳에 있는 마사지 가게에서 하는 건가요? 개인적으로도 이용이 가능한 거예요?”
일반적인 호텔이 아니라 러브호텔이란다.
그것도 다양한 컨셉 룸이 완비된 신축 러브호텔.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치나미에게 씨익 웃어주면서, 핸들을 돌려 호텔 주차장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