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죽는다...”
“진짜 존나게 힘드네...”
숙소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앓는 소리.
훈련을 끝내고 단체 샤워실에서 샤워를 마친 부원들의 것이었다.
해가 지는 속도가 무척 빠른 산지의 특성상, 우리가 저녁을 먹고 나왔을 땐 금세 어두워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날씨마저도 싸늘한 정도가 아니라 추웠다.
하지만 고로는 이런 산장의 급격한 변화를 즐겼는지, 조명이라고는 산장 쪽에서 설치한 대형 등을 제외하면 전혀 없는 공터에서 우릴 굴렸다.
간단한 스트레칭 이후 소화시간까지는 훈련이 가벼웠지만, 그 이후엔 점점 강도를 높여가 마지막 40분은 정말 힘들었다.
더 미칠 노릇인 건, 고로는 각 부원들의 상태에 맞게 훈련 강도 조절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거다.
덕분에 힘은 들었을지언정, 퍼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이 모두 무사히 훈련을 마쳤다.
“다리가 아파... 다리가...”
내 옆에선 테츠야가 벌러덩 누운 채로 꺽꺽대고 있었다.
이 새낀 왜 내 옆에 이부자리를 깐 건지... 이해가 안 간다.
뭐 트집 같은 거라도 잡아서 미유키에게 고자질을 할 생각인가?
뭐가됐든 좆같았다.
수건으로 머리에 묻어있는 물기를 마저 털어내던 나는,
우웅-!
선반 위에 놓아둔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리자 화면을 확인해보았다.
잠옷을 입은 미유키가 한쪽 뺨에 손을 올린, 이제 잘 거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환히 웃고 있는 사진이 와있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답장을 보냈다.
[예쁘네. 다른 거 없어?]
[어떤 거?]
[아무거나.]
[뭘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봐.]
전에 옥상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신경 쓰고 있구나.
에둘러 말하며 나와 줄다리기를 하려 드는 게 웃기다.
[정말 아무거나 괜찮아.]
[그래? 잠깐만...]
미유키가 의미심장한 답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사진이 하나 왔다.
그것을 본 나는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아랫도리에 피가 쏠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보낸 건 자신의 잠옷 상의 밑단을 약간 올려, 은근슬쩍 배꼽을 드러낸 사진이었다.
아빠다리를 한 채, 배꼽 양옆으로 11자 선이 그려지도록 허리를 곧추세운...
심지어는 엄지 하나로 밑단을 쭈욱 당겨 올린 아주 올바른 사진.
대놓고 가슴이나 아래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그런 것보다 자극이 훨씬 심했다.
[이제 잘 거야.]
이어지는 미유키의 톡.
문자에서부터 새침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통화는?]
[내일 일찍 일어나서 가족들끼리 등산 가기로 했어.]
[그거랑 통화랑 무슨 상관인데?]
[마츠다 군이랑 전화하면 엄청 오래 할 게 뻔하잖아.]
[짧게 끝내면 되지.]
우우우웅-! 우우웅-!
돌연 손 안에서 길게 울리는 진동.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미유키였다.
통화 버튼을 누른 나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그리고,
-잘 자.
창피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미유키의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
내게 사진을 보내주었던 것이 어지간히 부끄러웠나보다.
“뭐야? 왜 전화를 받다 말아?”
헛웃음을 치고 있는 날 향한 테츠야의 물음에, 풋풋한 분위기가 확 깨지면서 짜증이 솟구친다.
“알 거 없어.”
무신경한 투로 대답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겨 입었다.
그러자 테츠야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려고?”
“산책.”
“산책...? 안 힘들어? 날씨도 추운데...”
“내 맘이야 새꺄. 너도 갈래?”
“아니. 난 도저히 못 움직이겠어. 선배들이 카드게임 하신다는데 그거나 같이 하려고.”
“그러냐? 알았다. 다리 잘 풀어둬라. 내일 자율훈련 때 알배긴 상태로 하기 싫으면.”
“그래... 아, 자율훈련에 대해서 말인데... 어떤 식으로 할지 예상이 가?”
놈이 직접 훈련 이야기를 꺼낸 김에 살살 긁어줘야겠다.
어깨를 으쓱인 내가 대답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다.”
“부장께서 네가 원하는 대련도 시켜주시겠다고 하셨잖아. 너랑 나랑 붙는 건가?”
“그러진 않을 걸?”
“왜?”
“장난하냐? 너랑 나랑 실력 차이가 있는데 뭔 대련이야. 그냥 부장이 직접 나서겠지.”
“실력 차이? 설마 네가 나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미끼를 덥석 물어버리는 테츠야.
반응이 내 예상보다 조금 격한데, 쌓여왔던 게 많았나보다.
눈썹을 구기고 있는 테츠야를 비웃듯 코웃음을 친 나는, 에둘러 말하며 놈의 실력을 깎아내렸다.
“네 기본기가 나보다 더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넌 실전에서 약하잖냐. 첫 대련 땐 바닥을 구르기도 했고...”
“그땐 발동작도 모르는 초보였을 때 얘긴데. 두 번째 대련은 나름 잘했어.”
