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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04화 (104/313)

“오늘로서 봉사활동 시간은 다 채운 거냐?”

늙수그레한 경비원의 물음.

확인서에 사인을 한 나는 기쁜 낯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예.”

“아쉽게 됐구나. 심심하지 않고 좋았는데 말이야.”

“저도 아쉽네요. 종종 놀러올게요.”

“그래주면 고맙지. 이건 내가 학생회 학생이 등교할 때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그래, 수고했다.”

경비원과 인사를 나눈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교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젠 등교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시간을 쪼갤 필요도 없어졌다.

그 말인 즉, 미유키와 아카데미 내에서 그렇고 그런 일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거다.

상상만 하고 못해봤던 것들을 조금씩, 하나하나 해볼까?

행복한 고민에 휩싸여 교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마츠다, 기다려...!”

뒤에서부터 렌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몸을 돌렸다.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고 있는 그녀가 보인다.

치나미는 없나? 분명히 렌카와 함께 등교하는 중이라고, 전철에 사람이 너무 많다고 톡을 보내왔었는데, 아마 먼저 들어간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부장.”

“.... 그래. 안녕.”

표정은 탐탁찮지만, 그래도 인사는 받아주는구나.

앙칼진 것.

“무슨 일이죠?”

“너... 혹시 금요일에 치나미한테 마사지 같은 거 해줬어...?”

역시 치나미가 말했을 줄 알았다.

비밀이 없는 두 사람인데, 당연한 일이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내가 대답했다.

“해줬습니다.”

“호텔에서?”

“예.”

“왜?”

노발대발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침착하다.

다만 화가 난 건 분명해보인다.

렌카의 눈엔 내가 순진한 치나미를 꼬셔 호텔로 간 악당처럼 보일 테지.

“왜긴요. 고마우니까 해줬죠.”

“고맙다니?”

“입부하기 전부터 절 있는 그대로 봐주고, 다짜고짜 상단세를 배우겠다는 제 고집을 들어주기까지 하는 아주 착한 스승님인데, 제자로서 감사 표시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 은근히 날 돌려 까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네 스스로 찔린다는 뜻이겠지.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니고요. 어쨌든 마사지를 한 게 문제인가요?”

“마사지 자체에 문제는 없어. 네 말대로 제자로서 그 정도의 감사표시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장소가 문제야. 호텔이라니... 지금 제정신이야?”

“왜요?”

“치나미는 그냥 호텔인 줄로 알고 있겠지만... 객실에 마사지 룸까지 있는 호텔은 듣도 보도 못했어. 네가 간 곳은 분명...”

우리 렌카... 러브호텔을 알아?

아니지, 치나미가 너무 순진한 거고,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긴 하다.

“러브호텔이죠.”

“그래... 러브호텔.”

“근데 그게 뭐 어때서요?”

“뭐 어떠냐니... 의도가 불순하잖아...!”

그렇긴 하지. 인정한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요? 마침 좋은 장소가 있어서 간 거고, 제가 나나세 선배랑 그렇고 그런 일을 한 것도 아닌데다 그저 마사지만 하고 나왔을 뿐인데... 제정신이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인가 그게?”

막힘없는 핑계를 늘어놓자, 렌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학생들이 들을까봐 우려스러운 듯한 모습.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녀의 목소리에 안도감이 깃들었다.

“함부로 말했던 건 사과할게. 하지만...”

렌카가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다.

어차피 너도 나한테 조교당하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 건데, 그냥 편하게 가면 안 되겠니?

라는 말을 삼킨 내가 말했다.

“안심해도 돼요. 어차피 부장은 제 말을 믿지 않겠지만.”

“.... 처음 입부했을 땐 입례도 곧잘 하고 과묵하더니만... 애가 시간이 지날수록 변해가네?”

“말썽도 일으키지 않았고, 호의로 집까지 태워다주기도 했는데... 누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절 쌀쌀맞게 대하네요.”

“물론 그 일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 이번에 내 태도가 잘못됐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고. 하지만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건 동의하지 못하겠는데?”

“뭐가요?”

“친선전 때 쓸데없는 공격으로 상대방을 기죽게 만든 일이나, 정숙하고 지켜봐야할 대련 시간에 무슨 호흡을 언급하면서 장난을 친 일이나, 껄렁한 네 태도를 보면 내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아주 크게 밉보였네요.”

“네가 입부하기 직전, 감독께서 하신 말씀 기억해? 검도는 무도야. 무도를 수련함에 있어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은 예의고, 거기엔 당연히 상대방에 대한 존중도 포함돼. 그런데 지금까지의 네 행보엔 그런 예의가 없잖아. 재능이 있으면...”

“그래요? 칭찬 고맙습니다.”

“말은 끝까지 들어. 재능이 있으면 뭐해? 언행이 부적절한데. 네가 검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간 감독님께서도 화를 내실 거야.”

“입부한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부원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닙니까? 저도 노력 중이라고요.”

내가 이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는 듯, 렌카의 눈이 빛났다.

“정말 노력하고 있어?”

“예. 그렇다니까요.”

“나도 도와줄게. 중간고사 끝나는 주.”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그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팔짱을 낀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근처 계곡 산장으로 합숙훈련 갈 거야. 중간고사 끝나는 주 금요일 저녁부터 2박 3일간. 알아둬.”

합숙훈련 때 날 제대로 계도할 목적으로 갑자기 저런 얘길 꺼낸 것 같다.

그나저나 드디어 날짜가 잡혔나?

계곡 산장이라... 내가 기존에 알고 있었던 장소는 아니다.

날짜도 더욱 앞당겨졌고.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더 좋다고 할 수 있었다.

왜? 이벤트가 내 위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저희 합숙훈련도 해요?”

“연례행사야.”

“필참인가?”

