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09화 (109/313)

“두 사람 모두 잘 다녀와.”

합숙훈련장소로의 이동을 앞둔 금요일, 수업이 모두 끝난 시간.

미유키는 검도부 앞까지 나와 테츠야를 배웅했다.

무거운 가방을 든 채로 혼자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그러니까 데려다줘야겠지?

“다녀올게. 조심해서 돌아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여느 때처럼 얼빵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테츠야.

미유키가 밝은 낯으로 손을 흔들어주자 기뻐한 그는, 곧 렌카를 도와 준비해야할 것이 많다며 부실 안으로 들어갔다.

놈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내가 말했다.

“가자.”

“응? 어딜?”

“너희 집에. 너 태워다주고 다시 오려고.”

“뭐...? 그럴 필요 없어. 나 전철 타고 가면 되는데?”

손사래를 치는 미유키.

그런 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나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마츠다 군...! 나 진짜 괜찮다니까...? 다른 사람들 다 기다리는데 혼자만 이러면 어떡해?”

“어차피 준비해야할 게 많아서, 좀 걸릴 거야.”

“그럼 나나세 선배라도 도와드려야지...! 같은 매니저잖아.”

“어제 다 끝내놨어.”

“.... 원래 이렇게 계획적인 사람이었어?”

어이가 없다는 듯 말하고는 있었지만, 기뻐하고 있는 게 얼굴에 다 드러나고 있다.

미유키를 내려다보며 피식한 나는 걸음을 늦추었다.

“주말동안 뭐할 거냐?”

“음... 친구들을 만날까 생각 중이야. 최근 마츠다 군만 만나느라 통 얼굴을 보지 못해서...”

“오랜만에 만났다고 좋아선 늦게까지 싸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들어가라. 알았냐?”

“아니... 애초에 늦게 들어가는 건 마츠다 군이랑 만날 때만...”

“대답.”

“아, 알았어... 일찍 들어갈게...”

수줍은 대답에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나는, 주차장에 도착해 미유키와 함께 차에 탔다.

자신을 챙겨주는 내가 무척 좋았던 걸까?

미유키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내 손을 꼬옥 잡고 깍지를 꼈다.

“이러면 운전은 어떻게 하라고?”

“평소에도 알아서 잘만 했잖아...”

“그렇긴 하지. 출발한다.”

“응.”

**

다시 검도부로 돌아온 나는 버스의 짐칸에서 비품을 체크하고 있는 치나미를 보았다.

아래쪽의 짐칸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다람쥐 같다.

짐칸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은 내가 물었다.

“뭐하세요? 비품 체크는 어제 끝내놨잖습니까.”

“후배님이시군요. 혹시 몰라서 한 번 더 확인해보고 있었어요.”

“꼼꼼하네요. 그런데 부장은 어디 가고 혼자 이러고 계십니까?”

“렌카는 감독님과 훈련 스케줄을 마지막으로 조율하고 있어요. 자신의 관할 하에 지옥훈련을 하자는 감독님의 의견과, 자율훈련시간을 많이 갖는 게 좋지 않겠냐는 렌카 친우님의 의견이 아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죠.”

저렇게 말하니까 국가 간에 협상을 하는 것 같잖아.

“개인적으로는 부장의 손을 들어주고 싶네요. 스승님과 같이 훈련하고 싶어요.”

“앗...! 저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아니에요. 마침 다 확인한 참이었어요. 장비도, 소모품도 모든 게 완벽해요.”

꾸물꾸물 나오려고 하는 치나미에게 손을 뻗자, 그녀가 흠칫하더니 내 손을 붙잡고 나왔다.

그리고는 굽혔던 허리를 쫙 펴며 기지개를 켰다.

나는 그런 치나미의 등허리를 약하게 두드려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앗! 앗...!”

손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며 기묘한 탄성을 터뜨리는 그녀.

엉덩이를 토닥여주니 좋아하는 강아지 같아서 귀엽다.

마지막으로 치나미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고, 한 차례 주물러준 내가 물었다.

“버스에 타면 되나요?”

그러자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신 치나미의 고개가 주억거려졌다.

“네... 후배님 먼저 타세요. 저는 감독님과 렌카에게 가봐야 해서요.”

“알겠습니다. 제 옆에 앉을 거죠?”

“응앗...?”

자신의 큼지막한 눈을 더욱 크게 뜨는 치나미.

그녀의 반응을 보며 고개를 갸웃한 내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같이 앉아야죠. 스승님이랑 먹으려고 젤리도 사왔는데.”

“흠흠... 저는 좋아요.”

“설마 따로 앉으려고 했었습니까? 그랬다면 정말 서운할 것 같은데요...”

그 말에 허리춤에 손을 올린 치나미가 날 나무랐다.

“어허...! 저도 후배님과 함께 먹으려고 복숭아도 갖고 왔는데, 그렇게 못된 오해를 하시면 오히려 제가 서운하답니다...! 방금은 너무 갑작스럽게 말씀하셔서 당황했던 것뿐이에요...!”

“그런 거죠?”

“그런 거예요. 어서 타 계세요. 금방 갈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나는 부실 안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는 치나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버스에 올랐다.

대절한 버스는 50인승. 서른을 조금 넘는 부원들이 타기엔 크기가 컸다.

테츠야는 아직 안 탔나? 딱 보니 렌카의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겠구나.

앞자리에 놓아둔 생수병을 하나 꺼내고 자신의 옆에 앉으라고 하는 부원들과 간단한 잡담을 나눈 나는, 텅 비어있는 뒷좌석 앞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안녕, 마츠다 군.”

내 바로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던 2학년 여자부원 두 명의 인사.