“그래서, 지금의 너는 다르다고?”
“달라. 너랑 붙어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
지금 테츠야는 일반적인 청춘물에서 진득하게 나오는 클리셰처럼, 자만하는 날 이겨 콧대를 눌러주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내가 이 도키아카의 진정한 주인공이라서 뭐 이상한 신의 가호 같은 걸 받기 때문임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
놈과 내 실력 차이는 현격하다.
그건 3자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열정 하나만으로 넘기엔 벽이 거대해도 너무 거대했다.
만약 내가 자만한다면 어떻게 한 방 정도는 먹일 수 있겠지.
그러나 나는 있는 힘껏 놈을 누를 것이다.
놈의 열등감이 그날을 기점으로 확 폭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아... 그러냐?”
“넌 황당하겠지만 솔직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기분이 나빴다면 미안하다.”
“아냐. 전혀 안 나쁜데? 오히려 내가 오해한 것 같아서 미안하지. 네가 그렇게 자신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을 줄은 몰랐다.”
“내일 한 판 붙어볼래? 확인해봐도 돼.”
내 예상대로 움직여줘서 너무 고맙다.
역시 넌 전형적인 빼앗기는 주인공이야.
“그러지 뭐.”
“좋아.”
주먹을 불끈 쥐며 전의를 다지는 테츠야를 내려나본 나는, 무심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방을 나섰다.
**
“후배님, 이거 한 번 보세요.”
저벅저벅 산책로를 걷던 치나미가 고개를 슬쩍 들더니,
“하아아아...”
허공에 기다란 숨을 뱉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희뿌연 입김.
바람에 휘날려 순식간에 사라지는 그것을 바라보던 그녀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입김이 나오기엔 이른 시기인데,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날 올려다보는 그녀의 양쪽 뺨은 추위로 인해 붉게 물들어있었다.
굉장히 깜찍해 보이는데, 순간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트로 온몸을 꽁꽁 싸매고, 벙어리장갑을 낀 채 하늘을 향해 입김을 부는 치나미가 보고 싶어.
“스승님의 속마음이 따뜻하다는 증거입니다.”
“그게 정말이에요?”
“농담이긴 합니다만, 스승님이 따뜻한 건 사실이니 진담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느앗...! 그런가요?”
치나미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꼬아 빙글빙글 돌렸다.
좋아라하고 있는 게 티가 나는데,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한다.
피식한 나는 주황색 조명을 내리쬐고 있는 가로등을 가리켰다.
“빛이 저번에 갔던 마사지 룸의 조명이랑 비슷하지 않나요?”
“네엣...? 아닌데요...? 전혀 다른데요...? 그때보다 훨씬 밝아요...”
금세 수줍은 모습으로 돌아와 우물쭈물하는 치나미.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표정이 정말 매력적이다.
찬바람 때문에 몸이 조금 굳어있겠지? 빨리 말랑말랑하게 해줄게.
“오늘 훈련 힘들었죠?”
“으음... 검도는 대부분 실내에서 하는 무도이다보니... 힘이 들긴 했어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매일 기초체력단련을 하고 있어서 버틸만해요.”
“다리가 아프지는 않나요?”
“아프진 않지만 힘이 조금 풀렸어요. 이러다 흐물흐물한 오징어 다리가 될지도 몰라요.”
“그럼 잠깐 마사지해줄까요?”
그 말에 치나미의 온몸이 움찔했다.
“마, 마사지요...?”
“예. 내일도 아침부터 훈련이 있잖아요. 점심엔 부장과 자율훈련을 할 예정이기도 하고요. 알이라도 배기면 곤란하니 풀어줘야 됩니다.”
“내, 내일 있을 자율훈련에선 후배님과 미우라 후배님 위주로... 가르칠 생각이었는데요...”
“마사지를 해드리기 좋은 장소도 찾아놨는데, 별로인가요?”
“아니... 별로가 아니라... 흐흠... 좋은 장소가 어디인가요...? 실내에요? 아니면 실외...?”
귀를 쫑긋하는 그녀.
보름 만에 마사지를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솔깃했나보다.
방긋 웃은 내가 대답했다.
“실내입니다.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장소에요. 오일 마사지용 용품은 갖고 오지 않아서 일반 마사지로 해드릴 거예요.”
“으음... 이해해요. 그런데 얼굴 마사지도 해주시나요...?”
“물론입니다.”
“.... 흠... 그렇다면 조금 받아보도록 할까요...?”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 하고 있지만, 얼굴에서 다 드러난다.
우리 치나미... 잔뜩 기대하고 있었구나.
“그럼 갈까요?”
“네...”
**
내가 치나미를 데리고 간 곳은 주차장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이 열려있는, 아무도 없는 버스.
치나미와 함께 그 안으로 들어간 나는, 스위치를 눌러 문을 닫았다.
푸쉬익-!
그때까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치나미가 물었다.
“문은 왜 닫으시는 건가요? 이곳에 마사지용 용품을 가지러 오신 게 아니었나요?”
“갖고 오지 않았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럼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여기서 해드리려고요.”
