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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113화 (11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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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적인 목찌름은 막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건 자세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일 때의 이야기.

목찌름을 당하기 전, 미우라는 분명히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더군다나 중단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서, 대비만 잘 되어있었다면 손을 약간만 움직이는 것으로 막아낼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데 미우라는 그것을 못했다.

미우라의 순발력이 뒤떨어져서? 아니다.

그냥 마츠다가 너무 잘했다.

미우라가 움직이기 힘든 범위를 교묘하게 파고들어갔고, 그가 동작을 수행하고 있을 타이밍에 정확히 죽도를 꽂았다.

호흡은 다소 가라앉아있을지언정 기(氣)라고 느낄 만큼의 패기는 있었고, 죽도가 힘 있게 내뻗어졌으며, 동작마저도 군더더기가 없었다.

발구름이 굼떠 보이긴 했지만 기검체일치에 잔심까지 제대로 수행해서, 한판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몇몇 사소한 문제점만 제외하면 좋은 일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순간 멋있다고 생각할 만큼.

검도를 나름 깊게 파온 2학년 정도라면 막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초보인 미우라로서는 무리였다.

알아도 못 막을 정도. 그만큼 매서운 기세가 담긴 공격이었다.

‘너무하잖아...’

실력 차이가 날 줄은... 아니, 재능의 차이가 있을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

‘어쩌지...?’

지금이라도 말리고 싶지만... 여기서 경기를 멈춘다면 미우라의 자존심엔 크나큰 상처가 날 것이었다.

안 그래도 아까 대련을 하고 싶다 했을 때 호승심이 마구 타오르는 게 보였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 놔두기도 껄끄러운 것이, 2회전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방금처럼 순식간에 끝나버린다면 멘탈에 굉장한 타격이 갈 텐데...

물론 미우라도 제 실력을 내보이지 않은 상태이긴 하나, 그것을 감안해도 승산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잘하네.”

호면이 비뚤어졌는지 확인해보던 미우라가 마츠다를 칭찬했다.

그 무덤덤한 목소리를 들은 렌카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우라의 음색에 흔들림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잘 컨트롤하고 있다는 뜻.

약간 화가 나 있긴 했지만, 저 정도면 승부욕이라고 생각해주어도 될 듯싶었다.

경기를 중지시키려던 마음을 쏙 집어넣은 렌카는, 미우라가 마츠다의 맞은편에 준거하려고 하자 숨을 가다듬고는 말했다.

“잠깐 휴식할게. 타격이 너무 강해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해.”

“제가 또 잘못했나요?”

“.... 그 정도까진 아니야.”

“알겠습니다.”

여유롭게 대답한 마츠다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리더니, 기쁨을 애써 억누르고 있는 치나미에게 다가갔다.

“첫 타격을 조심하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어느새 자신의 곁으로 온 미우라의 사죄.

온화한 미소를 지은 렌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너무 부담 갖지 마. 너만 괜찮으면 한 가지 조언을 해주려고 하는데, 어때?”

“전 좋습니다.”

“네 특기는 장기전이야. 근접전과 퇴격, 그리고 수비 위주로 운영하고, 마츠다는 좌상단을 사용하니까 공격을 할 때 왼쪽이 많이 비게 될 거야. 기회가 생기면 그쪽을 중점적으로 노리면서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가. 거리를 벌리려고 하지는 마. 상단의 사거리는 길어.”

“알겠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머리를 쳐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네? 하지만 상단은 머리 방어가 잘 되잖아요.”

“머리를 치면서 달라붙으면 코등이싸움을 걸어오는 줄 알 거야. 분명히 널 밀어내려고 할 텐데, 그때 밀리는 척 빠지면서 손목을 쳐.”

“예. 머리 치고 퇴격손목... 머리 치고 퇴격손목...”

전략을 뇌에 새기려는 듯 중얼거리는 미우라.

저 순진한 모습에 실소를 터뜨린 렌카가 말했다.

“물론 마츠다가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여의치 않은 것 같으면 빠르게 빠져버리는 것도 좋아. 항상 생각하면서 경기에 임해. 승패에 너무 집착하면 몸이 굳어버리니까 여유를 갖는 것도 괜찮아. 평소대로 해봐.”

“거리조절이 잘 안 돼서 일족일도 유지가 힘들 것 같긴 한데... 노력해볼게요.”

“정상이야. 상단은 죽도가 가려져있어서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거든. 목은 괜찮니?”

“어우... 지금은 그나마 괜찮은데 맞을 당시엔 숨이 턱 막히더라고요.”

“어디 한 번 보자.”

호면의 목 보호대를 잡아당기고, 상체를 살짝 수그리는 렌카.

“부, 부장...! 너무 가까워요...!”

순박한 소리를 하는 미우라를 무시하고 목 상태를 확인해본 그녀가 말했다.

“타박상은 없어 보이네. 많이 아프면 중지해도 돼.”

“아, 아닙니다. 계속할게요.”

“알았어. 힘내.”

“네, 부장...!”

저렇게 호기롭게 대답하다니.

격려가 힘이 나는 걸까?