늦은 밤, 조명이 꺼진 버스 안에서 몰래 움직여 여자들과 이런저런 플레이를 즐기는 AV가 생각난다.

씨익 웃은 내가 간단한 목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먹을 거 있어요?”

“말차 맛 포키 있는데 먹을래? 바나나빵도 있어.”

“포키랑 젤리랑 바꿀래요?”

“젤리는 우리도 있는데?”

“근데 왜 쏙 빼놓고 말했어요?”

“이건 주기 싫으니까?”

“내놔요.”

좌석 등받이 사이로 손을 쏘옥 내밀자, 그녀들이 까르르 거리며 손바닥 위에 젤리 하나를 올려주었다.

싸가지 없게 말해도 좋아하네. 이래서 얼굴이 중요해.

요즘 돌고 있는 나에 대한 평가도 한몫했을 거다. 예전의 나였으면 말을 섞으려고도 하지 않았겠지.

내년 합숙훈련 땐 여자 숙소에서 자는 걸 목표로 해볼까?

그러한 망상을 하며 여자부원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고 있던 나는, 치나미가 버스에 타자 한손을 들어올렸다.

“스승님, 여기에요.”

그러자 날 발견한 그녀가 총총걸음으로 다가오더니 머뭇거렸다.

내가 복도 쪽에 앉아있어 들어가기가 조금 민망한 모양이었다.

“저... 후배님. 제가 복도 쪽에 앉을까요?”

“아니요.”

단호하게 그리 말한 내가 팔걸이 밑으로 다리를 빼자, 그제야 안도한 치나미가 내 몸에 자신의 몸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직사각형의 팩을 꺼냈다.

반투명한 팩 안엔 잘 잘라진 복숭아가 있었다.

팩 뚜껑을 연 그녀가 말했다.

“오늘은 딱복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마도카를 가지고 왔어요.”

“향이 굉장히 강하네요?”

“음음...! 날카로우시군요. 마도카 품종의 특징 중 하나에요.”

“복숭아는 이제 거의 출하가 안 되지 않습니까? 용케 구했네요.”

“딱복류는 보구력이 좋아서 출하시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조만간 겨울철을 대비해 냉동을 하긴 해야겠지만, 아직 나오긴 해서 괜찮아요.”

냉동까지 해? 집에 복숭아 전용 냉동고라도 있는 건가?

치나미의 복숭아 사랑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다.

좀 무서워.

“그렇군요...”

“색이 더 바래기 전에 얼른 드세요.”

복숭아를 하나 집어 입 안으로 가져간 치나미의 말.

도톰한 볼을 우물거리는 그녀를 쳐다보며 실소를 터뜨린 내가 대답했다.

“예.”

그렇게 치나미와 복숭아를 음미하고 있는 도중, 나머지 부원들이 버스에 타며 자리를 채웠다.

렌카의 경우 치나미와 같이 앉아있는 날 보며 눈썹을 꿈틀하더니 맞은편에 있는 옆좌석 창가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비어있는 옆자리를 테츠야가 차지했다.

저 저 개새끼... 아주 자연스럽게 앉는 거 봐라.

아주 꼴불견이다.

나는 날 향해 눈인사를 건네는 놈에게, 렌카가 들을 수 없을 정도의 목소리로 농담을 건넸다.

“좋겠네?”

“뭐가?”

“아냐, 아무것도.”

“싱겁긴... 근데 너 목이 왜 이래?”

“목?”

“조금 빨개.”

이거? 네가 눈치없이 렌카에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을 때, 미유키가 차에서 만든 흔적이란다.

“그래? 심하냐?”

“그 정도는 아냐.”

“그럼 됐네.”

“넌 진짜 보면 볼수록 태평하다.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너만 하겠냐 씨발아?

헛웃음을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나는, 복숭아를 냠냠 먹고 있던 치나미에게 조용히 물었다.

“승부는 어떻게 끝났습니까?”

“네? 아... 타협을 했어요. 첫날은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밥을 먹을 거예요. 그 뒤엔 단체훈련을 진행하지만, 정도가 심하지는 않아요.”

“내일은요?”

“내일은 점심까지의 훈련이 조금 힘들 텐데, 끝나면 풀어주기로 하셨어요. 자율훈련을 해도 되고, 산장 근처에 있는 계곡에서 놀아도 돼요. 시청각실도 있어서 영화를 관람할 수도 있어요. 근처 산책로도 아주 잘 되어있죠.”

“산장에 시청각실까지 있어요?”

“펜션형 산장이라서 그래요. 합숙훈련은 물론 수련회 장소로도 많이 채택되는 곳이어서 시설이 잘 갖추어져있답니다.”

시설이 잘 갖추어져있다면 은밀한 장소도 있겠네?

가령 단둘이 마사지를 할 수 있는... 그런 장소.

노천탕이 딸린 객실이 있다면 좋으련만 거기까지 기대하는 건 너무 욕심이겠지.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작년 합숙훈련보다 훈련 강도가 약하다는 건 조금 아쉽지만, 자율훈련시간에 보충하면 되니까 괜찮을 것 같아요.”

말하는 걸 들어보니 나한테 실력향상 명목으로 훈련을 시킬 듯하다.

렌카와의 이벤트에 전력을 쏟기 위해서라도, 훈련은 적당히 하다가 꽁냥거려야겠다.

“모두 조용. 인원 체크 시작한다.”

어느새 버스에 올라탄 고로의 말에, 떠들썩하던 버스 안이 조용해졌다.

드디어 가는구나. 렌카 공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기점이 될 텐데, 최대한의 결과를 뽑아먹는 것을 목표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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