“네엣...?”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은 치나미가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이렇게나 어두운데 어떻게 마사지를 하시려는 건가요...? 게다가 버스라니...”
“본관에서 새어나오는 빛 덕분에 앞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니잖습니까. 누울 공간도 있고요.”
팔걸이가 하나도 없는 맨 뒷좌석을 가리키자, 치나미가 긴장했는지 침을 꼴깍 삼켰다.
“확실히 그렇긴 하지만... 누가 오기라도 하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봐요. 시간도 늦었잖아요. 훈련도 힘들었고. 다 지쳐서 잠들었을 겁니다. 그리고 누가 오면 뭐 어때요? 그저 제자가 스승을 위해 마사지를 해드리는 것뿐인데.”
“저, 저는 마사지를 방해받고 싶지 않아요... 느긋하게 즐기고 싶어요.”
소신 있네. 마음에 들어.
고개를 끄덕인 나는 휴대폰 손전등을 켠 뒤, 버스 양옆에 있는 커튼을 모조리 쳐놓았다.
그리고는 치나미의 등에 손을 대고 약한 힘으로 떠밀었다.
“제가 또 스승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네요. 불찰입니다. 대신 정말 열심히 해드릴게요.”
“흠흠... 그러시다면 한 번 속아보도록 하겠어요...”
마지못한 척 연기를 하며 뒷좌석으로 간 치나미는, 얌전히 신발을 벗고 엎드려 누웠다.
살구색, 분홍색이 섞여있는 복실복실한 모모님 양말이 눈에 띈다.
“그럼, 바로 시작할게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며 치나미의 다리 부근에 쪼그려 앉은 나는, 그녀가 신은 양말의 목을 조금 내리고 발목을 손으로 감쌌다.
그러자,
“히야악...?”
차디찬 냉기를 느낀 그녀가 깜짝 놀란 비명을 터뜨렸다.
그녀의 종아리를 부드럽게 위아래로 쓰다듬은 내가 말했다.
“손이 조금 차갑죠?”
“괘, 괜찮아요... 그냥 놀랐을 뿐이에요...”
“불편하면 언제든지 말해요.”
“네에...”
긴바지라 맨다리를 만질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장소가 장소인 만큼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나는 치나미의 다리를 아주 열심히 주물러주었다.
사심은 섞지 않았다. 그저 고된 훈련으로 인해 피로해진 종아리 근육을 풀어주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치나미가 나른한 감탄사를 터뜨릴 때쯤,
스으윽.
허벅지까지 손을 올리고, 가랑이 사이를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어디까지나 마사지를 하며 우연히 닿은 것처럼 말이다.
“우응...?”
그러자 치나미의 골반이 아주 천천히, 약간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의문이 섞여있는 야릇한 탄성은 덤.
그 틈을 탄 나는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그녀의 둔부와 이어져있는 뒤쪽 허벅지를 꾸우욱 눌러주었다.
“응앗...”
이번엔 다리에 힘을 주는 그녀.
그녀의 엉덩이 밑에 손을 댄 내가 물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한가요?”
“아, 아니요... 으음... 좋아요... 좋은 마사지에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후배님... 다리는 충분히 풀어진 것 같으니 이쯤하고... 얼굴을 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얼굴을 원해요?”
“네... 찬바람을 맞았더니 얼굴이 무척 당기는군요...”
오랜만에 만진 김에 조금 더 달궈놓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오늘은 간단하게만 성적인 맛을 보여주려고 했고, 목적도 달성했으니, 지금은 물러나자.
서서히 중독시켜나가면 된다.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하고 있었고, 치나미의 반응도 좋다.
그러니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 쪽으로 누우세요.”
가장 구석 좌석에 엉덩이를 대고 앉자, 치나미가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내 허벅지 위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당연한 듯,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의 배꼽 위에 손을 다소곳이 올려놓은 치나미를 보며 아빠미소를 지은 나는, 그녀의 코끝을 손가락으로 콕 건드렸다.
이후 열 손가락의 첫 마디를 활용해 그녀의 정수리를 사근사근 쓰다듬어주었다.
“흐에...”
곧바로 기분 좋은 숨을 토해내며 입을 살며시 벌리는 치나미.
눈까지 서서히 풀려 가는데, 어지간히 편안한가보다.
“조금만 있다가 들어가죠. 많이 늦었습니다.”
짧다고도, 길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동안 얼굴을 만져주던 내 말에, 슬슬 새근새근한 숨소리를 내뱉으며 잠에 들려고 하던 치나미가 눈을 떴다.
“므응... 여기서 잘래요...”
“부장이 걱정할 텐데요.”
“그렇군요... 어서 계속해주세요...”
알았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얼굴 마사지가 그렇게나 좋나?
이대로 가다간 나중에 따로 만나도 얼굴만 만져달라고 할 판인데...
타이밍을 봐서 적당히 끊어줘야겠다.
치나미가 약간 아쉬운 마음을 느끼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
다음엔 그녀가 먼저 내게 마사지를 해달라고 조를 수 있도록 말이다.
방금의 대화로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조절만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