“아니, 필참은 아니야. 사정이 있으면 당연히 참가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지금까지 빠진 부원은 없었어. 수련과 화합에 큰 도움이 되는 훈련인데, 혹시 빠질 생각이면 지금 말해줄래?”

도발하듯이 말하고 있는데, 넘어가주도록 하마.

“도와주겠다면서요. 참가하지 뭐. 근데 거기서 대련도 하나요?”

“합숙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코스인데 당연히 하지.”

“요즘 몸이 근질거렸는데, 잘됐네요. 새로 산 호구도 실전에서 써보고 싶고.”

일부러 별 일 아닌 척 거들먹거리자, 렌카의 입가에 황당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검도에 흥미가 있긴 한가보네?”

“재밌잖아요. 손맛도 있고. 흥미가 없으면 입부했겠습니까?”

“.... 맞는 말이네. 원한다면 얼마든지 시켜줄게. 호구 잘 길들여놔.”

제발 나랑 붙자.

단수, 급수 같은 건 고려하지 말고, 내 자존심을 잔뜩 뭉갤 심산으로 직접 나서줘.

렌카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렇게 되긴 할 듯한데...

라커에서 꺼낸 실내화를 바닥에 툭 내려놓은 내가 물었다.

“이제 가도 됩니까? 수업 늦을 것 같아서.”

“가봐.”

렌카와 헤어진 나는 1학년 복도로 올라가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무리 주인공에게 재능이 있다고 해도, 렌카는 검도를 정말 잘한다.

망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 소기의 목적을 위해서라도 오늘부터 훈련 강도를 빡세게 가져가야겠다.

**

“마츠다 군. 중간고사 공부는 잘 돼가고 있는 거야?”

앞자리에 앉아있던 부반장의 질문이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상 위에 팔을 괸 내가 대답했다.

“그럭저럭.”

“긴장감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저번 학기처럼 꼴등하는 거 아니야?”

“내가 너보다 잘 보면 어쩌려고 그런 도발을 하냐?”

“그럴 리가 없잖아.”

“내기할래?”

“무슨 내기?”

내가 너 잡으면, 한 번 대줘.

사실 이길 자신은 없다.

부반장은 미유키와 비등할 만큼 공부를 잘하니까.

“농담이야. 내가 널 어떻게 이기냐?”

“자신 있게 말해놓고선...”

요즘 내가 많이 편해졌나보다.

서슴없이 말을 걸어올 정도면.

나는 부반장의 옆에서 오물오물 빵을 먹고 있는 마사코를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마사코도 공부를 잘했던 것 같다.

저기서 다크서클만 내려앉아있으면 럽코에 나오는 음산한 미녀 조연인데...

의외로 눈 밑이 깨끗해서 아쉽다.

그녀의 어깨를 톡 건드린 내가 말했다.

“야, 빵녀.”

“콜록! 어, 응...?”

“오늘은 무슨 빵이냐?”

“이, 이거... 크림치즈 소보로... 하, 하나 줄까...?”

“아니. 너 근데 목 안 막혀?”

“우, 우유 있는데...”

마사코를 놀리듯 말하던 나는, 미유키가 남들 몰래 내 허벅지를 만져오자 멈칫했다.

“마츠다 군. 남들 방해하지 말고 가르쳐준 범위나 복습해.”

“머리 좀 식히겠다는데 그샐 못 참고 잔소리...”

미유키를 돌아본 나는 질렸다는 듯 미유키에게 푸념을 늘어놓다가,

스윽...

더욱 깊숙한 곳을 파고들어오는 미유키의 손길에 입을 꾹 다물었다.

얇은 제복바지 위로 그녀의 가녀린 손길과 온기가 느껴진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꼴리면 안 되는데... 걱정이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안 꼴릴 사람이 있기나 할까?

슬쩍 미유키의 손을 치운 나는, 책상에 눈을 두고 공부를 하고 있는 테츠야를 쳐다보며 말했다.

“미우라.”

“응?”

“합숙훈련 간다는데, 혹시 알고 있냐?”

“알지. 오늘 부장께서 문자로 말씀해주셨어. 넌 어떻게 알았어?”

“나도 오늘 부장한테 들었는데.”

“그래? 참가할 거야?”

해야지 그럼.

렌카 공략의 필수 코스인 대련도 해야 되고, 합법적으로 널 두들겨 팰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럴 생각이야.”

“합숙은 처음인데... 괜히 긴장되네.”

“학기 중간이라서 너무 심하게 하진 않겠지.”

“난 오히려 지쳐 쓰러질 정도로 심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훈련하는 보람이 있잖아.”

마조 새낀가?

갑자기 무서워지는데.

테츠야와의 대화를 끝내고 노트로 눈을 돌리자, 미유키가 내 허리를 건드리더니 조용히 물었다.

“합숙훈련? 무슨 얘기야?”

“검도부 합숙훈련. 중간고사 끝나는 주 금요일부터 2박 3일로 간대.”

“2박 3일...? 뭐가 그렇게 길어?”

“오히려 짧은 거 아니냐? 보통 훈련 목적의 합숙은 3박 4일이 기본 아닌가? 길면 일주일도 가던데.”

“그런가...?”

미유키의 표정은 조금 굳어있었다.

주말 내내 날 보지 못하게 되니 싫은 것이다.

그녀의 마음을 읽어낸 나는, 노트를 꺼내 구석에 글씨를 써서 보여주었다.

[지금 바로 가는 것도 아니잖아. 가서도 자주 연락할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을 우물거린 미유키가 그 밑에 답장을 썼다.

[틈 날 때마다 연락해. 그리고 글씨체 못 알아보겠어. 마츠다 군은 서예부에 들어갔었어야 돼.]

잘만 알아봤으면서, 괜히 틱틱대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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