아니면 호승심이 타오르고 있는 걸까?

뭐가 됐든 나쁜 현상은 아니다.

**

코웃음이 나온다.

내 눈앞에서 테츠야의 냄새나는 몸을 살피다니.

앙칼진 행동을 한 죗값은 나중에 전부 받아내주마.

2회전의 양상은 1회전과는 달랐다.

렌카의 시작 신호와 동시에, 테츠야가 발을 빠르게 구르더니 방어가 견고한 머리를 노리며 접근해왔던 것이다.

따악-!

손쉽게 머리를 막아낸 나는, 테츠야가 코등이싸움을 걸어오자 인상을 찌푸렸다.

놈의 더러운 몸과 부딪치는 건 질색인데, 호구를 착용하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나는 팔을 내려 기세 좋게 달려드는 테츠야의 죽도를 막아냈다.

카각-!

호구가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거리.

테츠야를 떼어내기 위해 팔에 슬쩍 힘을 주며 밀자, 놈의 몸이 스르륵 뒤로 빠졌다.

버티기도 하지 않고 물러나는 것으로 보아 퇴격을 노리고 있구나.

렌카에게 조언을 들은 것 같은데... 조금만 버텨보는 시늉이라도 하든가.

읽어내기가 너무 쉽다.

그리고 물러나는 범위가 커서, 내가 딱 때리기 좋은 범위가 만들어지고 있다.

속으로 콧방귀를 낀 나는 제 스스로 거리를 만들어주는 테츠야를 똑바로 응시하며 팔을 휘둘렀다.

후우웅-! 쩌적-!

테츠야의 허리, 그리고 내 팔목 부근에서 울려 퍼지는 대나무 특유의 경쾌한 소리.

거의 동시에 서로의 신체부위를 때렸는데, 내가 맞은 팔목은 점수를 얻을 수 없는 부위인 반면, 테츠야가 맞은 허리는 완벽한 격자부위였다.

하지만 한판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테츠야의 허리에 닿은 게 죽도의 격자부가 아니라, 중앙에 해당하는 등줄이었기 때문.

격자부가 아닌 곳으로 치면 무효가 되는 검도의 특성상 한판감은 전혀 아니었다.

이는 내가 다분히 의도한 것이었다.

충분히 한판을 노릴 수 있었음에도, 테츠야를 가지고 놀기 위해 일부러 팔을 길게 뻗었다.

거리조절이 어설픈 척 말이다.

“익...!”

너무나도 허망하게 타격을 허용한 테츠야가 이빨을 꽉 깨물었다.

예전이었다면 소심하게 깨갱했을 놈이 반항을 하려 하는데, 검도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담력이 커진 것 같다.

나는 테츠야가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에, 놈에게 달려들며 죽도를 내리쳤다.

“헉...!”

기겁한 테츠야가 한 팔을 들어올리려고 했지만, 죽도는 이미 놈의 어깨에 닿은 뒤였다.

쩌어억-!

등줄이 아치형으로 휘어졌다가 다시 되돌아온다.

타격감이 장난이 아니다. 쓸모없는 몸뚱아리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자그마한 가치는 있었구나.

“윽...”

고통을 참아내는 듯한 신음을 터뜨리는 테츠야.

호면 양옆으로 길게 늘어져 어깨를 보호해주는 부동 때문에 아프지도 않을 텐데, 엄살이 심하다.

아픈 건 네 눈 먼 죽도에 맞은 내 팔목이지.

지금도 얼얼하단 말이야.

하필이면 호완통 바로 밑의 맨살을 때려가지고... 개새끼가.

이어진 대련은 일방적인 구타였다.

나랑 붙어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신감 있게 지껄였었던 테츠야는 공세를 수비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면금 사이로 보이는 놈의 눈이 점점 당혹감으로 물들어가는 게 보인다.

어이가 없을 거다.

제 딴엔 정말 열심히 수련했고, 지금은 해볼만하다고도 생각했는데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얻어맞기만 하고 있으니.

쩌억! 쩍!

머리, 허리, 심지어 등까지.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 척 연기를 하며, 나는 테츠야의 몸에 상처가 나지 않는 선에서 신나게 놈을 두들겨 팼다.

“중지! 그만해!”

그러다 렌카의 성난 외침을 듣고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구석에 몰려 장외로 나가기 직전인 놈을 쓰윽 쳐다본 나는 렌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한판인가요?”

“한판...? 장난해? 너 지금 뭐...”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친 렌카가 내게 뭐라고 하려 할 때,

“후배님!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치나미가 우다다 달려오더니, 내가 쓴 호면을 주먹으로 아주 약하게 때렸다.

콩!

“방금 후배님이 보여주신 움직임은 그냥 폭력이었어요! 정당한 공격을 위한 자세가 전혀 아니었다구요!”

콩! 콩!

“후배님이 들고 계신 죽도는 쇠파이프나 야구방망이가 아니에요! 정말 못됐어요!”

콩! 콩! 콩!

까치발까지 들며 날 훈육하려는 모습이 귀엽다.

그러고 보니 첫 대련 때도 지금과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잠자코 치나미의 깜찍한 공격을 받아주던 내가 사과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아까 팔목을 세게 맞아서 흥분했어요.”

“팔목이요? 처음 공방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

“어디 한 번 봐요.”

호완을 벗은 나는 도복 소매를 걷어 팔목을 보여주었다.

일자로 붉게 물들어 살짝 부풀어 오른 살갗.

이를 확인한 치나미가 흠칫했다.

“앗... 많이 아파 보이시네요...?”

자신의 얇은 손으로 그곳을 만져보는 그녀.

따끔함을 느낀 내가 한쪽 눈썹을 꿈틀하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괜찮아요...?”

“예. 버틸 만은 합니다.”

“나중에 약을 발라 드리겠어요. 초보끼리 대련을 하다보면 감정이 격해지는 건 흔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번 일은 명백한 후배님의 잘못이에요. 방금 그건... 무도라는 틀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행동이었어요. 실제 시합이었다면 풍기위반으로 몰수패를 받았을 거예요.”

“앞으로 조심할게요. 미우라에게도 따로 사과하겠습니다.”

내가 치나미에게 혼이 나고 있는 한편, 옆에 있는 렌카 또한 테츠야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괜찮아?”

“예... 저는 멀쩡합니다...”

테츠야의 목소리는 크게 잠겨있었다.

압도적인 실력차이에 절망한 것이다.

그런 테츠야의 감정을 눈치챈 렌카는, 그를 일으켜 세우더니 등을 두드려주었다.

“잠깐 쉬고 있어.”

놈은 비에 홀딱 젖은 강아지마냥 축 늘어져있었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좀 났을 거다.

자만하고 있던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너였다는 걸 깨달았겠지?

절치부심하는 마음을 갖고, 나중에 또 얻어맞으러 오렴.

그리고 오늘의 네 역할은 끝이니까, 숙소에 들어가서 질질 짜고 있든지 해라.

“치나미. 잠깐 마츠다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을까?”

우리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렌카의 말.

콧김을 훅훅 내뿜으며 날 나무라고 있던 치나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앗... 네. 너무 많이 혼내지는 마세요. 제가 지금 따끔하게 한 마디 했으니까요.”

“.... 그럴게. 따라와, 마츠다.”

냉랭한 목소리로 날 부르며 훈련실을 나가는 렌카.

뒤따라나간 내가 문을 닫자, 렌카가 가라앉은 투로 말했다.

“치나미는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알아. 네가 호구만 있는 부위를 골라 때렸다는 걸 말이야. 겉으로 보기엔 굉장히 흥분한 것처럼 보였는데... 그런 사람치고는 타격점이 지나치게 정확하지 않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가요?”

“의도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다... 이 말이야. 수세에 몰린 미우라를 검도 자세가 아닌, 마치 무기를 든 깡패처럼 때렸던 것도 그렇고... 이건 미우라에게 개인적인 보복을 하기 위해서, 혹은 욕보이기 위해서... 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아. 혹시 내가 틀렸을까?”

정확하게 봤다.

나는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자 렌카가 내 팔목을 턱짓하더니 물었다.

“팔목은 괜찮아?”

“예. 그럭저럭요.”

“나도 초심자 때는 한 대 스쳐서 맞기만 해도 화가 나고 그랬었어. 욕심도 강해서 지고 못 사는 성격이었고, 어떻게든 갚아주고 싶어 했지. 하지만... 너는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해. 네 행동은 승부욕의 범주를 넘어간 거야.”

“인정해요.”

“그래도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는 건 다행이네. 치나미는 너한테 약해. 천성이 착한 애라서 심한 말도 못하고. 그러니까 내가 대신하려고 해. 넌 재능이 있어. 하지만 성격이 너무 오만하고 불같아서, 검도를 하기엔 어울리지 않아.”

슬슬 시동이 걸리고 있다.

“그만두라는 말인가요?”

“그런 말이 아니야. 계도해주겠다는 뜻이지.”

“계도?”

“나랑 대련하자. 저번처럼 지도대련이 아니라, 실제 시합처럼 붙어보는 거야.”

제대로 물었다.

테츠야가 아주 좋은 미끼였구나.

“실제 시합처럼...? 부장이 저랑 직접요?”

“그래. 네가 바라던 바지 않아? 실컷 대련하고 싶다며. 내가 해줄게. 싫어?”

“아니 뭐... 저야 부장이 해주면 고맙긴 한데... 버릇을 고쳐주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요. 그리고 솔직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흰 실력 차이가 크잖아요.”

“지는 게 두려워서 그래?”

그럴 리가 있겠냐.

난 내가 원하는 걸 얻을 수만 있다면 수십, 수백 번이라도 질 수 있어.

뒷머리를 벅벅 긁은 내가 말했다.

“그게 아니라...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뭔가를 걸어야할 것 같아서요.”

“걸다니? 뭘?”

“1점.”

“.... 1점?”

“제가 부장한테서 1점을 가져올 때마다, 소원 하나씩만 들어줘요.”

난데없는 제안에, 렌카의 눈이 크게 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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